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 연방

대영 연방
Union of Great Britain
국기
대영의 국기이다.
국가All Hail Britannia
영토
대영의 지도이다.
본토 인구7800만명
인구 총합3억 6000만명
국가 원수카렌 사스키아 총괄지도자
수도런던
공용어영어
정치체제일당독재 체제, 중앙집권체제
경제체제국가자본주의
표어승리를 찬양하라, 내일은 우리의 것이니!
화폐단위파운드 스털링
본토 GDP4조 6800억 USD
GDP 총합6조 3000억 USD
국조검독수리
국화장미
진영제 5 인터내셔널

상징

국호

대영국과 그 위성국들로 이루어진 국가의 공식 국호는 대영 연방이며, 이들의 실질적 지도국은 대영국이다.

국기

국가

All Hail Britannia

국화

장미

국장

역사

연표

1918년 11월 11일: 제 1차 세계대전 승리
1919년: 베르사유 조약 강행
1921년: 전국 총파업, 검은 금요일
1922년: 로이드 조지 실각
1923년: 스탠리 볼드윈 수상 등극, 총선거
1924년: 노동당 내각 수립 실패, 보수당 재집권, 금본위제 재시행
1925년 1월: 남웨일스에서 노동자들과 일부 부대의 항명
1925년 2월: 전국적인 혁명 불길, 왕족 캐나다 도주
1925년 3월: 의회 해산, 브리튼 연방 선언
1925년 4월: 프랑스 코뮌과 제 4 인터내셔널 선언
1926년: 노동조합 총회, 식민지 자치법 가결, 식민지 자치 확대
1927년: 스탈린-에릭 블레어 회담 파국
1928년: 아일랜드와 인도 독립 승인, 최대주의자의 반발
1930년: 인민선거, 모즐리를 총회장으로 선포
1931년 5월: 노동조합 총회가 '전체주의자 총회'로 개명
1931년 9월: 왕당파들의 쿠데타 시도인 '가장 기나긴 밤' 사건 발발, 진압. 이를 명목으로한 모즐리의 정적 숙청 강행
1931년 10월: 모즐리의 총괄 지도자 취임
1931년 12월: 에릭 블레어 처형
1934년 3월: 무솔리니의 주재로 히틀러와 회담, 독일-영국 불가침조약 채결
1934년 5월: 모즐리-스탈린 조약을 통해 소련과의 경제/군사적 협력 채결
1934년 6월: 식민지 보호법 가결, 영연방 구성국의 사실상 식민지 복귀행
1936년 3월: 라인란트 재무장 지지 선언
1937년 12월: 제 2차 6개년 계획
1938년 3월: 안슐루스 묵인
1938년 9월: 뮌헨 협정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 묵인, 추축국 가담
1939년 10월: 노르웨이 점령, 아드라스테아 해전 승리
1939년 11월: 아드라스테아 상륙
1940년 5월: 아드라스테아 점령, 스탈린-모즐리 제 2차 회담에서 독일의 프랑스 침공에 대하여 합의, 프랑스 배반
1941년 6월: 독일의 갑작스런 바르바로사 작전에 반발, 추축국 탈퇴 및 코민테른 가입, 독일 본토 항공전 시작, 북아프리카 전선 참전, 영국-일본 전쟁 개막, 제 2차 6개년 계획 중단
1941년 7월: 프랑스 코뮌과 국교 정상화, 레지스탕스 지원
1941년 9월: 타란토 공습
1941년 10월: 몰타 전투
1941년 12월: 말레이 해전 패배
1942년 5월: 일본군의 남방작전 성공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1942년 8월: 과달카날 전투
1942년 10월: 독일군의 북아프리카 퇴각
1943년 2월: 인도 식량 지원 불허, 벵골 대기근
1943년 7월: 시칠리아 상륙
1944년 3월: 임팔작전 저지, 역공세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1945년 5월: 독일 항복
1946년 3월: 코로넷작전 개시(세계관에 핵무기가 없으므로)
1947년 2월: 인도 독립전쟁 발발
1947년 9월: 일본 항복
1949년 12월: 크리스마스 종전, 인도 독립
1950년 1월: 제 2차 6개년 계획 성공적 마무리, 영연방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가결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공산군 지원
1953년: 스탈린 사망, 한국전쟁 정전, 영국군 철수
1955년: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 영연방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마무리

본토 경제 개발사

오스왈드 모즐리 시기

모즐리 재임기의 가장 큰 특징은 여기가 파시즘인가 싶을정도의 신격화와 거대한 행정력, 무자비한 구성국 착취, 그리고 부정 불가능한 경제 발전이였다. 모즐리 시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저 로마식 경례를 고집하였고, 1965년에 가서야 폐지된다.

