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무연방제국

대한광화연방제국
大韓光武聯邦帝國
Korea Kwangmu Federal Empire
대한광무연방제국 국기.jpg
국기
국장.png
국장
국호대한광화연방제국
大韓光武聯邦帝國
상징국가애국가
국화국화
국수호랑이
표어??
자연환경면적(영토)22만km²
인문환경인구약 7천만 명
인구밀도509.2명/km²
공용 언어한글
정치국체입헌군주제
정부형태내각책임제
황제이혁
황태자Будь лояльным
경제GDP1,782조 2,689억 원
1인당 GDP$2만 9,743.5
GDP(PPP)$0000
1인당 GDP(PPP)$0000
공식 화폐
단위
법정연호서력기원
시간대예) UTC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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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대 황제 실록

『희종실록』

1910년 선왕께서 자진으로 황위를 양위하시고 자신은 상 황제로써 지낼것이라고 말씀하시였고 1910.9.25일경 이우를 황태자로 삼으시고 1912년 상왕께서 퇴임하시니 대한제국의 28대 황제 희종이 즉위를 하였다. (희종실록 즉위년 1권)

또한 황제께선 황후를 맞이하셨는데 황후의 나이는 16살이었으며 얼굴이 과거 숙종왕때 장희빈을 뛰어넘는 미인이었다. 또한 행실이 바르고 인품이 좋아 황실어른들의 사랑까지 독차지 하였으며 황제 역시 그런 황후를 몹시 아끼셨다.

황제께서 이르시길 " 우리는 일본과 청의 제국주의에도 굴하지 아니하였고 과거 선왕 순조의 재위기간부터 문제를 일으켜왔던 세도정치까지 모두 타파하였으니 우리 대한제국은 이 정신으로 국가를 보위해야하니라. " 라고 하셨다. 또한 " 백성들의 궁핍함을 보살피며 현 정세에 맞게 대한제국을 운영할것이다. " 라고 하였다.

황제께선 과거 독립협회가 주장하였던 입헌군주제를 수용하시였으나 한 가지 조건을 덧 붙히셨다. " 온 신민의 뜻이 하나일시 황제의 권력을 사용하며 그 권력은 무한할지어다. " 라고 하셨다. (희종실록 1년 1~2권)

황제께선 입헌군주제를 선포하시고 황제는 간단한 업무만 관할하며 나머지는 총리를 선출하여 정치적일은 전부 처리하게 하시였는데 총리는 신민들의 투표로 선출함을 알리셨다. 또한 의회의 의원중 50%는 황제께서 임명하시고 나머지는 관료들이 선출하였다. 또한 궁의 이름도 바꾸었는데 황실이 거주하는 궁을 천안궁이라 칭하셨다.

곧바로 중전을 통해 아들과 딸을 얻으셨는데 아들의 이름은 이 진 딸의 이름은 이 민 이라 하시였으며 성진대군과 안평공주라 하시었다. 성진대군은 곧장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희종실록 2년 3권)

황제께서 총링에게 이리시길 " 요즘 국가의 상황은 어떠한가? " 라고 물으면 총리는 " 현재 OO한 상황이며 백성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 라고 답하거나 " 백성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라고 답하였는데 황제께선 " 그렇군.. 좀 더 힘써주게. 그리고 항상 수고가 많네. " 라고 답하시곤 하였다. 또한 가끔 국정회의를 진행할때마다 버릇같이 " 짐은 대한제국을 태상왕(고종)의 실수처럼 국가가 흔들리게 관리하는것은 싫소. " 라고 말쓴하시곤 하였는데 관료들 모두 " 지당하신 말씀 이십니다 폐하. " 라고 답하곤 하였다. 또한 " 황실로써 권한은 얼마 없으나 짐은 항상 책임감을 지니고 있으니 그대들도 짐 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길 바라오. " 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였다. (희종실록 3~4년 4~6권)

