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밴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역사 수정)
잔글 (포장님이 도이치 연방 문서를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밴드)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25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
{{공사 중인 문서}}
 
<big>{{{#!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000000;padding:12px"
 
<big>{{{#!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000000;padding:12px"
{{{+2 '''도이칠란드 연방의 공식문서입니다.'''}}}[br]본 문서는 2018년 10월~2019년 2월 까지 존재하였던 [[독일 연방 공화국]]과는 다른 문서이며
+
{{{+2 '''도이칠란트 연방의 공식문서입니다.'''}}}[br]본 문서는 2018년 10월~2019년 2월 까지 존재하였던 [[독일 연방 공화국]]과는 다른 문서이며
 
본 문서의 제목에 이상이 있는것은 문서 작성시 일어난 표기법 문제입니다. 또한 해당 문서의 무단 복제, 편집 등을 금합니다.}}}</big>
 
본 문서의 제목에 이상이 있는것은 문서 작성시 일어난 표기법 문제입니다. 또한 해당 문서의 무단 복제, 편집 등을 금합니다.}}}</big>
  
||<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bgcolor=#000000><-4><:>{{{#white {{{+1 '''<small>도이칠란드 연방</small>'''}}}[br]{{{+1 '''<small>Bundes Staat Deutschland</small>'''}}}[br]{{{+1 '''<small>Federal Of Germany</small>'''}}}}}}||
+
||<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bgcolor=#000000><-4><:>{{{#white {{{+1 '''<small>도이칠란트 제 3 공화국</small>'''}}}[br]{{{+1 '''<small>Bundes Republik Deutschland</small>'''}}}[br]{{{+1 '''<small>Federal Republic of Germany</small>'''}}}}}}||
||<:><-4> [[File:sketch-1556431170195.png|400px]] ||
+
||<:><-4> [[File:sketch-1564049380423.png|500px]] ||
 
||<-4><:><#000000>'''{{{#white 국기}}}''' ||
 
||<-4><:><#000000>'''{{{#white 국기}}}''' ||
||||<width=35%><bgcolor=#000000><:>{{{#white '''<small>국호</small>'''}}}||<-2><width=65%> <small>도이칠란드 연방</small> [br] <small>Bundes Staat Deutschland</small> ||
+
||||<width=35%><bgcolor=#000000><:>{{{#white '''<small>국호</small>'''}}}||<-2><width=65%> <small>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small> [br] <small> BundesRepublik Deutschland(BRD) </small> ||
||<bgcolor=#000000><|4><:>{{{#white '''<small>상징</small>'''}}}||<width=25%><bgcolor=#000000><:>{{{#white '''<small>국가</small>'''}}}||<-2> <small> ich hab' mich ergeben
+
||<bgcolor=#000000><|4><:>{{{#white '''<small>상징</small>'''}}}||<width=25%><bgcolor=#000000><:>{{{#white '''<small>국가</small>'''}}}||<-2> <small> </small> ||
(도이칠란드 연방의 노래)</small> ||
 
 
||<bgcolor=#000000><:>{{{#white '''<small>국화</small>'''}}}||<-2> <small>참나무</small> ||
 
||<bgcolor=#000000><:>{{{#white '''<small>국화</small>'''}}}||<-2> <small>참나무</small> ||
 
||<bgcolor=#000000><:>{{{#white '''<small>국조</small>'''}}}||<-2> <small>독수리</small> ||
 
||<bgcolor=#000000><:>{{{#white '''<small>국조</small>'''}}}||<-2> <small>독수리</small> ||
||<bgcolor=#000000><:>{{{#white '''<small>표어</small>'''}}}||<-2> <small>die Seele des Volkes zur Freiheit
+
||<bgcolor=#000000><:>{{{#white '''<small>표어</small>'''}}}||<-2> <small> Eine reiche Nation, die frei von eigenen Antrieb.
(자유를 향한 국민들의 영혼)</small> ||
+
(자유로 얻어낸 부강한 국가, 공식표어)
 +
</small> ||
 
||<bgcolor=#FF0000><|1><:>{{{#white '''<small>자연환경</small>'''}}}||<bgcolor=#FF0000><:>{{{#white '''<small>면적(영토)</small>'''}}}||<-2> <small>면적 1,000,130km</small><big>²</big> ||
 
