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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llang|ms|Malaysia}})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입헌 군주국]]이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의 행정 구역|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고, [[남중국해]]로 나뉜 [[말레이 반도]] 지역과 [[보르네오 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해상 국경은 [[싱가포르]]와 [[베트남]], [[필리핀]]과 맞대고 있다.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지만,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에 있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 말레이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가 된 곳은 [[해협식민지]]로 불리었고, 다른 곳들은 보호령이 되었다. 1946년 [[말레이 반도]]의 주들이 연합하여 [[말라야 연합]]을 세웠고, 1948년 연합을 재편성하여 [[말라야 연방]]이 설립되었다.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은 [[사바 (1963년)|사바]], [[사라왁 (1963년)|사라왁]], [[싱가포르 (1963년)|싱가포르]]와 연합하면서 '''Malaya'''란 이름에 '''si'''를 추가해 '''Malaysia'''가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정부와의 마찰로 연방에서 탈퇴하게 되었다.<ref name="singapura">{{웹 인용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0154405|제목=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전쟁론 파문>|저자= 김성겸|날짜= 2002-04-15|웹사이트= 연합뉴스|출판사= |확인날짜= 2015-03-02}}</ref>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후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제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50년동안의 GDP 성장률이 평균 6.5%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천연 자원에 거의 의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과학, 관광, 무역, [[의료관광]] 등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인 군주(국왕)은 9개 주에 있는 [[술탄]]에 의하여 5년에 한 번씩(단, 궐위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 호선으로 선출한다.<ref name="isis">{{웹 인용 |url=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120000172&md=20150120091706_BL|제목= 아시아로 퍼지는 IS 위험…말레이시아 지하디스트 ‘빨간불’|저자= 문영규|날짜= 2015-01-20|웹사이트= |출판사= 헤럴드경제|확인날짜= 2015-02-20}}</ref> 군주의 칭호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이며, 지금 군주는 무하마드 5세이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정부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정치체제|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가깝고, 법체계는 영국의 법에 기초한다. 말레이시아는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교]]는 [[이슬람교]]이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유라시아]] 본토의 최남단 지역인 [[탄중피아이]]가 있고,<ref name="tanjungpiai">{{뉴스 인용 |url=http://www.nst.com.my/Weekly/Travel/article/TravelTips/20050718145301/Article/index_html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70703124222/http://www.nst.com.my/Weekly/Travel/article/TravelTips/20050718145301/Article/index_html |author=Leow Cheah Wei |archivedate=2007-07-03 |title=Travel Times |work=New Straits Times |date=3 July 2007 |accessdate=26 October 2010 |깨진링크=아니오 }}</ref>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 기후]]의 국가이다. 다양한 동식물군이 있어 생물 다양성이 큰 국가이다. [[ASEAN]], [[이슬람 회의 기구]]의 창립멤버이며, [[APEC]], [[영국연방]],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2013년을 기점으로 말레이시아의 구매력 평가는 1인당 $17,674로 평가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imf.org/external/pubs/ft/weo/2012/02/weodata/weorept.aspx?pr.x=43&pr.y=9&sy=2012&ey=2017&scsm=1&ssd=1&sort=country&ds=.&br=1&c=548&s=NGDP_RPCH%2CNGDPD%2CNGDPDPC%2CPPPGDP%2CPPPPC&grp=0&a= |title=Malaysia |publisher=International Monetary Fund}}</ref>
 
 
== 역사 ==
 
{{본문|말레이시아의 역사}}
 
=== 식민지배 이전 ===
 
{{참조|말라카 술탄국}}
 
약 4만년 전 지금의 말레이시아 땅에 인류의 거주지들이 형성된 기록이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stuff.co.nz/travel/international/6405497/Getaway-to-romance-in-Malaysia|title=Getaway to romance in Malaysia|author=Stephanie Holme|publisher=[[stuff.co.nz]]|date=13 February 2012|accessdate=6 January 2014}}</ref> 이는 말레이시아가 고로 신생국가가 아님을 증명한다. 현재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해당되는 말레이 반도의 첫 정착민은 검은 피부를 가진 네그리토로 추정된다.<ref>{{저널 인용| last = Fix | first = Alan G. | title = Malayan Paleosociology: Implications for Patterns of Genetic Variation among the Orang Asli | journal = American Anthropologist, New Series | volume = 97 | issue = 2 | pages = 313–323 |date=June 1995 | doi = 10.1525/aa.1995.97.2.02a00090 | jstor=681964}}</ref> 기원후 시대 초기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의 말레이 반도는 동서양 무역상 및 여행객들의 장소였는데, 2~3세기경 그들은 이곳에 무역항과 해안 마을을 건설했다. 그 결과 인도 및 중국 문화가 현지 문화에 강한 영향을 끼쳤고,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유입된 힌두교와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 4~5세기경 산스크리트어로 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ref>{{서적 인용|last = Mühlhäusler|first = Peter|last2 = Tryon|first2 = Darrell T|last3 = Wurm|first3 = Stephen A|title = Atlas of languages of intercultural communication in the Pacific, Asia and the Americas|publisher = Walter de Gruyer & Co|year = 1996|page = 695|url = http://books.google.com/?id=oCx0D0iE2Qo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doi =|id =|isbn =978-3-11-013417-9 }}</ref> 2세기 무렵 말레이 반도 북부의 [[랑카수카 왕국]]이 번창하기 시작했으며 15세기까지 존속했다.<ref name="Mapping">{{서적 인용|last = Suarez|first = Thomas|title = Early Mapping of Southeast Asia|publisher = Periplus Editions (HK) Ltd|year = 1999|pages = 46–47|url = https://books.google.com/?id=ZG7ZMAbv_jAC&printsec=frontcover|isbn = 962-593-470-7}}</ref> 7~13세기 말레이 반도 남부 해안 지역은 [[스리비자야 제국]]의 일부였다. 스리비자야 제국의 멸망 이후 등장한 마자파힛 제국은 말레이 반도와 말레이 제도 일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ref>{{서적 인용|author=S. Suporno|year=1979|chapter=The Image of Majapahit in late Javanese and Indonesian Writing|title=Perceptions of the Past|location=Singapore|publisher=Heinemann Books for the Asian Studies Association of Australia|page=180|editor=A. Reid and D. Marr|series=Southeast Asia publications|volume=4}}</ref> 14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소개하면서<ref name="mtpb.co.kr">{{웹 인용 |url=http://www.mtpb.co.kr/About/history.asp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1-06-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16035101/http://www.mtpb.co.kr/About/history.asp |보존날짜=2010-12-16 |깨진링크=예 }}</ref>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ref name="state.gov"/>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는 시초가 되었다. 15세기 초 구 스리비자야 제국의 왕자였던 파라메스와라가 지금의 말라카 지역에 말레이 반도 최초의 독립 국가로 간주되는 말라카 술탄국을 건설했다.<ref name="BBCchinesediaspora">{{뉴스 인용|first=Jonathan |last=Kent |title=Chinese diaspora: Malaysia |date=3 March 2005 |url=http://news.bbc.co.uk/2/hi/asia-pacific/4308241.stm |publisher=BBC News |accessdate=21 September 2010}}</ref> 지리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말라카는 당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써 매우 크게 번영했다.
 
 
=== 식민통치 시절 ===
 
{{참조|포르투갈령 말라카}}
 
{{참조|네덜란드령 동인도}}
 
{{참조|영국령 말라카}}
 
{{참조|해협 식민지}}
 
{{참조|영국령 보르네오}}
 
[[파일:Malacca Dutch Christ Church.jpeg|섬네일|왼쪽|alt=Dutch architectures|[[스타튀]]는 1650년 [[네덜란드의 건축물|네덜란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이 번영의 말라카도 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과 함께 몰락했다.<ref name="state.gov"/> 포르투갈이 침공한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권을 확장하는 한편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말라카 주민들은 포르투갈의 통치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1641년 이 지역을 노린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포르투갈의 지배도 끝이 났다. 이어 네덜란드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나, 1786년 [[크다 주|크다]]의 술탄이 [[풀라우피낭 주|피낭]]을 영국령 동인도 회사에 양도하면서 대영제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819년 [[싱가포르]]를 획득했고,<ref>{{웹 인용|url=http://www.britishempire.co.uk/maproom/malaya.htm |title=The Map Room: South East Asia: Malaya |last=Luscombe |first=Stephen |accessdate=18 September 2010}}</ref> 이후 기존에 말라야를 지배하던 네덜란드와 마찰이 발생하자 1824년 영국-네덜란드 협정을 맺어 세력범위를 확정했다. 이 협정에 따라 영국은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해서 북부는 영국이, 남부는 네덜란드가 지배하도록 했는데 말라카는 영국이 가져가는 대신 자신들이 지배하던 벤쿨렌(방카훌루)을 네덜란드에 양도했다. 이후 영국의 세력범위는 영국령 말라야라 하여 오늘날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되었고 네덜란드의 세력범위는 네덜란드령 인도라 하여 오늘날의 인도네시아가 되었다.
 