"속도를 늦추면 뒤떨어집니다. 그리고 뒤떨어지면 패합니다. 우리는 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패배는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난 우리 조국과 조국의 인민들 이외에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조국의 발전만을 위해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투쟁하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임을 알것이고 또 알아야만 합니다."
-1931년 제 1차 6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오스왈드 모즐리는 치밀한 권력 암투 끝에 생디칼리스트들의 약점을 잡아 무너뜨린 후 집권한 인물로, 스탈린주의자임과 동시에 열렬한 인종주의자중 하나였습니다. 이시기에 그는 연방 총회를 전체주의자 총회로 변경, 자신의 사람들로 앉혀놓아 사실상 전원을 행사했고 광신적인 공업화정책과 국수주의적 정책을 실시한 인물입니다. 그 모든것은 무자비한 철권통치 하에 자행되었고 그 여파도 컸으나, 실제로 대영이 그 시기에 산업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 그 허점들을 뒤덮었음은 그의 정적들도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이 현재의 패권과 힘, 체제를 유지하려면 막강한 공업력만이 살길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 신념의 총결집체가 3차례에 걸친 6개년 계획이며, 이는 그가 존경해온 스탈린의 모습과 여러 면에서 비슷합니다.

그는 재임하자마자 거의 온 국가의 총력을 동원하여 공업 발전에 퍼부었습니다. 본토에 있어서는 공장지대의 효율적인 재배치와 개선에 대해 대폭 지출을 감행했고, 해외 식민지들의 자치권을 억압함과 동시에 거의 무계획적이라 볼 수 있는 마구잡이 공업화 강행으로 식민지의 본 목적을 단순 착취가 아닌 거대한 공업지대로 만들어버립니다. 좁은 영토에 우격다짐으로 공장을 밀어넣을순 없으니 광활한 식민지를 활용, 독일과 일본의 산업정책보다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범위와 강도면에서 독일과 일본에 우위를 점하고, 독일의 로켓이 영국 공업지대를 가격할때도 해외의 식민지 공업지대들에서 나오는 생산량이 부숴지는 양을 뛰어넘었습니다. 더군다나 독일이 V-2를 개발할 시점에는 이미 미국이 참전하고 구축함의 수송선단 호위가 일반화되어 유보트 함대의 위협으로부터도 좀 자유로워진 상황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온 또다른 성과라 볼 수 있습니다.

기술력 향상에도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독일이 이미 민간기업등으로 위장한 군사기업들과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군사기술을 나날이 증강시키고 있단 것을 알고 있었고, 독일에게 기술력이 밀릴지도 모른단 생각은 그에겐 차마 하기도 힘들정도의 악몽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아무리 생산량이 막대하여도 기술력이 수반하지 못한다면 노예국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찬밥신세던 과학자들까지 대폭 등용, 국가 주도의 기술 발전(군사 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광범위했다)을 실시합니다. 또한 그는 냉전 와중에도 서방과의 필요에 따른 협력은 하였는데, 이는 자국의 실리를 챙김과 동시에 자국의 전략적 위치를 아는 공산권이 영국을 버릴 수 없단 것을 알고 저지른 일종의 삥뜯기였습니다. 주로 소련에 대한 불만이 있거나 진정으로 필요한 때에 꺼내든 카드로, 이것은 영국을 '혁명의 배신자'라 부르는데 더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대서양에서의 위치와 해양강국의 지위, 수많은 영토들을 알기에 공산권은 영국을 함부로 대할수만은 없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노력은 실제로 대성공하여 그의 재임기간동안 대영의 경제 성장률은 매년 10% 이상을 기록하였고 광범위한 행정정책덕에 국민의 교육수준도 높아졌으며, 과학기술력은 어디 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인 삶의 수준도 결국엔 높아졌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가 항상 공존하듯, 이런 눈부신 성과 뒤에는 그 이면이 존재합니다. 대규모 비밀경찰의 운용, 숙청등 다양하지만, 가장 거대했던것은 구성국 농민 착취였습니다. 영국 경제는 공업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만큼 본토 농업의 인기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 먹일 식량은 본토에서 나오질 않으며, 식민지도 공업화하는 바람에 비슷한 상황입니다. 결국 식민지 노동자들(주로 인도를) 더 쥐어짭니다. 모든 농업 생산량은 대영 연방에 필요한만큼(매우 막대한 양)만큼을 무조건적으로 뜯겼고, 인도인들은 굶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것이 기어이 폭발하여 1934년, 6개년 계획 시행 고작 3년만에 벵골 대기근의 예고판이라 불리는 '인도 식량 대란'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말이 대란이지, 사실상 지옥도나 다름없었습니다. 인도인들은 심지어 소를 먹는 사람, 인육을 먹는 사람까지 등장했고,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굶을대로 굶은 이들이 제대로 싸울리 만무했고, 결국 영국 본토군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합니다. 이 시기에 사망한 인도인들은 영국측 기록이 500만이며, 실제론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러한 체제는 모즐리가 집권한 27년간 계속 이어졌고,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분명 엄청난 황금기였지만 그만큼 이면에는 더욱 가혹한 철권통치가 존재했습니다. 이후 1960년, 인도는 영국과 4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 끝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되고, 마침내 모즐리가 급사하면서 생디칼리스트들이 재집권함에따라 1961년 완전한 독립을 맞이합니다.

