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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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 제국
브라질 연방공화국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브라질의 국기.png 브라질의 국장.png
국기 국장
표어포르투갈어: Tudo para o Brasil
(모두는 브라질을 위하여)
국가그래, 우리는 브라질이 좋다
브라질의 위치.png
수도브라질리아 남위 15° 48′ 서경 47° 54′ / 남위 15.8° 서경 47.9° / -15.8; -47.9
최대 도시상파울루
정치
정치체제공화제, 연방제, 대통령중심제
대통령자이르 보우소나루
부통령아미우통 모랑
역사
독립포르투갈로부터 독립
 • 선언1822년 9월 7일
 • 승인1825년 8월 29일
 • 공화정1889년 11월 15일
지리
면적8,515,767 km2
내수면 비율0.65%
시간대BRT (UTC-2 ~ -5)
DST(UTC-2 ~ -5)
인문
공용어포르투갈어
인구
2019년 조사205,502,000명
인구 밀도22명/km2
경제
GDP(PPP)2019년 어림값
GDP(명목)2019년 어림값
 • 전체$2조 3,668억
HDI0.730 (85위, 2019년 조사)
통화헤알 (BRL)
기타
ISO 3166-1076, BR, BRA
도메인.br
국제 전화+55

브라질 연방공화국(브라질 포르투갈어: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 헤푸블리카 페데라치바 두 브라지우), 줄여서 브라질(브라질 포르투갈어: Brasil 브라지우)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연방제 공화국이다. 수도는 브라질리아이고, 최대 도시는 상파울루이다.

브라질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로, 면적이 넓고 인구도 2억 명이 넘는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브라질 포르투갈어)로 사용하고 있다. 해안 지역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19세기 초에 포르투갈의 수도이기도 했던 남서부 해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970년에 중부 내륙의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겼다. 삼바카니발의 본고장이며, 축구 강국으로도 유명하다. 브라질 전자정부

역사

명칭 유래

정식 명칭은 포르투갈어로 República Federativa do Brasil”이며, 공식적인 영어 표기는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이다. 포르투갈어로 "Brasil"라고 표기하지만, 영어로는“Brazil”라고 표기를 한다. 그러나 수도 브라질리아는 포르투갈어인 “Brasília”로 표기한다.

‘브라질’이라는 이름은 브라질나무에서 비롯하였다. 브라질나무는 붉은 색 염료로 쓰이는 나무로, ‘불타는 숯처럼 붉은 나무’라는 뜻의 ‘파우 브라질(pau-brasi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에서 브라질나무를 활발하게 수출하면서 유럽에서는 이 지역을 ‘브라질의 땅(Terra do Brasil)’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이 '아라부탄'이라고 부르는 나무의 붉은 수액이 염료로서 귀중하게 취급되었기에 '브라지레(타오르는 불꽃 같은)'라고 형용했다. 이 브라지레가 현재의 국명 '브라질'의 유래가 되었다.

처음 1500년 포르투갈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상륙했을 때에는 남미 대륙 일부가 아니라 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라크루즈 (진정한 십자가)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마누엘 1세 시대에 "산타크루스(성스러운 십자가)의 땅"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브라질’이라는 이름을 선호했고, 16세기에 브라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콜럼버스 이전기

브라질 인디오

브라질 최초의 주민은 BC 11,000년에 베링 해를 건너서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8000년경 현재 브라질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현재 브라질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잉카의 권위는 여기까지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원시적인 농경을 영위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인디오라고 부른
투피-과라니계 원주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16세기 전반기에는 이러한 원주민들이 해안 지역에만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도래할 때까지는 브라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브라질 원주민은 투피어계 외에 알아크어계, 카리브어계 집단이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투피 어계 원주민이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은 투피어 원주민 말이 브라질의 근본이라고 오해했고, 원주민은 각 지파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그 말을 가르쳤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

브라질을 발견한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1492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에 도달한 후, 이미 발견된 아메리카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식민지화의 위협에 노출됐다. 1500년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한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다른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역사를 걷게 되었다.

초기 브라질에서는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들에 의해 파우 브라질의 수출이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처음에 베라크루즈 섬으로 불렸던 브라질은 16세기에 들어서 브라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549년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초대 브라질 총독으로 토메 데 수자가 사우바도르에 부임했다.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와 연합하자 브라질은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의 공격을 받아 북동부의 일부가 네덜란드 공화국에게 점령당했으나 브라질 인디오 민병대의 저항과 브라질에 상륙한 포르투갈군에 의해 10개월만에 철수하였다.

