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종

진언종

진언종은 가상국가계의 가상종교이다. 2017년 11월 9일 부로 종정 본초를 중심으로 창립되었다.

설정

역사

석가모니 부처께서 대각大覺을 이루시고 세계만방으로 그 존귀한 가르침을 피시어 그 가르침이 전파되어 어언 사백여년이 지났을때 불타가야佛陀伽耶에서愛馬仕가 깨달음을 얻자. 대일여래大日如來가 내려와 그의 깨달음을 시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높은 깨달음을 얻지못했음이 들어나자 대일여래는 직접 그에게 위대하고 위대하여 위아래 없는 교설을 편다. 이에 곧바로 가장 높은 깨달음을 성취한 愛馬仕가 현두賢豆 곧곧으로 그 법을 전하여 제자를 길러낸다. 대일여래의 교설이 愛馬仕가 대열반에 든 후 大毘盧舍那成佛神變加持經 라는 이름으로 글로 옮겨진다. 愛馬仕가 죽은 후 그의 자리를 그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잇게된다. 그의 가르침이 현두 만방에 위세를 떨치고 수세기가 이른뒤 達磨鞠多가 그의 제자 善無畏에게 그 깊은 가르침을 얻은 조사祖師로 임명하고 그를 당唐 에보내어 그 오묘한 법을 펴게한다. 그리고 동방東方의 사로斯盧 에서 온 혜통惠通대사가 善無畏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이를 다시 사로국에 전하니 이 혜통대사가 진언종眞言宗의6 대 조사이며 개조開祖가 되는것이다. 이때가 서기 667년 이었다. 문무왕 7년이었다.

문무왕이 이를 극진히 신앙하여 신라의 다른 종파, 특히 문무왕 10년에 건립됨 해동화엄종보다도 많은 지원을 받아 성장하였으며 또한 그 본원 자체가 불법의 대중화를통하여 그 교세가 대단하였다. 이에 신라 곳곳에 진언종의 사찰이 세워지고 본래 다른 종파의 사찰이었던것도 진언종의 사찰로 되기에 이르며 진언종은 의곡사를 중심으로 사방 350km에 이르는 지역을 종단 자체 소유로서 반독립국적 지위를 얻게되었다. 이는 당시 지방호족 특히 백제계유민을 달래려는 문무왕의 시도와는 정반대의 행보였으나 당시의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지방에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던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의곡사를 중심으로한 자치지역은 중앙귀족과의 강한 결탁으로 후대로 갈수록 그 자치력이 강해져갔다.

당대에는 진언종을 포함하여 열반종 · 계율종 · 법성종 · 법상종이 신라육교로 불리었다. 이 당시 진언종은 육대대사六戴大師 라 불리우는 오묘한 깨달음을 체득한 대사들로 인해 크게 위세를 떨쳤다. 이들중 원효대사는 정토사상을 들여와 대중교화에 힘쓰는 한편 서로 다른 경전들의 합의점을 찾아내어 이를 정리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그의 일심사상一心思想과 화쟁사상 속에 녹여냈으며 의상은 쇠퇴한 화엄종의 교의를 다시 불러일으켜 법계연기, 화엄세계와 같은 화엄사상의 요지를 진언종 안에서 화해시켰다. 이 신라 진언종의 전성기 기간 동안 많은 종파가 진언종과 일치를 이루게된다. (667-780). 한편 신라 말로 갈수록 진언종은 본래의 밀교적 성향에서 교종의 성향이 강해지고 중앙귀족의 부패와 결탁함에따라 민심을 이반하게된다.(780-918)( 이에 도의선사로부터육조 혜능의 선불교가 禪佛敎가 들어온다. 도의선사는 중앙귀족과 진언종 승려들의 탄압을 받아 설악산에 은거했으며 도의선사는 결국 대사성 지초의 모함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죽게된다. 그러나 그 법맥은 이어지게된다. 한편 이 사건으로 진언종의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정혜결사 正慧決社 라는 모임이 조직되어 결사운동을 펼치게된다. 이들은 파계에대한 엄격한 감독과 파계승의 추방 및 선종 및 다른 법맥에대한 탄압을 중지하라 일렀으며 본래의 밀법수행으로 돌아갈것을 요구했다. . 그러나 이들의 결사는 실패하여 이들 역시 죽음을 맞게된다.

한편 918년 고려가 건국되자 불교는 또다른 변화를 맞게되는데 태조 왕건은 선종을 선호하여 그간 탄압받았던 선종의 승려들을 크게 종용하게된다. 이때는 불교가 크게 흥하여 태조는 수도의 10개의 큰 절을 짓고 팔관회를 주관했으며 절은 많은 역할을 안게되었다. 또한 이시기 천태종이 들어와 천태학이 유행하였다. 이 시기 진언종은 당시 호남지역의 중심사찰로서 그 넒은 전답에대한 자치권을 유지했지만 그 영향력이 줄어들게되었다. 그리고 지눌은 이 시기 조계종을 확립하여 선종과 교종의 통합을 도모한다 . 그러나 고려불교는 고려 후기에 접어들어 왜구의 침략과 정부의 부패로 민심을 잃어갔으며 이 가운데 미륵신앙과 정토신앙이 다시 부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자 사대부들의 억불정책이 시행되었는데, 그럼에도 태조 이성계는 본래 불자로서 신심이 깊고, 당시 의곡사의 주지이자 조사였던 무학대사와 연이 깊었다.또한 무학대사가 예언하기를 "이 절의 사노와 사지를 폐하지 않으면 후일 나라의 화가 있을때 거두지 않은 만큼 돌아올것이요" 그리하여 의곡사는 진언종의 중심으로서 전답을 빼앗기지 않고 태조가 직접내린 교서로인해 자치권이 유지되어 억불정책의 화를 피해갔다. 또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북방에는 사명당대사가 승병을 일으켜 호국안민에 힘쓴 한편, 당시 진언종의 조사스님이었던 무진장 대사 역시 승군을 일으켜 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대파하였다. (1593) 이로인해 조정에서는 이를 치하하여 기존의 특혜를 계속 누릴것을 허락하였다. 신