생디칼리스트 집단 지도체제

이 시기의 특징은 '자발적인 사회주의'와 평등, 그리고 자체적인 경제권 구축 작업으로 보여진다.

""모즐리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가 이룩한 경제적 업적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적 이념에 반하는 행동들을 저질렀고, 우리 식민지의 노동자들은 물론, 영국인들에 대한 탄압, 압제적 통치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즐리를 그리워하는 동지들이 많고, 우리 역시 그를 좋은 동지로 기억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모즐리 동지의 업적으로 사회주의적 영혼을 다시금 불태울 것입니다.""
-대영 연방 국무 평의회 창설 선언문 중.

모즐리의 급사로 최대주의자들은 구심력을 잃었고, 사망소식이 발표되자 그간 억눌려오던 생디칼리스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헌법에 따라 자동으로 소집된 전체주의자 총회에서 최대주의자들은 여전히 단합하지 못한채 패닉에 빠져있었고 사회민주주의자와 동맹한 생디칼리스트들이 집권, 당 총서기 제도를 폐지하고 집단 지도체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대영 연방 국무 평의회'가 그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서방의 미미하게나마 존속하는 경제 영향력 폐지와 복지 확충이었습니다. 서방 자본에 대한 심하면 몰수까지 이어지는 배척, 그리고 모즐리 시절에 쌓아놓은 막대한 국부를 이용한 복지 확충이 시작됩니다. 출산 지원, 취업 지원, 유급 휴가제등 당시로선 시대를 앞서간 복지였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시대의 가장 큰 업적은 국내로는 '자발적 사회주의' 시행, 대외적으론 '대영 연방' 구축입니다.

그간 강제되어오고 압제적으로 이루어져온 모즐리의 최대주의자들이 주도한 사회주의 질서는 대중으로 하여금 공포심과 세뇌를 이용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서방의 좋은 선전용 예시가 되었고, 철저한 사회주의적 이념의 무장과 진정한 이념의 실현을 위해선 "억압이 아니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이념대결을 승리하자" 라는 혁명적 구상을 하기에 이르릅니다. 이 시기의 복지정책은 굉장히 시대를 앞서갔단 평가를 많이 듣는데, 유급 휴가와 출산 지원제도, 그리고 사회 구조적으로는 '능력에 맞게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배분한다'를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의 좀 더 자세한 사회 모습에 대해선 추후 대영 생디칼리스트 관련 글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입니다.