 
1826년 영국은 피낭, 말라카, 싱가포르, 라부안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직할식민지의 일종인 해협 식민지를 건설했다. 20세기 무렵 [[파항 주|파항]], [[슬랑오르 주|슬랑오르]], [[페락 주|페락]], [[느그리슴빌란 주|느그리슴빌란]]으로 구성된 연합 말레이 주에 영국이 눌러앉기 시작했는데 각 주의 말레이 지도자들이 자신들과의 협정을 거부할 것이 확실해지자 그들을 조언해 영국 지도부를 임명하게 했다.<ref>{{웹 인용|url=http://www.archive.org/stream/encyclopaediabri17chisrich#page/478/mode/2up |title=The Encyclopædia Britannica : a dictionary of arts, sciences, literature and general information |work=Encyclopædia Britannica |accessdate=17 October 2010}}</ref> 나머지 5개 주는 비연합 말레이 주라 하여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는데 20세기 영국인 조언자가 있게끔 전환되었다. 19세기까지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의 발전은 대개 큰 관련이 없었다. 영국은 지배 기간 동안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된 노동자들의 이민을 장려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une.edu.au/asiacentre/PDF/No22.pdf |title=International Migration and Governance in Malaysia: Policy and Performance |last=Kuar |first=Amarjit |publisher=University of New England |accessdate=20 December 201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509145612/http://www.une.edu.au/asiacentre/PDF/No22.pdf |보존날짜=2010-05-09 |깨진링크=예 }}</ref>
 
 
현재 [[사바주]]에 해당되는 지역은 1877년부터 1878년 사이 브루나이와 술루의 술탄이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면서 영국령 북보르네오가 되었다.<ref name="mtpb.co.kr"/><ref>{{서적 인용|title=Malaysia and Its Neighbours, The World studies series|author=J. M. Gullick|url=http://books.google.com/?id=ykM9AAAAIAAJ&pg=PA148|year=1967|publisher=Taylor & Francis|location=|isbn=978-0-7100-4141-8|pages=148–149}}</ref> 지금의 [[사라왁주]]에 해당되는 지역은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1842년 브루나이 술탄으로부터 양도받은 뒤 사라왁 왕국이 되었으며, 1946년 직할식민지로 개편될 때까지 백인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www.britishempire.co.uk/maproom/sarawak.htm |last=Luscombe |first=Stephen |title=The Map Room: South East Asia: North Borneo |accessdate=1 July 2011}}</ref>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말라야, 북보르네오, 사라왁, 싱가포르를 점령했으며, 1945년 항복할 때까지 3년간 통치했다. 비록 3년으로 말레이시아를 지배한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짧게 통치했지만, 더 잔인했으며, 특히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일본은 이 지역의 중국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중국인뿐 아니라 청년들은 [[태국]]을 거쳐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철로를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막노동에 영양 실조 등으로 희생되어 이 철로는 '죽음의 철로'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으며 식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음으로써 경제난에 시달렸다. 이 무렵 공산주의자들의 산악전이 시작되었고, 한편으로는 인종적 긴장 상태 및 민족주의가 성장하였다.<ref>{{서적 인용|last = Hock|first = David Koh Wee|title = Legacies of World War II in South and East Asia|publisher =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Singapore|year = 2007|page = 48|url = https://www.google.com/books?id=awLp4TeUkzo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doi =|id =|isbn = 978-981-230-457-5}}</ref> 민중의 항의가 이어졌으며,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영국이 재점령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ime.com/time/asia/asia/magazine/1999/990531/mahathir1.html |title=Our Region, Ourselves |author=Mahathir Mohamad |work=Time |date=31 May 1999 |accessdate=26 October 2010}}</ref> 이에 민족주의가 더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독립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 말라야 연합에서 독립까지 ===
 
{{참조|말라야 연합}}
 
{{참조|말라야 연방}}
 
영국의 재점령 이후 영국은 1946년 싱가포르를 제외한 영국령 말라야 지역에 직할 식민지인 말라야 연합을 건설했다. 말라야 연합의 이민법은 출생지주의(jus soli)를 강조했는데, 이 이민법에 따라 말레이인 또는 말라야 연합 및 싱가포르 출신자들은 자동으로 시민권이 주어지며, 중국인(명나라, 청나라 출신) 및 인도인(영국령 인도 출신) 등 외족도 1942년 2월 15일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으면 시민권이 주어졌다. 이민법은 모든 민족에게 평등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던 말레이인들은 이 결과로 외국인들의 힘이 세져 자신들의 지위가 더 추락할까봐 두려움을 느꼈으며, 말레이인들의 상징이었던 술탄제를 폐지함으로써 말레이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되었다. 결국 말라야 연합은 해체되었고, 대신 1948년 말라야 연방이 결성되었다. 이후 말레이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이 시작되는 가 하면 영국의 보호 아래 말레이 주의 지도자들의 자주성을 회복시켰다.<ref>{{뉴스 인용|url=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816440,00.html |title=MALAYA: Token Citizenship |work=Time |date=19 May 1952 |accessdate=26 October 2010}}</ref> 이 무렵 말라야 공산당(PKM) 소속 중국계 게릴라들이 영국을 자국에서 축출하는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동년 말라야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영국 연방 국가들의 병력을 동원해 이들을 진압하였다. 비상사태는 독립 후인 1960년까지 지속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e-asia.commemoration.gov.au/background-to-malayan-emergency/causes-and-description.php |title=The Malayan Emergency: 1948–1960 |publisher=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Veteran Affairs |accessdate=1 July 2011}}</ref> 말라야의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져 1955년 총선이 실시되었고, 이어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 현대의 역사 ===
 
[[파일:Sabah during the formation of Malaysia (16 September 1963).jpg|섬네일|오른쪽|1963년 9월 16일 [[툰 푸아드 스테픈스]](좌)가 당시 [[말라야 연방]]의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우)과 [[무스타파 하룬]](우측 두번째)과 함께 제셀턴의 파당 머르데카에서 말레이시아의 탄생을 선언했다.]]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지도자였던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 초대 총리가 되었으며, 느그리슴빌란 주의 최고지도자(Yang di-Pertuan Besar; 종종 '술탄'으로 간주됨)였던 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이 초대 국왕이 되었다. 말라야 인들의 소원이었던 독립을 쟁취했으나, 갈 길은 멀고 험난했다. 나라 안은 말레이인과 중국인 등 민족간의 갈등이 심했고, 말라야 연방 홀로는 국제 사회에 나설 수 없었다. 또한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될 만한 자원이 부족했고, 원주민의 수가 부족하여 말레이인들을 우대하는 데 크게 불리했다. 마침 영국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사바 주|북보르네오]], [[사라왁 주|사라왁]], [[싱가포르]], [[브루나이]]에서도 독립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말라야 연방 정부는 이 지역에 자국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당초 브루나이가 먼저 동의함으로써 1961년 말라야 연방의 가입했으나, 석유라는 최고의 경제적 조건을 갖춘 브루나이는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쇠퇴할 것을 우려, 1년만에 탈퇴했다. 한편 북보르네오(사바), 사라왁, 싱가포르는 당초 이를 고사했으나, 싱가포르가 가입을 결정했고, 싱가포르와 깊은 인연이 있던 북보르네오와 사라왁도 가입을 결정했다. [[1963년]] 세 나라 모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9월 16일]]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을 성립하였다.<ref>
 
<gallery widths="160px" heights="250px" caption="관련 문서들">
 
파일:Malaysia Act 1963.pdf|말레이시아 법안 1963
 
파일:Agreement Relating to Malaysia between UK, N. Borneo, Sarawak and Singapore.djvu|영어 텍스트 말레이시아 관계 계약
 
</gallery>
 
</ref>
 
 
=== 말레이시아 ===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가 말레이시아를 결성했다. 2년 뒤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현재의 말레이시아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 회원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 압둘 라만 1차 내각 ====
 
[[파일:Tunku abd rahman.jpg|180px|섬네일|왼쪽|[[툰쿠 압둘 라만]]]]
 
1957년 독립한 말라야 연방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툰쿠 압둘 라만은 말라야 연방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싱가포르, 사라왁, 북보르네오(사바)에 자국 가입을 요청했다. 이리하여 1963년 9월 16일 지금의 말레이시아가 출범했고, 그는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라만 정부는 지배계층이며, 말레이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들을 우대했다. 이는 낮은 경제수준으로 사회에서 밀릴 걸 우려한 말레이인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들이 다수를 점한 싱가포르 주의 반발을 가져왔다.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중국인도 말레이 원주민과 같은, 엄연한 부미푸트라이다"라고 주장했으며,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강조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전체를 두고 보면,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결과 싱가포르 주정부와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 간의 마찰이 빚어졌다.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고, 양측 간의 골이 깊어지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며 자국에서 추방키로 했다. 1965년 싱가포르 정부는 말레이시아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8월 9일 말레이시아에서 완전히 독립했다(싱가포르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은 독립이다).<ref name="singapura" />
 
 
라만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말레이시아는 출범 이후 국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1967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5개국이 가입한 ASEAN의 결성을 실현하였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추앙받았으나, 인종 대립이 심해져 1969년 5월 13일 대폭동으로 이어졌다(일명 5·13 사건).<ref name="operasilalang" /> 동년 총선에서 집권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많은 의석을 잃었고, 국민들은 물론 당 내에서도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만은 계엄령을 선포해,<ref name="operasilalang" /> 철권을 휘두르는 등 독재자로 변모했다.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졌으며, 1970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부총리였던 압둘 라자크 후세인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 압둘 라작 2차 내각 ====
 
[[파일:Tun Abdul Razak (MY 2nd PM).jpg|120px|섬네일|오른쪽|[[압둘 라자크 후세인]]]]
 
