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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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항목
노건평
bartomenon
"논정" '학불편'을 강설하는 복어
출생2012년 03월 02일(2012-03-02) (12세)
광무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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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대한국 , 한빛민주공화국, 가상대한제국
별칭보거, 야불선인, 이원, 강문모 등
학력봉하민주고등학교 재학 중
경력대한국 황제
가상국제연합 국제외교부장
신성제국 한왕
한빛민주공화국 전 상무부장
한빛민주공화국 전 상임위원회 위원
페르시 그룹 전 회장
보코케인왕국 전 국왕
가상국제연합 전 의장
가상국제연합 전 최고위원
직업정치인, 관료, 학자

개자지(2012년 3월 2일 ~)는 대한국을 근거지로 하는 정치인, 관료, 학자이다. 가상국제연합의 최고위원, 의장, 국제외교부장을 지냈다.

약력

입문(12)

복어는 2011년경 실제 역사 속 대한제국의 군사 등에 대해 검색하다가 '가상국가 대한제국'이라는 연관검색어를 발견하여 잠시 가상국가계를 눈팅하게 되었고, 이때 성무전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가상국가를 잊고 있었지만 2012년 3월경 다시 관심이 생겨 광무제국을 통해 가상국가에 입문하게 되었다.

잠시 광무제국에서 활동하다가 자신 외 5명의 실친들을 데려와 '가상국가 베네치아공화국'을 건국하였다(5월). 광무의 영향을 받아 구성원들의 닉네임은 '베네치아외교부장관', '베네치아원로원의장' 등 직책 위주로 지어졌다. 그때 함께한 실친 중 한 사람은 일본 기업 '스바루'에서 모티브를 얻은 '사루바자동차'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여담이지만 그 실친은 현 페레이션의 전신으로 추정되는 '종이토이스' 카페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나라는 잠시 유지되다가 7월 13일 복어[1]의 멸망 선포로 무너졌다.[2]

초년기(12~13)

베네치아 공화국 멸망 이후 복어는 어느정도 가상국가 생활을 쉬었다가 동년 8월 즈음 광무제국에 복귀하였다. 9월에는 샤자한을 만났다. 또 그 무렵 닉네임을 '게오르크'로 정하였다. 샤자한과 동업하며 자신은 프로이센 왕국을 세우고, 샤자한이 대한민주공화국?을 건국하는 것을 도왔다. 이때 올리버 폰 프리드리히 당시 프로이센 공화국 대통령이 쪽지로 국호가 혼동될 수 있음을 전달하였고, 이에 복어는 국호를 독일 제국으로 변경하는 한편 황제국으로 격을 높였다. 독일 제국 폐국 무렵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012년 겨울 그는 대한제(諸)국[3] 최초로 40명대의 인구수에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당시 극우 성향이었던 복어(당시 게오르크)는 집권당 이름을 '민주공화당'으로 하고 교화대라는 이름으로 '국가재건대'를 만들려 하는 등 박정희 코스프레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바'(대한보수당), '비거스렁이'(진보개혁당?) 등 야당 정치인들이 함께 있어 국가가 활발히 운영되었다. 하지만 10월 유신까지 흉내내고자 했던 복어는 2013년 1월 유신을 단행하였다가 국가가 파탄나고 폐쇄를 결행하게 되었다. 이후 일뽕에 취하여 '가상국가 일본국'과 '가상국가 선양(先陽)국'을 건국하였지만 1인 국가화 되어 무료한 생활을 하는 등 방황하였다. 이 시기에 닉네임도 수차례 바꾸었다. 가꿈, 능파[4] 등. 방황하던 그는 옛날의 대한제국이 나름 잘 되었었다고 생각하여 2013년 10월경 대한연방공화국을 세우지만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동년 11월경 이한 광연부, 이한 청안부와 대연공이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하였고, 이어 복어 자신과 진 클로드, 남윤호 3인이 위주가 되는 가상국가 이한 공화민국을 구 광연부 카페에 수립하였다. 정체는 내각제로 하였고 헌법은 일본국 헌법을 본땄다. 대통령은 진 클로드(당시 진경환), 내각총리는 복어(당시 남이식)이었고, 남윤호는 군무를 보겠다고 자원하여 제2군사령관이 되었는데, 남윤호 본인의 착오로 인해[5] 3인방 중 가장 힘이 약해져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에 진 클로드는 복어에게 남윤호를 축출하자고 제안하였으나 복어는 국가 기간 붕괴에 대한 우려와 의리를 이유로 거절하였다.[6]