황제께선 앓고 계시던 지병이 있으셨는데 즉위5년 그 지병이 더욱 악화되어 어린 황태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셨는데 황태자가 너무 어린것을 고려하여 관료들이 황태자에게 황실의 업무를 차근차근 알려주고 무슨 조약등의 승인을 받아내는 형식으로 대리청정을 맡았으며 황제께선 병상에 앓아 누우셨다. 황제는 알아누우시면서도 " 아.. 백성들의 삶은 어떠할까.. " 라고 하시었고 황후께선 " 빨리 호전하셔야지요 폐하.. ' 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희종 16년 황제의 병이 악화되자 유배를 가있던 유명한 어의를 불러보았으나 황제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갔고 황제는 마지막으로 중전과 황태자와 공주와 관료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남기셨다. " 내 비록.. 짧은 재위기간이고 태자 역시 너무 어린나이에 대리청정을 하고 또 어린 나이에 황제라는 직에 올라가는구나.. 부디 싸우지들 말고 잘 지내주시오.. 또한 황후.. 태자의 수렴청정을 잘 부탁하고 또한 공주역시 잘지내거라.. 또한 마지막으로 관료들.. 이 대한제국을 잘부탁하네... " 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눈을 감으셨다. 그때 황후를 포함해서 황태자 공주까지 모두 슬피 울었으며 총리를 포함한 관료들 역시 목 놓아 울었다. (희종실록 5~16년 5~21권)

『호종실록』

1927년 4월5일경 성진대군이 선왕 희종을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황제의 나이는 어렸으나 유능함과 과거 대리청정의 경험과 입한군주제 라는 명목으로 선왕 숙종처럼 수렴첨정을 하지 않으셨다. (호종실록 즉위년 1권)

폐하가 말씀하시길 " 짐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관료분들이 모두 날 잘 보좌해주길 바라며 입헌군주제 이고 짐이 처리할 일과 권한은 적으나 관료들이 짐을 잘 보좌해주길 바랍니다. " 라고 말씀하시었으며 관료들은 모두 " 예 폐하 라고 하였다.

황제께서 선황의 묘호를 정하시는데 관료들이 희종 이라는 묘호를 올리자 황제께선 이를 괜찮다고 하셨고 황후마마 역시 이 를 수긍하셨다. 또한 황제께서 이르시길 " 선황의 뜻을 이어받아 나라를 굳건하게 해야할것입니다. 이를 따르지 않을시 신민들의 지지를 얻어 무한한 황제의 권력을 쓰게 될것입니다. " 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어느날 황제께서 궁궐을 거니고 계신데 어느 한 궁녀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슬피 울고 있는것을 보시거는 " 얘야 무슨일로 그리 슬피 우는 것이냐? " 라고 하니 선황폐하를 생각하며 슬피 울고 있었사옵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황제께서 목이 매인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 선황폐하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 라고 물으시니 " 소인은 그저 과거 제가 궁궐에서 빈혈로 쓰러져 있을때 선황폐하께서 어의를 불러 저를 치료해주시고 괜찮느냐 라고 물어봐 주신거에 대한 은혜가 떠올라 그냥 빈 방에 들어가 슬피 울은것이옵니다. " 라고 말하였다. 황제께선 이를 기특히 여겼다고 한다. (호종실록 1년 1권)

황제께서 이르시길 " 요즘 관료들의 정치상황이 영 꺼림직하다며 내가 직접 궁 밖으로 나가 봐야겠다" 라고 하시자 관료들이 이 를 막았는데 황제께서 이르시길 " 도대체 내가 백상들의 생활을 보러 나가겠다는데 왜 막는것인가? " 라면 불같이 화를 내셨도 하니 관료들 모두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푹 숙였다고 한다.

궁궐 밖을 나가보니 백성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횡폐하짐을 알수 있었으며 과거 탐관오리와 같은 자 들이 나타났으며 정치관료들 역시 신민들의 피와 땀을 짜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황제는 환궁하여 총리를 부르시고 이르시되 "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신민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일인가 총리? " 라고 묻자 총리는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황제께서 이르시길 " 신민들의 지지를 얻어 짐이 직접 권력을 쥐어야 겠소. " 라고 하였다. 황제께서 사람을 시켜 조사를 하자 대부분의 신민들은 내가 먹고 살기 힘든데 일단 죽기살기로 지지하겠다고 하였다. 황제께선 이를 근거로 권력을 휘두를 준비를 하셨다. (호종실록 1~3년 1~3권)

황제께선 우선 썩은 장치관료들을 해임및 사법기관을 통해 재판후 유배를 보내셨으며 과거 선왕 광해군과 같이 세금개혁같은 개혁을 실시하였고 토지개혁등을 통해 관료들이 부정하게 가지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대여하는등 신민들을 위한 정치를 행하였다. 또한 군대를 개편하여 황실친위대 국경수비대 등을 개편및 창설하시었다.

