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식혜)

Royal Coat of arms of Serbia (1882–1918).svg 세르비아 왕국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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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g of Serbia (1882–1918).svg 세르비아 왕국의 특별시
베오그라드
Београд | Beograd
Flag of Belgrade, Serbia.png Small Coat of Arms Belgrade.png
시기 문장
Beograd1.jpg
베오그라드 지도.png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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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Flag of Serbia (1882–1918).svg 세르비아 왕국
시간대 UTC+1
UTC+2(서머타임)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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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약 3,000㎢
인구 3,371,126명
인구밀도 약 1,123명/㎢
하위 행정구역 5스레즈
• 브라차르
• 포사비나
• 콜루바라
• 코스마이
• 그로츠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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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스타니미르 사비체비치 인민급진당
시의회 여당
0석 / 0석
인민급진당
야당
0석 / 0석
0석 / 0석
0석 / 0석
0석 / 0석
0석 / 0석
ISO 3166-2
KS-00

개요

베오그라드(키릴 문자: Београд, 로마자: Beograd, 영어: Belgrade)세르비아 왕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니시, 스코페, 체티네와 함께 세르비아의 정치, 문화,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도나우강, 드라바강, 사바강이 합류하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1841년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공작이 공국의 수도를 크라구예바츠에서 베오그라드로 옮긴 이래 세르비아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1878년 베를린 조약의 결과로 공국이 완전히 독립하고 1882년 왕국이 선포되었을 때도 베오그라드는 여전히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수많은 침략과 정복의 역사 때문에 베오그라드에는 칼레메그단 요새, 베오그라드 요새 등 다양한 민족이 세운 여러 요새가 있다. 이러한 요새들은 전시에 중요한 요충지로써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세르비아의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칭

언어별 명칭
세르비아어Београд
Beograd
불가리아어Белград
튀르키예어Belgrad
헝가리어Nándorfehérvár(과거)
Belgrád(현재)
영어Belgrade

베오그라드라는 이름은 9세기 불가리아에 정복당했을 당시 하얀 성채라는 뜻의 '벨리그라드(Beligrad)'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사

기원전 279년, 고대 켈트족이 세운 도시 신기둔 혹은 신기두논이 베오그라드의 기원이다. 로마 제국에 정복당한 후에는 신기두눔(Singidunum)이라 불리며 도나우강 방어선의 군사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수백 년 간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있으면서 훈족, 사르마티아인, 아바르족 등 다양한 민족에게 침략당하고 함락당했다.

520년에는 남슬라브족이 베오그라드에 정착했고 630년에는 세르비아인이 베오그라드로 이주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동로마 제국이 일시적으로 멸망하자 세르비아인이 완전히 정착했다. 베오그라드라는 이름은 878년 불가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때 벨리그라드(Beligrad, 하얀 성채)라고 불린 데에서 유래했다.

중세 400년 간 베오그라드는 동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불가리아,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으며 나중에 헝가리 왕국의 봉신으로 시작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던 스테판 드라구틴에 의해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었다.

1371년에 일어난 마리차 전투, 1389년에 일어난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를 연달아 격파하면서 세르비아 남부 대부분이 오스만에게 함락되어 베오그라드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이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르비아는 오스만의 공격에 대비해 베오그라드에 요새를 건설했다. 1427년에는 결국 자진해서 헝가리에 합병되었다. 헝가리는 베오그라드를 '불가르인의 하얀 성채'라는 뜻의 난도르페헤르바르라고 불렀으며, 계속해서 오스만의 확장을 저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1440년과 1456년에 오스만이 베오그라드를 포위하면서 공격했지만, 헝가리-세르비아 연합군의 강렬한 저항에 패퇴하고 말았다.

1521년 오스만 쉴레이만 1세의 기습공격에 결국 함락되어 베오그라드는 오스만 스메데레보 산자크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오스만과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세르비아의 지배권을 놓고 수차례 전쟁을 벌이면서 베오그라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1841년 세르비아 공국의 수도가 되었지만 베오그라드 북부는 한동안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베오그라드는 비로소 통일된 도시가 되었다. 1878년 세르비아가 베를린 조약의 결과로 오스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고, 1882년 왕국이 선포된 후에도 베오그라드는 수도의 자리를 지켰다. 오늘날 베오그라드는 왕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위치한 세르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