1970년 신임 총리에 취임한 압둘 라작은 집권 후 사회의 안정을 목적으로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했으며,<ref name="razakhussein">{{웹 인용 |url=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4876|제목= 말레이시아, 또다시 '빼앗긴' 정권교체|저자= 웡칭홧|날짜= 2013-06-14|웹사이트= 프레시안|출판사= |확인날짜= 2015-03-12}}</ref> 반대파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민주적인 정치 참여가 인종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며 말레이시아를 비정치화했고,<ref name="razakhussein" /> "평화를 원한다면 BN"을 택해라" 등으로 국민들을 위협하고 중국인들의 시위를 비합법화했다.<ref name="razakhussein" /> 라작 정부는 기존의 말레이인 우대 정책으로는 실효가 없다고 판단, 이른바 '부미푸트라 정책'을 작성했는데 이에 따라 말레이인들을 우대하고 외국인들의 이민을 제한하여 현재 말레이시아의 폐쇄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모습을 구축했다. 말레이인들과 무슬림들은 정치적으로 우대를 받는 가 하면, 인종 분쟁을 해소하려 했으나 오히려 조장해,<ref name="razakhussein" /> 현재 중국인들이 말레이인에 대한 반감을 갖는 요인이 되었다. 라작 정부는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현에 옮기고자 했으나, 1976년 1월 14일 라작이 급서하면서<ref>{{뉴스 인용 |제목 = 라자크 말聯首相別世 享年53歲···英서白血病으로 後任에 후세인就任|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6011500209201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6-01-15&officeId=00020&pageNo=1&printNo=16702&publishType=00020|출판사 = 동아일보|날짜 = 1976-01-15}}</ref> 무산되고 만다. 부총리 후세인 온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 후세인 온 내각 ====
 
[[파일:Tun Hussein Onn (MY 3rd PM).jpg|120px|섬네일|왼쪽|[[후세인 온]]]]
 
라작의 뒤를 이은 후세인 온은 라작이 두고 간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현에 옮겼으며, 이에 따라 말레이인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외국인들의 유입을 차단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정치적 단결을 강조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고,<ref name="husseinonn">{{웹 인용 |url = http://www.pmo.gov.my/?menu=page&page=1644|제목 = Tun Hussein Onn|저자 = |날짜 = |확인날짜 = 2012-06-01}}</ref> 1981년 4월 20일 통합국민신뢰계획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인종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후세인 온은 부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와 종종 마찰을 빚었으며, 마하티르의 도움을 받아 이뤄낸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후세인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었으며, 7월 17일 총리직을 사임<ref name="husseinonn" /> 함에 따라 마하티르가 총리직을 승계했다.
 
 
==== 마하티르 모하마드 내각 ====
 
[[파일:Asia Pacific Young Business Conference & Trade 2010 (cropped).jpg|180px|섬네일|오른쪽|[[마하티르 빈 모하맛]]]]
 
1981년 7월 17일 새 총리로 임명된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대대적인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다.<ref name="Kuala Lumpur 1982, p. 228">{{저널 인용 | 저자 =Kit G. Machado | 연도 = 1987 | 월 = 6 | 제목 = Malaysian Cultural Relations with Japan and South Korea in the 1980s: Looking East | 저널 = Asian Survey | 권 = 27 | 호 = 6 | 쪽 = 638 | doi = 10.1525/as.1987.27.6.01p00645 |언어=영어 | 인용문 = The prime minister, Datuk Seri Mahathir bin Mohamad, urges Malaysians to look to both Japan and South Korea "for inspiration, methods, and skills" and "to emulate and learn ... [their] work ethics and attitudes" in order to further the country's economic progress.<sup>1</sup> ... 1. Address at the 5th ASEAN-Japan Symposium in Kuala Lumpur, August 24, 1982, in ''Foreign Affairs Malaysia'' (hereinafter ''FAM''), 15:3 (September 1982), p. 228. }}</ref> 기존 잔인과 독재로 얼룩진 통치에서 벗어나 부분적인 유화조치를 펼쳤는데, 일례로 국가보안법 수감자 21명을 석방했다.<ref name="Wain 40">{{Harvnb|Wain|2010|p=40}}</ref> 집권세력의 확장을 위해 ABIM의 지도자였던 안와르 이브라힘을 UMNO로 편입시켰으며,<ref>하기와라 (1996) pp.168-195</ref> 이듬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ref>{{Harvnb|Milne & Mauzy|1999|p=28}}</ref><ref>{{Harvnb|Sankaran & Hamdan|1988|pp=18–20}}</ref> 각 주의 지도자인 술탄 간의 대립을 완화시켰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현재 말레이시아가 산업대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종 분쟁을 줄이기 위해 부미푸트라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방식으로 인종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1990년대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인구 과밀화를 막고 분산시키기 위해 수도 천도 정책을 펼쳐, 행정 수도인 푸트라자야가 새로 설치되었다.
 
 
이처럼 국가를 위해 노력한 지도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전직 총리보다도 더 강력한 독재정치를 펼쳐 재야인사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인종간의 갈등을 해소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말레이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교에서 멀쩡히 다니고 있던 비말레이인 학생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퇴학시키는 한편 비말레이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예를 들어, 말레이인은 적정 선 한에서 정부를 비판할 수 있었지만, 중국인은 조금의 비판도 할 수 없었으며, 반대자들은 가차없이 구속, 수감되었으며 심문과 고문, 심하면 사형도 잇따랐다. 1987년 한 중국계 초등학교에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임명되자 이에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잇따랐는데, 이 때 야당 인사, 시민활동가 등 총 106명이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수감된 사건이 있었다.<ref name="operasilalang" /> 집권 UMNO 내의 부정경선도 있었으며,<ref name="operasilalang" /> 이 때문에 1988년 위헌정당으로 해산되었다가 新UMNO를 창당하기도 했다.<ref name="operasilalang" /> 1998년 부총리 안와르 이브라힘을 동성애 혐의로 파면했는데 이 역시 정부가 꾸며낸 자작극이라며 비판받는다. 동년 APEC 정상회의 차 해외의 정상들이 입국했을 때 인권 문제가 노출되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ref name="apec">{{웹 인용 |url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1773989_6202.html|제목 = 말레이시아 인권, 경제, 언론 문제점 모두 노출[최창영]|저자 = MBC뉴스데스크|날짜 = 1998-11-16|확인날짜 = 2013-05-01}}</ref> 2003년 경제 발전의 또다른 일원으로 중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을 영어로 전환했으며, 동년 10월 31일 22년의 장기집권을 마치고 퇴임했다.
 
 
==== 압둘라 바다위 내각 ====
 
[[파일:AB April 2008.jpg|120px|섬네일|왼쪽|[[압둘라 바다위]]]]
 
2003년 10월 31일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마하티르의 독재정치에 대한 유화조치를 펼치면서도, 부미푸트라 정책 등 기존의 정책들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재직 중 초등 교육을 무상·의무화 하여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 결과 말레이시아인의 문해율과 교육률은 크게 향상되었다. 이 결과로 '인적자원 개발의 아버지'로 호칭되었다. 그는 민족의 단결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펼쳤으나, 여전히 말레이인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사회의 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져 민주화라는 큰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편 2008년 마하티르 정권 시절 투옥된 안와르 이브라힘의 집행유예기간이 만료되면서 UMNO의 지지도가 야권으로 이탈하는 결과가 벌어졌다. 그 결과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개헌저지선을 초과하면서 UMNO의 패배를 가져왔고, 당 내에서 나온 사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2009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 나집 라작 내각 ====
 
[[파일:Najib Razak 2008-08-21.jpg|180px|섬네일|오른쪽|[[나집 라작]]]]
 
2009년 4월 3일 나집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제2대 총리 압둘 라작의 아들이며, 유력 정치 가문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취임 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는데, 예를 들어 말레이인들을 지나치게 우대했던 부미푸트라 정책의 완화를 추진해 외국인들에게 지나쳤던 차별을 대폭으로 완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정책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며, 종종 민주화 시위에 직면해오고 있다. 부정 선거 관행을 고치고 있지 않아, 2013년 총선에서 야권이 더 많은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와 게리맨더링으로 UMNO의 재집권을 이끌었다. 한편 완화를 추진하던 부미푸트라 정책을 다시 강화해 더 강력한 인종차별과 이민제한을 추진하고 있으며, '악법'으로 꼽혀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대신 새로운 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선동처벌법 강화 등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 그는 말레이시아를 UMNO의 일당독재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2015년 국영기업 1MDB와 연계된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야권 인사들과 국민들의 큰 저항에 맞부딪치고 있으며, 8월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 단체 버르시 4.0 등의 시위 등, 나집 정부는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마하티르 전 총리가 동참하는 등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7월 1MDB 스캔들에 관해 해명을 요구한 관계로, 무히딘 야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압둘 가니 파타일 검찰총장 등 일부 공무원들이 경질되었다.
 