대외적으론 모즐리의 압제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기 일보직전이던 식민지들에 대한 방침이었습니다. 우선 지금 당장 이들을 독립시키자는 아나키스트 파와 존속시키어 진정한 사회주의의 길을 걷게 만들자는 당 정론이 충돌하였고, 그 결과 독립시키되 정부를 통제 가능하게 만들어 그들의 발전을 돕고 사회주의의 길을 안내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는 당시 대영의 목표이던 '자급 자족 사회주의 국가 연대' 건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뜬금없이 대놓고 정부를 임명하고 대영 연방에 가입시키면 누가봐도 이상했고,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즉각 독립은 무리였고, 서서히 자치도를 올리며 1965년까지 모즐리가 만들어놓은 노예화를 청산하고 삶의 질을 개선해주는데에 집중하는데, '식민지 인민 개발 5개년 계획'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65년 8월 12일, 대부분의 국가가 영국의 계획대로 독립 이후 사실상의 위성국이 되어주어 대영연방에 가입하는데에 성공합니다. 이들은 대영 본국의 외교적/정치적 지원을 통해 스스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해내며, 역설적이게도 모즐리가 만들어놓은 공업지대가 영국의 노하우 공유와 더불어 시너지를 발휘하며 이들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후 대영의 경제 공동체에 합류, 거대한 규모의 사회주의 국가간 시장 구축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이런 체제는 사회주의 국가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권 전체의 경제 규모 향상과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을 주었는데, 일례로 제 1차 석유파동 당시 중동 국가들을 부추기고 대영 연방에 포함된 중동 국가들을 이용해 제 1세계를 제대로 엿맥이는 활약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공산권 전체의 강화, 대영 연방 전체의 번영에는 크게 이바지하나, 대외 지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했던 본토 경제 개발정책으로 인해 이미 영국 본토의 경제 성장률은 크게 줄어 7%, 5%, 3%... 이런식으로 점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최대주의자는 이를 경제 무능이라며 맹비난했지만, 끊임없이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경제는 결국 언젠가 한계에 다다르는데, 그게 이 시기였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정도면 오히려 소련보다도 선방한것이며, 대영 연방 전체적으로 본다면 생디칼리스트들이 경제를 망쳤다볼순 없습니다. 현재 영국의 힘의 원천이나 다를바없는 대영연방 창설과 발전에 가장 큰 공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1979년 이후

1970년대 후반, 생디칼리스트 정부는 결국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동안의 한쪽 세력이 이길때마다 달라지던 체제가 불합리하다 판단, 총괄지도자를 국가 원수로 하고 의결 기관으로 대영 연방 총회를 둡니다. 그들은 1991년까지 대영 연방의 재구성(대영 연방 구성국 관련 설정글에서 다룰것), 개방적인 정책을 통해 영국 본토의 침체기를 이겨내는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무너지자 "혁명정신을 저버리고 더러운 자본가와 결탁해 공산권 수호에 불충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탓이다!" 란 비난에 휩쓸리게 되고, 어느 한쪽이 항상 옳은게 아니란걸 깨달은 대영의 정치 문화도 많이 개선되어 현재는 그때그때 적합한 경제정책을 피며 경제를 안정적으로 굴리고 있습니다. 또한 안정적인 국민 생활과 지지도에 기반한 적절한 개방을 통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성공하였습니다.

위성국들의 경제발전

아랍 단일 공화국

개요: 사우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아랍국가로, 예멘+오만+아랍에미리트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대영 연방 내에서 꽤 강력한 국가중 하나입니다.

인구수: 약 4200만명

GDP: 5710억 달러

경제 개발사: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인 네지드와 국경을 맞이한단 환경때문에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본토 방위군 수준의 영국군이 이들에 주둔하며 안보상 위협을 줄여주었고 차관 도입이 용이했습니다. 이들은 국가주도적 자본주의의 노선을 띄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대영 연방에서 최초로 실행합니다. 모즐리가 만들어주고 간 공업력을 대부분을 국영기업들이 운영하도록 하고 계획경제를 통해 부의 효율적인 분배를 개시, 각 계층의 소비를 골고루 증가시킴으로서 초반 공업력 버프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들어갑니다. 이들에게 지대한 경제성장 가능성이 있다 판단한 영국 정부는 이곳을 키워주기로 결정하고 경제고문단(생디칼리스트들의 입맛에 맞지 않던 인사들)과 공업기술 지원단을 파견하여 국영기업의 운영과 국가 경제 전반, 기술력 향상을 도왔습니다. 또한 단순히 공업력의 신장 뿐만이 아닌 국민 삶의 증진을 위해 '마을 근대화 운동'을 개시, 국민 개개의 생활 향상에도 힘썼습니다. 이렇듯 안그래도 세계적인 산유국인데 공업력과 경제력까지 받쳐주니 아랍 단일 공화국의 수출길은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아랍 단일 공화국은 영 연방의 구성국중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국과는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과거 영국이 대영 신교이슬람 국가들에게 강요하며 대학살이 일어났었고 이걸 아직 기억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 물론 반란은 꿈도 못꾸지만 아직도 종교에 대한 투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코스트 연방 공화국

개요: 가나+나이지리아로 이루어진 이곳은 그럭저럭 성장한 케이스입니다.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땅, 그리고 공업지대를 통한 균형있고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어냅니다.