이렇게 정치및 백성들의 삶이 개편되자 황제께서는 다시 입헌군주제로 정치구도를 전환하셨으며 새 총릴 투표로 선출 하였으며 의회를 다시 구성하는등 만반의 노력을 하였다. (호종실록 4년 3권)

황제께선 황후에게서 두명의 아들 과 한명의 딸을 얻으셨는데 이는 바로 한진대군과 진명대군 홍안공주를 얻으셨다. 호종 6년 장남 한진대군은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며 황태자 수업을 받게 되었다.

또한 황제께선 황후하고 금슬이 좋았는데 사냥을 할때나 어디 산책을 나갈때마다 황후마마를 모시고 나갔다고 하며 황후마마께서 몸져 아프실때는 곧장 황후마마가 계신곳으로 달려와 어의를 불러 치료하곤 하였다. (호종 5~7년 4권~7권)

황제께서 새 총리에게 이르시길 " 과거 총리와 같은 짓은 안 저지르길 바라네. " 라고 하자 총리가 이르길 " 저도 전 총리때 사달렸던 사람입니다. 절대 그런일은 없을겁니다. " 라고 하였다. 황제께선 이를 기특히 여기셨다고 한다.

새 총리는 매일 황제께 업무보고는 물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책과 안건 등을 보고하였다곤 한다. 황제께선 " 이건 이러이러게 하는게 어떻겠소? " 라고 하시면 저는 " 이러이러게 하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 라고 하였으며 황제와 총리는 상호간의 회의와 관료들과의 회의를 통하여 일을 결정하시곤 하였다고 한다. 황실은 조약승인권이나 아님 임명장을 하거나 의회의 의원들중 50%를 선출하는등의 업무를 맡았다. (호종실록 7~10년 8권~11권)

어느날 황제께서 목이 마르다며 식혜를 마셨는데 식혜를 마신지 5분만에 심각한 복통을 호소하셨다. 이 를 발견한 황태자는 얼른 어의를 불렀으나 황제는 피를 토하더니 쓰러져 있었다. 태자전하께서 이르시길 " 어떻게 고칠수 없겠는가? " 라고 하시자 어의 께서 이르길 " 이미 늦은거 같습니다.. " 라고 하였다.. 이때 이 를 발견한 황후는 폐하를 부둥켜앉으시곤 슬피 울으셨고 태자 전하 역시 통곡하셨다. 사후 황제폐하의 입안을 닦아보니 독살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누군가 식혜의 독을 탄것으로추정하고 온 궁궐을 뒤진 결과 궁녀 김씨가 범인으로 밝혀졌고 이에 분통한 황태자는 김씨를 사법기관를 통하여 사형을 선고받고 참수시켰다고 한다.

(호종실록 11~13년 12권~13권)

『경조수정실록』

경조실록의 분실및 왜곡내용으로 인해 새 판관들이 수정실록으로 실록을 다시 작성합니다.

선황 호종황제의 승하로 장남 한진대군이 황위에 올랐으니 황실의 적장자로써 황실의 맥을 잘 이어나갈것을 예고하는것과 같았다. (경조수정실록 즉위년 1권)

황제께서 이르시길 " 나는 선 황제폐하들과는 다르단것을 알아야 할걸세. " 라고 하시거늘 관료들은 이 를 대충 듣고는 " 예 "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황제께선 이런 관료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고 하셨다. (경조수정실록 1년 1권)

황제께서 총리에게 이르시길 " 요즘 정치상황은 어떠한가? 짐이 직접 확인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상황이니 짐은 막막할따름이네. " 라고 이르시니 총리가 이르길 " 걱정마십시오 황제폐하 저희는 항상 신민들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 라고 일렀다고한다. 황제께서 다시 이르시길 " 선황제폐하 때처럼 다시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 좋겠네. " 라고 이르시니 총리가 다시 이르길 " 그런 일이 없게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라고 일렀다고 한다.