||<bgcolor=#FF0000><|1><:>{{{#white '''<small>자연환경</small>'''}}}||<bgcolor=#FF0000><:>{{{#white '''<small>면적(영토)</small>'''}}}||<-2> <small>면적 1,000,130km</small><big>²</big> ||
 
||<bgcolor=#FF0000><|3><:>{{{#white '''<small>인문환경</small>'''}}}||<bgcolor=#FF0000><:>{{{#white '''<small>인구</small>'''}}}||<-2> <small>인구 수 165,165,876명</small> ||
 
||<bgcolor=#FF0000><|3><:>{{{#white '''<small>인문환경</small>'''}}}||<bgcolor=#FF0000><:>{{{#white '''<small>인구</small>'''}}}||<-2> <small>인구 수 165,165,876명</small> ||
 
||<bgcolor=#FF0000><:>{{{#white '''<small>인구밀도</small>'''}}}||<-2> <small>인구밀도 1459명/km</small><big>²</big> ||
 
||<bgcolor=#FF0000><:>{{{#white '''<small>인구밀도</small>'''}}}||<-2> <small>인구밀도 1459명/km</small><big>²</big> ||
||<bgcolor=#FF0000><:>{{{#white '''<small>공용 언어</small>'''}}}||<-2> <small>독일어, 폴란드어, 체코어, 헝가리어, 슬로바키아어, 홀란트어</small> ||
+
||<bgcolor=#FF0000><:>{{{#white '''<small>공용 언어</small>'''}}}||<-2> <small> 독일어 </small> ||
||<bgcolor=#FF0000><|4><:>{{{#white '''<small>정치</small>'''}}}||<bgcolor=#FF0000><:>{{{#white '''<small>국체</small>'''}}}||<-2> <small>의원 내각제</small> ||
+
||<bgcolor=#FF0000><|4><:>{{{#white '''<small>정치</small>'''}}}||<bgcolor=#FF0000><:>{{{#white '''<small>국체</small>'''}}}||<-2> <small>공화제 - 의원내각제</small> ||
||<bgcolor=#FF0000><:>{{{#white '''<small>정부형태</small>'''}}}||<-2> <small>내각 책임제</small> ||
+
||<bgcolor=#FF0000><:>{{{#white '''<small>정부형태</small>'''}}}||<-2> <small>내각책임제, 연방제</small> ||
||<bgcolor=#FF0000><:>{{{#white '''<small>대통령</small>'''}}}||<-2> <small>카를 룬드슈테트</small> ||
+
||<bgcolor=#FF0000><:>{{{#white '''<small>대통령</small>'''}}}||<-2> <small> 프리츠 귄터(Fritz Günter) </small> ||
||<bgcolor=#FF0000><:>{{{#white '''<small>국무총리</small>'''}}}||<-2> <small>공석</small> ||
+
||<bgcolor=#FF0000><:>{{{#white '''<small>국무총리</small>'''}}}||<-2> <small> 마르크 베르톨트(Mark Berthold) </small> ||
 
||<bgcolor=#FFD700><|3><:>{{{#white '''<small>경제</small>'''}}}||<bgcolor=#FFD700><:>{{{#white '''<small>GDP</small>'''}}}||<-2> <small>$8,134,000,000</small> ||
 
||<bgcolor=#FFD700><|3><:>{{{#white '''<small>경제</small>'''}}}||<bgcolor=#FFD700><:>{{{#white '''<small>GDP</small>'''}}}||<-2> <small>$8,134,000,000</small> ||
 
||<bgcolor=#FFD700><:>{{{#white '''<small>1인당 GDP</small>'''}}}||<-2> <small>$73752(연방 전체)</small> ||
 
||<bgcolor=#FFD700><:>{{{#white '''<small>1인당 GDP</small>'''}}}||<-2> <small>$73752(연방 전체)</small> ||
||<bgcolor=#FFD700><:>{{{#white '''<small>공식 화폐</small>'''}}}||<-2> <small>Bundes Mark(분데스 마르크)</small> ||
+
||<bgcolor=#FFD700><:>{{{#white '''<small>공식 화폐</small>'''}}}||<-2> <small>Bundes Mark(연방 마르크화)</small> ||
 