인구: 31,072,940명

GDP: 약 4102억 달러

경제 개발사: 코스트 연방 공화국은 딱히 별다른 노력을 하진 않았습니다. 다른 대다수의 구성국들과 마찬가지로 주요 산업의 국영화, 부의 재분배에 더불어 가나 특성인 농업을 하기 좋은 국토, 마지막으로 자원 매장량을 활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통해 자원과 공업이 모두 갖춰진 상태에서 내수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무역 중심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국민 삶 전반은 높은 취업율과 비옥한 국토 덕에 좋으며 빈부격차도 낮은 편입니다.

북아프리카 군사정부

개요: 이집트+수단입니다. 엄청난 인구수와 거대한 국토, 자원과 분열없는 정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 꽤 발전한 케이스입니다.

인구: 약 1억 4000만명

GDP: 약 8012억 달러

경제 개발사: 초반에 나세르가 정권을 잡았고 그는 조국을 지배하던, 그리고 지금도 감놔라 대추놔라하는 영국이 아니꼬왔으나 일단 조국이 일어나는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우선 영국이 키워준 공업력을 활용해 자국민들의 노동력을 흡수하고, 자원 매장량과 공업기술의 합작을 통해 대대적인 오르막길을 열게 됩니다. 그의 집권기간 5년동안 북아프리카 공화국(당시 이름)은 상당한 경제적 성과를 이룩해냈고, 그가 몰래 무장경찰의 명목으로 키우던 혁명근위대를 통해 마침내 1970년에 대영 항쟁을 계획하나, 공교롭게도 그 직전에 그가 심근경색으로 죽어버리며 무산됩니다. 그가 죽자 이 사건이 알려지면 처벌받을것이 두려웠던 몇몇 가담자들이 영국 비밀경찰에게 밀고했고 이후 영국이 세운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아랍 단일 공화국과 비슷한 체제를 걷게 됩니다(그 당시엔 아랍 단일 공화국이 꽤나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년에 아랍 단일 공화국보다 더 이념적으로 부패했습니다. 1980년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집권하며 구성국들에 대한 사회주의 준수 여부에 대한 감시가 미비해지고 영국 본인조차도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로 전환하자 이들은 기다렸단듯이 사실상 자본주의로 전환, 국가가 꽉 쥐고있던 국영기업들을 사실상 민영화해버리고 빈부격차를 막을만한 별다른 대책이 없던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자유를 주자 경제력 자체는 성장곡선을 탔으나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기업들이 돈에 눈이 멀며 빈부격차도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현재는 재벌들이 정치를 장악했으며 사회적 불평등과 무한경쟁체제는 북아프리카 군사정부의 안정도를 굉장히 많이 깎아먹고 있습니다. 국민들 절대 다수가이럴거면 차라리 영국 본토에 합병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애국심도 바닥입니다.

시에라리온 군사정부

개요: 대영 연방 구성국중 꿈도 희망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대영 연방 구성국이다 절망편 1

인구수: 6,160,000명

GDP: 약 44억 달러

경제 개발사(라고 하긴 뭐한 역사): 여긴 시작부터 독재였습니다. 사회주의적 이념에 충실할것을 명분으로 삼아 미가이 일가가 3대 세습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공업력 버프를 가지고도 그걸 순전히 집권층의 배를 불리는데에만 사용했으며 국민은 그들 아래의 노예들로 전락했습니다.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나미비아 인민 공화국

개요: 아직도 식민지인가 의심스러운 국가입니다. 이것이 대영 연방 구성국이다 절망편 2

인구수: 약 206만명

GDP: 약 230억 달러

경제 개발사(라고 하긴 뭐한 역사): 그들은 성급했습니다. 영국이 독립을 시켜주자마자 동시에 대영 연방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어기고 마이웨이를 외쳤고, 이후 주둔 영국군과 SAS의 참수작전으로 정부가 전복, 이후 들어선 정부들은 주둔 영국군 사령관이 백인 후보들의 부정선거를 묵인한 이후 죄다 백인 우월주의에 찌든 정부들이였으며, 1980년대에 영국 기업가들은 여기로 와서 대놓고 기업정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영국 국적입니다. 즉, 나미비아의 GDP에 포함이 안됩니다. 그거로 모자라 아파르트헤이트가 작동하고 있는 경악스러운 국가이며 빈부격차 역시 심각합니다.

