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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란드 공화국'''(Republic of Vinland)은 북미 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국가이다. 국명은 빈란드에서 유래했으며 영국령이던 시절에는 '''뉴펀들랜드'''(Newfoundland)로 불렸다.
 
  
 
== 개요 ==
 
== 개요 ==
빈란드 공화국은 캐나다 북동부 대서양 지역에 위치한 큰 섬인 빈란드(뉴펀들랜드) 섬과 캐나다 본토 마르크란드(래브라도) 반도 동부의 마르크랜드 지방, 북부의 헬룰란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구는 빈란드 섬에 살고 있으며, 대륙부인 마르크란드 지방과 헬룰란드 섬은 면적은 넓으나 대부분 툰드라 지역으로 인구가 극히 희박하다. 수도는 세인트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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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란드 공화국'''(Republic of Vinland)은 캐나다 북동부 대서양 지역에 위치한 큰 섬인 빈란드(뉴펀들랜드) 섬과 캐나다 본토 마르크란드(래브라도) 반도 동부의 마르크랜드 지방, 북부의 헬룰란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구는 빈란드 섬에 살고 있으며, 대륙부인 마르크란드 지방과 헬룰란드 섬은 면적은 넓으나 대부분 툰드라 지역으로 인구가 극히 희박하다. 수도는 세인트 존스.
  
 
1949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하였다. 이전에는 영국 지배하의 독자적인 자치령 지역이었다.[* 당시 명칭은 뉴펀들랜드였다.]
 
1949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하였다. 이전에는 영국 지배하의 독자적인 자치령 지역이었다.[* 당시 명칭은 뉴펀들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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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7년 탐험가 존 캐벗이 북대서양을 건너 이 섬을 재발견하였으며 이후 잉글랜드령이 되었다. 북미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 중 하나가 건설된 곳이었으나 농업에 불리한 땅이라 이래저래 고생하다가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이주한 초기 이주민들이 많았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을 포함한 16세기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일련의 영국 - 프랑스 간 전쟁에서 섬 주요 항구도시이자 지금의 주도인 세인트 존스가 몇 번이나 프랑스군의 점령을 당하거나 불태워지기도 했다.
 
1497년 탐험가 존 캐벗이 북대서양을 건너 이 섬을 재발견하였으며 이후 잉글랜드령이 되었다. 북미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 중 하나가 건설된 곳이었으나 농업에 불리한 땅이라 이래저래 고생하다가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이주한 초기 이주민들이 많았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을 포함한 16세기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일련의 영국 - 프랑스 간 전쟁에서 섬 주요 항구도시이자 지금의 주도인 세인트 존스가 몇 번이나 프랑스군의 점령을 당하거나 불태워지기도 했다.
  
1855년 영국 지배하의 식민지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1907년에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자치령(dominion)이 되었다. 이후 경계선을 맞댄 캐나다 자치령의 연방주로 합류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자치령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발효에 따라 자치령들이 외교·국방 권한까지 영국 정부로부터 넘겨 받아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는데, 뉴펀들랜드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몰아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1934년 독립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 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는 쪽으로 돌아왔다. 이는 독립국이 스스로 자신의 독립을 포기한 몇 안 되는 사례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뒤 1949년 주민투표를 통해 근소한 차이로 독립이 되었다.[* 프랑스계와 노르웨이계는 독립이 많았지만 영국계는 캐나다 연방 가입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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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영국 지배하의 식민지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1907년에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자치령(dominion)이 되었다. 이후 경계선을 맞댄 캐나다 자치령의 연방주로 합류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자치령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발효에 따라 자치령들이 외교·국방 권한까지 영국 정부로부터 넘겨 받아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는데, 뉴펀들랜드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몰아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1934년 독립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 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는 쪽으로 돌아왔다. 이는 독립국이 스스로 자신의 독립을 포기한 몇 안 되는 사례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뒤 노르웨이인이 유입되었고 영향을 받아서인지 1949년 주민투표를 통해 근소한 차이로 독립이 되었다.[* 프랑스계와 노르웨이계는 독립이 많았지만 영국계는 캐나다 연방 가입이 많았다.]
  
