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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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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민공화국(독일어: Deutsche VolksRepublik; DVR 도이체 볼크스 레푸블리크)은 독일 영토는 357,021 제곱킬로미터이며, 기후는 주로 온대 기후를 보인다. 인구는 2011년 기준 80,219,695명으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이민자 인구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공용어는 독일어이고, 소수 민족어나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소르브어, 덴마크어, 프리지아어도 쓰인다.

고대에 여러 게르만족이 살던 독일 땅은 게르마니아로 알려져 있었으며, 100년 이전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다. 10세기부터 게르만족의 땅은 1806년까지 존속한 신성 로마 제국의 중심부를 이루었다. 16세기에 북독일은 루터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된 종교 개혁(Reformation)의 핵심부로 자리 잡았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에 독일은 최초로 통일을 이루어 근대적인 국민 국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분단의 위기를 간신히 넘겨, 1949년 10월 7일, 독일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독일은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공화국으로 16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국내 최대 도시인 베를린이다. 이 나라는 가상국가연합과 중앙 가상국가 연합의 회원국이다. 독일인민공화국은 오늘날 유럽 최강대국으로 명목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며,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는 세계 5위이다. 수출과 수입 규모는 세계 2위이다. 연간 개발 원조액은 세계 2위이며, 군비 지출액은 6위를 보인다. 독일인민공화국은 생활수준이 높으며 광범위한 사회 보장 제도를 이룬 나라이다. 독일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국가들 중에서 1인당 GNP가 가장 높고 정치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 허용되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모범국으로 불렸으며, 비록 과거, 소련의 지도하에 있었지만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한 국가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Deutsche VolksRepublik
1280px-Flag of East Germany.svg.png 1628px-State arms of German Democratic Republic.svg.png
국기 국장
표어 Proletarier aller Länder, vereinigt Euch!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Workers of the world, unite!)
국가 Auferstanden aus Ruinen
폐허에서 부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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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본 독일인민공화국.
수도 베를린 북위 52° 30′ 02″ 동경 13° 23′ 56″
정치
공용어 독일어
정부 형태 사회민주주의 공화국, 공산주의 공화국
총서기 폴 크렌츠
내각 총리
인민의회 의장
베를린중앙인민재판소장
베를린최고인민재판소장
로타어 모드로프
그게고어 샤보브스키
리카르도 울브리히트
한스 드 메지에르

 
 • 수립 1949년 10월 7일
지리
면적 357,168km² (63위)
내수면 비율 2.416%
시간대 CET (UTC+1)
DST CEST (UTC+2)
인구
2016년 어림 82,292,400명
인구 밀도 230.9명/km² (50위)
경제
GDP(PPP) 2014년 어림값
 • 전체 $3조 6,213억 (5위)
 • 일인당 $44,741 (19위)
HDI 0.920 (5위, 2012년 조사)
통화 독일 마르크 (DEM)
기타
ISO 3166-1 276, DE, DEU, GPR, DVR
도메인 .de
국제 전화 +49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에 승전국인 프랑스, 영국, 미국과 소련은 일본을 4개로 분할하여 관리하기로 하였다. 한마디로 일본이 두 동강으로 분단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일본 국민들은 반발하며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서한을 보내고 시위까지 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윈스턴 처칠 역시도 일본을 분단시키는 것은 국경선을 정하기가 힘들다고 말해 분할관리를 반대했다. 1945년 6월 미국과의 회담에서 소련은 일본에서 철수하는 대신 독일 전체를 관리하겠다는 결정과 함께 스탈린은 소련이 점령한 독일 지역의 독일인 공산주의 지도자에게 자신은 영국 점령지에서 영국의 위치를 점차 잠식하고, 미국이 1, 2년 내에 철수하며, 독일 전체가 소비에트권의 공산주의자 통치로 들어올 수 있도록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독일 공산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을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ED)으로 합병하였는데, 이 때 이 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아니고, 소비에트 지향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1946년 독일의 소련 점령 지역 선거에서 소비에트 당국은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여러 경쟁 정당들이 농촌 지역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겨우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였다. 재산과 산업은 정부 소유로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독일 전체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배 하에 있었던 다이치시마(지금의 산안드레아스 제도.)와 아라마키 섬(지금의 라이오콧트 섬.)도 편입해 하나의 나라를 구성하기에 이르고, 1949년 10월에 독일민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초대 공산당 서기장은 스탈린주의자 발터 울브리히트였으며, 독일민주공화국을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공화국"으로 규정했다. 울브리히트는 농업집단화, 시장과 이윤제(利潤制)의 개념도입 등의 신경제정책을 채용했다. 그의 사망 후 슈토프에 이어 호네커가 권력을 계승하였다.