동아프리카 단일 혁명국

개요: 소말리아: 케냐+ 우간다+ 르완다로 이루어진 국가입니다. 이것이 대영 연방 구성국이다 절망편 3

인구수: 약 6800만명

GDP: 약 1012억 달러

경제 개발사(라고 하긴 뭐한 역사): 이들은 시작은 좋았습니다. 생디칼리스트들을 본받고자한 서아프리카 노동당은 극단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경제를 영국이 해놓고 간 공업력에 싸그리 의존했습니다. 보다못한 영국 본토에서 뭐라도 좀 하라고 권유했지만 사회주의적 정신에 어긋난다며 터프하게 거절하나, 결국 일이 터집니다. 1980년에 그간 기존 공업에만 의존한 대가로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오고, 더이상 못견디던 국민들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3년간의 혈투끝에 간신히 진압했지만 이미 행정능력은 와해되었던 상태였습니다. 결국 영국 군정이 들어서고, 2000년대 초반에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가 들어서며 치안과 사회안전망은 확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기타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습니다.

군사

대영 혁명 친위군 참조.

자연환경

영토

지형

생태

자원

인문환경

인구

언어

종교

교통

행정구역

정치

정당

현재 대영 공산당이 일당 독재를 하고 있으나, 의회 제도가 최근에 폐지되고 국가 평의회 제도가 실시되면서 당은 그냥 사상 주입 기구중 하나로 전락했다.

행정

치안

대영 연방의 치안, 아니 모든 내무 업무는 대영 보안 위원회가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영장 없이 체포와 구속, 수사가 가능하며 불심 검문을 거부하면 즉시 연행된다. 공무 집행 방해시 총살이 가능하며 비상사태 선포시엔 사법권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돌아댕기는게 보안위이다. 그와중에 기소권에 즉결 재판권한까지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경찰 과잉진압 영상이나 밈중 상당수가 대영 경찰이며, 슈타벨-대영-미국이 누가 더 잔혹하게 진압하는가 경쟁을 벌이는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유명하다. 대영인들도 자기네 나라가 굉장히 강압적인 치안체제란건 알고 있다. 다만 살기가 좋으니 딱히 문제삼지 않을 뿐. 그리고 애초에 끌려갈 짓을 안 저지르면 된다. 물론 이런 인식은 살기좋은 본토 얘기고 바다건너 팍팍한 구성국 국민들은 "하 개같은 나라의 개같은 짭새' 소리가 나온다.

처벌

처벌 역시 대영 보안위원회의 관할인데, 대영 연방 구성국들은 처벌이 굉장히 가혹하다. 초범이건 소년범이건 할것없이 중범죄자는 죄다 '살아남으면 기적'인 수준이다. 일단 살인급 범죄를 저질러 잡혀오면 강제노동수용소 이상급 형이 확정이며(그마저도 형량 못채우고 죽는경우가 허다) 사형을 받더라도 곱게가진 못한다. 사형을 선고받으면 그 즉시 죽은 사람으로 보고 인간이 아니라고 판정되기 때문에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실제로 사형수들 대부분이 실험중에 사망한다. 그리고 대영의 생화학병기 기술력은 세계 정상급이다.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일반 수감자들도 결코 평안하지 못한데, 중범죄자 강제수용소는 하루 14시간의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하루 식비는 한국돈으로 1인당 약 300원. 경범죄자 강제수용소는 하루 12시간 노동에 1000원 정도의 1인 하루 식량이 지급된다. 이런 무지막지한 처벌은 국제적으로도 이미 유명하며 인권위원회에도 여러번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국력이 강대한 국가중 하나인데다 당장 이 나라가 유엔 상임이사국이다(...)