||<-4><#FFD700> {{{#FFFFFF '''<small>단위</small>'''}}} ||
 
||<-4><#FFD700> {{{#FFFFFF '''<small>단위</small>'''}}} ||
 
||<-2><#FFD700> {{{#FFFFFF '''<small>법정연호</small>'''}}} ||<-2>  <small>서력기원 2019년</small> ||
 
||<-2><#FFD700> {{{#FFFFFF '''<small>법정연호</small>'''}}} ||<-2>  <small>서력기원 2019년</small> ||
 
||<-2><#FFD700> {{{#FFFFFF '''<small>시간대</small>'''}}} ||<-2> <small>UTC +1</small> ||
 
||<-2><#FFD700> {{{#FFFFFF '''<small>시간대</small>'''}}} ||<-2> <small>UTC +1</small> ||
||<-2><#FFD700> {{{#FFFFFF '''<small>ISO-3166-1</small>'''}}} ||<-2> <small>276, DE, DEU, GE</small> ||
+
||<-2><#FFD700> {{{#FFFFFF '''<small>ISO-3166-1</small>'''}}} ||<-2> <small>276, DE</small> ||
 
||<-2><#FFD700> {{{#FFFFFF '''<small>도메인</small>'''}}} ||<-2> <small>DE</small> ||
 
||<-2><#FFD700> {{{#FFFFFF '''<small>도메인</small>'''}}} ||<-2> <small>DE</small> ||
 
||<-2><#FFD700> {{{#FFFFFF '''<small>국제전화</small>'''}}} ||<-2> <small>+49</small> ||
 
||<-2><#FFD700> {{{#FFFFFF '''<small>국제전화</small>'''}}} ||<-2> <small>+49</small> ||
 
||<-2><#FFD700> {{{#FFFFFF '''<small>본국 링크</small>'''}}} || [[파일:카페 아이콘.png|20px]] [[https://cafe.naver.com/virtualgermany|<small>카페 본국</small>]] ||
 
||<-2><#FFD700> {{{#FFFFFF '''<small>본국 링크</small>'''}}} || [[파일:카페 아이콘.png|20px]] [[https://cafe.naver.com/virtualgermany|<small>카페 본국</small>]] ||
 
||<-2><#FFD700> {{{#FFFFFF '''<small>본국 링크</small>'''}}} || [[파일:밴드 아이콘.png|20px]] [[https://band.us/band/74644803|<small>밴드 본국</small>]] ||
 
||<-2><#FFD700> {{{#FFFFFF '''<small>본국 링크</small>'''}}} || [[파일:밴드 아이콘.png|20px]] [[https://band.us/band/74644803|<small>밴드 본국</small>]] ||
=도이칠란드 연방의 역사=
+
 
==2차세계대전의 종전==
+
=도이칠란트 연방의 역사=
 +
==1918년(1차 대전의 종전)~1944년(2차대전의 종전)==
 
<small>{{{#!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FF0000;padding:12px"
 
<small>{{{#!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FF0000;padding:12px"
 
{{{+2 '''주의!'''}}}[br]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small>
 
