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조선 시대 에 나온 대표적인 예언서중에 하나이다.

내용

정감록은 조선초기부터 등장한 대표적 예언서로 정몽주의 조상 정감과 이성계의 조상인 이심, 이연 형제 세 사람의 대화록형태로 씌여있다. 물론 실제 대화내용이 아닌 누군가가 지어낸 가상의 대화 내용으로 실제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금서의 특성상 입소문과 몰래 베껴쓴 필사본으로 전해지다보니 수 십가지의 이종(異種)이 존재하고 있다.

대한국(한정모) 에서

<재앙이 덮쳤을 때, 십승지로 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십승지는 풍기 금계, 예천 금당, 안동 화곡, 개령 용궁, 가야, 마곡, 목천, 진천, 봉화, 두류산, 태백이다>

실제로 정감록의 예언에 따라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위에 열거한 지역에선 전쟁기간 내내 총소리 한 번 들어보적 없고 군인 한 번 본 적없다는 증언들이 적지않다. 한국전쟁때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남한 대부분이 북한군에 점령된 사실이나 십승지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에 있다는 건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감록은 재앙이 왔을 때 한반도의 서북지방, 수도권,강원도를 피하고 계룡산이나 경상도 지방으로 피하라고 코치하고 있다.

<정씨 진인(정도령)이 올 때가 되면 계룡산 아래 초포(草浦)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들락거린다>

초포는 계룡산아래 작은 포구로 토사가 쌓여 배의 통행이 불가능했던 곳이다. 하지만 1990년 금강하구 제방공사로 유량이 증가해 이젠 작은 배의 통행이 가능해졌다. 또한 공주시 계룡면의 <무너미고개>만 정리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초포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정도령이 올 시기가 되가는 건가?

<곤륜산의 내맥이 백두산에 이르고, 그 원기가 평양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은 이미 천년의 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개성)으로 옮겨졌다. 송악이 쇠하고 천운이 막히면 다시 한양으로 넘어간다. 이후 도읍은 계룡산, 가야산으로 옮겨간다>

평양은 고조선의 활동무대, 개성은 한때 고려의 수도였다. 조선이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역대 왕조의 수도는 정감록이 예언한대로 계속 남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감록에서 다음 도읍지로 지목한 계룡시는 <신 행정수도 건설 추진위원회>가 고려했던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 4곳 중 하나였다. 우연의 일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