황제께서 황후를 모셨는데 황후는 인품이 좋고 태후마마도 잘 모시니 " 이는 마치 선왕 연산군때의 신씨 와 같다 "라고 이르셨다. 황제께선 황후를 보실때마다 웃음꽃을 피우셨다고 하며 황후 역시 기분이 꿀꿀하다가도 황제폐하만 보면 활짝 미소를 띄곤 하셨다고 한다. 또한 황제폐하께선 후궁을 들이시지 않으셨는데 이는 황후마마하고 금슬이 아주 좋아서라고 한다.

그러나 황후에게서 아무런 후사를 얻지 못하자 어쩔수 없이 후궁을 들으셨는데 후궁에서 후사를 얻으니 바로 진형군과 희령옹주였다. (경조 수정실록 1년 1권~2권)

경조2년 국제적으로 큰 일이 닥치니 바로 제2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만 것 이다. 그 당시 나치독일과 일본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추축국vs연합국으로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니 " 이는 매우 큰 재앙과 같다. ' 라고 황제께서 이르셨다. 총리가 이르길 " 대한제국은 이 전쟁에 대해선 절대적 중립을 표방한다! " 라고 말하셨으니 독일을 포함한 추축세력은 이를 승인하였고 연합 세력역시 이를 승인하였다. 그러나 만약을 우려해 국경수비대에 이르길 "국경 경호를 강화하라! " 라고 총리가 이르자 국경수비대장이 이르길 " 무슨일이 있어도 지키겠습니다! " 라고 일렀다고 한다. (경조수정실록 2년 2권)

황실의 큰 재앙이 닥쳤으니 진형군이 요절한것이다. 황제는 이를 매우 슬퍼하였고 후사가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수라를 들지 않고 하루종일 멍하니만 있으며 황후께서 대화를 걸으셔도 이에 응하지 않으니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다.

결국 황제께선 앓아 누우셨고 결국 조용히 승하하시니 이는 국가의 재앙과 같았다고 한다. (경조수정실록 2년 3권)

『무조실록』

선황께서 후사가 없이 돌아가시니 몰락된 황족이 그왕위를 이어받으니 이는 마치 철종과 같았다. [ 무조실록 1권 즉위년 ] (1939)

황제께서 이르시길 "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대전은 선황폐하의 명대로 절대적 중립을 표방하며 국경은 목숨받쳐 수호하라. " 라고 하셨다 [ 무조실록 1권 즉위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국경은 어떠한가? " 라고 이르시니 국경수호대장이 이르길 " 현재 제국에는 그 어떤 피해도 없습니다 폐하. " 라고 이르었다. [ 무조실록 1권 1년 ](1940)

황제께서 황후를 맞이하셨는데 황후의 성격은 생각보다 포악하고 화가 많은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벽을 긁는행위를 계속하니 마치 폐비되는것이 아닌가라 하는 걱정과 근심의 말 들이 떠돌아다녔다. 또한 후궁들과 태후마마하고의 사이도 안좋아 후궁들 사이에선 공포를 태후마마사이에선 한숨의 연속이었다. 결국 무조2년 폐비당하니 이는 황실의 수치와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렇게 새 황후를 맞이하시니 그 가 바로 평양조씨였다. [ 무조실록 2~3권 2~3년 ](1941~42)


황제께서 이르시길 " 나는 선황폐하글과는 다를것이다. " 이라 하였다. 그당시 대한제국의 상황은 또 다시 잔제군주가 필요할 만큼 횡폐했다고 한다. 황제는 이를 보고서는 이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또 다시 전제군주를 위한 준비를 하시니 이 를 느끼지 못한 총리와 관료들은 무덤덤 할뿐이었다고 한다. [ 무조실록 4권 4년 ](1943)

