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공동세계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
Flag of Yugoslavia (1946-1992).svgEmblem of Yugoslavia (1963–1992).svg
국기국장
Yugoslavia 1956-1990.svg
표어Братство и jединство
Bratstvo i jedinstvo
(우애와 단결)
국가슬라브족이여
위치발칸 반도
수도베오그라드
정치체제일당제, 사회주의 연방제
대통령알렉산드르 부치치
서기장-
내각총리-
언어세르보크로아트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종교국가 무신론
세르비아 정교회,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유고슬라브인
주요사건1943년 건국
통화유고슬라비아 디나르

개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세르보크로아트어: Социјалистичка Федеративна Република Југославија / Socijalističk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a 소치얄리스티치카 페데라티브나 레푸블리카 유고슬라비야[*]), 약칭 유고슬라비아(세르보크로아트어: Југославија / Jugoslavija 유고슬라비야[*])는 남유럽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역사

1918년 1차 대전이 끝난 후 세르비아 왕국의 주도로 남슬라브 민족의 연합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건국된다. (1929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 이 왕국은 처음에는 여러 민족들이 동등한 지위임을 표방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차 세르비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한 갈등이 일어나던 와중인 1941년에 추축국의 침략으로 붕괴되고 만다.

추축국의 점령 하에 놓인 유고슬라비아에서는 크게 2개의 저항조직이 형성되었는데, 하나는 왕당파인 체트니크였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성향의 티토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었다. 체트니크는 독일군에 대한 공격보다는 우스타샤나 빨치산 공격에 집중하는 행태를 보여 연합군에게 버림받았고, 대신 선택받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종전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재건한다.

냉전 시기 유고슬라비아는 동구권에 속했지만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넘나들며 어느 국가와도 척지지 않는 실용주의 외교를 펼쳤으며, 타 공산 국가와 구분되는 탈권위주의 정책을 폈다. 또한 유고 내에 있던 여러 민족들을 유고슬라브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통합하려 했다.
자신이 죽은 후 민족주의가 준동할 것을 우려한 티토는 몬테네그로 출신의 비도예 자코비치를 후계로 육성했고, 덕분에 티토 사후 그가 정권을 이어받아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89년 소련의 개혁으로 촉발된 동유럽 혁명의 물결은 유고슬라비아도 피해갈 수 없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베오그라드 광장에는 매일 시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자코비치는 다민족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내분의 우려가 있다며 이를 거부했고, 대신 대통령을 공산동맹이 추천한 여러명의 후보 중 국민의 직선으로 뽑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물론 대통령은 실권이 거의 없는 명목상의 국가원수였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위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이고 시위를 계속 이어나가는 군중을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면서 민주화의 움직임은 와해되었다.
이후 더이상 큰 반발의 목소리 없이 일당제 하의 혼합 경제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치

행정구역

사회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