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대한민국 민의원의원 선거

대한민국 (한손)
제5대 대한민국 민의원의원 선거


← 1958년
1960년 7월 29일
 

1962년 →


선출의석: 233
과반의석: 117
투표율 84.3% (감소3.5%)
  제1당 제2당 제3당
  장면 메인.png 서상일.png 조경규.png
지도자 장면
대표최고위원
서상일
대표총무위원
조경규
대표전권위원
정당 민주당 사회대중당 공화당
지도자 취임 1959년
11월 27일
1960년
5월 5일
1960년
6월 15일
지도자 선거구 서울 용산구 갑 경북 대구시 을 경남 함안군
(낙선)
이전 선거 결과 79석 신당 126석
선거 전 의석수 68석 0석 48석
획득한 의석수 175석 4석 2석
의석 증감 증가 107 증가 4 감소 46
득표수 3,786,304 541,021 249,960
득표율 41.7% 6% 2.8%
득표율 증감 증가 7.7%p 증가 6%p 감소 39.3%p


  제4당 제5당 제6당
  전진한.png 신 김준연.png 인물 미상.png
지도자 전진한 김준연 인물 미상
정당 한국사회당 통일당 헌정동지회
지도자 취임 1960년
5월 21일
1957년
11월 18일
-
지도자 선거구 서울 성동구 갑
(낙선)
전남 영암군
-
이전 선거 결과 신당 신당 신당
선거 전 의석수 0석 1석 38석
획득한 의석수 1석 1석 1석
의석 증감 증가 1 보합 감소 37
득표수 57,965 17,293 -
득표율 0.6% 0.2% -%
득표율 증감 증가 0.6%p 감소 0.4%p -

1960 신 민원선.png

제5대 민의원 당파별 의석 분포

선거전 국무총리

허정
무소속

국무총리 당선자

장면
민주당

제5대 대한민국 민의원의원 선거는 1960년 4.19 혁명의 여파로 붕괴된 제1공화국의 이승만 정부를 대신하여 제2공화국 체제 하의 의원내각제 정부를 구성하고자 실시된 대한민국의 민의원의원 선거였다.

선거 제도 및 총선 정보

  • 총선 별칭 : 혁명 총선
  • 내각 : 허정 내각
  • 임기 종료일 : 1960년 7월 28일(목)
  • 투개표일 : 1960년 7월 29일(금)
  • 국무총리 지명일 : 1962년 8월 17일(수)
  • 조각일 : 1962년 8월 19일(금)
  • 선거 방식 : 소선거구제
  • 선출 의석 : 소선거구 233석
  • 선거권 :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 피선거권 : 만 2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배경

1960년 3월 15일에 진행된 제4대 정·부통령선거가 관제 부정선거로 발각되면서 직후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는 4.19 혁명으로 이어져 지난날 온갖 부정을 일삼은 공화당 정부를 실각시키기에 이르렀고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사의를 표명한 채 의원내각제 개헌을 수용하였다. 그렇게 하루 뒤 이승만이 하야하자 수석국무위원 허정 외무장관 중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수립된다.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은 1960년 5월 3일 '5개항의 당면한 시정방침'을 공표, 공화당 정권의 와해로 무너진 국가의 행정력을 수복하고 정치개혁의 이행과 3.15 부정선거 관계자 처벌을 실시하며 체제 개편의 과도기에 정부가 수행해야 할 각종 국정 기조를 정립하였다. 개혁은 속전속결로 진척되어 권한대행 체제 출범 46일 만에 의원내각제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마련되었고 해당 신헌법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국회의 지지를 얻으며 1960년 6월 15일을 기해 공포됐다. 이로써 대통령제에 기반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은 붕괴, 내각책임제 중심의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성립하였다. 신헌법의 효력이 발휘됨에 따라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일시적인 과도내각으로 바뀌어 새 헌법에 따른 조기 총선을 위한 선거관리 임무에 착수하였다.

이후 중앙선거위원회가 7월 29일로 투개표일을 결정하면서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었는데 기존에 민주당과 함께 양당제 구도를 만들었던 공화당은 부정선거의 여파로 당세가 대거 흩어진 상태였고 그마저도 일부 소속 의원들이 공화당엔 가망이 없다 판단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하였다. 이즈음 결성된 헌정동지회가 이런 탈당파들의 모임이었다. 결국 공화당은 선거기간 내내 민심의 향방을 뒤바꾸지 못했다. 한편 민주당은 당내 신-구파 간 공천 갈등이 일어나 신파 지도부의 공천에 불복한 민주당 구파의 낙천 후보들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혼란이 있었지만 이는 딱히 민주당 절대우위 구도로 재편된 선거 양상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반면, 혁신 진영 상당수를 통합해 등장한 사회대중당은 민주당과의 보혁 양당제를 만들겠다는 공언과는 무색하게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영남을 제외하곤 대중의 지지가 미진했고 무엇보다 계파 갈등을 연유로 선거 직전까지 공천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선거 결과

  • 투표자수 : 9,778,921명
  • 투표율 : 84.3%
정당별 당선자 수 (명)
정당 의원수
민주당 175
사회대중당 4
공화당 2
한국사회당 1
통일당 1
헌정동지회 1
무소속 49
합계 233

정당별 득표율

정당별 득표율
정당 득표수 득표율
민주당 3,786,304 41.7%
사회대중당 541,021 6%
공화당 249,960 2.8%
한국사회당 57,965 0.6%
통일당 17,293 0.2%
기타 176,015 1.9%
무소속 4,249,180 46.8%
합계 9,077,738 100%

정당별 결과

민주당

이른바 혁명 총선으로 불리게 된 제5대 민의원의원 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귀결됐다. 특정한 정당이 개헌선은 물론이고 전체 의석의 4분의 3을 넘게 차지한 선거는 이 5대 총선 밖에 없으며 이러한 의석수를 토대로 민주당은 선거 직후 장면 내각이 출범하자 전례가 없는 압도적인 국정여당으로서 부상할 수 있었다. 해당 총선이 있은 뒤 민주당은 1970년에 이르러서야 원내 제1당 자리를 자유당에게 넘기며 정권을 내놓았으니 이 1960년 총선은 구 독재 정권의 주도 세력인 공화당의 몰락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향후 약 10년 간 이어진 민주당 중심의 정치 구도를 확립시켰던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민주당의 독주를 종식시킨 자유당은 그 민주당에서 탈당한 당내 구파 세력이 창당한 곳이었다.

여러모로 민주당에 엄청난 권력을 안겨다 준 선거 결과였다고 볼 수 있으나 공통의 적인 공화당이 사라지면서 민주당의 내부 계파들을 응집시켜온 구심점까지 없어진게 화근이었다. 이로 인해 옛 당내 주류 세력을 지칭하는 구파와 장면 총리가 속한 신진 소장파 세력을 가리키는 신파 간의 정쟁이 극심해져 1960년 12월 14일, 급기야 비당권파로 밀려났던 민주당 구파가 당에 잔류하기를 거부하며 신당 자유당을 창당함으로써 보수 양당제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형성된 보수분열 구도는 훗날 1976년에 김영삼과 김대중의 빅딜로 민주자유당이 성립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공화당

사회대중당

기타 및 무소속

당선자

정부 구성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