황제께서 다시 전제군주를 펼치시니 이 는 바로 혁명과 같았다. 황제께선 우선 입헌군주 법을 폐지하시고 선황 고종황제때의 황제법을 다시 부활시켰으나 군사권과 외교권등은 관료를 임명하고 그 관료가 맡는 형식으로 바꾸셨다. 그리고 이르시길 " 황제의 무서움을 알라. " 라고 이르셨나이다. 또한 의회를 해산하셨으며 황제중심의 국가를 이르셨나이다. [ 무조실록 4권 5년 ](1944)

이제 지긋하던 세계대전이 추축국의 패망으로 막을 내렸다. 황제께서 이르시길 이제 이 지긋한 전쟁은 끝이 났다며 이제 우리 제국의 국경수비병들도 이제 편히 쉴것을 당부하셨다. 또한 승리를 지닌 연합군에게 측하서한을 작성하셨다. [ 무조실록 5권 6년 ]

황후마마에게서 후사를 보시니 바로 진영대군과 옹빈공주였다. 진영대군은 곧장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무조 10년 태자 수업을 받게 되었다. 황제께서 이르시길 " 제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힘쓰리. " 라고 하니 관료들 역시 " 힘쓰리 " 라고 하였다. 비록 전제군주제였지만 관료들을 등용하였으며 총리라는 직급은 없앴지만 관려들과 나라를 지키려는 굳건한 마음 하나만큼은 누구 하나 다를게 없었고 세종대왕과 같은 황제가 되겠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하시였다. [ 무조실록 6권 7~12년 ]

황제 폐하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니 이 는 큰 재앙과 같았다. 황태자를 포함한 모두가 슬퍼하였고 태자전하께서 황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 무조실록 7권 13년 ]

『명조실록』

선황의 갑작스런 승하로 갑잡스럽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 는 뭐라 설명할수가 없었다. [ 명조실록 1권 즉위년 ]

새로 시작하잔 의미에서 국명을 " 대한연방제국 " 으로 변경하시었다. [ 명조실록 1권 즉위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현재 신민들의 삶은 어떠한가? " 라고 이르시니 한 관료가이르길 " 현재 제국과 신민들의 삶은 안정적입니다. " 라고 이르었다. [ 명조실록 1권 1년 ]

또한 황제께서 황후를 맞이하셨는데 황후의 성격은 선황께서 폐위 시키신 폐비보다 포악하고 화가 많은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궁궐의 쥐 시체를 대롱대롱 묶어놓는가 하는것도 모자라 황후들에게 이유없는 폭력과 폭언이 계속 되니 마치 폐비되는것이 아닌가라 하는 걱정과 근심의 말 들이 떠돌아다녔다. 결국 명조2년에 입궁하여 명조4년에 폐비당하니 이는 황실의 수치와 같았다고 한다. 그렇게 새 황후를 맞이하시니 그 가 바로 남양한씨였다. [ 명조실록 2~3권 2~4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다시 입헌군주로 가도 마땅한거 같다. " 라고 이르시니 관료들 역시 " 타당하신 선택이옵니다 폐하 " 라고 입을 모았다. [ 명조실록 4권 4년 ]


국외에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인한 사회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황제께서 제국 경찰에게 이르시길 " 제국의 안전과 신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을 제지시켜라. " 라고 하시었다.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한 이찬중,최길성,이남현 등은 체포되어 유배되었으며 나머지도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 명조 실록 5권 5년 ]

황제께서 황후와 후궁에게서 후사를 보시니 황후에겐 정양대군 옹단공주를 보시고 황후에게선 능민군 영당군 진희옹주등을 보셨다고 한다. [ 명조실록 6권 6권 ]

황제께서 정양대군을 황태자로 책봉하시었다. 황제께서 이르시길 " 이번 년도엔 좋은일이 많을것이다. " 라고 하니 황후를 포함한 정양대군 옹단공주 능민군 영단군 진희옹주께서 " 예 폐하 " 라고 답하시었다. [ 명조실록 6권 7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소비에트와 회담을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겠다. " 라고 이르시며 외교부장관을 따로 불러 말씀하시길 " 총라와 함께 회담을 준비하고 진행해주셨음 합니다. " 라고 하니 외교부장관이 이르길 " 예 폐하. " 라고 아뢰었다. [ 명조실록 6권 7년 ]