 
== 정치 ==
 
{{참조|말레이시아의 정치}}
 
말레이시아는 연방제 국가이며, 선거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나라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정치 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와 유사한데, 이는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다.<ref name="FITA">{{웹 인용|url=http://www.fita.org/countries/malaysia.html?ma_rubrique=cadre |title=Malaysia Information |publisher=Federation of International Trade Associations |accessdate=27 October 2010}}</ref> 국가 원수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인데, 흔히 왕으로 부른다. 왕의 임기는 5년이며, 피낭, 믈라카, 사바, 사라왁을 제외한 9개 각 [[주 (행정 구역)|주]]의 [[술탄]](Sultan) 중에서 교대로 선출된다.<ref name="FITA"/> 현재의 왕은 2016년에 선출된 [[클란탄주]]의 무하마드 5세이다. 왕은 총리와 내각을 임명할 권리와 군대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통솔권 등을 갖는다. 1994년 헌법 개정 이후 왕은 대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ref name="dfat">{{웹 인용|url=http://www.dfat.gov.au/geo/malaysia/malaysia_brief.html |title=Malaysia country brief |publisher=Australian Government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date=February 2014 |accessdate=22 October 2014}}</ref>
 
 
인종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되며, 많은 정당들이 인종주의를 추구하고 있다.<ref name="state.gov"/> 신경제정책 또는 대체된 국가개발정책<ref name="New Economic Policy">{{웹 인용|author=Sundaram, Jomo Kwame |url=http://www.unrisd.org/80256B3C005BCCF9/(httpPublications)/A20E9AD6E5BA919780256B6D0057896B?OpenDocument&panel=seriespapers |title=The New Economic Policy and Interethnic Relations in Malaysia |publisher=UNRISD |date=1 September 2004 |accessdate=27 October 2010}}</ref> 등 확정적인 정책들이 부미푸트라(말레이인 또는 말레이시아 내 원주민/토착민)를 화족이나 인족 등 비부미푸트라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려놓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ref>{{웹 인용|url=http://pmr.penerangan.gov.my/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237:dasar-ekonomi-baru-&catid=88:dasar-dasar-negara |title=Dasar Ekonomi Baru |publisher=Pusat Maklumat Rakyat |date=14 November 2008 |accessdate=21 November 2010}}</ref> 이 정책에 따라 부미푸트라는 고용, 교육, 학사, 사업은 물론 값싼 집을 구매하거나 지원받는 데 있어 우선권을 갖는다.<ref>{{웹 인용|url=http://www.unrisd.org/unrisd/website/document.nsf/(httpPublications)/A20E9AD6E5BA919780256B6D0057896B?OpenDocument |title=The New Economic Policy and Interethnic Relations in Malaysia |author=Jomo Kwame Sundaram |publisher=United Nations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date=1 September 2004 |issn=1020 8194 |accessdate=22 August 2011}}</ref> 이 때문에 비부미푸트라 및 외국인들의 반발이 심하며, 일각에서는 이를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동급으로 취급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법과 사회가 세속주의를 추구해야 하느냐, 아니면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nytimes.com/2006/08/24/world/asia/24malaysia.html |title=Once Muslim, Now Christian and Caught in the Courts |work=New York Times |last=Perlez |first=Jane |date=24 August 2006 |accessdate=22 August 2011}}</ref> 일례로 1993년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는 이슬람 과격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을 주도로 하는 클란탄 주의회가 통과시킨 형사법의 시행을 금지한 적이 있으며,<ref>{{웹 인용 |url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202708|제목 = <말聯 이슬람당, 고대 아랍법따른 혹독한 형법안 제출>|저자 = 연합뉴스|날짜 = 2002-07-08|확인날짜 = 2015-01-22}}</ref> 연방 정부는 형사법은 연방 정부의 권한임을 밝혔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imonbaker.me/2/hi/asia-pacific/2116032.stm |title=Malaysian state passes Islamic law |work=BBC News |date=8 July 2002 |accessdate=27 November 2011}}</ref>
 
 
=== 입법부 ===
 
[[파일:MalaysianParliament.jpg|200px|섬네일|오른쪽|말레이시아의 의회]]
 
의회는 연방의회와 주의회로 나뉜다. 양원제로 상원([[원로원 (말레이시아)|원로원]])과 하원([[대의원 (말레이시아)|대의원]])이 존재한다.<ref>{{웹 인용|url=http://www.parlimen.gov.my/index.php?modload=sites&action=innerpage&id=5&view=23&uweb=p&lang=en |title=Background |publisher=Parlimen Malaysia |date=3 June 2010 |accessdate=25 July 2011}}</ref> 현재 국회의원은 총 222명이고, 최대 5년 임기를 갖는다. 상원의원 70명은 3년 임기를 갖으며, 그 중 26명은 13개의 주의회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44명은 총리의 제안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다.<ref name="state.gov"/> 국회는 다당제를 기초로 하며, 소선거구제 형태로 선출한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독립한 직후 여러 개의 정당이 연합해 만든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이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ref name="state.gov">{{웹 인용|url=http://www.state.gov/r/pa/ei/bgn/2777.htm |title=Malaysia |publisher=United States State Department |date=14 July 2010 |accessdate=14 September 2010}}</ref>
 
 
각 주에는 단원제 성격의 주의회가 존재하며, 이 의원들은 단일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들이다. 주정부는 주수상이 지도하며,<ref name="state.gov"/> 주수상은 주의회 내 다수당 소속 의원이다. 각 주에는 세습형 지도자가 있는데, 주수상은 대개 말레이인이어야 하며 총리의 추천에 따라 지도자가 임명한다.<ref>{{서적 인용|title = The management of secondary cities in southeast Asia|publisher = United Nations Centre for Human Settlements|year = 1996|page = 120|url = http://books.google.com/?id=P-3155j7FLk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doi =|id =|isbn = 92-1-131313-9}}</ref> 하지만 꼭 말레이인인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사라왁의 초대 주수상 스테픈 칼롱 닝칸, 사바의 초대 주수상 툰 푸아드 스테픈스, 전 주수상 총카키엣 등 비말레이인들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총선거)는 5년 이내로 치러지며, 가장 최근에 치러진 총선은 2013년 5월에 있었다.<ref name="state.gov"/> 21세 이상의 등록된 유권자는 대의원 후보자들에게 투표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주에서는 주의회 의원들도 선출할 수 있다. 의무투표제를 시행하지 아니하며,<ref>{{웹 인용|url=http://www.ipu.org/parline/reports/2197.htm|title= Malaysia (Dewan Rakyat)|publisher=Inter-Parliamentary Union|date=29 September 2008}}</ref> 사라왁은 예외적으로 주 총선이 연방 총선과 동시에 치러지도록 하는 협약이 있지만 독자적인 주 총선도 치러진다.<ref name="dfat"/>
 
 
=== 행정부 ===
 
[[파일:Perdana Putra building 2005.jpg|섬네일|왼쪽|alt=Perdana Putra.|[[퍼르다나 푸트라]]는 [[말레이시아의 총리|총리]]의 업무단지 내에 있다.]]
 
행정부는 내각으로 구성되며, 총리가 주도한다. 총리는 대의원 의원이어야 하며, 국왕을 조언하고 의회 다수당을 지도한다. 내각 의원들은 원로원 의원과 대의원 의원 양측에서 선택될 수 있다.<ref name="state.gov"/> 총리는 내각의 수장이자 정부의 수장이다.<ref name="dfat"/> 현재 총리는 2009년에 임명된 제6대 나집 라작이다.<ref>{{웹 인용 |url=http://www.1malaysia.com.my/about/about-najib-razak/ |title=About Najib Razak |publisher=1Malaysia |accessdate=1 July 2011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630043228/http://www.1malaysia.com.my/about/about-najib-razak/ |보존날짜=2011-06-30 |깨진링크=예 }}</ref>
 
 
=== 사법부 ===
 
말레이시아의 법률 체계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유래했다.<ref name="state.gov"/> 이론적으로 사법부는 독립되어 있지만, 이 독립성은 판사의 임명 과정에서 낮은 책임성과 투명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ref>{{웹 인용|url=http://www.icj.org/IMG/MALAYSIA.pdf|archiveurl=https://www.webcitation.org/63ipMMsMN?url=http://www.icj.org/IMG/MALAYSIA.pdf|archivedate=2011-12-06|title=Attacks on Justice - Malaysia|publisher=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accessdate=5 December 2011|깨진링크=예}}</ref> 최고 법원은 연방 법원이며, 그 밑으로는 상소 법원과 대법원(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양측에 각각 하나씩 존재)이 있다. 또한 왕실에 반하는 행위를 처리하는 특별 법원이 있다.<ref name="criminal court system">{{웹 인용 |url=http://www.acclawyers.org/resources/malaysia/ |title=Malaysian criminal court system |publisher=Association of Commonwealth Criminal Lawyers |accessdate=15 December 2010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0515090557/http://www.acclawyers.org/resources/malaysia/ |보존날짜=2011-05-15 |깨진링크=예 }}</ref> 사형제는 살인, 테러, 마약밀매 등 중범죄자들을 처리하는 데 적용된다.<ref>{{웹 인용|url=https://www.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212428/13_05_31_DPP_Malaysia_report_FINAL_single_pages.pdf|title=The Death Penalty in Malaysia|publisher=[[Government of the United Kingdom]]|accessdate=15 October 2013}}</ref> 시민법원과 같지만 다른<ref>{{뉴스 인용|last=England |first=Vaudine |url=http://www.bbc.co.uk/news/10567857 |title=Malaysian groups welcome first Islamic women judges |work=BBC News |date=9 July 2010 |accessdate=27 September 2010}}</ref> 샤리아 법원이 존재하며, 샤리아 율법에 따라<ref>{{뉴스 인용|url=http://news.bbc.co.uk/2/hi/asia-pacific/6703155.stm |title=Malaysia rejects Christian appeal |work=BBC News |date=30 May 2007 |accessdate=27 September 2010}}</ref> 무슬림의 가족문제 또는 종교 관련 문제를 다룬다.
 
