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민주주의/언론에 대한 관점

오늘날 언론의 자유는 다른 자유를 억압하는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오늘날의 매스 미디어(거대 언론)은 사실상 대중을 통제하는 기구가 되었으며, 이들이 여론을 통제함으로서 사람들의 실질적인 정치적 자유와 알 권리를 빼앗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무한이 아니며, 황색 저널리즘, 자신의 이익계층만을 대변함으로서 오늘날 특정 계층의 목소리만 반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언론은 특정 정치, 경제계층을 대변하고 있으며, 과장과 왜곡이, 거대한 상업 신문사들의 진공관을 거쳐, 분노와 저주와 증오가 확대 유포되고 있다. 그들을 무방비로 둬서는 우리 사회에 미래가 없다고 느낀다. 소수자의 의견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묵살되고 있으며, 그들이 만드는 신문은 거대 언론사의 담론 시장에서 사장되고 있다.

정말 사실과 다른 엄청난 많은 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로 마구 쏟아지고 있다. 누구의 말을 빌렸는지 출처도 불명한 의견이 마구 나와서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닌다. 그리고 아무 대안도 없고 결과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않는 상품들이 널려 있으며 적격성 논란이 존재하는 같은 사안 수십배가 넘는 보도가 tv, 인터넷, 동영상, sns를 막론하고 쏟아진다. 펜은 칼이 되었고, 한 개인의 주변 사람들에까지 무분별한 찌르기가 계속되었지만. 이를 막을 주체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결과만이 나왔다.

우리들은 정말로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자유주의 언론관은 언론에 자유가 허용된다면 대다수가 진실에 침묵하더라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하려 할 것이고, 무책임한 의혹을 반박하는 주장들도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자유로운 주장과 표현들이 공론화를 통해 무엇이 진실인지 밝혀진다는 생각이 공리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이성적 자유주의자의 낙관이다.

그 대표적인 철학자가 <자유론>의 저자 스튜어트 밀이었다. 굳이 보수쪽 예를 들어보겠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수많은 다른 언론사들로 하여금 과장과 날조, 허위의 융합적 상승을 가져왔다. 스튜어트 밀의 주장처럼 언론에 자유가 있다면 광우병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주장이 경쟁사인 KBS나 SBS에서 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MBC 내에서는 PD수첩 제작팀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 기자나 PD가 한 사람도 없었으며, KBS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진정으로 합리적 이성의 공론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더 심한 것은 이러한 언론들이 만들어낸 거대 담론에, 개인은 이러한 여론과 정치 구조에 종속되어버리며, 자신의 정치적 선택권을 잃어버린다. 마치 인도의 하층민들이 정치적 민주주의속에서 정치인을 선택할 권리가 부여되지만, 실질적으로 누구를 뽑던간에 사회구조속에서 윗사람들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지 않으면 굶어죽을수밖에 없게 되었듯이, 우리는 돼지나 다를바가 없다.

우리는 보기에는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이고, 선택할 자유가 있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광우병 논란은 합리적 이성의 공론은 둘째치고, 모든 국민들이 이들에 의해 정치적 선택권을 잃어버리고 실질적으로 동원된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또한 미국에서 기업논리와 민주당에 치우친 언론사들의 발흥과 정치적 편향성, 그리고 공론장의 말살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처우 아닐까?

그렇게 실상은 거대 미디어들이 만들어내고 정제하는 먹기쉬운 여물만을 먹고, 그 여물에 기반해 판단을 하게 되고, 그렇게 여물을 보고 판단하는 돼지왕국은 거대 언론들이 원하는대로 판단하게 된다, 얼마나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돼지들을 이끌어내는가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된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어느샌가 하게 되었으며 오늘 가상국제연합을 통해 어느정도 우리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국련에 "조화적 언론관"을 제창해보려 한다. 조화적 언론관은 대체적으로 3가지를 주장한다.

조화민주주의 언론관의 3가지 주장

조화적 언론관에서는 모든 언론은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알아야 하면서도, 검열제에 대한 겸허한 반대의 뜻을 나타내야 하며, 언론은 여론을 대표하고 국영언론이나, 공영언론, 종합언론등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며, 각 단체와 사회계급을 대표하는 언론등을 설립하고, 그 주제 내에서만 글을 쓰도록 해야 한다. 가국련은 사회주의 국가처럼 여론을 주도하지 않을 것이며, 언론운영도 피할 것이다. 언론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보고 공론화를 목적으로 무책임한 글을 쓰는 순간 가국련같은 작은 사회에 속한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일 것이요, 그 끝은 끝없는 혼란에 물든 사회일것이다.

붓이 칼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붓으로 이루어진 범죄가 칼로 이루어진 범죄보다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더 처벌은 못 해도 적어도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검열제는 우민정책이며 존재해서는 안된다

언론은 집권자와 현행 법질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하는게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고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사회의 부족한점을 감정싸움을 유발시키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논평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반드시제시해야 한다. 자유 언론은 사회를 발전시키지만 언론 통제는 집권자를 찬양하는 도구로만 사용될 뿐 어떠한 비판도 봉쇄해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 가상국제연합의 모든 언론은 가상국제연합에 대한 찬양 또는 비판등 카페분위기를 어지럽히거나,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를 공론화해서는 안된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일때 언론의 자유는 제약된다

보통법으로 알려진 미국 홈즈 판사가 제시하는 표현의 자유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일때 제한된다는 판결이다.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 외치는 것은 수많은 관객들이 거짓 정보로 혼란을 야기하고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 제약을 이야기 한다. 언론의 자유는 고등학교 수준의 교과서에서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시민의 알 권리에서 파생되는 권리. 그러므로 다른 권리보다 항상 앞서는 무조건적인 권리가 아니라 생명권과 같이 더 상위의 권리 앞에서 유보되어야 할 성질의 것.

언론의 자유도 이와 같은 시간에서 바라볼 수 있디. 언론의 자유는 본질적을로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더 중요한 권리 앞에서 잠시 유보되어야 할 성격을 지님. 더 중요한 권리란, 타인의 권리, 국가 안보, 공익 등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과 국가의 안정과 평화 유지를 방해하는 언론의 자유는 법으로 제한될 필요가 있다

언론은 반드시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주는 이익과 그 해악을 사회적으로 판단하여 이익이 크면 허용, 반대이면 제약한다는 플라스와 마이너스 중에서 손해나면 제약한다는 판단이다. 언론의 자유가 주는 해악과 명예훼손, 개인의 프라이버시등에서 공공의 이익에 어떻게 부합되느냐에 따라 자유와 제한을 판단한다. 유럽쪽에서 이 논리를 받아들여 PC주의에 의해 혐오 표현등은 제한이 된다.

우리 유교문명권의 국가에서는 조화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하지 못할 훌륭한 관념이 있다. 바로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정보의 검열보다는 어조와 사회를 향한 강한 인내, 그리고 이웃을 위하는 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생각해야 하며, 타협적인 어조로 풀어나가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의 본원적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진보적 인사들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고 단언한다. 당신이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공론화할 때에는 그 발언에 책임을 진다는 마음가짐을 분명히 해야하며, 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하여 정중하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할 자신이 없다면 사회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만민공동회) 의견을 개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