황제께서 회담을 진행하기 5일전 갑작스래 승하하시니 소비에트 외교파견단을 포함한 모두가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또한 황태자 역시 나이가 어려 조정의 근심은 다해갔다. [ 명조실록 7권 8년 ]

『장종실록』

선황의 갑작스런 승하로 황태자가 어린나이에 즉위하였으니 입헌군주라는 체재아래 황실의 업무는 제약이 있음에 따라 관료들이 정치를 하는 형태가 이루어졌다. [ 장종실록 1권 즉위년 ]

황제가 너무 어려 태후가 대신 이르시길 " 황실의 권력이 약화되어 있다고 너무 황실을 얕보진 마시오. 언제 다시 전제군주 혁명이 일어날수 있으니. " 라고 이르시니 총리는 " 알겠사옵니다. 태후 마마. " 라고 아뢰었다. [ 장종실록 1권 즉위년 ]

황제께서 직접 이르시길 " 요즘 신민들의 생활은 어떠하옵니까 아바마마께서 힘들게 권력을 내려놓은 대신 총리님께서도 그의 대한 보답을 하셔야 하옵니다. " 라고 친히 이르시니 총리가 이르길 " 걱정마시옵소서 폐하 " 라고 짧게 이루었다. [ 장종실록 2권 1년 ]

황제께서 돌연사 하시니 이 는 황실의 큰 재앙이자 내각에서도 크게 놀랐다고 한다. [ 장종실록 2권 1년 ]

『영종실록』

장종폐하의 승하로 이복동생 능민군이 어쩔수 없이 황위에 오르게 되니 이 는 황실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자 대한연방제국의 마지막 희망이었다고 한다. [ 영종실록 1권 즉위년 ]

황제께선 나이가 어리셨으나 영특하고 머리가 좋아 숙종대왕같은 인물이었다고 한다. [ 영종실록 1권 즉위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요즘 소문을 듣자하니 내각이 신민들은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걸 들었다. 짐이 직접 통치하여 이를 바로 잡으리라. " 라고 하시었다. 이 를 들은 내각은 모두 당황스런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고 한다. [ 영종실록 2권 1년 ]

황제께서 전제군주를 선포하셨으니 이 는 몇번의 전제군주보다 더 위대한 전제군주제가 될거라고 하시었다. 또한 국방 외교등은 관룔 임명하여 직접 관할 하시게 하고 정치적 권한은 황제께서 처리하시기로 하셨다. [ 영종실록 2권 1~2년 ]

황제께서 황후를 맞이하시었다. 황후하고는 금슬이 좋아 따로 후궁을 맞이 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셨다. [ 영종실록 2권 2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요즘 평화가 지속되니 군부대의 대한 관리가 소홀하구나 " 라고 이르시니 국방부장이 아뢰길 " 좀 더 신경쓰겠사옵니다. 폐하. " 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 영종실록 2권 2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현재 짐의 지병이 너무 심하구나 " 라고 이르시니 황후께서 이르시길 " 얼른 처소로 돌아가소서 " 라고 하시니 황제께서 이르시길 " 황후는 마음씨도 곱고 얼굴도 이쁘구려 " 라고 미소를 띄우셨다고 한다. 그러자 황후께서 미소를 띄으셨다고 한다. 이때 황후는 아일 베고 있었다. [ 영종실록 3권 2년 ]

황제께서 지병으로 고생하실때 황실에서 경사가 일어나니 황태자(먼 훗날 해조)가 태어난것이다. 황제께서 이를 매우 기뻐하시며 이루시길 " 내가 그간 후사가 없어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구나. " 라고 하셨다.