{{{+2 '''주의!'''}}}[br]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small>
2차세계대전이 개전되고 1940년대에 들어서는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제공권이 밀려나나 상태였다. 또한 1941년 6월 개전된 도이칠란드-소비에트 연방 전쟁(독일어 : Deutschland- sowjet union krieg, 러시아어 :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대 조국 전쟁)으로 인해 육,,공군에 걸쳐 수많은 전력의 공백을 보게되었고, 게다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등의 여파로 자유프랑스가 상륙한 달인 6월에서 1달만인 7월에 함락당하면서 라인강의 국경에서 밀고오고 있었고, 소련군은 이미 폴란드 등을 재 점령 해오며 오데르- 나이세 강까지 밀고 온 상태였다. 그리고 지속된 전쟁으로 전력상의 공백이 너무 많은 도이칠란트 국방군 수뇌부는 사실상 불가능한 무기 개발 계획과 작전등을 사용하며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그 중에는 발터 울브리히트 장군과 클라우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등이 이끄는 반란군들이 있었고, 이들은 히틀러를 암살해 새로운 도이칠란드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7월 25일 제 1차 작전을 시행하려 하였으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인해 7월 20일로 앞당겨 진다. 그리고 운명의 날인 7월 20일에 폭탄이 터졌다. 그러나 그들은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미 늑대굴을 지키던 헌병들은 발터 울브리히트 장군이 총통 권한으로 거짓 휴가증을 내어줘 전부 반란군 소속의 헌병들이었기 때문에 만약 폭탄이 터진다 하더라도 벙커를 탈출하기 전에 사살이 가능하였다. 그리고 서류가방으로 위장한 폭탄이 터졌고, 좀 더 히틀러에 가까운 쪽에 폭탄을 두고 나온 덕분에 수월하게 작전이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아돌프 히틀러를 포함한 폭탄 근처에 있던 장군들이 사망하게 되고, 나머지 폭발에서 살아남은 장교들은 사살당하거나 탈출에 실패하였다. 그 덕분에 반란군은 전쟁범죄의 명목으로 알베르트 슈페어, 괴벨스, 헤르만 괴링등의 수많은 장군과 장관들을 체포 하였고, 발터 울브리히트 장군을 대통령으로, 에르빈 롬멜을 수상으로 하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1944년 8월,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8월 5일, 연합군에 8월 6일, 소련군에 항복하였다.  
+
1차세계대전이 종전된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는 사실상 파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이유는 승전국인 협상국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채 단지 전쟁만 일으켰단 이유로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청구하였고, 이미 염전사상이 퍼질대로 퍼져버린 바이마르 공화국은 더이상 국토수호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 피해보상금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탓에, 배상금의 청구를 기피한다며 강제로 군사력을 사용해 알자스-로렌지방을 강제 점령하고, 그곳의 산업력을 착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동안, 바이마르의 정치는 상당히 긴박하게 흘러갔다. 당시 여당이었던 사회민주당(SPD)과 제 1 여당인 도이칠란트 공산당(KPD)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립을 틈타 세력을 점차 키워오던 국가 사회주의 도이칠란트 노동자 당(NSDAP)은 1933년 총선 승리를 기반으로 점차 정계와 행정부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결국 1933년 말,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이 된지 몇일후 수권법을 통과시키는 계기가 되는 라이히스탁(Reich Stag, 국가의회)가 불에 타는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공산주의자였음이 밝혀짐에 따라, 도이칠란트 공산당의 여론은 점차 몰락해 갔고, 이 사건으로 총리에 취임한지 얼마안된 아돌프 히틀러는 그날밤, 날치기 표결로 비상시 총리가 모든 권한을 하달받는 수권법이 통과되었고, 전권을 하달받은 아돌프 히틀러는 몇일뒤, 날치기 개헌으로 국가 사회주의 도이칠란트 노동자 당을 제외한 나머지당을 전부 위헌정당으로 해산시키고, 총리의 직위를 폐쇄하고 총통(Fürher)이란 직위를 만들고스스로 총통의 자리에 오른뒤, 1936년, 라인란트 재무장, 로카르노 조약 파기를 함으로서 군사력을 키웠고, 그 군사력을 기반으로 폴란드를 1939년 9월 1일 침공하며, 2차세계대전이 개전된다. 그리고 1940년, 덴마크, 폴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점령하며 본격적인 식민지화 작업을 가동하고 이내, 1940년 6월에는 '프랑스 해방'이라는 작전명으로 벨기에의 아르덴숲을 통과, 프랑스 파리로 진격해 마지노선의 피해는 받지 않고 손쉽게 프랑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0년 8월에는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 공중전을 준비했다가, 당시 공군 참모총장 헤르만 괴링이 작전을 엉터리로 짜는 바람에 피해만 입는 사이, 프랑스 북부에 포위된 연합군은 대대적인 철수작전을 펼쳐 기적적으로 철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의 실패로 많은 공군이 소실되자, 이번에는 동유럽을 노리고 소련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북부, 중부, 남부 집단군은 전격전(Blitz Krieg)을 사용해 손쉽게 공격과 점령을 가했다. 그러나 1941년 겨울, 매서운 추위에 3개 집단군의 병력관리에 실패하고 그의 결과로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패배하며 본격적으로 패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는 나치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게된다. 따라서 민심은 종전을 요구하는 추세로 바뀌어가고 있었지만, 이미 레벤스보른이라는 대 제국을 건설하는데 눈이 멀어있던 아돌프 히틀러의 정부는 이를 묵살하게되고, 결국 분노한 시민들은 1942년 10월 6일, 반 나치당 주의자와 레지스탕스, 탈영병 등을 포함한 일부 부대까지 가세한 42혁명이 발생하게되었다. 그로스 베를린 사단의 무차별 사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밀고나가 결국은 포츠담까지 점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943년 초, 히틀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국정의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고, 결국 임시로 정권을 잡은 나치당 수뇌부는 끝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미 몇백만의 대규모 병력으로 불어난 상황이었고, 결국 1943년 4월, 도이칠란트 임시정부가 세워짐과 동시에 연합국과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결국 1943년 5월 8일, 미국의 패튼장군을 포함한 3명의 장성이 파견되어 임시정부로부터 항복성명을 받고 무장해제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43년 7월에는 미군과 영국군이 프랑스를 통해 서부 독일지방으로 진입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1943년 10월에는 소련군이 동부 독일지방으로 진입하였다. 이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영국수상, 스탈린 소련 서기장은 포츠담에서 회담을 가져 전후 독일의 처리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함으로서 종전을 맞이하게된다.
  