 
=== 정당 ===
 
{{참조|말레이시아의 정당}}
 
말레이시아의 정당들을 주로 단독으로 활동하지 않고 연합하여 활동한다. 이러한 정당연합은 선거뿐 아니라 국정을 총괄할 때도 유지된다. 대표적인 정당연합은 [[국민전선 (말레이시아)|국민전선]](Barisan Nasional)이며, 현재 집권연합이다. 국민전선에는 독립 후 쭉 집권하고 있는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말레이시아화교협회]](MCA), [[말레이시아인도인회의]](MIC) 등이 있으며, 이 3당은 단일민족 정당인데 UMNO는 말레이인, MCA는 중국인, MIC는 인도인, 특히 타밀인을 대변한다. 주요 야당으로는 [[인민정의당]](PKR), [[민주행동당]](DAP),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PAS가 이슬람 과격주의를 추구하는 것 외에 민족/종교주의적 성향은 없다. 다만 DAP는 중국인, PKR은 인도인의 성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가 처음부터 동일했던 건 아닌데, 한 예로 PAS는 한때 국민전선의 일원이었다가 축출된 뒤<ref>{{서적 인용|title=Islam in South-East Asia |last=Hooker |first=M. B. |authorlink= |year=1983 |publisher=Brill Archive |location=Boston |isbn=90-04-06844-9 |pages=203–204 }}</ref> 인민동맹의 일원으로 있었다. 국민전선은 부미푸트라, 특히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는데 반해, 야당은 논부미푸트라, 특히 중국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중국인을 대표하는 정당인 MCA나 인도인을 대표하는 MIC는 국민전선의 일원이다. 연합에 속하지 않은 정당들은 군소 정당들인데, 대표적으로는 민중운동의 성과인 [[사회당 (말레이시아)|사회당]](PSM), [[인민당 (말레이시아)|인민당]](PRM) 등이 있다. 동말레이시아, 특히 사라왁과 사바에는 각 주를 대표하는 정당들이 있는데, 그 예로 사바통일당(PBS), 사라왁인민당(PRS) 등이 있다. 이들은 대개 국민전선에 소속되어 있다. 공산주의를 금기하므로 공산당의 결성은 불법인데, 한때 존재했던 [[말라야공산당]](PKM), [[북칼리만탄공산당]](NKCP) 역시 불법이었다.
 
 
헌법상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사실상 국민전선, 특히 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이다.<ref name="razakhussein">{{웹 인용 |url=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4876|제목= 말레이시아, 또다시 '빼앗긴' 정권교체|저자= 웡칭홧|날짜= 2013-06-14|웹사이트= 프레시안|출판사= |확인날짜= 2015-03-12}}</ref> 집권연합인 국민전선은 철저한 부정선거 및 개리멘더링 선거구로 60년 가량 장기집권하고 있으며,<ref name="razakhussein"/>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 및 인권침해라는 결과를 낳았다.<ref name="razakhussein"/> 특히 22년간 장기집권한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집권 시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강도높은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했으며, 이 시기 정권을 비판한 비말레이계 청년들이 구속, 수감되었다. 2013년 총선에서 인민동맹이 더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조작 및 협박 등으로 국민전선의 승리를 이끌어,<ref name="razakhussein"/>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ref name="razakhussein"/> 실제로 말레이시아에는 야권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및 야권 소속 의원 티엔 추아 등을 구속, 수감 및 위협할 정도로 야권인사 및 야당에 대한 탄압이 매우 심각하며, 미국 등 서방의 비판을 종종 받는다. 사라왁, 사바에서는 특히 현지인을 대변하고 분리독립을 추진하려는 정당들이 심하게 탄압받는데, 일례로 1990년대 초반 PBS 소속 당원들이 대규모로 구속, 수감된 사건이 있었다. 사건 후 해당 정당들은 국민전선에서 축출되었으나, 현재 재가입했다.
 
 
정치적 갈등은 심하며, 야권 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특히 PAS의 이슬람 극단주의적 법안 관련 문제로 기존의 인민동맹이 해체되었으며, 기존에 남은 DAP와 PKR이 국가신뢰당(Amanah)과 함께 '희망전선(Pakatan Harapan; PH)'을 새로 결성했다.
 
 
== 행정 구역 ==
 
{{본문|말레이시아의 행정 구역}}
 
{| class="wikitable" style="float: right;"
 
|{{Malaysia Labelled Map}}
 
|}
 
말레이시아는 13개 주<ref name="isis" /> 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두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뉘는데 11개의 주와 2개의 연방 직할구가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있고 2개의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가 [[동말레이시아]]에 있다. 각 주는 시 또는 구역으로 나뉘며, 또다시 소구역(mukim)으로 나뉜다. 사바와 사라왁의 구역들은 분할에 따라 묶인다.<ref>{{웹 인용|url=http://www.statoids.com/ymy.html |title=Malaysia Districts |publisher=Statoids |accessdate=3 November 2010}}</ref>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던 당시 총 14개의 주만 있었으나,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당초 연방 직할구는 없었으나, 1974년 [[쿠알라룸푸르]]가 슬랑오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시작으로 생겼으며 이후 [[푸트라자야]]와 [[라부안]]이 신설되었다.
 
 
주의 관할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둘 다인데, 각각 다른 권한을 갖고 있으며 연방 직할구는 연방 정부가 직접 관할한다.<ref>{{웹 인용|url=http://mygov.malaysia.gov.my/EN/Main/MsianGov/StateGovAndFederalTerritories/Pages/StateGovAndFederalTerritories.aspx|title=Federal Territories and State Governments|publisher=Malaysian government|accessdate=15 October 2013|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2231636/http://mygov.malaysia.gov.my/EN/Main/MsianGov/StateGovAndFederalTerritories/Pages/StateGovAndFederalTerritories.aspx|보존날짜=2014-02-22|깨진링크=예}}</ref> 비록 자치법령의 몸체가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제정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지만, 시의회, 구의회, 지방의회 등 하위 관할은 각 지역이 맡는다.<ref>{{웹 인용|url=http://www.treasury.gov.my/pdf/lain-lain/msia_regime.pdf |title=Malaysia's government procurement regime |publisher=Ministry of Finance Malaysia |accessdate=19 February 2014}}</ref> 연방 헌법은 연방 직할구 외의 지역 관할을 각 주의 전담관할로 하지만,<ref>{{웹 인용|url=http://lib.kedah.uitm.edu.my/psblibrary/notes/am110/layout/subject%20material/handouts/dpa/PAD%20320/h1.pdf |title=Introduction to local government in Malaysia |publisher=Universiti Teknologi Mara |accessdate=19 February 2014}}</ref> 실제로는 연방 정부가 각 지역의 부의 내정에 간섭한다.<ref>{{웹 인용|url=http://epress.lib.uts.edu.au/journals/index.php/cjlg/article/viewFile/759/1032 |title=Decentralisation or recentralisation? Trends in local government in Malaysia |author=Phang Siew Nooi |publisher=Commonwealth Journal of Local Governance |date=May 2008 |accessdate=19 February 2014}}</ref> 총 144개의 지역의회가 있는데, 11개는 시의회, 33개는 지방의회, 97개는 구의회이다.<ref>{{웹 인용 |url=http://www.clgf.org.uk/userfiles/1/File/2008_Country_Files/MALAYSIA.pdf |title=Country profile:Malaysia |publisher=Commonwealth Local Government Forum |accessdate=19 February 2014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6175306/http://www.clgf.org.uk/userfiles/1/File/2008_Country_Files/MALAYSIA.pdf |보존날짜=2014-02-26 |깨진링크=예 }}</ref>
 
 
13개의 주 모두 역사 속의 말레이 왕조를 바탕으로 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주 11개 중 9개는 말레이 주(또는 이슬람 주)라 하여 고유의 왕실을 두고 있다. 국가원수인 양디-퍼르투안 아공(국왕)은 5년마다 이 9개의 주의 지도자(술탄)가 번갈아가며 선출한다.<ref name="state.gov"/> 이렇게 해서 선출된 왕은 군주제를 시행하지 않는 주에서 각 주수상과의 합의를 거쳐 4년간 업무를 수행할 정부 수반을 임명한다. 각 주에는 주의회로 알려진 단원제 의회가 존재하며, 나름의 주 헌법을 작성한다.<ref name="Lim Hong Hai">{{웹 인용|url=http://library.fes.de/pdf-files/iez/01361005.pdf |title=Electoral Politics in Malaysia: 'Managing' Elections in a Plural Society |author=Lim Hong Hai |accessdate=19 February 2014}}</ref> 사바와 사라왁은 다른 주에 비해 더 많은 자치권이 있는 주로 간주되며, 명백히 다른 이민법과 통치권, 독자적인 영주권 제도가 존재한다.<ref>{{서적 인용|author=Hurst Hannum|title=Basic Documents on Autonomy and Minority Rights|url=http://books.google.com/books?id=_oV3pKJfnvcC&pg=PA342|year=1993|publisher=Martinus Nijhoff Publishers|isbn=0-7923-1977-X|pages=342–}}</ref><ref>{{저널 인용|url=http://journals.cambridge.org/article_S0022463400016192|author=Craig A. Lockard|title=Sabah and Sarawak: The Politics of Development and Federalism. Kajian Malaysia, Special Issue. Edited by Francis Loh Kok Wah. Penang: Universiti Sains Malaysia, 1997. Pp. 236.|journal=[[Journal of Southeast Asian Studies]]|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volume=31|issue=1|date=March 2000|issn=1474-0680|pages=210–213|doi=10.1017/S0022463400016192}}</ref><ref>{{웹 인용|url=http://www.theborneopost.com/2011/09/16/an-agreement-forged-and-forgotten/|title=An agreement forged and forgotten|author=Karen Bong and Wilfred Pilo|publisher=[[The Borneo Post]]|date=16 September 2011|accessdate=3 July 2014}}</ref> 그런데, 최근 이 주는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 ===
 
* [[조호르 주|조호르]] (Johor)
 
* [[말라카 주|말라카]] (Melaka)
 
* [[느그리슴빌란 주|느그리슴빌란]] (Negeri Sembilan)
 
* [[슬랑오르 주|슬랑오르]] (Selangor)
 
* [[페락 주|페락]] (Perak)
 
* [[페낭 주|페낭]] (Pinang)
 
* [[크다 주|크다]] (Kedah)
 
* [[프를리스 주|프를리스]] (Perlis)
 
* [[클란탄 주|클란탄]] (Kelantan)
 
* [[파항 주|파항]] (Pahang)
 
* [[트렝가누 주|트렝가누]] (Terengganu)
 
