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단국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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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顺社会主义联邦
대순사회주의연방
SHN flag.png SHN seal.png
국기 국장
표어全世界无产者,联合起来 !
국가인터내셔널가
SHN map.png
수도시안
최대 도시베이핑
정치
총서기시진핑
국무원총리리커창
역사
건국1924년 10월 1일
 • 해방1945년 8월 15일
 •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지리
면적? (?)
시간대UTC (UTC+8, +7)
DST없음
인문
공용어보통화
인구
2016년 어림521,928,192명
2015년 조사409,221,572명 (2위)
경제
GDP(PPP)2016년 어림값
 • 전체3조 6092억 $ (7위)
 • 일인당7129$ (120위)
GDP(명목)2016년 어림값
 • 전체2조 7290억$ (6위)
통화순 위안 (SHY) (화폐 단위:¥}
기타
ISO 3166-1156, SH, SHN
도메인.sh / .大顺
국제 전화+86

대순사회주의연방(보통화 : 大顺社会主义联邦, 병음 : Dàshùn Shèhuìzhǔyì Liánbāng, 영어 : Socialist Federation of Shun)은 동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공화국이다. 줄여서 (보통화 : 顺, 병음 : Shùn)이라고 한다. 수도는 시안(西安)이고, 최대 도시는 베이핑(北平)이다. 제2차 한·순전쟁 직후인 1924년 펑위샹을 수반으로 하여 건국되었고, 지금까지 대순 공산당의 일당제로 통치되고 있다.

역사

명순교체기

명의 쇠퇴

명에서는 연왕 주체(후의 영락제)가 대결 끝에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었다(정난의 변). 황제가 교체되어 정국이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했다. 한편, 서역에서는 티무르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대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 제국과 명은 모두 국력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티무르는 숙원이었던 동정(東征)을 실행했다. 기병 20만여 명에 보병 20만여 명을 더하여 40만의 대군세를 이끌고 명을 공격했다. 시안에서 명의 지방군을 격파하고 뤄양을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를 보였다. 다만 영락제가 이끄는 중앙군이 정저우에서 티무르 군과 싸워 패퇴시켰다. 패전 후 티무르가 사망하여 티무르 제국에는 왕위 상속을 둘러싼 내분이 일어났다.

티무르 군을 방어하던 중, 호일천 등이 항저우에서 건문제를 옹립하여 영락제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호일천의 난). 영락제는 가까스로 진압에 성공했으나 많은 국력이 소비되었고 전쟁과 맞물려 엄청난 피해로 이어졌다.

이후 명은 쇠퇴하게 되었다. 영락제 연간에는 명의 정치가 안정되었으나 영락제 사후 계속하여 암군의 실정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 정부는 지방 세력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관리들의 부패가 심화했다. 게다가 16세기에 약 100여 년에 걸쳐 자연재해가 속출했다. 따라서 백성들의 고통은 점증했다.

민란과 군웅 할거

명이 쇠퇴하자 각지에서는 군벌들이 일어나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다. 한편 전란이 지속되면서 농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고 이에 많은 농민들은 전답을 버리고 도적이 되었다. 일부 농민들은 반란을 통해 학정을 일삼는 관가나 군벌에 맞서기도 했다. 시간의 진행에 따라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명의 조정이 국가에의 통제력을 잃어 군웅할거의 시대로 치달았다.

대륙이 혼란해지자, 본래 중원 왕조의 통제 하에 있었던 이민족들은 제도권을 이탈하여 저마다의 나라를 세웠다. 이 시기에 남만 제민족(諸民族)이 독립했으며, 만주 지역에 살고 있었던 여진족이 독자적인 세력권을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이전의 티무르 동정(東征) 이후 서역의 이슬람 문화권과 통교하게 된 회교도들이 정권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요동에는 이홍경이 세운 이씨 군벌이 들어섰다가 이후 원숭환의 세력으로 교체되었다. 이밖에도 형초(邢楚) 군벌, 강동 군벌, 서촉 군벌, 관중 군벌을 비롯한 여러 군벌이 난립했다. 이들 군벌은 지방을 완전히 통제하여 실질적으로 반독립상태였으나, 명목적으로는 명 중앙 조정의 신임을 받았으며, 명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지 않았다.

순 왕조의 건국

민란으로 성장한 이자성은 군벌들을 제압한 뒤 서안에서 순(順)을 건국하여 황제를 칭했다. 이어 북평으로 진공하여 명을 멸망시켰다. 이때 산해관에 있었던 오삼계 군이 순에 투항했다. 한편 장헌충은 사천 지역에서 서(西)를 세웠는데, 장헌충이 학살을 일삼아 세력이 약해져 있었다. 이자성은 여세를 몰아 서를 격파하고 대륙을 통일했다.