==도이칠란드 국의 수립과 냉전의 전개==
+
==1945년(전후)~1953년(동독 반소봉기)==
1944년 8월초 항복한 도이칠란드는 연합국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미, , , 프 4개국이 공동으로 점령하였다. 물론 이는 오스트리아에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며, 1945년에는 긴급 재판이 열려 몇몇 장관들이 심판을 받았고, 1945년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맞고 항복했다. 그 다음 해인 1946년, 뉘른베르크 재판이 개정, 몇몇 나치에 부역한 장군, 장교들이 대거 사형 또는 처형당하였다. 그리고 1948년 2월에는 연합국의 점령이 끝나는 동시에 베를린 봉쇄가 시작되었고, 서쪽에는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이, 동쪽에는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1949년, 냉전의 전개를 우려한 미국은 국무 장관 조지 마셜이 제창한 마셜플랜을 유럽에 적용해 수많은 경제적 지원과 원조등을 하였고, 이 중에는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에도 약 30억 달러(한화 3조원 가량)에 달하는 재정 지원과 타이어, 재봉틀, 미국산 프레스, 밀 등의 수많은 원조도 동시에 들어갔고, 미국이 예상한대로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핵전쟁을 우려한 미국과 소련은 각각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otan)와 바르샤바 조약기구(wto/otw)가 만들어 지며 본격적인 공산주의/신 자본주의의 대립전선이 만들어진다.
+
1944년 8월, 항복한 도이칠란트 민주 정부[* 당시 쿠데타를 주도한 장성 몇명이 임시로 세운 정부]는 즉각 연합군의 관리와 동시에 무장 해제가 이루어 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는 나치 정권이 저지른 추악한 홀로코스트의 실상도 드러나게 되었다.[ * 1941년 부터 1944년 패망까지 총 유대인, 집시, 슬라브인 등이 총 600만명 사망한것으로 정부 조사결과 집계 되었다.]1945년, 연합국의 관리를 받으며 전법과 전범기업들을 처리하기위해 뉘른베르크 재판이 개정되었고, 이를 통해 나치에 가담한 A급 전범이 대거 처형되었거나 자살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은 2발의 핵[*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을 맞으면서 주요 식민지의 광복과 동시에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강자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게 되면서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내에서는 1947년에는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도이칠란트 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48년에는 베를린 봉쇄 위기를 맞게된다. 1949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냉전이 전개되는 동시에 유럽도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1950년에는 한국전쟁(6.25 전쟁)이 발발하며 서유럽에도 언제 소련이 적화를 노릴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재무장을 해야한다는 도이칠란트 재무장론이 확산되었고, 1953년 도이칠란트 인민공화국의 각종 무리한 정책에 반발해 전 시민이 들고 일어났던 동독 반소봉기[* 당시 공산권에서는 스탈린의 사망으로 술렁인데다가, 사회 통일당은 당시 대통령이던 발터 울브리히트의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쓸데없이 노동자의 임금을 강제로 동결시켰다.]가 일어난다. 당시 동독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참가할 만큼 대규모의 시위였으나, 당시 지도부는 개혁개방정책을 일체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민 경찰(volks polizei)에 발포를 지시해 시위에 참가한 인명중 57명이 사망하고 128명이 실종/체포되었다.
[[File:대치.jpg|400px]]
+
[[File:0148a754e44c205b69a9556719e40381fab2aabd5ec1c09581fcbb82d01085be473f0c65ee7ff8676887a5b90db403fd748565acb0a097df9fa77791877136d0101db85dbcf1ce6a6aeaa7239e8b83176db750e6485a59d2c8fdd6ee8cc76179.png|400px]]
[당시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과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의 경계]
+
[당시 냉전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생겨난 서유럽/동유럽의 경계(출처:나무위키)]
  