한편, 피우 브라질이 고갈된 이후 새로운 산업으로 북동부에 마데이라 제도에서 사탕수수가 도입되어 엔제뇨(설탕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력으로 먼저 인디오를 노예로 확보하려했으나 인디오 민병대가 거세게 저항하였고 인디오의 수가 부족해져 생포해온 서부와 앙골라, 모잠비크의 흑인 노예들과 인디오가 연합하여 포르투갈인들을 공격하자 포르투갈 정부와 브라질 식민 정부는 인디오를 대량 학살하였고 근거지를 모조리 불태워버렸다(인디오 피바다).

전 인종의 흑인지도자 즘비

브라질 내륙의 탐험은 상파울루의 반데이란테(노예 사냥 탐험대)에 의해 17세기에 시작되었다. 반데이란테는 각지에 원정하여 현재 도시의 기반이 되는 마을을 많이 세웠지만, 남부와 파라과이까지 원정하여 예수회가 보호되고 있던 과라니 사람을 노예로 잡아갔다. 이런 가운데 힘든 강제노동에 참다못한 흑인 노예 중에는 브라질 오지로 도망쳐 주거지를 형성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주거지들을 '모캄보'나 '킬롬보'라고 불렀고, 이곳에서 아프리카 흑인들뿐만 아니라 인디오 원주민들도 있었다. 이러한 킬림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킬림보 도스 팔마레스는 오늘 날의 알라고아스 주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강가 즘바'에 의해 다스려졌다. 이후 그의 후계자인 '즘비'가 통치를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이 여러 차례 팔마레스를 공략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1695년 유명한 사오 파울로 출신의 도밍고스 조르제 벨호가 가까스로 킬롬보 공략에 성공하여 즘비를 죽이고 이곳을 정복했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골드 러시가 일어나, 브라질의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하여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금광은 18세기 동안에 무려 30만명의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였고,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한편 금광 사업에 몰려든 포르투갈인들의 일부는 금광 일대에 유격을 형성하고 있던 인디오 민병대에게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금빛 학살).

반다 오리엔탈을 둘러싼 스페인과 충돌 후 18세기 말에는 계몽주의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프랑스 혁명미국 독립의 영향을 받아 1789년 포르투갈에서 식민지의 주요 인물인 총독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모였던 포르투갈 식민 의회를 폭파하여 모두 죽이려고 했던 "미나스의 화약 음모"가 발각되어, 주모자인 치라덴테스가 처형되었다.

이후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아 크리올 백인이나 물라토, 크레올 흑인(크레올로)에 의한 독립 운동이 진행되지만, 식민지 시대에 브라질에 대학이 설립되지 않는 등 지적 환경의 부족은 브라질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일부 지식인의 "음모"에 머물렀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진 "혁명"으로 이저지지는 못했다. 이는 브라질과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 독립의 정체성 차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브라질의 독립

반도 전쟁1807년 장 주노(Jean-Andoche Juno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리우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1851년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1820년 포르투갈을 자유주의적인 입헌군주국으로 변혁하려는 혁명이 일어나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앙 6세가 귀국을 요청했다. 1821년 포르투갈 왕궁은 리스본으로 귀환했지만, 섭정으로 잔류한 브라간사 왕가의 황태자 페드루를 죠제 보나파시오를 대표하는 브라질인 세력이 지지하여, 1822년 9월 7일에 페드루는 황제인 페드루 1세(재위 1823-1831)에 즉위하여 브라질 제국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제정 시대

브라질은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가 분열하는 것과 달리 광대한 브라질 식민지 단일 단위로 새로운 주권 국가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 계층이 독립 후에도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정 시대는 각 지방의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과 공화제를 요구하는 자유주의자의 반란이 일어났다. 1820년대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에서는 적도 연맹의 반란이 일어났고, 최남단의 시스플라티나 주에서는 오리엔탈 주의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 복귀를 요구한 33명의 오리엔탈 주 사람이 잠입하여 시스플라티나 주를 둘러싸고 시스플라티나 전쟁이 발발했다. 시스플라티나 주는 영국의 중재에 의해 1828년에 우루과이 오리엔탈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831년 페드루 1세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황족 청소 운동) 지방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고, 최남단의 히우그란지두술 주에서 가우초가 반란을 일으켜 파라포스 전쟁이 발발했다.

1840년 페드루 2세가 즉위하면서 사태는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며, 1848년 프라이에이라의 반란을 진압한 후, 브라질은 항구적인 안정기가 찾아왔다. 페드루 2세는 영토 야심을 가지고 있던 우루과이, 파라과이에 개입하여 1864년에 파라과이의 시스코 소라노 로페즈 대통령은 브라질에 선전포고하였다. 그러나 카시아스 장군이 이끄는 브라질 제국의 삼국동맹군은 파라과이를 격파했다.