1953년 6월 17일, 모든 생산량을 10%로 늘리라는 명령에 항의, 베를린에서 노동자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다음날, 소련군보병포병을 이끌고 시위를 무력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가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 후, 국민들은 한 동안 가난에 찌들려 살아야 했다. 1979년, 당시 42살이었던 에곤 크렌츠 전 총서기는 당대회에서 개혁개방 의견을 제시했다.

{{ "친애하는 동지들! 국가에게 남은 건 빛, 굶어 죽은 인민들, 인민들의 시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살리는 길은 개혁입니다. 중국에서는 미국과 먼저 손을 잡았고 서방과의 관계가 증진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중국이 우리보다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남지 못하면 독일이란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우리가 표상하는 이 나라는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미래와 번영,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개혁개방을 여기에서 자신있게 제안합니다." }}

그러자 당 대회에 참석한 에리히 호네커 총서기와 모든 당원들은 박수를 치며 찬성!(Pros!)를 외쳤고 그 해, 대대적인 개혁개방이 이루어졌다. 독일인민공화국의 인민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첫 총선이 1980년 4월, 열렸고 첫 총선 결과는 무엇보다 개혁개방을 주도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이 과반수를 차치했다. 이러한 대대적인 개혁개방의 성과로 1985년, 국가 부채를 해소하고 굶어 죽는 인민들이 줄어들고 인민들의 시름도 줄어들었다. 1989년 에리히 호네커가 사임하면서 인민의회는 해산되고 1989년 총선에서 에곤 크렌츠를 내세운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그 해 총선에서도 압승, 연속 집권이 이루어졌다. 1989년 국호를 독일인민공화국으로 바꿨다.

새로운 도약

독일인민공화국은 2014년 11월 22일, 중앙 가상국가 연합에 가입했고 2016년 7월 27일에는 가상국제연합에 가입했다.
2016년 3월 총선에서는 개혁개방의 아버지, 에곤 크렌츠의 손자인 폴 크렌츠가 이끄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이 또다시 총선에서 압승함으로써 전 총서기 클라인 레오니가 이끄는 독일 민주 농업인당의 집권을 끝맺었다. 이후 독일인민공화국은 루시아-아오쿠모 전쟁과 운천국 군사쿠데타, 체코슬로바키아 군사쿠데타를 온 몸으로 막았고, 자유 그린란드 전쟁에 자유민주 진영으로 파병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IS와의 전쟁에도 투입되는 등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폴 크렌츠 총서기는 건국절 담화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 독일인민공화국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어린 후손들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굳이 이유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말씀드리죠. '이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건 우리들 뿐입니다.' }}

정치 체제

독일인민공화국은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채택하는 국가다. 인민의회에 의해 국가의 모든 일이 결정되며, 각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해 지역 자치 조례를 만들어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독일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으로 잃었고, 산업과 교통이 파괴되어 많은 피난민이 발생했다. 독일이 소련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소련이 독일의 경제정책을 장악하게 되었다. 소련의 적군은 기존의 산업기반을 해체하고 소련으로부터 산업기반시설과 산업설비를 들여와 독일의 산업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독일의 경제는 소련 경제에 예속되게 되었다. 1950년대 초반에 소련에 대한 배상금이 각종 곡물과 소비재 공업생산품으로 지급되었다. 또,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독일이 영유하고 있었던 남부 슐레지엔과 슈테틴에 걸쳐있는 탄전지대와 부동항이 스탈린의 결정에 의해 폴란드로 귀속되게 되었다.
독일의 공산주의 계획경제의 형태는 소련의 형태와 유사했다. 독일은 1950년에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에 가입하였다. 1985년의 독일의 경제 통계에 의하면 사회협동기업의 수입이 국가 전체 수입의 96.7%를 차지하였다. 독일 경제당국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안정화를 보장하기 위하여 예산 지출의 80%를 사용하였다. 1984년 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9,800달러 선이었으며, 이는 2008년 달러 가치로 볼 때 21,000달러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1976년의 독일인민공화국의 GDP성장률은 5%대였다.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 편에 의하면 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로 나오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독일의 주요 수출품은 프락티카(Praktica)브랜드의 사진기 및 IFA에서 제조한 트라반트(Trabant) 브랜드의 소형 승용차, 바르트부르크(Wartburg) 브랜드의 중대형 승용차와 사냥용 소총, 육분의, 손목시계 등 이었다.

