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공화국

<CAUTION> 베네치아 공화국에 관한 전반적인 위키입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관리자/총독의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로 위키를 무단 편집/삭제 하지 마십시오.



베네치아 공화국헤르메스 연합 가입국이며, MCAC에서 타가상국가와 다르게 반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가상국가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카페나 카카오톡(링크는 아래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해당 문서는 현재 공사중입니다!



개요

Respùblica de Venexia
Republic of Venesia
베 네 치 아 공 화 국

베네치아 공식국기.png
국기
국기 중앙에 위치함
국장
국호Respùblica de Venexia
Republic of Venesia
상징국가베니스에서 새로운 아침을!
국화수련
표어아드리아의 보석
자연환경면적(영토)17,456km²
수도베네치아(415km²)
인문환경인구4,545,720명
인구밀도260명/km²
공용 언어베네토어(IT), 슬로베니아어
정치국체민주공화제
정부형태양원제
총리미나미르 조유
경제GDP$164,451(백만)
1인당 GDP$38,871
GDP(PPP)$0000
1인당 GDP(PPP)$0000
공식 화폐EURO(유로화)
단위
법정연호서기
시간대UTC +1(CET)


언어별 명칭
공식명칭베네치아 자치민주공화국
베네토어Respùblica de Venexia
슬로베니아어Republika Venezija
영어Republic of Venesia
독일어Republik Venedig
헝가리어Velencei Köztársaság
프랑스어République de Venesia
스페인어Republica de Venesia
포르투갈어República da Venésia
그리스어Δημοκρατία της Βενεσίας
러시아어Республика Венесия
중국어威尼斯共和国
한국어베네치아 공화국
일본어ヴェネシア共和国
아랍어جمهورية فينيسيا



국가소개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운영국가이므로 다음 링크(준비중)를 통해 입국이 가능합니다.

베네치아 공화국, 흔히 베니스 공화국으로도 알려진 이 국가는 697년부터 합병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한 국가 지도자 부재기간을 포함해서 1300여년을 존속해온 국가다.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다르게 왕조가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설립부터 지금까지 민주공화제를 채택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에 있었기 때문에 비잔티움의 황제로부터 자치권을 받은 이후에 로마 가톨릭교가 아닌 동방 기독교(옛 명칭: 정교회)(현재 공화국의 국교는 천주교이다)를 믿고 있다. 언어는 이탈리아의 방언격인 베네토주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베네토어를 사용하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걸친 영토에 있는 사람들은 슬로베니아어와 헝가리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북부의 일부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의 주언어인 독일어를 사용한다. 베네치아는 독자적인 문화와 제도를 유지했었지만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합병 또는 두 국가간 조약으로 인해 분할되면서 점차 이탈리아 북부와 오스트리아의 문화가 서로 섞여 동화되었다. 민족은 슬라브와 라틴계가 섞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대다수가 슬라브계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면을 참고

Venesia Flag.jpg
베네치아 정부기



연표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 (History of Venesia)
고전중세르네상스근대현대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자치령 / 베네치아 공화국베네치아 공화국나폴레옹
프랑스령
이탈리아 왕국 자치령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령
이탈리아/소련령베네치아 자치령베네치아 자치민주공화국



영토

베네치아 공화국 지도.png
베네치아 공화국 지도


베네치아 공화국은 베네치아(베니스/수도), 베네토주, 이스트리아주, 달마티아주로 나뉜다.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공화국 독립 이후, 베네토주와 분리되었고, 이스트리아주는 이스트리아 반도로 이루어져있는데 이전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영토합의서 분할되어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던 전제가 있어 영토로 편입될 수 있었다. 달마티아주는 이후 독립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와의 영토합의로 일부가 반환되었다.

문화



언어

베네토어 슬로베니아어 독일어 기타 언어
78.2% 16.9% 2.4% 2.5%



종교

천주교 개신교 가톨릭교 기타종교
76.1% 17.8% 5.9% 0.2%



역사

베네치아 공화국역사의 전-중반부는 현재 알려진 베네치아 공화국의 실제 역사와 같으므로 설정으로 변화한 시점 이후의 역사부터 서술하도록 합니다.