 
빈란드 지역에는 전쟁 중 섬에 미 군사기지가 설치되었었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차라리 미국령이 되자는 의견도 상당히 나온 바 있지만,그랬으면 미국이 알래스카처럼 월경지 국토 하나 더 먹었을 듯. 영국이 이 안을 투표로 부치는 것을 거부했다. 당시 캐나다는 거의 독립국이 되긴 했어도 같은 영연방 소속인 데다가 당시만 해도 대영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했지만, 미국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 되긴 했어도 대영제국의 산하가 아닌 별도의 '제국'이었으니 영국으로서는 이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빈란드 지역에는 전쟁 중 섬에 미 군사기지가 설치되었었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차라리 미국령이 되자는 의견도 상당히 나온 바 있지만,그랬으면 미국이 알래스카처럼 월경지 국토 하나 더 먹었을 듯. 영국이 이 안을 투표로 부치는 것을 거부했다. 당시 캐나다는 거의 독립국이 되긴 했어도 같은 영연방 소속인 데다가 당시만 해도 대영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했지만, 미국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 되긴 했어도 대영제국의 산하가 아닌 별도의 '제국'이었으니 영국으로서는 이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9년 3월 17일 (일) 20:18 판

Republic of Vinland
빈란드
Vinland Flag.png Timmy Vinland Emblem.png
국기 국장
국가빈란드의 노래
Timmy vinland map1.jpg
수도세인트존스
정치
정치체제대통령제 공화국
국무 의장
대통령
총리
빈센트 반 아란
[[]]
[[]]
 
 • 설립1949년 3월 31일
지리
면적
인문
공용어영어, 프랑스어, 노르웨이어
경제
통화빈란드 달러
기타
도메인.vl
https://cafe.naver.com/vinland

개요

빈란드 공화국(Republic of Vinland)은 캐나다 북동부 대서양 지역에 위치한 큰 섬인 빈란드(뉴펀들랜드) 섬과 캐나다 본토 마르크란드(래브라도) 반도 동부의 마르크랜드 지방, 북부의 헬룰란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인구는 빈란드 섬에 살고 있으며, 대륙부인 마르크란드 지방과 헬룰란드 섬은 면적은 넓으나 대부분 툰드라 지역으로 인구가 극히 희박하다. 수도는 세인트 존스.

1949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하였다. 이전에는 영국 지배하의 독자적인 자치령 지역이었다.[1]

역사

유럽인의 발견 이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거주하던 섬이었다. 10세기 후반 바이킹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넘어 이 곳에 정착하였고 빈란드 왕국을 건설하였다.

Timmy kingdom of Vinland map.jpg

이 사실은 1960년에 뉴펀들랜드 섬 북부에서 바이킹의 정주 유적 '란세오메도스(L’Anse aux Meadows) 역사 지구' 가 발굴되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 유럽인이 북아메리카에 도달했음이 확실해졌다.

사가에서 말하는 빈란드가 이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예전에는 베오투크족이 거주하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소멸되었고 동시에 이들이 쓰던 베오투크어도 소멸되었다.

1497년 탐험가 존 캐벗이 북대서양을 건너 이 섬을 재발견하였으며 이후 잉글랜드령이 되었다. 북미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 중 하나가 건설된 곳이었으나 농업에 불리한 땅이라 이래저래 고생하다가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이주한 초기 이주민들이 많았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을 포함한 16세기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일련의 영국 - 프랑스 간 전쟁에서 섬 주요 항구도시이자 지금의 주도인 세인트 존스가 몇 번이나 프랑스군의 점령을 당하거나 불태워지기도 했다.

1855년 영국 지배하의 식민지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1907년에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자치령(dominion)이 되었다. 이후 경계선을 맞댄 캐나다 자치령의 연방주로 합류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자치령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발효에 따라 자치령들이 외교·국방 권한까지 영국 정부로부터 넘겨 받아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는데, 뉴펀들랜드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몰아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1934년 독립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 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는 쪽으로 돌아왔다. 이는 독립국이 스스로 자신의 독립을 포기한 몇 안 되는 사례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뒤 노르웨이인이 유입되었고 영향을 받아서인지 1949년 주민투표를 통해 근소한 차이로 독립이 되었다.[2]

빈란드 지역에는 전쟁 중 섬에 미 군사기지가 설치되었었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차라리 미국령이 되자는 의견도 상당히 나온 바 있지만,그랬으면 미국이 알래스카처럼 월경지 국토 하나 더 먹었을 듯. 영국이 이 안을 투표로 부치는 것을 거부했다. 당시 캐나다는 거의 독립국이 되긴 했어도 같은 영연방 소속인 데다가 당시만 해도 대영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 확고했지만, 미국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 되긴 했어도 대영제국의 산하가 아닌 별도의 '제국'이었으니 영국으로서는 이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륙부의 마르크란드 지방은 마르크란드 반도 주요부를 차지하는 퀘백 주와 귀속과 그 경계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나 1927년 영국 추밀원 사법위원회에서 양 지역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현재 퀘백과 빈란드 공화국의 육상 경계는 대체로 분수계를 따르지만, 남쪽은 그렇지 않다.

각주

  1. 당시 명칭은 뉴펀들랜드였다.
  2. 프랑스계와 노르웨이계는 독립이 많았지만 영국계는 캐나다 연방 가입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