1979년 까지, 독일은 설탕이나 커피와 같은 식료공업품의 부족을 경험하였다. 독일인민공화국 재정경제노동성은 서방세계의 외환을 획득하기 위해, 독일 인민들이 동독 국립은행(Staatsbank)을 통해 독일의 은행에 외환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였고, 특별 외환상점(Intershop)에서 외환을 주고 서방세계의 물품이나 독일에서 제조된 수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일 주민들은 우편제도를 이용하여 외국에서 다양한 소비재를 구입할 수 있었으며, 야우어푸드(Jauerfood)사를 통해 동독 화폐로 외국의 식료품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독일 정부는 통화와 시장가격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였다. 독일 정부는 정규 급여 이외에 여러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는 여러 보조급여를 지급했으며, 이는 "제2의 급여"라고 불렸다. 이러한 독일의 정책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고, 서방 국가와 독일의 경제 차이를 발생시켰다. 인위적인 가격 조절은 비효율적인 생산을 불러왔고, 물물교환이나 사재기 등의 비경제적인 경제활동이 나타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은독일 화폐의 가치를 신뢰하지 못했으며, 독일 화폐를 서방세계의 화폐로 교환하려는 경향을 나타냈다. 독일의 경제는 서방에서 제공하는 서방세계의 화폐 대부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독일 인민들은 서방 국가의 통화가치에 비해 독일 마르크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1979년부터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여 GDP와 독일 마르크의 가치를 올렸다.

사회

민족과 인구

독일 연령별 인구 구성 (2015년)

주민의 대부분은 독일인이다. 동화되었지만 켈트인·라틴인·슬라브인 등 복잡한 피가 섞여 독일민족을 구성해왔다. 소수 민족은 덴마크인, 소르브인, 터키인, 러시아인, 세르비아인, 화교, 쿠르드족, 기타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고유의 문화와 언어, 역사,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민족  %[1] 인구[2]
유럽인 88.0 70,593,332
독일인 80.7 64,737,294
폴란드인 2.0 1,604,394
러시아인 1.7 1,363,735
유고슬라비아인 및 기타 유럽인 3.6 2,887,909
중동인 5.2 4,171,424
터키인 4.0 3,208,788
아랍인, 이란인 및 기타 중동인 1.2 962,636
아시아인 2.0 1,604,394
아프리카독일인, 흑인 1.0 802,197
혼혈 2.0 1,604,394
그 외(주로 미국인) 1.8 1,443,955
전체 인구 100.0 80,219,695

독일의 인구는 2011년 5월 기준으로 8,020만 명으로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이자, 세계에서는 16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인구 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225명이다. 독일인의 평균 수명은 80.19세(남성은 77.93세, 여성은 82.58세)이다. 출산율은 2011년 기준 여성 1인당 1.41명, 인구 1,000명당 8.33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1970년대부터 사망률출산율보다 높은 상태가 유지되어 독일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만성적으로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독일 이주자의 생활

이주민 가정은 독일에서 사회적으로 향상되거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20년 동안 사회통합 분야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독일 국적 취득을 위한 법적 기준이 완화되었고 이민자와 독일인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며, 다른 인종 및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크게 강화되었다.

독일 이주자의 인구

2011년 독일 국가통계성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79,652,370명 중에 15,016,960명의 이주자들이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8.9%에 해당한다. 지역별로 보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약 4백만 명의 가장 많은 수의 이주자가 살고 있다.
독일 경제는 전후 50년대의 경제성장 이래로 이주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독일은 외국인 노동자의 나라에서 차차 이민자의 나라로 변한 것이다. 독일로 이주해오는 또 하나의 큰 집단으로는 수 세대 전부터 구 소련, 루마니아, 폴란드 등에서 살다가 공산체제 붕괴 후 독일로 돌아온 이들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부류의 이주민들로 인해 80년대 독일의 인구 수 대비 이주민 수는 전통적 이민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보다도 높았다.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에는 터키인이 2백5십만 명으로 가장 많으며, 나머지 1백5십만 명은 주로 구 유고슬라비아 또는 그 후속국가에서 온 이주민이다.