숙청전쟁, CVN전쟁 시기

복어가 가상국가에 입문한 시기는 숙청전쟁이 한창이던 때이다. 처음에 복어는 눈팅하던 시절 보았던 성무전쟁을 떠올려, "광무-신성 전쟁을 목격한 저로서는 우려된다"라는 취지의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복어는 당시 신인 중에서는 나름 개념인으로 취급되었던 프리제라크잉끄어까지 갈려나가는 것을 목도했고, 이에 두려워 했다. 그래서 최대한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편, 무개념으로 지칭되던 다른 가국인들을 숙청전쟁 주도자들에 끼어 까댔다. 복어는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희생당하였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2012년 후반 즈음이 되자 CVN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복어는 원래 북크로센 등 네이밍만 보고 CVN(루퍼트) 진영이 착하고, 크라스나야(를 비롯한 연합 세력) 측이 나쁘다고 생각하였지만, 전개되는 상황을 보니 대세는 크라스나야 측이었다. 이에 복어는 전격적으로 CVN을 공격하는 데 가담하여 최전선에서 당시에도 유력 인사였던 토끼블랙골드 등과 함께 루퍼트에게 맞섰다. 하지만 이때 한가지 저지른 과오가 있는데, 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한 CVN 인사(흔히 무개념으로 지칭되었다)가 특수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우주의 꿈[7]을 통해 접한 후 그 사실을 거론하며 조롱한 것이었다. 이게 알려지자 정대성이 극대노하였고, 가장 심했던 복어, 타락여우, 샤자한은 장문의 사과문을 작성하여야 했다. 이때 동명민주공화국의 운영자 블루버드는 자필(수기)로 사과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CVN 전쟁 참전은 복어가 뉴비에서 후의 중견 가국인으로 성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청년기(14)

복어는 이한을 온전한 자기만의 나라인 것처럼 가꾸며 여러 기업과 정치인들을 유치하여 활동력 측면에서 선전하는 등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 2월 TK호랭이의 댓글에 '뭔놈의'라는 투의 답글을 작성하였다가 외국 대사에게 욕설을 하였다는 꼬투리가 잡혔고, 레자 칸을 비롯한 당시 골목대장들이 들이닥쳐 압박하였다. 키배로 응수하며 버티던 복어는 동월 매니저(대통령) 진경환에 의해 부매니저를 박탈 당하고 쫓겨났다. 이후 복어는 자신이 작성한 설정과 법제를 모두 지우라는 등 요구를 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8]

이한에서 쫓겨난 복어는 당시 가장 번영하였던 홍콩민주공화국에 가서 '복사열'이라는 이름으로 '태양그룹'을 경영하며 잠시 기업인으로 살았다.[9] 그러다가 홍콩에서 역시 기업을 경영하였던 JUN과 만나게 되었고, 함께 보코케인왕국을 건국하였다. 국왕은 복어(당시 복사열), 초대 총리는 JUN이었다. 복어는 메이지 헌법을 차용하여 보코케인왕국 헌법을 썼다. 첫 연호는 카이위앤(開元)이었다. 이때 훗날 주전자가 되는 lightpolis와 보코케인의 계승자가 된 비엣남도 함께 하게 되었다. 보코케인왕국은 홍콩 다음 가는 활동력을 자랑하며 나날이 발전하였고, 복어는 보코케인을 가꾸는 재미에 삶을 이어갔다.

