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타이 공화국 쿠데타 기도 사건

2023년 타이 공화국 쿠데타 기도 사건
교전국
{{{타이 공화국 육군}}} 북방회
{{{타이 공화국}}} 헌정회복위원회
   (께유판 정부)
지휘관

수파이분 께유시안
수캄폴 수와낫
다오 벤치마

탐마디 히타왁
병력

{{{타이 공화국 육군}}} 제1군단

  • {{{타이 공화국 육군}}} 수도사단
    • 제1보병여단
    • 제2보병여단
    • 제7기병연대

{{{타이 공화국}}} 제5군단

  • {{{타이 공화국}}} 제7보병사단
  • {{{타이 공화국}}} 제9보병사단
  • {{{타이 공화국}}} 제22기병사단

{{{타이 공화국}}} 제3군단

  • {{{타이 공화국}}} 제5보병사단
  • {{{타이 공화국}}} 제21기병사단
{{{타이 공화국}}} 제1비행단

2023년 타이 공화국 쿠데타 기도 사건은 2023년 7월 16일 수파이분 께유시안과 수캄폴 수와낫 등을 중심으로 한 북방회가 불법으로 계엄령을 동원하여 정부 전복을 기도한 사건이다.

육군 제1군단장이었던 수캄폴 수와낫(당시 계급 중장)과 수파이분 께유시안 군령사령관(당시 계급 대장) 등은 정부의 군부 개혁을 목적으로 한 인사 조치에 불만을 품고 2023년 7월 16일, 군을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정부 주요 시설을 점거하고 대통령의 신변을 확보하여 정부 전복을 기도하였으나, 헌정회복위원회를 위시로 한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사건의 배경

1990년대부터 군 내 사조직으로 이어지던 '북방회'는 군부 통제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친군부 정책을 펼치며 정계 및 경제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군부와 관련된 비리 의혹이 거세게 지목되며 쑤다랏 께유팟 대통령이 군부 개혁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자 북방회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특히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의 증대로 이권이 크게 흔들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군령사령관인 수파이분 께유시안을 구심점으로 북방회 인사들은 군부의 기득권 유지와 이익 관철을 위해 단결하기로 하였고, 만약 이것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무력을 동원하기로 결의하였다. 실제로 북방회 인사 명단이 공개되자 이들은 쑤다랏 께유팟 대통령과 독대하기도 하였다. 쑤다랏 께유팟 대통령은 이에 군부 달래기에 나서며 이들을 치하하는 행동들을 펼쳤으나, 끝내 이들에 대한 예편 명령을 담은 인사 명령이 발표되자 이들은 긴급 회의를 진행한 끝에 계획했던 쿠데타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전개 과정

방콕 시내 점거

쿠데타의 계획은 께유팟 정부 출범 당시부터 준비되온 것으로, 쿠데타 개시로부터 최소 3개월 전부터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캄폴 수와낫은 께유팟 정부의 군부 개혁으로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릴 경우, 대선의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북방회 주요 지휘관들은 쿠데타를 앞두고 방콕 시내에 주둔하던 제1보병연대에 집결하여 세부 계획을 공유한 후, 7월 16일 오전 9시 방콕 시내 주요 관공서를 점거한 후, 국회와 대통령궁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후 이들은 대통령 권한을 이행받아 군사 계엄령을 발효하여 전국적인 통제에 나섰다.

쿠데타 반대 시위

쿠데타군은 정부와 대통령을 확보하면 쿠데타가 완수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방콕 시민들의 거센 시위에 부딪히며 여의치 않게 되었다. 적은 병력이 동원된 쿠데타군은 시위를 막기에는 부족하였고, 끝내는 민간인을 향한 발포가 이루어졌다.

진압군의 결성

그러나 전국적인 쿠데타 반대 시위가 발생하자, 비북방회 지휘관들이 군사 계엄령을 거부하며 헌정회복위원회를 중심으로 진압군을 결성하였다. 진압군을 지휘하던 탐마디 히타왁 5군단장은 내란은 막아야 한다며 쿠데타군을 향해 유예 시간을 주며 항복을 독려하였으나 거부하였고, 대대적인 방콕 진공 작전을 벌이게 된다.

방콕 시내의 유혈 사태

진압군이 방콕 시내로 진입하자 교전이 발생하였고, 끝내 유혈 사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쿠데타군은 끝내 공군을 동원한 진압군에 밀리며 대통령궁에서 가두시위를 벌였고, 쿠데타를 주도한 수캄폴 수와낫 및 수파이분 께유시안이 음독 자살을 택하며 진압되었다.

반란 이후

처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