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반정

헌종반정
憲宗反正
반정 시작의 모습.jpg
시기
2023년 11월 29일 ~ 2023년 11월 30일
장소
조선 한성부 경복궁 및 인근
원인
판의금부사 임명 및 폐세자 모의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갈등
주요 인물
조선 왕실(진압군)
• 국왕 영조
• 왕세자빈 한씨
반정 세력(반란군)
• 영의정 윤원형
왕세자 이산
• 왕세손 이향
• 휘정공주
• 소용 고씨
• 이조판서 이현식
• 병조판서 황희
• 공조판서 피로연
• 대제학 한금청
• 도승지 김대건
• 집의 이영석
• 이조참판 최명일
• 상온 박헌영
• 무당 피스톨
결과
영조 폐위 및 헌종 즉위
영향
영의정 윤원형의 권력 확보, 붕당정치 형성으로 노론소론의 등장, 천순환국의 발발

개요

헌종반정(憲宗反正)은 2023년 11월 29일(후인 95일) 당시 국왕 영조와 영의정 윤원형이 판의금부사 임명 문제를 두고, 폐세자 모의 사건의 2차 갈등이 발생하여 영의정 윤원형이 왕족, 문무관 대신들을 포섭하여 국왕 영조를 폐위시키고 왕세자인 헌종을 왕위에 옹립한 사건이다.

내부에서 왕위를 찬탈한 반정은 2016년 왕위계승전쟁 이후, 7년만에 발생한 것이며 근현대에선 최초의 반정이다.

배경

신권파가 반정을 일으킨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영의정 윤원형은 피스톨을 판의금부사로 임명하고자 하였으나 영조가 반대하고 과거시험을 보게하라며 경복궁에서 갈등이 있었다.

신권파에서도 여러 의견들이 오갔고, 영조와 타협하는것과 반정을 일으키는 의견으로 좁혀졌다.
윤원형은 영조를 찾아가 타협을 요구했으나 영조는 이를 거부하였다.

경과

11월 29일(반정 발발)

• 반정이 일어나기전 대조선국 마크 서버에서 세자를 감금하고 윤원형이 반란을 꾀하고있다는 소식이 경복궁에 들려왔다.
• 결국 영의정 윤원형은 폐세자 모의 사건에서 생겨난 신권파와 자신에 여러 측근들과 함께 반정을 일으켰다.
• 23시 35분경 한성에서 반정군들이 포착됐고, 소리를 지르며 경복궁으로 향하는것이 포착됐다.
• 병조판서 황희도 반정군에 합류했다.
• 23시 44분경 반정군과 그들의 수장 윤원형이 경복궁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11월 30일(반정 종료)

• 0시 52분경 윤원형은 경복궁에서 영조폐위시키고
세자 헌종을 옹립하였다.

결과

이 사건으로 주상이었던 영조폐위되어 상왕이 되었다.

신권파

신권파를 윤원형과 함께 권위를 회복했고 폐세자 모의 사건을 씻어낼수 있었다. 그리고 신권파에서도 어떠한 의견이 있었는지도 알수있었다. 또한 조정에서의 신권파 진출과 신권파의
권한이 확대됐다.
하지만 이후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신권파는 노론
소론으로 나누어졌다.

왕당파(이역)

이번 반정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영조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폐위되고야 말았다. 또한 붕당정치에서 노론소론만 있을뿐 왕당파 세력은 붕당에서 조차 없어졌다.

반정이 실패했다면?

반정이 실패했다면 영의정 윤원형은 영의정에서 삭탈관직 됐을것이다. 또한 폐세자 모의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그런지 신권파도 몰락하고 숙청될듯하다.
왕당파를 보자면 왕당파와 영조의 권위는 상승할것이다.

입장

신권파

• 윤원형은 영조에게 기회를 드리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반정을 일으키겠다고 반정군들에게 말하였다.
• 반정시작전 윤원형은 주상이었던 영조가 반란 일으켜봐라 라며
신권파에 요구사항을 거부하였다.
• 반정이 시작하자 윤원형은 수도 한양에서 반정군들에게
"으아아아아아"를 외치라며 말하였다.

왕당파

• 반정이 일어나기전 세자는 마크 서버에서 감금당하자 영의정 윤원형이 반란을 꾀하고있다고 전했다.
• 경복궁에서 반정군들이 들어오자 주상 이역은
해봤자 뭐하겠냐며 반정군들을 비난했다.[1]
영조가 폐위된후 이역이 직접 반역의 무리가 하는 말을 왜 들어야하냐며 이리 되어도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관련 어록

"반역자 무리가 하는말을 왜 들어야하는지, 이리 됬어도 난 후회하지 않는다."
— 영조
"백성들에게 편안함이 되길"
— 이현식
"으아아아아아아!"
— 반정군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 이현식
  1. 영조는 폐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