==도이칠란드 전쟁과 전성기==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BRD)의 역사(냉전)==
 +
[[File:도이치 연방 공화국3.png|400px]]
 +
 
 +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VRD)의 역사(냉전)==
 +
[[File:도이치 인민 공화국3.png|400px]]
 +
 
 +
==1954년(냉전의 전개)~1980년(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성기)==
 
<small>{{{#!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FF0000;padding:12px"
 
<small>{{{#!wiki style="border:1px solid gray;border-top:5px solid #FF0000;padding:12px"
 
{{{+2 '''주의!'''}}}[br]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small>
 
{{{+2 '''주의!'''}}}[br]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small>
냉전이 전개되며 마셜플랜의 수혜국으로서 미국에게 재정지원을 받고 이 기반으로 공업력을 성장시키고 공산국가의 침공에 대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던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과는 정 반대로 코메콘의 경제지원은 받았으나 자금의 상황이나 공업력 등은 생각도 하지 않고 군사력에 대부분의 예산을 쏟아 부은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군사력 만큼은 동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손꼽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 국가의 경제력 차이가 확고하게 난 것은 1965년대부터 였는데, 당시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의 GDP만 해도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의 GDP의 몇배는 뛰어 넘었고, 결국 1968년대, 동유럽에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은 점점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을 몰락의 길로 밀어 넣고 있었다. 게다가 발터 울브리히트 당시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세력의 쿠데타(당시 지지 기반도 약했을 뿐 아니라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여파였다.)까지 일어나며 거의 몰락에 다다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쿠데타를 잔혹하게 진압했고, 이를 아무 잘못도 없는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이 사회주의 사상을 엎어버리기 위해 일으킨 수작이라며 침공 명분을 만들었으며, 1973년까지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은 대대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그로 인해 당시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의 국방예산의 2배가 훌쩍넘는 국방예산을 사용해 파산직전에 이르렀다. 그리고 1970년 8월, 독일의 정보기관과 CIA는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던 중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냉전이 전개되며 마셜플랜의 수혜국으로서 미국에게 재정지원을 받고 이 기반으로 공업력을 성장시키고 공산국가의 침공에 대비해 1955년, 연방군 창설 1956년, 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 등을 거치며 군사력을 증강시키던 철저히 반공을 중요시 했던(KPD 해산, RAF 해산 등)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과는 정 반대로 코메콘의 경제지원은 받았으나 자금의 상황이나 공업력 등은 생각도 하지 않고 군사력에 대부분의 예산을 쏟아 부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군사력 만큼은 동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손꼽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 국가의 경제력 차이가 확고하게 난 것은 1965년대부터 였는데,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GDP만 해도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GDP의 몇배는 뛰어 넘었고, 결국 1968년대, 동유럽에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은 점점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을 몰락의 길로 밀어 넣고 있었다. 게다가 발터 울브리히트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세력의 쿠데타(당시 지지 기반도 약했을 뿐 아니라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여파였다.)까지 일어나며 거의 몰락에 다다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쿠데타를 잔혹하게 진압했고, 이를 아무 잘못도 없는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이 사회주의 사상을 엎어버리기 위해 일으킨 수작이라며 침공 명분을 만들었으며, 1973년까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은 대대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그로 인해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국방예산의 2배가 훌쩍넘는 국방예산을 사용해 파산[* 당시 국방력 증강한다고 코메콘에서 빌린돈만 몇천억이 넘어섰다]직전에 이르렀다. 그리고 1970년 8월, 연방 정보부와 CIA는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에서 나온 각종 서류들을 해석/조사/분류 하던중, 한 요원에 의해 총 13장에 달하는 서류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인용문|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 군사작전 명령 제 33호
+
 