독일 인구 비율[3]
지역 2011년 5월 9일 기준 인구 (단위 : %)
 합 비이주자 이주자
 합 거주 지속 기간
5년 이하 5~10년 10~15년 15~20년 20년 이상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13.1 74.8 25.2 10.4 11.2 13.2 15.7 49.5
바이에른 주 15.5 81.4 18.6 12.2 12.9 14.3 15.4 45.2
베를린 4.1 76.1 23.9 14.3 13.3 13.5 12.8 46.1
브란덴부르크 주 3.1 95.6 4.4 15.0 18.5 17.1 11.3 38.0
브레멘 주 0.8 74.9 25.1 12.2 11.9 14.7 17.4 43.9
함부르크 주 2.1 72.5 27.5 11.6 12.5 14.0 15.2 46.7
헤센 주 7.4 75.1 24.9 11.5 11.9 13.4 15.7 47.5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2.0 96.3 3.7 18.1 20.9 20.1 9.5 31.5
니더작센 주 9.7 83.5 16.5 11.5 12.8 17.9 20.3 40.5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21.9 75.8 24.2 10.1 11.7 13.7 15.4 49.1
라인란트팔츠 주 5.0 81.3 18.7 11.9 12.7 14.5 18.1 42.8
자를란트 주 1.2 83.8 16.2 12.0 12.3 13.7 17.4 44.7
작센 주 5.1 95.7 4.3 18.8 19.6 19.3 11.2 31.1
작센안할트 주 2.9 96.5 3.5 17.9 21.0 18.7 11.7 30.7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3.5 88.3 11.7 11.7 14.1 16.5 16.4 41.4
튀링겐 주 2.7 96.7 3.3 17.3 19.1 19.6 11.7 32.3
독일 전체 100.0 81.1 18.9 11.4 12.4 14.1 15.8 46.3

종교

틀:Bar box
독일의 그리스도교는 프랑크 왕국시대에 로마 가톨릭이 본격 도입이 되어서 전파되었고 신성로마제국초기까지 크게 융성하였다. 로마 가톨릭의 문제들을 신학적으로 논박한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분리된 이후에 피비린내나는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의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분쟁은 종교자유가 선포됨으로써 극복되었다. 독일 국민의 대부분이 기독교(로마 가톨릭루터교회)를 신앙하고, 일부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타 신흥 종교를 믿는다. 가톨릭은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남부 독일에 많고, 개신교는 북부 독일에 압도적이다. 최근에는 영국동유럽계 이민에 의해 성공회정교회가 들어옴에 따라 독일교회의 교파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언어

공용어는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다. 소수 민족어나 러시아어, 한국어, 영어, 일본어, 소르브어, 덴마크어, 프리지아어도 사용하는 나라다.

교육

독일의 교육의 감독 책임은 기본적으로 각 주에 있으며 연방정부의 역할은 크지 않다. 만3~6세 사이의 어린이는 선택 과정인 유치원 교육을 받는다. 이후의 10년에서 13년의 교육은 의무적이다. 독일의 초등학교 다음 과정으론 하우프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 등이 있다. 먼저 하우프트슐레는 5년제인데 졸업을 하면 바로 직업전문학교로 가게 된다. 레알슐레는 6년제인데 졸업하면 직업 전문학교를 갈 수도 있고 중등 2단계로 바로 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나지움은 9년제이고 대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김나지움은 5-10학년은 중등1단계, 11-13학년은 중등 2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김나지움 2단계까지 마치면 독일의 모든 대학교를 갈 수 있는 아비투어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를 4학년 때 졸업할 수 있다. 어떤 초등학교는 6학년에 졸업을 하는 학교도 있다.

방송과 언론

독일인민공화국 헌법 제 5조에 의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표현, 출판 및 보도의 자유를 인정하고 국가에 의한 검열 제도는 부정한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며, 청소년을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출판물과 영화로부터 보호하고 개인의 인격과 비밀을 보호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수반한다. 독일은 미디어에 대한 집중도가 가장 높고, 언론의 다양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나라 중의 하나인데, 430종 이상의 신문과 60종 이상의 주간지, 그리고 2만 종 이상의 잡지가 발간되고 있다.

