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아왕국/총리

개요

아나톨리아 왕국의 총리. 아나톨리아 왕국의 정치수반이자 정치적 실권을 지닌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다. 현재 총리는 트로이 네스트로.

임명

총선을 통해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총리의 관저는 대관저(the Great house)로 수도 케사리아에 위치하고 있다.

임기

총리의 임기는 5년이며, 한 번 재선할 수 있어 최대 임기는 10년이다. 다만, 헌법에는 총리의 임기만 명시했을 뿐, 연임의 제한은 두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의회는 초대 총리였던 안드레아스 필리모스의 독재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안드레아스는 한 번의 연임 이후 임기를 10년 채운 후 정계에서 은퇴하는데, 이때 왕실과 의회는 안드레아스에게 일대 귀족 중 가장 명예로운 카이사르를 그에게 수여해 그의 정계 진출을 막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나톨리아왕국/신분제도 참조.

역대 총리들

아나톨리아 왕국의 총리는 다음과 같다.

1대~2대 안드레아스 필리모스(자유당)

안드레아스 필리모스는 아나톨리아 독립을 이끈 건국의 아버지로 왕국의 초대 총리다. 그는 아나톨리아 독립 전쟁의 사령관으로 오스만 제국과 무스타피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이루어 냈다. 왕국 건국 이후에는 무스타피의 정책을 이어가 칼리프제 폐지를 못 박았다. 그는 살아 생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을 존경했고, 그의 뒤를 따르고자 했다. 이에 그는 한 번의 재선 이후 임기를 10년을 채운 다음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의 은퇴에 따라 의회와 왕실은 그에게 최고 영예 일대 귀족직인 카이사르를 수여했다.

3대 콘스탄티노스 페판키스(자유당)

콘스탄티노스는 안드레아스 정부의 부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자신의 정치적 숙적 이안니스를 제치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에 당선되었다. 이때부터 아나톨리아 법원의 중립성을 지키는 고유의 전통이 시작되었다. 다만, 임기 내내 이안니스의 최측근이었던 요르기오스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결국 재임에는 성공하지 못한다.

4대 요르기오스 오나우스(민주당)

요르기오스는 이안나스의 참모로 활동한 인물로 최초 민주당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탁월한 정치적 감각으로 4대 총리로 당선되었다. 반-이슬람, 반-투르크 정서를 완화시킨 총리다. 다만 이것은 정치적인 자충수가 되어서 자당 내에 의원들이 명령에 불복종 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재선을 원했으나, 국민 투표에서 패배하여 정계에서 은퇴한다.

5대 디미트리우스 페레누스(자유당)

디미트리우스는 필리모스 정부의 재무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총리로 당선된 직후 탁월한 외교 감각으로 세계 2차대전에서 연합국으로 참전하였다. 이후 연합국이 승리하자 예전부터 논란거리였던 키프로스 섬의 병합 문제를 종결시켰다. 고령의 나이와 더불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아 재임 의사를 밝히지 않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6대 아르테무스 아르구스(자유당)

아르테무스는 페레누스 정부에서 외교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디미트리우스는 고령인지라 재선 의사를 밝히지 않자 아르테무스가 자유당 대표가 되었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에 당선되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전후 처리를 담당하였고, 경제 개혁을 했으나 참모진의 무능함으로 실패하였다.

7대 카이로스 아폴루(민주당)

카이로스는 민주당의 당대표로 오나우스 정부 때에 최측근 참모진이었다. 아르테무스 정부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복지 확충과 국방비를 증대시켰다. 임기 후반까지 지지율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의 나이는 90을 바라봤기에 재임하지 않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8대 엑소두스 헤론(민주당)

엑소두스는 아폴루 정부의 외교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지나친 복지 정책과 더불어 과도한 정부의 시장 경제 개입으로 중도층의 지탄을 받았다. 재임을 원했으나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패배에 정계에서 은퇴한다.

9대 테오필로스 필레모누스(자유당)

테오필로스는 부르사 시장을 지낸 인물이다. 압도적으로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에 당선되었다. 임기 초반에는 교육 제도를 개혁하는데 힘을 들였다. 다만, 국민들이 진정 원했던 경제 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재선에는 실패했다. 이때부터 자유당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고, 암흑기에 들어간다.

10대 바실에이오스 제피르(민주당)

바실에이오스는 아폴루 정부의 재무부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총선이 있기전,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10대 총리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총리에 당선되었다. 그는 우선 국민들이 원했던 경제개혁을 실시했다. 주로 과도한 복지 제도를 개편했고, 세금을 줄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정책은 같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회색주의'라고 비판을 들었다. 그는 강경파였는데, 종종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막말을 해 정치적인 콘크리트층은 확보하였으나 중도층을 확보하지 못해 재선에는 실패했다.

