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연방공화국 / 역사

République ouest-africaine
서아프리카/서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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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단결된 우리들의 나라
서아프리카연방공화국 영토.png
수도바마코(Bamaco) 12° 39' 0" N / 8° 0' 0" W
최대 도시바마코/팀북투/다카르/몬로비아/프리타운
정치
대통령루파페 이디온
총리리아드 네틴
 
인문
공용어프랑스어
국민어프랑스어
인구
2022년 어림약 120680000명

서아프리카 연방 결성 전

서아프리카 일대의 역사 기록이 전해지는 건 프랑스 식민지 시절기록뿐이다.
그마저도 빈약하여 역사는 굉장히 짫다.

식민지 시절 전

식민지 시절 전에 서아프리카에서는 중세시절 제국인 가나제국이 무너지고 말리제국이라는 서아프리카를 호령하던 제국이 있었으나
프랑스군이 들어오고 약간의(?) 전쟁 끝에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들어 졌다고 전해진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서아프리카는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세력도 몇몇 있었지만. 확인이 잘 안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어떤 식민제국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독립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독립에 대한 투표로 진행하였을떄 독립 찬성이 97.8%로 높은 독립 지지율을 보여주며 독립하였다.

식민지 시절 후

프랑스로부터 독립은 하였지만. 프랑스가 남긴 유산은 독립에 대한 보복으로 기반/공장시설 파괴와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짠 국경선은 계속 문제가 되어 현재도 골치아픈 문제 중 하나이다.
서아프리카는 시에라리론의 일명 "다이아몬드 분쟁"으로 전쟁에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대부분 국가도 내전을 겪었다.
풍요 뒤 저주 라고 부른다.

아프리카 민족회의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아프리카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서아프리카에도 아프리카 연합을 세우자는 여론이 생겼고.
아프리카 연합에 서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가입하였다. 이건 후에 영향을 끼친다

아프리카 연합

아프리카 연합때 남아프리카가 중심으로 아프리카 통합을 주장했지만. 남아프리카 독립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피살되고. 콩고에 내전이 번지면서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쇠퇴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혼란

아프리카는 연합의 실패 이후 대규모 민족주의 시위에 시달리게 된다.
아프리카를 하나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아프리카를 분열시키는데 사용된 것이다.
이 일로 말리 연방은 헤체되고. 서아프리카에는 마약 카르텔.종교단체/정부군/반군/사병 등 많은 군사단체가 치고박고 싸우게 되었다.

서아프리카 연방 결성 후

서아프리카 연합의 조짐

아프리카 민족주의로 개판이 나고 있을때.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코트디부아르가 합쳐 서아프리카연합을 만든다.
이 세 나라는 다 난민문제가 심각한 나라였다. 이나라들끼리 난민을 막아보여고 한 것.
난민을 막고. 국경을 다같이 틀어막다 보니까 당연히 서로간의 신뢰가 쌓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하나둘씩 가입했다. 말리와 사이가 좋지 않던 세네갈까지 가입하며 서아프리카 전체를 동맹으로 만들었다. 이것으로 각 국가들은 유럽연합처럼 만들자고 제안하였고. 이것이 국가들의 국민투표로 이어졌다.

서아프리카 연합의 결성

국가들의 국민투표는 모든 국가에서 모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것은 아프리카의 오랜 내전/전쟁/질병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국경선은 없어졌고 연방헌법이 통과되었고.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해 밀리의 수도였던 바마코를 수도로 삼고
서아프리카 연방공화국을 건국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민들이여! 아프리카는 영원하다!“ -취임식에서. 루파페 이디온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