[ 영종실록 3권 3년 ]

황제께서 지병이 나으시고 다시 국정을 운영하시면서 이르시길 " 제국 군들은 중국과의 국경을 더욱 보호하라. " 라며 이르셨다. [ 영종실록 3권 3년 ]

황제께서 이르시길 " 짐이 직접 민심을 돌보기 위하여 짐이 직접 백성의 체험을 해보겠다. " 라고 이르셨다. 한 신하가 " 아니되옵니다 폐하. " 라고 하니 황제폐하께서 " 부드럽게 이르시길 " 걱정마시오. 짐은 그냥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는거 뿐이니. " 라고 웃으면서 아뢰시니 그 신하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 영종실록 4권 3~4년 ]

황제께서 백성의 생활을 하는동안 황태자가 국정을 운영하였는데 황태자 역시 황제폐하 처럼 머리가 좋고 영특했다고 한다. 그동안 황제폐하께선 노비부터 시작하여 양반생활까지 총 4년을 걸쳐 백성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셨다고 한다. [ 영종실록 5~7권 5~8년 ]

황제께서 지병이 더 심해져 갑자기 승하하시니 온 백성들과 황태자 황후까지 슬퍼하였는데 특히 황후께선 승하하신 폐하를 꼭 끌어앉고 얼굴을 만지시며 " 다음 생엔 꼭 천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디 저의 곁으로 다시 와 주시옵소서. " 라고 아뢰니 옆에 있던 신하들과 호위무사들까지 전부 슬피 울었다고 한다. [ 영종실록 8권 9년 ]

해조

34대황제-이름(해조)
임기:2월3일~2월9일(강제퇴거)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대한제국을 다시 복권시킨자이자 대한연방제국의 34대황제이다.
유니온연방에 가입했으며
(소속명시를 하지않아 제재를먹었다.)
대한제국의기틀을 다졌으나...
후사가 없어서 다른황세손인 이혁에게 황좌를 넘겼어야되나
이혁이 35대 황제가 되자 황족이 머무르는 이화궁을강제점거해 황족의난을 일으키는 만행을저질러(...) 국민들과 황실감사원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후 비록 악연이지만 관대한이혁황제에 의해 1대황제가 아닌 대한제국을 이어가는국가에대한 뜻으로 대한연방제국의 34대황제로 추존되었다.
국민들에게서의 평가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던 대한제국을 대한연방제국으로 복권시켰다는 기대감에 황제에 올랐으나 그의행동은 황제가 될 그릇이 안된다.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생전에 남긴사진이 없기에그의초상화는 상상도로 대체한다.

국조

35대황제-이혁(국조)
임기:2월9일~현직

황제의 아들이아닌 친척으로 황제가된 특이한?케이스다.
선황제인 이름이 후사가없어 이혁이 선황제의 조상의 형제중 한명인 이우의후손이란게 확인되어 정당하게 황제되었으나... 선대황제인 이름이 이화궁을
강제점거해버려(...) 똥줄이타버렸으나 높은선민정신과 깨어난정치의식을 가지고있는
우리 대한광무연방제국의 국민들(황실감사원포함)에의해 선대황제를 폐위시켜서 다행이 35대황제가 되었다. 황제가되어 국민들과 소통을해 전제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고 공석이된 수상자리를 곧바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뭔가가이상했던 공직자자리를 수정하고 유능한인재들을 국회로 기용하고있고 2월16일 공식적으로 즉위식을하였다. 이와더불어
대한연방제국의 연호를 대한제국의1대황제이신 고종황제의 뜻을 새롭게떠받듬으로써 연호를 광무로 정하였고 대한광무연방제국이란 국명으로 사용하기시작했고 황실문양역시 태극문양에서 호랑이문양으로 바꿨다.

행정

<대한광무연방제국 직위>

대한광무연방제국 황제: 이혁
대한광무연방제국 황태자: Будь лояльным
대한광무연방제국 황실기록사관: 아몬
대한광무연방제국 황실대변인: 아몬
대한광무연방제국 황실수석: 대한광무연방제국 공

황실경호대장: 레비아
휘하 경호대:

황실감사원 수상: 아몬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Kylo Ren
법무부 장관: Bill Wilkerson
경제부 장관:
경제부 차관: 하 은 지
대법원장: Bill Wilkerson

육군참모총장: 맛좋은 사람
공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