레오니프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 각하와 발터 울브리히트 서기장과의 이전 회담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국가의 확대와 대 자본주의 전쟁의 필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리고 병력 요청을 하시어 보병 약 10개 사단과 기갑 5개사단 등을 지원 받았으며, 이전에 개최된 장성회의에서도 다음 내용이 언급되었음. 그에따라 1973년 중, 소련의 지원병력과 도이칠란드 국가 인민군 전군을 동원해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을 침공하는 ‘붉은 경보’ 작전을 실행할 것임을 밝힘. 또한 전투 암호는 ‘위대한 서기장 각하를 위하여!’임을 알림.
+
{{인용문| 노동자, 농민, 인민의 힘의 보호를 위하여,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방부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
+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전투 명령 1969-321호
당시 이 암호를 해독한 CIA는 대통령께 긴급보고를 올렸고, 이를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 대통령과 총리에게 전달해 긴급하게 전쟁준비에 돌입하고, 재무장을 실시한다. 그리고 전쟁이 있기 1달전인 3월 8일, 미국은 비밀리에 M16A1 75,000 정과 M60패튼 전차 2,000대 그리고 10개 보병사단, 3개 기갑사단등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1달 후인 1973년 4월 8일, 새벽 6시에 그들은 일제히 전투 암호에 따라 포문을 개방하고 진격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서 베를린을 2일만에 점령한다. 당시 게릴라 전투에 특화된 국가 인민군은 지속적으로 시가전과 엄폐와 엄호 등을 활용한 전투 등을 지속하며 속전속결로 점령하고 후에 사상교육, 숙청을 진행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내부적 안정보다는 빠른 점령이 급하였고, 이는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 점령지 내 레지스탕스를 생성해내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서 베를린을 점령하고 지속적으로 진격하였고 수 많은 사상자를 무릎쓰고 전투에 지속적으로 임한 군인이 있었으나, 인해전술에는 역 부족이었고, 전쟁 시작 2주일 만에 서부지역도시 10여개가 점령당한다. 그리고 3달째 되는 때에는 절반이 넘는 도시가 점령당했고, 3달 그리고 2주일이 넘는 때, 그들은 75%에 달하는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은 전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후퇴를 결정했고, 네덜란드, 벨기에 등으로 후퇴한다. 물론 일부 병력은 오스트리아 방면으로도 후퇴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평화상태가 지속되었는데, 왜냐하면 7월 29일, 갑작스러운 군사정변이 일어났기 때문에 보급로가 전쟁을 위한 병력들이 아닌 쿠데타 병력들을 중점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고스란히 굶거나 보급을 받지 못해 싸우지 못하는 군인들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그리고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을 도우기 위해 UN 안보리가 열리고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의 침공을 묵인한 공산권 국가들을 제외하고 회의를 한 결과 대규모 연합군을 결성해 도이칠란드 국가 인민군을 격파하기로 결정했고, 그에따라 프랑스, 도이칠란드 연방 공화국 정부, 오스트리아 연방 공화국, 벨기에 왕국,네덜란드 왕국, 룩셈부르크 공국 등의 주변국과 이에 합류한 미군들을 중심으로 당시 도이칠란드 인민 공화국의 점령지를 수복하는 ‘자유주의 수호’라는 작전을 8월 1일 실행해, 처음에는 전선 근처에 있던 도시를 점령하고 북해 쪽에서는 함대가 지속적인 포격 등을 개시해 빠른 속력으로 진격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국가 인민군 병사들을 패잔병으로 만들어 버리고, 남은 곳은 동 베를린 소재 도이칠란드 공산당 당사와 서기장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도이칠란드 연합군은 국가 인민군과 치열하게 싸워 도이칠란드 본토를 전부 수복하였고, 국가인민군과 서기장으로부터 9월 3일에 항복 성명을 받아내면서 도이칠란드 전쟁은 끝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전쟁 이후의 상황은 1944년 패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방불케 하였고, 수많은 재산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돌아가던 건 남은 25%의 기반시설이었고, 다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되며 경제대국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74년 초, 도이칠란드 본토는 공식적으로 통일을 하게되고, 제 1대 도이칠란드 연방 대통령으로 에리히 폰 크라우프가 취임한다. 그러나 그는 퇴역장군 출신중 몇 안되던 도이칠란드 중심의 유럽통합 주의자였고, 도이칠란드 전쟁으로 공산주의 국가의 경제적 기반이 약해졌다는것을 이용해 자칫 3차세계대전이 터질뻔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도이칠란드 연방은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이용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홀란트 연방을 전쟁도 없이 조약 하나로 병합, 그리고 주변 공산권 국가에 도이칠란드 전쟁을 지원했다는 내용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지에 침공을 가해 반 공산주의 세력을 지원해 가며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1978년, 도이칠란드, 오스트리아, 홀란트 연방,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이루어진 통합된 도이칠란드 연방이 세워진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의 기반으로 1980년대 전성기를 맞게된다.
+
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 령도자 께서는 1963년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련방에 방문하시어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련방-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외교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주요 동부 유럽 지방 공산권 국가들의 세력 확장에 대해 논의 하였으며, 그에 따른 결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산출해 내는데 이르렀다.
 +
 