1888년 브라질의 노예를 해방한 《황금법》

한편, 독립 후에도 대농장에 의해 노예제도가 계속 유지되었지만 삼국동맹 전쟁 이후 오귀스트 콩트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은 노예제도를 비판하면서 청년 장교(테넨테)와 노예제도의 폐지와 제정의 폐지를 포함한 입헌 혁명을 전개하여 이에 자극받은 국민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 운동은 1888년에 《황금법 (브라질)》 이 공포되면서 서반구에서 마지막까지 유지되었던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페드루 2세는 노예제도의 폐지로 인해 대농장의 지원도 잃었고, 다음해 1889년 데오도로 다 폰세카 장군의 쿠데타로 인해 제정이 붕괴되었다.

구공화국 시대

1889년에 일어난 공화제 혁명으로 브라질은 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한 후, 1920년대에는 카페 콩 레이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비롯한 테넨테(청년 장교)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 테넨테가 직접 국정운영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1930년대의 정치 상황을 마련하게 했다.

바르가스 시대

1930년 카페 콩 레이치 체제에 대한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나자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1930년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하려 했다. 이에 1932년에 상파울루 주 반 바르가스 세력에 의한 호국 혁명이 발발하였지만 이 반란을 진압한 바르가스는 브라질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7년 바르가스는 이스타두 노부(신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바르가스 시대에 대학의 정비, 국가 주도의 공업화, 민족주의의 추진과 이민자 동화 정책,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이 진행되었다.

1942년 바르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지만, 독재 체제에 대한 불만이 국민과 군 내부에서 강해져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1945년 10월 13일에 시민 혁명으로 실각하였다(브라질의 봄).

좌·우익 대립 시대

1946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된 이후 1950년 브라질은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좌익 대통령인 안토니우 코스타가 다음 해의 대통령 선거에도 당선되어 브라질은 급격히 좌경화 되었다. 이에 바르가스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안토니우 코스타를 사살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나 바르가스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 군부와 브라질의 지방 정부는 우익 국민파와 좌익 공화파로 나뉘어 브라질 내전이 발발하였다. 이후 국민파가 기울고 공화파에 의해 대통령 관저가 포위되자 바르가스는 1954년에 자살하였다.

브라질 내란이 종전된 이후 1956년 취임한 쥬세리노 쿠비세키 대통령은 "50년 발전을 5년에"라는 공약을 내걸고 개발 정책을 추진하여 내륙의 고이아스 주에 새로운 수도 브라질리아를 건설한 후 1960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이 개발 정책으로 발생한 부채가 재정을 압박하여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다.

1961년 취임한 존 베우키오루 마르케스 골라르트 대통령은 이 같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1964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의 쿠데타로 사임하였다.

군사 독재 시대

1964년 쿠데타를 일으킨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은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친미반공 정책과 외국 자본의 도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군정의 시대는 "브라질의 기적"으로 불리며 고도의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 이후 경제 성장은 추락하고, 소득 격차의 증가로 인해 전국의 경찰력이 마비되는 상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각지에서 혁명운동과 도시 게릴라가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외국대사를 납치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친 납치 및 태러 사건이 발생하였다.

1974년 대통령에 취임한 에르네스투 게이세우 장군은 전국민적인 불만이 팽배해지자, 군정의 노선에서 전환하여 1979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주앙 피게이레두는 민정 이관과 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 1985년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탄그레두 네베스가 당선된다.

민정 이후

1985년에 민정 이양을 하고 문민 정권이 부활하였지만, 탄크레두 네베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여 부통령이었던 조제 사르네이가 대통령을 승계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확대로 인해 경제는 악화되었고, 사르네이 정권은 국내에서 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1990년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이 취임하였으나 경제 문제에 대처하지 못해 수많은 부패와 각종 기행을 남기고, 1992년에 탄핵당했다. 이후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쿠가 권한대행으로 대통령직을 승계받아 정권을 연명하였지만 페르난두 아다지 소장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뒤(9·2 군사 반란)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철권 통치를 벌이지만 이미 브랑쿠 군사 독재 시대를 지나치며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있던 군부를 비롯한 경찰 및 국민들에 의해 축출당해 사형 판결을 받고 사형당하였다.

2003년 노동당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경제를 회복하였다. 룰라는 두 번의 연임을 했고, 2010년 10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노동당의 지우마 호세프 국무부 장관이 당선됐다. 호세프는 2011년 1월 1일 대통령에 취임하여 2014년 대선 때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2016년 5월 12일에 대통령의 직무 활동이 정지되었으며, 동년 8월 31일에 탄핵되었다. 이후 미셰우 테메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좌파 정권에서 우파 정권으로 교체되어 2018년 브라질 선거에서 보수당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되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