1797년 ~ 1814년

/// 1797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베네치아 공화국이 중립을 선포함에도 불구하고 베니스를 침공하면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멸망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마지막 도제인 루드비코 마닌은 베네치아 공화국을 부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꼽혔지만 1802년에 사망하면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부활하지 못하고 주변 국가들에 의해 분할되어 점령당하기에 이른다.

1798년, 오스트리아 제국군을 격퇴한 프랑스 제국군은 베네치아를 점령하였고 완전히 통치하러 했으나, 완강한 저항으로 부딪혔고, 프랑스는 베네치아를 공국으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프랑스군을 주둔시켜 지중해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을 펼쳤다.

1805년, 이탈리아 왕국이 나폴레옹 황제에 의해 무너지면서, 이탈리아마저 프랑스령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프랑스에 강렬히 저항했고 베네치아 공국을 옹호했다. 이때부터 프랑스로부터 옹립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와의 베네치아의 영토분쟁이 야기되었다.

1806년, 새로운 이탈리아 왕국이 옹립되었고,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완전해체되었다. 영광의 신성로마제국 시대는 막을 내렸다. 교황령은 힘을 거의 잃어버렸다.

1809년,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스트리아 반도를 프랑스로부터 지켜내었다. 이는 훗날 영토분쟁으로 번지게 된다.

1814년, 프랑스 제국의 육군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반격에 부딪히면서 베니스를 제외한 기존 베네치아 영토를 오스트리아 제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1815년 비엔나 조약

/// 1815년, 100일천하로 나폴레옹 1세 황제가 패전후 재유배되면서 유럽은 혼란 그 자체였다. 프랑스는 패전국이었지만 발언권을 점차 높여가 훗날 여러 국가의 영토에 대해 중대한 의논을 나누게 되었다. 이 때 오스트리아 제국은 베니스, 이스트리아 반도 및 라구사 지역을 얻기로 했는데 이탈리아 왕국은 이를 격렬하게 반대했다. 베네치아 지역은 원래 이탈리아와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오스트리아에 비해 훨씬 가까웠는데, 이탈리아 왕국은 이러한 비엔나 조약을 받아들일수 없었고 결국 두 국가의 분쟁 끝에 이탈리아 왕국에 서베니스, 오스트리아 제국에 동베니스가 할양되면서 분쟁은 일시적으로 일단락되었다.

1848년 베니스 혁명


Venice 1800s (1).jpg

/// 1848년, 19세기 중반은 완전히 혼란 그 자체였다. 비엔나 조약으로 나폴레옹 시대 이전으로 유럽은 회귀했으나 프랑스혁명으로 프랑스는 공화정이 들어섰고 영국은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미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세력간 분쟁이 심화되었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헝가리를 합병할 정도로 동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더욱이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에 대항해 제국을 이룰 준비를 하고 있었고, 러시아 제국은 동쪽으로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혼란속에서 합쳐지고 분열되는 것을 반복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사실상 마지막 도제였던 루드비코 마닌의 친척이었던 다니엘렌 마닌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부활을 꿈꿨다. 서베니스를 점유하던 북이탈리아 왕국은 이를 지지했다. 만약 베네치아가 옛 영토를 회복하게 되면 이탈리아는 이를 자치령으로 둘 생각이었다. 다니엘렌 마닌은 베니스와 그 주변의 베네토 문화권 사람들을 동요하였고 이듬해 6월, 베니스 혁명을 일으켰다.

베니스 혁명은 베네토주와 이스트리아 반도 남부 그리고 달마티아 주(라구사)에서 발생하였으며 이탈리아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동쪽의 러시아 제국 그리고 헝가리 왕국에 신경이 곤두서있었기 때문에 급히 군대를 파견해 진압하려했으나, 곧 이탈리아가 뒤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스트리아 반도는 오스트리아 제국령으로 두되 동베니스와 달마티아 주는 이탈리아에 넘겼다. 다만 오스트리아 제국은 동쪽 상황이 안정되면 즉각 전쟁을 통해 영토를 재수복할 생각을 가진 상태였다. 그리고 훗날 이를 실제 실행에 옮기게 된다.

한편 베니스 혁명으로 총독으로 자리한 다니엘렌 마닌이탈리아의 자치령으로 베네치아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고, 여전히 이탈리아의 반지배를 받게 되었다. 적어도 이탈리아가 통일되어 완전한 이탈리아 왕국을 수립할때까지......

(KEEP WRITTING FROM DUMP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