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문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 [목차] ==개요== 한국에서 소련이 낙후된 나라로 인식된 것과는 달리 출판과 언론, 영화, 연...)
 
잔글
 
1번째 줄: 1번째 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
  
[목차]
+
{{목차}}
  
 
==개요==
 
==개요==
68번째 줄: 68번째 줄:
  
 
==관련 문서==
 
==관련 문서==
 +
 +
[[분류: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

2024년 5월 13일 (월) 08:01 기준 최신판

소비에트 러시아 국장.png
НСССР
관련 문서
[ 펼치기 · 접기 ]

개요

한국에서 소련이 낙후된 나라로 인식된 것과는 달리 출판과 언론, 영화, 연극을 비롯한 문화산업 자체는 매우 큰 나라이다. 이는 소련인들의 구매력이 생각보다 높고, 당대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휴가를 비롯한 여가시간이 많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학

(구) 소련처럼 '문맹 퇴치 정책'과 '기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문해율은 타국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며, 영미권 작품들을 수입 및 보급하고 있다. 또한, (구) 소련에 비해서는 낫지만 탐정 소설은 일부 제한을 받고 있다.

추가로, 작가들은 당국 이외에 '작가동맹'에 가입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소련의 심사는 엄격한 편이어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승인을 받고 활동할 수 있다.

반체제 문학

당연히, 소련 체제에 비판적인 문학은 금지 대상이다. (구) 소련 붕괴는 기본이고, 종교 자체는 물론, 종교+공산주의 체제도 엄격한 검열 대상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체제를 비판하면서 다른 공산주의 체제를 추천시 심사를 통해 통과된디.

해빙기

음악

소련의 이미지로 인해 흔히 한국에서 "소련 음악"이라고 하면 선전 가요나 군가, 클래식, 민요를 떠올리는 일이 잦다. 더 나아가, 한국의 경우 공산권 국가에서는 군가나 민요 등의 노래만 부르며 락이나 팝 등의 대중 가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노래들을 제외하고도 소련 음악계는 대중적인 음악들도 많이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건전한' 행동을 하면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다.

방송

소련 중앙텔레비전 제1채널은 국가방송이며, 순서대로 음악등의 문화방송 순서이다. 러시아 연방을 거쳤으므로 컬러 방송은 꽤 많이 보급된 편이며, 이러한 텔레비전을 전국 각지에 추가적으로 더 보급하여 레트로 취향이 아니고서야 흑백 방송은 없는 편이다.

라디오 방송

소련에서 라디오를 열심히 보급하고 음악 분야에 검열을 비교적 느슨하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복지 차원도 있지만 정치 선전의 목적이 크다. 물론 라디오에서 하루종일 정치 선전과 연설만 나오면 사람들이 라디오를 공짜로 줘도 받기 싫어할 테고, 때문에 소련 라디오 방송은 주로 듣기 좋은 음악을 계속 틀어주다가 중간중간에 뉴스나 정치 선전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라디오는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소수민족들에게 러시아어를 보급하는 역할도 수행중이다.

신문

소련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문발행부수를 기록중이다. 신문 값이 1부당 4-5코페이카 정도로 매우 저렴하여 왠만한 소련 가정에서 보통 5~6종 정도 신문을 같이 구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프라우다나 이즈베스티야,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등 상위권 신문의 경우는 1000만부가 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재 소련에서는 프라우다와 소련 국가방송의 신문이 발행중인데, 프라우다는 대체로 정치->국제->사설 순서이며 국가방송 신문은 주로 선전등을 맡고 있다.

출판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식문화

의복

군복

제복

성문화

(구) 소련의 성문화는 시대에 따라 가변적이었으며, 고르바초프 집권 이전까지 보수적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성적 문화가 급격히 활성화되었던 전적이 있으며 현재는 러시아 연방을 거쳤기에 이러한 성문화는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소련의 스탈린부터 시작되어 블라디미르 푸틴까지 이어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나데즈다 크룹스카야, 여성 운동가들은 혁명적 연애, 육아와 가사의 완전한 사회화, 심지어 일부일처제 폐지, 오픈 릴레이션십을 방불케 하는 자유 연애와 성적 자유주의의 주장이 묵살된 편이었으며 이는 페르빌 파르니예프,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기에도 크게 다루지 않는 것으로 이어졌다.

추후, 제 10대 최고소비에트에서 ㆍㆍ헌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동성, 일부다처제, 다부일처제 등의 방식이 인정받는다.

성소수자

기타

참고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