보코케인은 헌법이 있긴 했으나 사실상의 전제군주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JUN 초대 총리가 사임하고 있었던 총선거에서 국민의 힘이 당선[10] 국민의 힘은 제2대 총리에 취임한 이후 일본국 헌법을 빌려 헌법을 개정하여 왕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내각 위주의 정치를 유도하였다. 이에 기존 인사들(비엣남, JUN, lightpolis)과 자주 갈등을 빚었고, 이는 정적 lightpolis를 강퇴하는 사태로 폭발하였다. 복사열 국왕과 비엣남, JUN, lightpolis는 국민의 힘이 의결정족수를 지키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킨 캡처본을 빌미로 국민의 힘을 탄핵하였다. 국힘은 이에 모든 글을 삭제한 뒤 보코케인을 탈퇴하였다. 한편 복어가 회고하기로, 이런 사단이 일어났던 것은 자신의 우유부단함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후 보코케인에서는 비엣남이 준 국가재건위원장을 몰아내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정치적 풍파가 다시 한번 일어났다. 이에 가상국가 정치에 환멸을 느낀 복어는 보코케인을 접기에 이른다. 14년도 가을 무렵에 페르시아 라인 인원을 중심으로 보코케인 2기를 기획하였지만 흥행에 실패하였다.

복어는 레자 칸이 중소국을 규합하자는 명분으로 페르시아 라인을 만들 때 홍콩의 Wei Xiao(현재 인스윈), 헤일로, 블라디 등과 함께 가입하였다. 이후 페르시아 라인과 가국당패 등 크라스나야 계열 인사로 활동하며 반정대성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그쪽 인사들이 모여있는 마이피플 방이 있었다고 복어가 증언한다. 하지만 조직에서 자신이 소외된다고 느낀 복어는 어느날 아무 연락도 없이 마이피플 앱을 삭제하고 모든 가상국가 커뮤니티에서 탈퇴한 뒤 종적을 감추었다.

2014년도에는 복어가 한빛민주공화국 마인크래프트 서버(당시 1.5.2 버전)에 최초로 들어가기도 했다. 베타테스터는 아니었지만 베타테스터 기간이 끝난 뒤 바로 들어갔다. 현재 단군특구에 있는 '복어의 러블리 하우스'는 이때 복어가 대충 지어놨던 나무집('상쥬늬의 집')을 헐고 그 자리 위에 지은 것이다. 또 현재 분당구 외곽에 위치한 벽돌집과 농장집도 2014년도에 지은 것이며, 벽돌집 밑에 있는 지하창고는 그 당시에 사재기를 했던 곳이다.[11]

중년기(15)

복어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15년 1월 한빛 마인크래프트 서버가 다시 개장되면서이다.

장년기(16)

페르시 사태

해당 문서 참고.

노년기(17~)

가족 관계

저서

성격과 영향

평가

각주

  1. 당시 닉네임 Leonardo Loredan
  2. 이는 RealKorea 3호 신문에 기록이 남아 있다.
  3. 또는 대한연방공화국. 참고로 이때 정대성을 비롯한 많은 가국인들이 단일계 국가로 오해하였으나 단순히 '있어보여서'(...) 배꼈을 뿐 단일계는 아니었다.
  4. 아야나미에서 따옴
  5. 제2군이 전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줄 앎
  6. 만약 이때 제안을 승낙했다면 현재의 이한은 남윤호가 없고 복어가 집권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7. 현재의 타락여우
  8. 훗날 밝혀진 것이지만 이는 당시 이한 공화민국에 몰려있었던 인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레자 칸 등 일부 범크라스나야 계열 가국인들의 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한다. 레자 칸이 2014년 중후반경 복어에게 페르시아 라인 마플방에서 직접 알려주었다.
  9.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 나오는 가공의 기업, 기업인의 이름에서 유래
  10. 사실 이때 국민의 힘이 당선된 것은 국왕 복사열이 부계정 10여개를 사용해 선거 결과를 마음대로 조작하였기 때문이다. 복사열(복어)은 자신이 원하는 총리를 뽑기 위해 그리 하였는데, 마지막에 티없는하늘과 국힘 중 고민하다가 입헌군주제 개혁을 더 잘해줄 것 같은 국민의 힘을 선택한 것이다.
  11. 사재기 행각은 이후 15년도에 더욱이 발달하여 갖은 수법으로 지하경제를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