11대~12대 토마스 마그누스(민주당)

토마스 마그누스는 민주당의 중도파로 민주당의 반-제피르파와 중도 세력에 힘입어 당대표가 되었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로 임명되었다. 제피르의 경제 개혁을 가져와 완성했다. 오일 쇼크가 일어나자 중동을 지지했다.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하여 초대 총리인 안드레아스 필리모스 이후로 재임에 성공한 총리라는 영광의 타이틀을 얻었으나, 12대 총선 비리 의혹과 자유당 의원 도청 의혹에 관련한 마그누스 게이트가 사실임이 밝혀지면서 아나톨리아 왕국 최초로 탄핵 당했다. 이로 인해 왕실법이 개정되어 카이사르나 쿠로팔라테스는 재선 뿐만 아니라 임기를 10년 채워야 임명될 수 있다는 성문법이 생겼다.

13대 티투스 제노포스(민주당)

티투스 제노포스는 마그누스 정부의 부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12대 총리 토마스 마그누스가 탄핵당하자, 13대 총리로 임명되었다. 임기 내내 마그누스 게이트와 관련하여 자유당의 압박을 견뎌야 했고, 국민들의 질타를 참아야 했다. 이후 모든 죄목이 무죄임이 밝혀지고 민주당 당대표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4대~15대 테오도라 치프라누스(자유당)

테오도라는 토마스 마그누스 탄핵 직후 급부상한 자유당계 인물로 당대표로 선출된 인물이다. 그녀는 13대 총리 총선에서 자유당이 압승함에 따라 총리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아나톨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치프라누스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법인세와 소득세를 파격적으로 감면했고 기업활동규제를 완화했으며 정부의 지출을 감축했다. 다만, 이때부터 빈부격차 문제가 심화되었다. 재선 이후에는 소련이 붕괴하자 독립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통합했다.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 국영석유기업인 아제란 컴퍼니를 세웠다. 임기를 마치고 그녀는 이러한 공로로 카이사리사를 수여받았다. 아나톨리아 왕국에서는 우파, 중산층, 고소득층에게는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나 좌파 세력들 및 노동자, 연합 왕국들의 국민들에게는 평가가 좋지 못하다. 하지만 자유당의 암흑기를 끝내고 당의 중흥을 이루어낸 여인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16대~17대 알렉산드로스 페레누스(자유당)

알렉산드로스 페레누스는 치프라누스 정부의 외교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또 5대 총리 디미트리우스 페레누스와 친척 관계다. 테오도라의 업적과 중산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힘입어 총리로 당선되었다. 임기 동안에는 치프라누스의 경제 정책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자 복지 정책을 펼쳐 중산층의 민심을 잃었다. 간신히 16대 총리 재선에 성공하나 임기 말기에는 자유당 내에서 스캔들이 터져 나왔고, 아시아경제조약과 관련하여 자당 내에서 반란 표가 쏟아져나와 조약 비준이 부인되는 굴욕까지 당하게 된다. 임기 이후에는 쿠로팔라테스를 수여받으면서 정계에서 은퇴했다.

18대~19대 야니스 트리폰(민주당)

야니스 트리폰은 앙카라 시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되었고, 17대 총리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총리가 된 인물이다. 트리폰은 치프라누스 정부때부터 이어진 소득 불균형을 규정했고, 고소득층의 세금을 적당히 늘려 건강 보험을 개혁했다. 또 자국내 친-이슬람적 정책을 펼쳤으며 모든 정치인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슬람계 여성의 인권 향상에 힘썼다. 그러나 쿠르드족 내란을 신속하게 제압하지 못 했으며, 중동 국가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야기했다. 임기 이후에는 쿠로팔라테스를 수여받으면서 정계에서 은퇴했다. 역대 총리 중에서 임기 후반까지 지지율이 높았던 총리이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총리이다.

20대~21대 트로이 네스토르(자유당)

트로이 네스토르는 수도 케사리아의 시장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자유당 의원을 거쳐 당대표로 선출된 인물로, 19대 총리 총선에서 자유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면서 총리가 된 인물이다. 임기 초반에는 국가 사업을 펼치며 특히 석유에 의존한 아제르바이잔의 산업 구조를 개편했다. 재선에 성공하면서 교육 제도 개편과 함께 국방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