** [[쿠알라룸푸르|쿠알라룸푸르 연방 직할구]] (Wilayah Persekutuan Kuala Lumpur)
 
** [[푸트라자야|푸트라자야 연방 직할구]] (Wilayah Persekutuan Putrajaya)
 
 
=== 동말레이시아 ===
 
* [[사라왁 주|사라왁]] (Sarawak)
 
* [[사바 주|사바]] (Sabah)
 
** [[라부안|라부안 연방 직할구]] (Wilayah Persekutuan Labuan)
 
 
== 대외 관계 ==
 
{{참조|말레이시아의 대외 관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사바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 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2003년 [[브루나이]]와 분쟁 중인 대륙붕 지역에서 가스 및 석유 채굴작업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ref>문정인 외,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연세대학교출판부(2006) 505쪽</ref> 과거 [[싱가포르]]가 탈퇴하기 전에는 [[인도네시아]]와 리아우 제도를 두고 영토 분쟁을 벌였으며, 후에 싱가포르의 탈퇴로 싱가포르와 그리 좋지 않은 관계에 놓여 있다.<ref name="singapura" /> 한때 싱가포르의 조호르 해협 매립 관건으로 양국 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ref name="singapura" />
 
 
 
=== 대 태국 관계 ===
 
[[라마 1세]](재위 1782년 - 1809년)는 태국 세력을 크게 확장해 말레이 반도의 클란탄까지 지배하였다. 그러나 곧 영국이 들어오고 영국과 협상을 하여 경계를 확정하는데 이 때 퍼를리스, 크다흐, 클란탄, 트렝가누는 영국령으로, 파타니, 나라티왓, 얄라, 사툰은 태국으로 편입되게 했다.
 
 
=== 대 싱가포르 관계 ===
 
[[싱가포르]]는 1963년 [[사바 주|사바]], [[사라왁 주|사라왁]]과 함께 신설 말레이시아에 가입했으며, 당시에는 '''싱가포르 주'''({{llang|ms|Negeri Singapura}})라는 말레이시아의 한 주였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말레이시아 정부와 적지 않은 마찰을 빚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인종 문제였다. 싱가포르만 따지고 보면 인구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지만, 말레이시아 전체에서는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내세워, 말레이인을 우대하고 편애했던 툰쿠 압둘 라만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를 비판했다.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고, 이후 적지 않은 마찰이 빚어지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실상 싱가포르를 축출했다(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의 압력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자발적으로 탈퇴한 것이었다).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독립했다.<ref name="singapura" />
 
 
양국은 한편으로는 교류도 하면서 어느 정도 괜찮은 관계를 보이는 듯 했으나, 실제로 그 안에는 씻기 어려운 앙금이 있었으며, 심지어 2002년 당시에는 양국 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조차 있었다.<ref name="singapura" /> 싱가포르는 영토가 너무 작아 간척사업을 통해 영토를 인위적으로 늘렸는데, 이 과정에서 양국의 국경이 되는 조호르 해협에 대한 매립을 논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ref name="singapura" /> 당시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가 조호르 해협을 매립하여 각국 선박들의 말레이시아의 탄중플르파스 항 이용을 방해하려 한다고 비난했다.<ref name="singapura" />
 
 
양국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주변국이나, 싱가포르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가입한 사바, 사라왁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리아우 제도(인도네시아가 지배 중) 일대를 두고 분쟁을 일으켰던 것이 싱가포르가 탈퇴하면서, 이 분쟁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로 바뀌었다. 또 다른 관건은 사바, 사라왁을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당시 사바의 지도자였던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우리 사바는 싱가포르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가입했다"며 "그러나 싱가포르가 나갔으니, 우리가 왜 말라야와 함께 해야 하는가?"라며 사실상 말레이시아 조약의 무효를 선언했다. 그들의 주장은 즉슨, 그들도 싱가포르처럼 독립했음을 선언한 바였다. 하지만 독립은 승인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말레이시아로 남아있는 과정에서 사바 인에 대한 탄압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일부 사바 인들은 "사바와 사라왁이 말레이시아를 떠나다(SSKM)" 등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해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실제로 말레이시아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문제처럼 사바의 독립을 허락할 지는 큰 의문이다.
 
 
=== 대 인도네시아 관계 ===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문화적, 민족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두 나라 다 말레이인, 또는 말레이 계열의 민족들이 대부분이며 언어도 말레이어를 사용하지만, 서구 열강들의 분단으로 인해 서로 다른 생각과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다. 말라야가 1957년 독립한 이후 수하르토는 위대한 인도네시아(Indonesia Raja; 말레이시아에서는 '위대한 말라야'라는 뜻으로 'Melayu Raya')를 주장하며 말라야와 함께 대(大)말레이 국가의 건설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파열음이 생겼고, 말라야가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를 합병한 뒤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려 하자 관계가 틀어져, 결국 위대한 인도네시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에 인도네시아는 사바를 무력으로 합병하였고, 이에 말레이시아가 군을 보내 사바를 되찾았다. 1960년대 양국간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으며, 1965년 1월 1일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으로 선임된데 대하여 항의의 표시로 유엔을 탈퇴한 일도 있었다.<ref>{{뉴스 인용 |url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5010400209201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5-01-04&officeId=00020&pageNo=1&printNo=13291&publishType=00020 |제목= 印尼, 유엔서 脫退 創設以來 처음 |출판사= [[동아일보]] | 날짜 = 1965-01-04 |쪽=1}}</ref>
 
 
그 후 영토분쟁 등 모든 것이 그나마 해결됐지만, 현재도 양국간의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 배척 및 탄압이 심한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강제추방, 심문, 고문, 심지어는 강제처형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큰 비난을 받고 있다. 2014년 12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국에 불법체류 중인 인도네시아인 7만명을 추방시켜, 인도네시아 측의 비난을 받았다.<ref name="indon">{{웹 인용 |url=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28737&plink=ORI&cooper=NAVER|제목= "말레이, 인도네시아 불법체류 근로자 7만 명 추방"|저자= 장선이|날짜= 2014-12-10|웹사이트= SBS뉴스|출판사= |확인날짜= 2015-03-02}}</ref> 최근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를 방문했으며, 조코위는 자국 여성들의 해외 가정부 취업을 즉각 중단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ref name="jokowi">{{웹 인용 |url=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2/16/0200000000AKR20150216088400076.HTML?input=1195m|제목= 조코위 "인도네시아 여성 해외가정부 취업 금지 방침"|저자= 현경숙|날짜= 2015-02-16|웹사이트= 연합뉴스|출판사= |확인날짜= 2015-03-02}}</ref>
 
 
=== 대 러시아 관계 ===
 
[[러시아]]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무역상대국이며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하는 나라이지만, 피격사건의 영향으로 반러감정이 심각해지고 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3&aid=0005973801 말레이시아, 반러시아 감정 심화]</ref>
 
 
== 국방 ==
 
 
 
< 말레이시아 국가 기본 정보 >
 
 
7장: 군사
 
 
 
 
말레이시아군
 
상비군
 
254,000 명
 
예비군
 
640,200명
 
전차
 
274 대
 
장갑차(APCs/IFVs)
 
1000 대
 
견인포
 
104 문
 
자주포
 
30 대
 
MLRS
 
36 대
 
수송 차량
 
3,200 대
 
헬리콥터
 
105 기
 
공군기 총합
 
300 기
 
항공모함
 
0 척
 
GFP 기준 구축함
 
3척
 
GFP 기준 호위함
 
6척
 
초계함
 
40 척
 
잠수함
 
12 척
 
전투함 총합
 
70 척
 
 
 
 
 
---------------
 
동남아에서 그런대로 양질의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이다. 말레이시아도 남중국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는 중이다. 말레이시아 해군은 12척의 재래식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 고윈드급을 도입함으로써 수상함 전력을 대폭 증강할 예정이다.최근 미국으로부터 M109A6 팔라딘 자주포를 공여받았다.
 
 
 
육군
 
 
 
 
36 보병 대대
 
4 공수 보병 대대
 
3 개 기계화 보병 대대
 
2개 기갑사단 (1 개의 탱크 대대)
 
1 개 경전차  중대
 
13 포병 연대 (3 기갑)
 
3 특수 부대 연대
 
3 명의 엔지니어 기술 연대
 
1 공수대대
 
1 개 공병연대
 
4 개 군 경찰 연대
 
1 신호 연대
 
1 정보 부
 
1 개의 헬리콥터 비행 중대
 
2개 공수사단
 
        16 보병 사단
 
 
2개 국경 방어 사단
 
5 개의 고속도로 감시 대대
 
2 개 공병 중대
 
1개 기계화사단
 
1개 보병사단
 
2개 포병사단 ( 1개 기갑연대)
 
 
현재 공수부대와 기갑부대를 계속해서 증강시키는 중이다
 
해군
 
 
 
 
 
 
 
 
꽤 강력한 해상전력을 보유 중인 말레이시아 해군. 인원은 총 4만여명
 
프랑스로 부터 계속해 함선을 도입중이고. 자체 함선 제작도 연구중에
 
있다.
 
