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사회민주당

옛 소련 사민당기.png
1991 ~ 2002
소련 사회민주당.png
2002 ~ 현재

러시아어 :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영어 : Social Democratic Party of Soviet Union
한국어 : 소련 사회민주당

개요

1991년, 신연방조약에 따라 구 공산당에서 고르바초프를 따르는 중도좌파와 우파계열이 탈당하여 구성한 신소련의 제1정당이자 집권여당이다.

역사

고르바초프와 함께

1991년 9월, 구소련 공산당은 신연방조약을 기점으로 야당이 되었고 이에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개혁파(중도좌파)를 결집시켜 소련 사회민주당 을 창당했다. 사회민주당 의원들 대부분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동의했고 극히 일부만 반대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옐친의 부상은 위협으로 다가왔으나 옐친의 오판으로 오히려 사회민주당이 더 위세를 가지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옐친의 쿠데타(스몰렌스크 쿠데타를 지칭한다.[1])에 따라 고르바초프가 재집권하면서 사회민주당의 인기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계속해서 정점을 찍었다.

집권당을 넘겨주다

1997년에는 조국인민당 소속의 블라디미르 푸틴의 당선으로 잠시 집권여당의 자리를 내려와 제1야당의 역할을 해내었다. 다소 지지하는 의견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푸틴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최고회의의장 이반 골로포프의 소련 복권 운동[2]이 당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는 요인이 된다.

결국 골로포프는 최고회의의장에서 파면된 직후, 소련 사회민주당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작성되어 그대로 퇴출당한다. [3]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선택이 다시 한번 당을 살린 셈이다. [4]

하지만 모스크바 조약기구 창설 때는 찬성 표를 던졌지만 뒤이은 EU 합류에는 실망하며 강도높은 비판을 가했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희석없이 던진 건 아니었고 몇몇 의원들은 장단점을 언급하며 비판했다. [5]

현재

2007년 8월, 이반 네르도프스키 대통령의 당선으로 소련 사회민주당이 다시 집권여당이 되면서 사실상의 일당 우위 정당제를 확립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불만이 가지고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국회의원들도 수긍했다.

거기에 이반 네르도프스키 대통령의 정책들 중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 재분배, 재민영화 정책은 가장 혁신적인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사회민주당은 네르도프스키 대통령 집권기 동안 지지율 95%(!)를 달성하는 등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니콜라이 멜라모비치(2012~2017)와 예카테리나 일린 집권기(2018~현재)에는 지지율 88%를 기록하며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중이다.

당 구성

당대표 : 이반 제나다비치(Иван Зенадавчи)
원내대표 : 나데즈다 울랴시치(Надежда Улясичи)
당중앙회의의장 : 소냐 할로고비치(Соня Халоговчи)
당정책회의의장 : 빅토르 탈라요비치(Витор Талаховчи)

역대 대통령

1. 미하일 고르바초프(제헌정부, 1991~1993)
2. 미하일 고르바초프(제3차정부, 1993~1997)
3. 이반 네르도프스키(제6차정부, 2007~2012)
4. 니콜라이 멜라모비치(제7차정부, 2012~2018)
5. 예카테리나 일린(제8차정부, 2018~)

역대 최고회의의장

1. 미하일 조르보프(Михал Жорбов, 1991~1997)
2. 안드레이 트아페로프(Андрей Тьаперов, 1997~2002)
3. 파벨 셀랴코프(Павел Селясов, 2012~2018)


  1. 당시 대통령 옐친은 투표가 부결되자 자신을 따르던 급진주의 세력을 끌어모아 스몰렌스크를 점거하고 러시아 공화국을 세웠지만 스몰렌스크 내의 시민군(시민, 경관 연합전선)과 신소련 정부군의 진압으로 몰락한다.(단, 러시아 공화국은 국가 취급도 아니었고, 그저 반역을 일으킨 반정부단체일 뿐이었다.
  2. 말 그대로, 구소련을 복구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현실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를 주장하며 당시만 하더라도 믿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다들 제정신 아닌 사람으로 취급했지만 그 수만 3만여명에 달했다.
  3. 당시 당대표 게오르기 말라치소프는 "이 자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한때 우리의 동지였다. 이렇게 쉽게 내비칠 수 있는 것이라면..." 하고 망설였지만 그의 친구인 니키타 다카토프는 "그 인간은 절대로 있어선 안돼! 오히려 우리의 분열을 자초할 반동분자라고! " 라며 퇴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 후 많은 당원들이 그의 퇴출을 요청했고 말라치소프는 아예 블랙리스트로 올려 다신 정치판에 못 돌아오게 막아버리는 철저한 배제를 선택한다.
  4. 첫번째 선택은 신연방조약 체결이었다.
  5. 대표적인 의견으로 소련 사회민주당 소속의 인민회의의원 세르게이 졸라오프가 있다. 그가 말하길, " 유럽연합과의 동맹은 우리 연방의 영구한 문제를 해결한 중대한 결정이다. 하지만 이건 때로 서유럽의 열강들에게 우리가 고개를 숙였다는 점으로 보면 별로 탐탁치 않은 것에 나는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 라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