신문과 잡지

독일의 신문은 전통적으로 사기업에 의해 운영되어 왔으며 신문에 관한 입법은 주 정부 소관사항이다. 유력한 신문으로는 인민일보, 빌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쥐트도이체 차이퉁, 디 벨트가 있으며 이 중 베스트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최대 구독지의 자리를 지키고 빌트가 최대 판매 부수를 자랑한다. 독일의 신문은 이전의 부정기적인 인쇄 신문이 기술적·내용적 면에서 발전하여 나타난 것으로, 그 중요 요인의 하나로는 특히 자유민주주의 사조의 대두를 들 수 있다. 1848년 독일 혁명으로 신문 발행이 비교적 자유롭게 되자 신문의 종수가 크게 증가하여 1851-60년간에는 그 종수가 482개에 이르게 되었다.

독일의 일간지 중 지방지는 335종, 전국지는 10종이며 전국지 판매량은 160만부에 불과하나 지방지는 1430만부로 강세를 보인다. 주간지는 현재 약 60종 이상이 발간되고 있다. 대표적인 주간지로는 가장 권위있는 시사 주간지로서 함부르크에서 발행되며 독일의 타임즈로도 불리는 슈피겔, 그리고 1993년에 창간되어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포쿠스, 제 2차 세계대전 후 주요 주간지였던 슈테른 등이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발행되는 신문·잡지수의 다양함, 지방지의 발달, 광고 전문지의 강세, 국제 기사의 비중 강화, 수준 높은 주간지의 발행, 정당지의 약세 등의 특징이 있다.

방송

독일 방송국 설립에 관한 입법은 각 주의 소관 사항이며 독일 방송은 공영 방송민영 방송이 공존하는 이중 체계다. 이전에는 공영 체제로만 운영되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 상업 방송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상업적 방송을 허가하는 입법이 1984년 니더작센 주에서 통과되었고 민영화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사가 인가되었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공영/민영 혼합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공영 방송에 관한 사항은 주 정부의 법률 또는 주 정부간의 국가 조약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으며 방송의 경우 신문보다 시설, 재정에 있어서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독일의 방송은 연방 정부의 감독 하에 공단(公團)으로 운영되는데, 각 방송 공단은 각각 독자적으로 방송 내용을 편성·방송하고 있다. 독일의 공영 방송사는 독일인민공화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방송인 독일 텔레비전 방송국(DFF), 9개의 지방 공영 방송사의 연합체인 ARD와 주 정부간의 합의로 설립된 ZDF, 독일의 해외 홍보 공영 방송인 도이체 벨레가 있다. 민영 방송사는 1985년 설립된 Sat.1, 1986년 설립된 RTL, Tele 5, 프로지벤 등이 있다. 위성 방송으로는 3sat과 Tagesschau 24가 있으며, 1982년 이래 케이블 텔레비전을 설치하기 시작하여 민간 유선 방송망이 활발히 설치되고 있다.

ARD가 2012년에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프로그램별 편성에서 공영 방송의 경우 뉴스를 비롯한 정보 프로그램이 전체 방송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ARD가 42%, ZDF가 47%를 차지하며, 상업 방송사들은 평균 20% 이하의 편성비율을 보인다.

독일의 라디오 방송1923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였고, 현재는 500개가 넘는 방송국이 있다. 대표적인 해외 공영 방송인 도이체 벨레에선 전 세계에 30개의 언어로 정보와 뉴스를 방송한다. 전국 공영 방송으로는 도이칠란트라디오에서 뉴스 중심의 도이칠란트푼크(DLF)와 음악 위주의 도이칠란트라디오 쿨투어(DKultur)를 방송하며 각 지방 방송마다 별도의 라디오 채널이 있다. 라디오 방송에서는 공영 방송이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이 라디오 방송을 즐긴다.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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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금보험

법정 연금 보험은 독일 연방의 사회복지제도에서 중요한 기둥의 하나이다. 이것은 취업자가 취업생활 후에도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다

2. 실업보험

기본적으로 모든 근로자는 실업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실업보험의 보험료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반반씩 지불한다.

3. 간병보험

1995년 1월 1일부터 실시된 간병보험은 간병이 필요한 경우를 위한 사회보장의 보완책이다.

4. 가족에 대한 혜택

1996년부터 가족은 육아보조금이나 면세할당액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다.