외교

국제관계

냉전기엔 소련을 서포트하고 소련 붕괴 이후 중국이 일어나자 중국을 서포트했지만, 중국은 비동맹주의에 빠져 대영을 푸대접했고 대영 스스로에게 돌아온 이득과 영향력은 너무 적었다. 때문에 UVN 0년 7월 29일, '세계전략' 외교 방침을 발표하며 전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주도적 위치 선점을 목표로 팽창주의적 외교로 선회했다.

경제

대영 연방은 이미 아무도 사회주의 국가라 하지 않는다. 구성국중에 현재 사회주의 경제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나라는 완전히 지옥이 된 시에라리온을 제외하면 없으며 죄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국가자본주의로 갈아탄 상태이다. 그런데도 헌법엔 죄다 사회주의의 수호와 확장을 제 1 기치로 내걸고 있다.

내수

현재 서방으로부터 처먹을건 다 처먹은 대영 연방 내수시장은 구성국을 제외한 외국 기업에 그리 개방적이지 않다. 한때 영국 자본을 이용해 수많은 국가들을 침식시켜 집어삼켜본 주체가 바로 영국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짓을 그대로 당할까 두려운 탓이다. 본토의 경우 노동자에 대해 거의 본토기업보다도 높은 임금과 근무환경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로 악명이 자자하다. 대영 본토를 제외하면 좀 관대하다. 반면 연방 구성국끼리는 굉장히 관대하다.

기술 경쟁력

대영 연방은 냉전기에 소련과 함께 기술력 발전의 주축이었고, 1980년대부터 일찍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창시하여 서방과 교류를 시작하며 기술적으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기술 강국중 하나이다. 구성국들의 R&D 투자도 무시못할 수준으로, 사정이 좀 나은 아랍단일공화국과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후발주자로서 소프트웨어적 측면 발전에 상당한 돈을 퍼붓고 있다.

사회

복지

대영 정부는 그 누구보다도 국민의 삶을 챙기려한다. 복지비 지출이 항상 압도적으로 많아 결혼시 주택 지을 돈이 무이자로 대출되고, 여가 시설도 확충되어있으며 근무 환경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 아예 사회적 불만 자체가 나오질 않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대영 공산당이 철저하게 인기몰이를 통해 정치를 이끌어가는 집단이기 때문에 불만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천국같은 복지는 본토만 포함된다.

교육

대영의 교육은 개개인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진로교육이 굉장히 발달하였고 그에 맞는 기술 특화 교육도 발달하였다. 각 분야에 적합한 인재들을 나눠 선발한 후 모두 고급 인재로 양성하여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점하겠단 전략. 만 16세가 되면 직업을 정하게 되는데, 이것에 맞게 교육이 진행된다. 교사와 학생의 밀접한 관계가 중요한만큼 한 반에 학생이 20명 이하까지 줄어든다. 다만 역사 왜곡이 굉장히 심한데, 워낙 하고다닌 짓들이 세계 곳곳에 많다보니 부정은 차마 못한다. 하지만 그래야만 했던 이유와 정당화로 역사서 절반이 도배되다시피 하다. 애초에 역사 교육의 목적이 순수한 역사 알리기가 아니라 역사관 주입으로 변질되있다. 또한 현재 대영연방 구성국들에서의 만행은 당시 자료들이 영국 기밀보관실 어딘가로 옮겨져 진상규명 자체가 불가한 상황. 구성국 국민들은 만행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또한 국가 주도적인 교육 조성을 위해 모든 종류의 사교육, 사립학교등이 불법이며 부모의 가르침조차도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또한 거의 대부분 학교가 기숙사를 운영한다. 이 모든것을 관할하는건 대영 소년단으로, 대영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자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 세계에서 몇 없는 교육기관이다.

검열

보통 서방 문화계의 진입을 막는 다른 전체주의 국가들과 달리 이쪽은 애초에 '불만이 안생기게 만들어 반정부 정신 자체를 없애자'라서 별로 서방 연예계나 문화의 진입에 대단히 관용적이다. 대놓고 전체주의 반대, 대영 반대만 아니면 거의 검열 안당한다-그런데 인터넷에 그게 많아서 문제지.- 대영인들을 굉장히 꽉 막힌 사람이라 생각하다가 대영인들이 고려 연예인들도 다 알고 좋아하는거 보고 충격먹는 외국인도 있다.

문화

단위

법정 연호

시간대

관련 문서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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