황하 유역 4개국의 분리

이자성은 국초에 민심을 얻기 위해 면세 정책을 추진했다. 대신 재정 수입을 부유층과 신사층에 대한 약탈에 의존했다. 황해안에 접한 지역의 주민들은 전란의 영향에서 안전했고, 산업이 발달하여 부유했기 때문에 이자성의 약탈에 보다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이들이 반발하여 ·오월··이 순으로부터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대순사회주의연방의 수립

순 왕조는 한국 등 열강에게 수탈 당하면서 국력이 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지에서 군벌이 출현하여 혼란기가 지속되었다. 펑위샹은 순 전토를 평정하고 1924년에 마지막 황제인 숭덕제를 폐위하였다. 그리고, 시안에 도읍하여 대순 사회주의 연방을 수립하였다. [1]

펑위샹 시대

펑위샹은 민생을 구제하는 것을 내세워 다음과 같은 개혁안을 수립하였고, 그렇게 집행하였다. 이와 같은 개혁으로 펑위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 전쟁지역의 이재민을 잘 구휼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할 것.
  • 조세행정을 정돈하고 불법적인 징수를 금지할 것.
  • 호구조사 등을 통해 토비의 근원을 제거할 것.
  • 탐관오리 등을 체포하여 일반 국민을 안심시킬 것.
  • 공장을 건설해 유민을 수용할 것.
  • 수로를 정돈하여 교통을 편리하게 할 것.
  • 의무교육을 실시하여 계몽에 나설 것.
  • 아편, 도박, 매춘을 엄격히 금지할 것.
  • 변발과 전족 등의 악습을 없앨 것.

그러나 펑위샹은 승려와 도사들을 쫓아내고 훼불행위를 저질렀으며 절과 사당을 학교로 개조하여 승려와 도사들의 분노를 샀다.

마오쩌둥 시대

대약진 운동

마오쩌둥 시대의 순나라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추진하면서 인민공사(人民公社)와 전국적인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을 실시했다. 그러나 자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진행된 급진적이고 무모한 정책 운용은, 농촌부의 황폐화로 인해 식량난과 대량의 아사자를 발생시키며 결국 실패로 끝났다.

문화 대혁명

그 후 경제를 재건할 방법으로 마오쩌둥과 류샤오치가 대립하였고, 마오쩌둥은 권력 탈환을 위해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켰다. 혁명 중 마오쩌둥으로부터 “반혁명파”라고 규정된 많은 사람이 탄압당하거나 학살당하여, 국내는 일시 내란 상태가 되었다. 또 불상 등의 중국 각지의 귀중한 전통 문화재도 “반혁명”적인 존재로서 파괴되었다. 문화 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죽음과 함께 종결되었고, 일단 순궈펑(順國鋒)이 마오쩌둥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덩샤오핑(鄧小平)이 순의 실권을 잡았다.

간체자 보급

1930년대까지만 해도 순나라의 문맹률은 80%에 달하였다. 즉 5명 중 글을 아는 사람은 1명밖에 없었다. 이에 마오쩌둥은 순의 문맹률이 높은 이유를 어려운 한자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한자를 간략화한 간체자를 만들어 보급하였다.

덩샤오핑 시대와 현재

덩샤오핑 시대의 순나라는 대순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를 견지함과 동시에,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등 경제 개방 정책을 실시하여 순의 현대화를 진행했다. 실제로 덩샤오핑은 프랑스 유학 시절 르노자동차에서 근무함으로써 서유럽의 시장 경제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 결과 순나라는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만큼 경제가 급발전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으로 빈부 격차의 확대와 환경 파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순은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위협하는 활동이나 순나라의 분열을 촉진할 수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1989년 톈안먼 사건 진압과 2005년 반분열국가법 성립 등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2010년에는 순나라의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정치

3권 분립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의 정치와 달리 전국인민대표회의가 사법과 행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민주집중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대순공산당에 의한 사실상의 일당독재 체제이다. 이외에 8개의 우당(友黨)이 존재하지만 대순공산당의 지도를 따르고 있으므로 사실상 정치적인 영향력을 거의 갖지 못한다.

행정구역

민주화 요구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민주화 요구도 확대되어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대순사회주의연방 국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거의 없지만, 국외에서는 재미 순인 매체인 대기원시보가 대순공산당을 비판하는 사설 ‘구평공산당(九評共産黨)’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2010년 대순사회주의연방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외교 관계

  1. 풍옥상은 교분이 있었던 리다자오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모스크바에 유학한 후 사회주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