5. 사회보조금

사회보조금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다른곳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급된다. 독일인민공화국의 사회보조금법에 다르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은 독일인이건 외국인이건 사회보조금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

문화

대중문화

1970년대 중반부터 디스코 열풍이 블었던 독일인민공화국은 90년대에는 밴드, 2000년대 후반에는 아이돌이 잇따라 인기가 많아지면서 대중문화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1978년부터 핑크레이디를 시작으로 일본 아이돌과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소설 등을 좋아하는 젊은 층들이 늘어났는데 2007년 모델이자 배우인 아키야마 리나의 문라이트 전설(현지명 : Legende des Mondscheins)이 독일인민공화국 내에서 히트를 치며 그에 따른 사회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심지어 높은 인기에 힘입어 아키야마 리나가 독일을 방문해 콘서트를 연 적이 있었는데 콘서트 공연장 입구에서 발생한 압사사고로 어린이 1명이 사망하고 949명의 청소년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져 인민경찰이 즉각 조사에 착수할 정도다.

스포츠

독일은 올림픽, 월드컵 축구, 포뮬러원(F1) 같은 세계 3대 스포츠 축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유일한 국가다.

올림픽에서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축구의 강국으로 브라질, 이탈리아와 더불어 단 3개국밖에 없는 FIFA 월드컵에서 세 번 이상 우승한 국가들 중 하나이며 월드컵의 평균성적이 상당히 좋으며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통산 4차례 우승 국가가 되었다.

포뮬러원에서는 2013년에 제바스티안 베델이 종합우승을 차지해 4년연속 챔피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야구의 경우 베이스볼 볼크스리가, 소프트볼은 소프트볼 볼크스리가가 성행 하고 있다.

행정 구역

독일인민공화국은 16개의 주와 2개의 해외령을 가지고 있다.

  1.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Baden-Württemberg)
  2. 바이에른 주 (Bayern)
  3. 베를린 (Berlin)
  4. 브란덴부르크 주 (Brandenburg)
  5. 브레멘 주 (Bremen)
  6. 함부르크 주 (Hamburg)
  7. 헤센 주 (Hessen)
  8.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Mecklenburg-Vorpommern)
  9. 니더작센 주 (Niedersachsen)
  1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Nordrhein-Westfalen)
  11. 라인란트-팔츠 주 (Rheinland-Pfalz)
  12. 자를란트 주 (Saarland)
  13. 작센 주 (Sachsen)
  14. 작센안할트 주 (Sachsen-Anhalt)
  15.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Schleswig-Holstein)
  16. 튀링겐 주 (Thüringen)

해외영토

  1. 산안드레아스 제도 (San Andreas Insel)
  2. 라이오콧트 제도 (Liocott Insel)

군사

독일인민공화국의 군은 국가인민군이며 1956년 3월 1일에 창설되었다.

225,3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 2761개, 전술기 767개, 군함 208척을 보유하고 있다. 예산 감축으로 국가인민군은 전력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버렸으며, GFP의 순위에서도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네덜란드의 드 제벤 프로빈센급과 에이파 시스팀 그리고 스마트L 레이더를 단 함인 독일의 작센급, 독일과 네덜란드의 군함 공동개발은 같은 시스템을 쓰는 것이지 선체 디자인까지는 같이 하자는 건 아니었기에 양국은 선체 디자인에 대해선 각자 독자적인 설계로 건조한다. 브란덴부르크급을 바탕으로 설계, 건조 했으며 독일 인민해군을 대표하는 함중 하나가 작센급이다.
국가인민군은 4개의 주요 편제가 있는데, 육군(Landstreitkrafte), 인민해군(Volksmarine), 공군/영공수비대(Luftstreitkrafte/Luftverteidigung),국경수비대(Grenztruppen der DVR/해병대는 없고 국경수비대는 있다.)
(3군 공통) 전력기반군(독일어: Streitkraftebasis, 2000년에 실시된 국가인민군 개혁의 일환으로 3군 공통으로 소속되는 기관이다. 병참, 통신, 헌병, 교육 등 후방지원 업무를 통합한 기관이다.)
(3군 공통) 구호업무군(독일어: Zentraler Sanitatsdienst, 2000년에 실시된 국가인민군 개혁의 일환으로 3군에 나뉘어 있던 의료 부대를 통합하고, 공통의 의료부대를 편성한 기관이다.)이 있다.

각주

  1. [1], Bevölkerung mit Migrationshintergrund I | bpb.
  2. [2], Zensus 2011: 80,2 Millionen Einwohner lebten am 9. Mai 2011 in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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