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리 강의 기적

종전 이후 1950년의 도보리 강 주변 풍경
종전 이후 도보리 강.jpg
현재의 도보리 강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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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리 강의 기적(영어: Miracle on the Dobori River 미라클 온 더 도보리 리버[*], 일본어: 道甫里江の奇跡 도오호리코오노 키세키[*])은 195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중반 사이에 월본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던 기간이다.

개요

도보리 강의 기적 기간 동안 월본의 경제는 연평균 8~10%대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게 되며 1950년대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경제 성장이 1963~1974년에는 초고도경제성장이 되었다. 이를 사이쿄를 흐르는 도보리 강에서 따와 "도보리 강의 기적"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월본의 경제 성장률은 1960년대에 가장 높았으며, 연 10% 성장을 하는 일도 잦았다. 이는 현대의 "호랑이 경제(tiger economy)"에 가까운 상황이다. 공업 생산량 또한 연평균 10% 성장하였다.

역사

1950년대

한국 전쟁 당시 월본은 미국의 전진기지와 군수물자 공급지로 활용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전쟁특수를 누리게 되어 종전 복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1955년부터 전쟁 피해를 말끔히 씻고 다시 발전의 길로 들어섰다. 또한 일본과 필리핀 사이에 있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중계무역을 통해 상당한 이득을 얻게 된다.경제 성장은 처음에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벌려놓았고, 정치적 분열을 가중시켜 1950년대 월본은 1년을 넘긴 내각이 단 2번에 불과했을 정도로 정치가 불안하였다. 결국 1963년 2월 13일 강일한 장군이 주도하여,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며 1963년 군부의 군사정권이 시작된다.

1960 ~ 70년대

정권을 잡은 강일한은 경제발전계획을 통해 월본의 경제와 산업을 크게 발전시켰다. 또한 월남전에 개입하여 월남전에 월본군을 파견하는 조건으로 각종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2차 산업을 다시 부흥시켜 현재의 관서임해공업지대를 만들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군부는 경제개발과 반공을 내세워 집권을 이어갔으나,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으며 그와 함께 경제 급성장도 멈췄다. 그 영향으로 군부에서 민주 정권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게 되었다,

1980년대 이후와 종결

하지만 오일 쇼크 파동 이후 다시 1980년대에 세계적인 호황에 힙업어 안정 성장기에 돌입하였으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연 평균 3~7%대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률을 보이며 경제적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타격을 입고 마이너스 성장세로 추락하였으나, 세계 4위에 달했던 외환보유고와 세계 6위에 달했던 금보유량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이나 동남아 등에 비해서는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았고 그 이후 소일랑 총리의 주도로 강력한 경제 회복 정책이 시행된다. 소일랑 총리는 개혁형 보수 성향이였으며, 강력한 경제 회복 정책 및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불황을 탈피하는데 성공하였으며, 2002년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되며 골디락스 호황의 영향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듯 했으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또다시 경제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시위가 일어나는 등 혼란을 겪기도 하였으나 2015년 다시 회복 추세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2000년대 이후에는 불황과 회복을 반복하는 형상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공식적인 월본 경제 호황의 끝은 1990년대 말로 꼽히고 있다.

영향 및 결과

관서임해공업지대 조성, 주곤제철소 건립, 여러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성장, 도유 지역의 확장, 북양도 및 북부 지역의 개발, 월남전 파병을 통한 군무기 현대화 및 외화 소득 증대, 철도 환경 조성 등의 여러 개발이 이때 이루어졌다. 또한 이러한 경제 성장으로 인하여 월본이 세계적인 수준의 선진국이자 공업국이 될 수 있었으며, 국민 소독 증대와 생활 수준 향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사회 공공투자나 복지지출은 저수준에 머물렀으며 환경 파괴가 일어나서 공해병이 발생했고, 쓰레기 문제 등의 공해 문제가 경제성장기 후반이 되면서 심각해졌다. 또한 도시로의 인구 집중에 의한 과밀문제의 발생과 지방에서의 인구 감소에 의한 도시-농촌 인구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경제에서 복지로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공해병에 대한 보상과 그린벨트 및 환경보호 대책의 수립,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조성 및 배리어 프리 환경 수립이 이뤄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경제 성장으로 인한 후유증이 상당부분 치유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