조선의 양난과 외세의 대두 그리고 조정의 타락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 다시 미륵 신앙과 도참이 유행하고 민중은 서방에서 들여온 천주교를 널리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이에대한 조정의 탄압이 심했었다. 그러나 진주의 의곡사는 이들을 극진히 보호했으며, 천주교의 비밀미사를 허락하기도했다. 그리고 정광현의 난이 발발하여 진주까지 세를 넓히자 당시 주지했다. 정행대사는 조선왕조와 맺었던 협약과 같은 내용의 협약을 정광현과 맺어 불교를 보존하고자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단 몇개의 조항이 추가되고 수정되었다.

1. 문무왕 이래로 의곡사가 관리해온 전답에대한 소유권은 의곡사가 지니며 신성대한제국은 이를 침해할수없다.

2. 의곡사의 경건을 위해 불제자에의 한하여 하루 100명만 불당 출입을 허한다. 비불제자는 15명만 출입을 허한다.
3. 의곡사는 대한제국의 정치에 간섭하지 않으며 대한제국 역시 의곡사의 종무에 관여할수 없다.
4. 단 의곡사의 속한 승려들은 대한제국의 형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대한제국 국민에 준하는 처벌을 받는다.이때 승려의신변을 대한제국에 맡긴다.
5. 의곡사는 포교를 위해 대한제국에 법인을 세울수 있으며 이는 온전히 대한제국 국법에 귀속된다.


현제 진원종은 본찰인 진원종 의곡사와 종교법인 진원종이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본찰은 승려의 수도생활에 집중하나 종교법인 진원종은 각 교구를 관리하고 포교에 힘쓰고 있다. 진원종은 대한제국의 종교 중 신성 그리스도교의 다음 가는 종교로서 국민의 11.5%가 신앙하고 있다. 특히 경상도와 진주에서 그 세력이 크다.

교리

밀법종교로서 대일여래를 본주 및 교주로하며 대일여래와 신비적합일을 개체와 보편의 합일을 추구한다.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나, 화엄교학과 천태교학 역시 받아들여 연구한 역사가 길다. 또한 만트라수행과 염불수행을 권하며 고려대에 받아들인 參禪의 전통 역시 가지고 있다. 조선조의 불교폐합으로 인해 종합불교적인 면모가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밀교 특유의 화려한 의식과 다라니 수행, 만트라수행을 강조한다. 특히 即信成佛로서 이 몸을 가지고 부처가 됨을 이루는것을 강조한다.

법맥

천축 3조
제 1조 해마사 愛馬仕 (?-?)
제 2조 합옥 蛤圄 (?-?)
제 3조 법유 法儒 (80-120)

중국 진언종
제 4조 법이 法而 (500-599)
제 5조 무공 無空 (520-626)
제 6조 국다 鞠多 ( 575-670)
제 6조 선무외 善無畏 (637-725)

해동 진언종
제 7조 혜통 惠通 (635-690)
제 8조 불무 佛無 (670-760)
제 9조 법상 法相 (70?-778)
제 10조 진장 眞嶂 (7??-815)
제 11조 희운 希運 (?-867)
제 12조 회천 回天 (8??-890)
제 13조 낙연 落璉 (850-948)
제 14조 거혜 巨慧 (880-976)
제 15조 법지 法知 (950-1001)
제 16조 혜총 慧總 (996-1100)
제 17조 남화 南華 (1050-1100)
제 18조 구선 口癬 (1080-1160)
제 19조 박산 博山 (1130-1210)
제 20조 무정 無情 (1170-1270)
제 21조 마선 蟇仙 (1230-1290)
제 22조 제천 濟天 (1210-1300)
제 23조 섭지 燮持 (1267-1315)
제 24조 불량 佛亮 (1285-1349)
제 25조 도잔 道潺 (1220-1300)
제 26조 진진 眞侲 (1267-1291)
제 27조 영가 寧暇 (1275-1300)
제 28조 무학 無學 (1270-1400)
제 29조 금허 金虛 (1367-1410)
제 30조 무정 武貞 (1382-1477)
제 31조 쌍기 双奇 (1436-1499)
제 32조 도윤 道允 (1480-1537)
제 44조 천진 天珍 (1510-1592)
제 45조 천섭 天燮 (1519-1593)
제 46조 천영 泉榮 (1511-1600)
제 47조 건지 乾池 (1572-1666)
제 48조 용지 龍池 (1600-1699)
제 49조 법륜 法輪 (1672-1722)
제 50조 희리 熙狸 (1699-1789)
제 51조 마장 馬場 (1734-1826)
제 52조 법첨 法瞻 (1810-1910)


제 53조 마진 痲疹 (1867-1936)
제 54조 정진 正眞 (1890-1948)
제 55조 의림 醫林 (1912-1999)
제 56조 본초 本初 (1999- )

활동

오늘의 법문

오늘의 법문이라고는 하지만 운영자가 시간이 날때마다 쓰는듯하다. 다음은 역대 법문의 제목이다.

  • 부처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 오직 당신이 부처다
  • 인생의 괴로움
  • 석가탄신일 기념법문
  • 부처님이 비난을 대처하는 방식
  • 그저 의미 없이 삶을 보내는 이들에게
  • 이 아름다운 설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