 
 
공군
 
 
(말레이시아 공군기지 위치)
 
 
 
2 대대 - 글로벌 익스프레스, 보잉 BBJ (737-700), 수방 AFB
 
3 대대 - S-61A4A 누리, 버터 워스 공군 기지
 
10 함대 - Eurocopter EC-725, Kuantan AFB
 
11 함대 - Su-30MKM Flanker, 공 Kedak 공군 기지
 
12 비행 중대 - Northrop F-5E / F, RF-5E, (퇴역) Butterworth AFB
 
15 비행 중대 - BAE Hawk 108/208, Aermacchi MB-339CM, Butterworth AFB
 
16 함대 - 너도밤 나무 200T, 수방 공군 기지
 
18 대대 - 보잉 F / A-18D 호넷, 버터 워스 공군 기지
 
19 비행 중대 - MiG 29N / UB (예비), Kuantan AFB
 
20 중대 - 록히드 C-130H 헤라클레스, KC-130T 수방 공군 기지
 
22 대대 - 에어 버스 A400M, 수방 공군 기지
 
제 2 부문
 
1 대대 - CN-235-220M, 쿠친 AFB
 
5 대대 - Eurocopter EC-725, Labuan AFB
 
6 함대 - BAE Hawk 108 / Hawk 208, Labuan AFB
 
7 함대 - S-61A4A, 누리 쿠친 AFB
 
14 중대 - 록히드 C-130H 허큘리스, 라부안 AFB
 
교육부
 
1 FTC PC-7 Mk II, Alor Setar AFB
 
2 FTC EC-120B Alor, Setar AFB
 
3 FTC MB-339CM, 콴탄 AFB
 
 
주력 항공기
 
 
SU-30
 
MIG 29 
 
Boieing F/A-18 Hornet
 
BAE Hawk
 
 
인원은 총 12000명
 
 
== 경제 ==
 
주로 주석, 팜유, 석유를 생산.수출하며, [[제조업]]과 [[관광업]]을 주요 산업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 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8년 9월 초 환율을 고정시키는 조처와 함께 자본통제에 들어갔다. 자기나라 통화인 링깃화의 달러화 환전을 못하게 하고, 나라 밖에 있는 링깃화는 2달 안에 모두 국내로 갖고 들어오도록 하여, 외국에 그냥 놔 둔 링깃화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국내 증권을 산 외국인이 그 증권을 다시 팔려면 1년을 기다리도록 했다. 자본통제는 국내경제를 해외 금융·외환시장과 차단한 뒤 경기부양 정책을 펴기 위한 사전조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런 조처 뒤 통화량 확대공급, 금리인하, 공공지출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기부양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취해 나갔다.<ref>{{뉴스 인용|제목=대단한 말레이시아! |url=http://www.hani.co.kr/h21/data/L990712/1p5k7c0x.html |출판사=한겨레신문사 |저자=이주명 기자 |날짜=1999-07-22 |확인날짜=2010-05-05}}</ref>
 
 
IMF의 통계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2008년 국내총생산(GDP)은 2216.06억 달러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부터 고무의 플렌테이션과 주석의 채굴, 천연가스의 채굴 등 특정한 농작물과 광물의 생산이 번성하였으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총리가 내세웠던 "와와산 (말레이어로 비젼의 뜻) 2020"(비젼 2020, Vision 2020) 정책에 따라, 종래의 농작물과 광산물의 수출, 관광업에 의존하였던 체질로부터 탈피하여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의 정치.경제.문화 각 방면을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0년 6월,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위해인프라 프로젝트에 700억달러 규모의 자금 투입과 연 경제성장률 6% 달성 등을 핵심으로 하는 향후 5년간의 제10차 말레이시아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나지브 총리는 “말레이시아는 해외 투자자들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재능있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현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f>{{뉴스 인용 |url =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0399&idxno=325728 | 제목 = 말레이시아, 경제발전 박차 가한다 | 출판사 = 이투데이 |날짜 = 2010-06-11}}</ref>
 
 
=== 통화 ===
 
말레이시아의 통화 단위는 말레이시아 링깃(RM)으로, 1링깃은 약 325원 정도이다. 보조통화는 센(SEN)이라고 하며, 1링깃은 100센에 해당한다. 지폐는 100링깃, 50링깃, 20링깃, 10링깃, 5링깃, 1링깃의 6종류가 있고, 동전은 50센, 20센, 10센, 5센, 1센의 5종류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공항이나 시중 은행,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생수 500ml의 경우 약 1링깃(400원 정도), 택시의 기본 요금은 3링깃(1200원 정도)이다.<ref>http://www.mtpb.co.kr/Travel/Money.asp{{깨진 링크|url=http://www.mtpb.co.kr/Travel/Money.asp }}</ref>
 
 
=== 산업 ===
 
경제는 전적으로 농업, 광업 등 1·2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의 산업·무역|말레이시아의 산업·무역]]〉</ref>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 [[주석 (원소)|주석]], [[천연 고무]], [[팜유]] 생산국으로 1960년대 만 해도 주요수출품이 주석과 팜유였다. 이후 정부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국가 중 3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되었으며, 주요 산업도 [[관광업]]과 [[제조업]]으로 전환되었다. [[농업]]에 있어서는 주산물이 쌀, 고무, [[코프라]] 등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지만, 쌀 자급률이 30%에 불과해, 자급자족하지 않고 매년 다량의 쌀을 수입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개사업 실시, 벼의 품종 개량 등을 통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의 고무 생산국으로, 수출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합성고무의 발달, 고무 농원 노동자 등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말레이시아#농업|농업]]〉</ref> 그 외에도 열대과일 재배, 도시근교 채소, 원예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광업에서는 주석광(錫鑛)과 철광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 주석 생산국으로 주석광은 서해안 몬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충적토를 준설(浚渫)하여 채굴하며 주석을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되어있다. 철광은 동해안에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말레이시아#광업|광업]]〉</ref> 그리고 석유산업도 [[사라와크 주]]에서 소량 산출되었으나, 그 후 [[사바주]]·[[사라와크 주]]에서 대규모 해양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채취, 가공산업도 주요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정제기술이 발달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석유는 산유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대규모의 유전은 하지 않고 있다. 제조업은 1970년대 말부터 개발하기 시작해 지금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주로 전기·통신기계와 수송기계 생산을 하고 수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업도 이 나라의 주 수입원이다. 고무, 주석광, 철광석은 수출하며 식량과 공업제품을 수입한다. 따라서 경제는 고무, 주석, 철의 국제가격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약간의 1차 산품만을 생산하는 산업구조는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말레이시아#무역|무역]]〉</ref>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산 저가 과자의 수출도 활발하다.
 
 
=== 교통 ===
 
육상교통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잘 발달해 있다. [[모노레일]]도 운행 하고 있으며 특히 서해안을 따라 포장도로와 철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세계지리/세계의 여러 나라/아시아/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의 교통·도시|말레이시아의 교통·도시]]〉</ref> 말레이시아의 도로망은 98,721km에 달한다. 그 중 1,821km는 고속도로이다.<ref name="CIA Fact Book">{{웹 인용|url=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my.html |title=Malaysia |publisher=Cia.gov |date= |accessdate=2010-10-26}}</ref> 차량은 좌측통행을 한다. 또한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넓은 국토의 영향으로 국내선을 포함한 항공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 철도 ====
 
말레이 반도 지역에는 말레이 철도의 노선망이 있다. 일반 철도(고속 철도 포함), [[경전철]](LRT), [[모노레일]] 그리고 [[케이블 카]]가 있다. 일반 철도는 대부분 도시간 승객 수송과 화물 운송, 그리고 일부 시내 대중교통으로 사용된다. 긴 반도의 서해안 끝의 조호르바루(Johor Bahru)에서 태국 접경의 파당브사르(Padang Besar)까지 서해안 950km를 연결하고 있으며 동해안선은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의 중간지점에 자리잡은 게마스에서 태국 동해안쪽 접경 툰팟까지 528km를 잇고 있다. 서해안선과 동해안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의 고산지대와 열대우림지대를 버스가 연결시켜 주고 있다.<ref name="김성기">{{서적 인용 |저자= 김성기 |제목= 코스따라 세계여행 동남아시아  |날짜= 2000 |출판사=민서출판사 |id={{ISBN|978-89-422-0046-7}}}}</ref> {{Rp|54}}경전철은 시내 대중교통이나 공항 내 청사 간의 승객 수송과 같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잇는 고속철도 노선도 있다. 이 노선에는 2가지 열차편이 운행 중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한 모노레일 노선은 쿠알라룸푸르의 대중교통으로 이용되는 것이고, 유일한 케이블 카는 [[풀라우피낭|피낭]]에 있다. 쿠알라룸푸르 주변에는 모노레일을 위시한 각종 통근 철도가 발달해 있다. 자동차는 약 900만대이며 인구 3명당 1대이다.
 
 
==== 도로 ====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부터 도로가 정비되어 왔다.
 
 
==== 항공 ====
 
{{본문|말레이시아의 공항}}
 
[[말레이시아 항공]]과 [[에어아시아]] 등에서 국내외 항로에 취항하고 있다. 특히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잇는 항로의 주요 경유지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파이어플라이]]가 합세하였다.
 
 
== 자연 환경 ==
 
=== 지리 ===
 
{{참조|말레이시아의 지리}}
 
[[파일:Malaysia on satellite map (NASA World Wind).PNG|왼쪽|섬네일|alt=Malaysia on a satellite map globe|말레이시아는 적도 부근에 위치하며, 매년 열대우림기후를 나타낸다.]]
 
말레이시아의 면적은 329,758km<sup>2</sup>이며, 세계에서 67번째로 큰 나라이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흔히 '반도'를 뜻하는 '스므난중'으로 알려져 있음)와 보르네오 섬 북부의 동말레이시아로 나뉘는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는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ref name="CIA Fact Book"/> 좁은 코스웨이와 다리 하나가 국토를 [[싱가포르]]와 연결한다. [[베트남]],<ref>{{웹 인용|url=http://www.ugm.ac.id/en/?q=news/to-reduce-conflicts-indonesia-and-malaysia-should-meet-intensively |title=To Reduce Conflicts, Indonesia and Malaysia Should Meet Intensively |publisher=Universitas Gadjah Mada |accessdate=26 October 2010}}</ref> [[필리핀]]과 해상 국경을 맞대고 있다.<ref>{{서적 인용|last = Prescott|first = John Robert Victor|last2 = Schofield|first2 = Clive H|title = Undelimited maritime boundaries of the Asian Rim in the Pacific Ocean|publisher = International Boundaries Research Unit|year = 2001|page = 53|url = http://books.google.com/?id=-RT2lGdMZuc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isbn = 1-897643-43-8}}</ref> 토지의 경계는 프를리스 강, 골록 강, 파갈라얀 운하 등 자연경계로 나뉘기도 하는데 일부는 분쟁 중이다.<ref name="CIA Fact Book"/> 브루나이는 사라왁 주에 의해 연결되지 않은 두 부분으로 나뉘며,<ref>{{웹 인용|url=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bx.html |title=Brunei |publisher=CIA |accessdate=13 September 2011}}</ref> 사실상 말레이시아 내 소수민족 거주지나 다름 없다. 말레이시아는 유라시아 본토와 말레이 제도 둘 다 영역이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ref name="Marshall">{{서적 인용|title = World and Its Peoples: Malaysia, Philippines, Singapore, and Brunei|publisher = Marshall Cavendish Corporation|year = 2008|pages = 1160, 1166–1192, 1218–1222|url = https://books.google.com/?id=72VwCFtYHCgC&printsec=frontcover|isbn =978-0-7614-7642-9}}</ref> 남부 조호르 주의 탄중피아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다.<ref name="tanjungpiai" /> 말라카 해협은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도 사이에 위치하며, 무역의 40%를 이끌어 오래 전부터 국제 무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ref>{{뉴스 인용|last=Schuman |first=Michael |url=http://www.time.com/time/world/article/0,8599,1893032,00.html |title=Waterway To the World&nbsp;– Summer Journey |work=Time magazine |date=22 April 2009 |accessdate=16 August 2011}}</ref> 3/4가 밀림 및 습지대로 구성된다.
 
 
말레이시아는 동중국해에 의해 둘로 나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양쪽다 해안지대에서 산악지대로 이어지는 여러 자연적 특색들을 고유한다.<ref name="CIA Fact Book"/>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 영토의 40%를 차지하며,<ref name="Marshall"/> 길이는 북에서 남으로 740km(460마일), 동서의 폭은 최대 322km(20마일)이다.<ref name="Swee-Hock">{{서적 인용|last = Saw|first = Swee-Hock|title = The population of Peninsular Malaysia|publisher =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year = 2007|pages = 1–2|url = http://books.google.com/?id=e4Yp2QJNVWg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doi =|id =|isbn = 978-981-230-730-9}}</ref> 2,183m(7,162피트)의 코르부산<ref name="AZ">{{서적 인용|title=The A to Z of Malaysia |page=lxxxii |last=Ooi Keat Gin |first=Gin |publisher=Rowman & Littlefield |year=2010 |isbn=9780810876415 |accessdate=23 April 2014 }}</ref>
 
을 최고봉으로 하는 티티왕사 산맥이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를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나누며<ref>{{서적 인용|last = Stevens|first = Alan M.|title = Kamus Lengkap Indonesia Inggris|publisher = Ohio University Press|year = 2004|page = 89|url = http://books.google.com/?id=cF97F--suNA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doi =|id =|isbn = 979-433-387-5}}</ref> 반도의 중심으로 내려온다.<ref name="Marshall"/> 이 산들은 대개 숲지대이며,<ref name="Britannica"/> 주로 화강암 및 기타 화성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암석들은 차츰 부식되어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한다.<ref name="Marshall"/> 이러한 지대는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수계(水系)에서 유래했다.<ref name="Britannica">{{웹 인용|url=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358619/Main-Range |title=Main Range (mountains, Malaysia) |publisher=Encyclopædia Britannica |accessdate=1 October 2010}}</ref>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해안지대의 폭은 최대 50km(31마일)이며, 해안선은 1,931km(1,200마일)이나 항만들은 서해안에서만 가능하다.<ref name="Swee-Hock"/>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대륙 본토에서 유일하게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군주국이다.
 
 
[[파일:Pinnacles at Mulu 2.jpg|섬네일|오른쪽|alt=Mount Api|[[아피산]]의 석회암 봉우리는 [[물루산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파일:MtKinabalu view from kundasan.jpg|섬네일|왼쪽|말레이시아의 최고봉인 [[키나발루산]].]]
 
동말레이시아는 보르네오 섬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해안선은 2,607km(1,620마일)이다.<ref name="CIA Fact Book"/> 동말레이시아는 해안지대, 언덕지대, 계곡지대, 산악지대로 구분된다.<ref name="Marshall"/> 크로커 산맥이 사라왁 주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며,<ref name="Marshall"/> 사바 주에 의해 나뉜다. 말레이시아의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이 존재하는데<ref>{{서적 인용|last = Richmond|first = Simon|title = Malaysia, Singapore & Brunei|publisher = Lonely Planet|year =2010|page = 366|url = http://books.google.com/?id=VMKOuzRxOJs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doi =|id =|isbn = 978-1-74104-887-2 }}</ref><ref name="Thiessen">{{서적 인용|title=Borneo: Sabah - Brunei - Sarawak |last=Thiessen |first=Tamara |isbn=9781841623900 |publisher=Bradt Travel Guides |accessdate=23 April 2014 |year=2012 |page=192 |url=http://books.google.com/books?id=DCDkRTYwN5AC&pg=PA192&dq=%224095%22+%22kinabalu%22+-%224095.2%22&hl=en&sa=X&ei=ApRXU6aUOYqsyAGJpICABA&ved=0CDAQ6AEwAQ#v=onepage&q=%224095%22%20%22kinabalu%22%20-%224095.2%22&f=false}}</ref> 높이는 4,095m(13,435피트)이다. 키나발루산은 키나발루 국립공원에 의해 보호되며,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다.<ref>{{웹 인용|url=http://www.ecologyasia.com/html-loc/mount-kinabalu.htm |title=Mount Kinabalu&nbsp;– revered abode of the dead |publisher=Ecology Asia |accessdate=17 September 2010}}</ref> 높은 산악지대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간의 경계를 형성한다. 사라왁에는 세계 최대의 동굴인 물루동굴이 위치한다.<ref name="Marshall"/>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양쪽 다 여러 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섬은 방기 섬이다.<ref>{{저널 인용|author=T. Daw|title=Reef Fish Aggregations in Sabah, East Malaysia|url=http://scrfa.org/images/stories/pdf/scrfa/daw_e.malaysia.pdf|date=April 2004|publisher=Society for the Conservation of Reef Fish Aggregations|series=Western Pacific Fisher Survey series|volume=5|page=17}}</ref>
 
 
=== 기후 ===
 
기후는 적도 기후이며 매년 남서(4월 내지 10월) 또는 북동(10월 내지 2월)지역의 몬순에 의해 결정된다.<ref name="Swee-Hock"/> 온도는 주위 바다에 의해 적정히 유지된다.<ref name="Marshall"/> 습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연간 평균 강수량은 250cm(98인치)이다.<ref name="Swee-Hock"/>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의 기후는 다른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가 즉시 본토 바람의 영향을 받는 반면 동말레이시아는 해양성 기후를 띈다. 국지 기후는 고지대, 저지대, 해안지대에 따라 나뉜다. 기후변화는 해수면과 강수량의 영향을 받으며, 홍수의 위험이 높아지고 가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ref name="Marshall"/>
 
 
적도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4계절이 없고 [[우기]]와 [[건기]]가 있는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에 속한다. 열대지역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의 기후는 연중 고온 다습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이 21~32℃로 연평균 강우량 2,000~2,500mm, 평균 습도는 63~80%이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기온 차는 9~12℃ 전후로 낮에는 30℃를 웃돌다가도 저녁과 밤에는 매우 선선한 기후를 유지한다. 건기와 우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우기라도 일시적인 열대성 소나기의 횟수가 증가하는 것이므로 여행에는 불편함이 없다.<ref>{{웹 인용 |url=http://www.mtpb.co.kr/About/Introduction.asp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1-06-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1216035019/http://www.mtpb.co.kr/About/Introduction.asp |보존날짜=2010-12-16 |깨진링크=예 }}</ref>
 
 
== 사회 ==
 
온건주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ref name="isis" /> 최근 저렴한 물가 등으로 외국인들의 대표적인 유학 장소로 꼽히고 있으며,<ref name="ReferenceA"/> 임금 및 근로환경이 양호해 해외 노동자들, 특히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진출이 매우 크다.<ref name="indon" /> 그러나 이러한 장점 뒤에는 심각한 분열과 인권 탄압이 숨어져 있다.
 

2019년 4월 8일 (월) 06:18 판

말레이시아
Malaysia

말레이시아의 국기
Flag of Malaysia.svg 100px
국기 말레이시아 국장
표어Bersekutu Bertambah Mutu
단결은 곧 힘
국가Negaraku
300px
말레이시아의 위치
수도쿠알라룸프르 북위 3° 08′ 09″ 동경 101° 41′ 17″
북위 2° 55′ 00″ 동경 101° 40′ 00″
최대 도시쿠알라룸프르
정치
국왕스무스
총리공석
 
지리
면적329,847km2 (67위)
내수면 비율0.3%
시간대(UTCUTC+8 (MST))
인문
공용어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국민어말레이어
지역어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
인구
2018년년 어림3,400만여명
2019년년 조사30,436,000명 (43위)
인구 밀도77명/km2 (115위)
경제
GDP(PPP)2017년 어림값
 • 전체$5,100억 (28위)
 • 일인당$30,282 (20위)
GDP(명목)2017년 어림값
 • 전체$9,412억 (26위)
HDI0.603 (31위, 2017년 조사)
통화링깃 (RM)
기타
도메인.my
국제 전화++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