 +
-논의 결과-
 +
·국가 인민군의 병력 추가 증강
 +
·신 무기 도입/개발 적극 추진
 +
·3년에 걸쳐 지속적인 공업화 지원
 +
·주요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수교 강화
 +
 
 +
이와 같은 사항에 따라 국가 인민군은 현재 11만명의 병력을 14만명으로 추가 증강하며, 이에따라 3개 기갑화 사단과 5개 보병사단 등을 추가적으로 증강한다. 또한 현재 MPI-K 47식 모델을 새로 개발중인 MPI-K 신식 모델을 도입해 전군에 보급하는데 만전을 기한다. 또한 이러한 개혁과 동시에 새로운 교전수칙을 공포한다.
 +
 
 +
-신규 교전수칙-
 +
·만약 적의 국경침범이 있을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며, 필요에 따라 기관총 위협 사격, 사살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허가한다.
 +
·국경 지대에서는 절대 적의 침범 혹은 아군의 적국의 침범 등을 유발할만한 사고 혹은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
·만약 적이 선제공격할 경우 3개 분대가 이에 조치하며, 즉각 사격을 허가하는 권한을 소대장에게 하달한다.
 +
·조치 후 보고에서는 적의 공격사항에 대해 세밀히 보고하며, 만약 위조된 부분 혹은 잘못 조치된 부분으로 문제가 발생시 군법에 따라 조치한다.
 +
 
 +
그리고 새로운 교전수칙의 발표와 동시에 다음과 같이 공산권 국가 확장 계획을 세운다.
 +
 
 +
-계획명 "붉은 파도"-
 +
본 작전은 도이치 인민 공화국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 이외의 4개국이 공동으로 서부 유럽으로의 공산권 국가 확장을 위해 실시하는 작전으로, 부대 구성과 군대의 임무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며, 필요에 따라 조정한다.
 +
 
 +
-전투단 편제-
 +
A. 도이치 인민 공화국 국가 인민군
 +
(말소 됨)[* 기밀유지를 위해 수뇌부가 전쟁 말 파기하라고 명령하였다.]
  
==1990년대와 지금==
+
·1단계(전투 준비)
1980년대 나타난 전성기는 1989년도에 들어서 끝이 났고, 1990년도에는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도 막을 내린다. 하지만 신 냉전이 발생하는데, 당시 중동의 테러단체인 알 카에다가 도이칠란드 연방과 미국 등을 습격하면서 도이칠란드 연방에 6월 테러가, 미국에는 9.11 테러가 발생하는데 도이칠란드 연방에서는 6월테러로 불리는 이유가 6월에 2차례로 공항, 학교 등을 습격해 총기난사를 저질렀는데, 이미 대 테러 훈련에 적응되어 있었던 대부분의 소속국의 특공대가 1차로 카에다 도이칠란드 지부를 습격해 거의 먼지를 만들어 버렸고, 이로 인해 공항테러에서는 민간인 15명이 사망하고 테러범은 전원 진압, 특공대원 및 경찰이 2명 사살 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또한 대학교 테러는 잔혹 하였는데, 이전 테러와는 다르게 화재를 일으켜 탈출하는 학생들을 사살하고 폭탄을 터트린다는 인질극을 벌여 이전보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정부 집계 학생 50명 부상/사망, 교수 또는 교사 12명 부상/사망, 테러범 전원 진압, 특공대원 8명 사살 등으로 나오게 되었고, 이를 통해 알 카에다 도이칠란드 지부와 주요 테러단체, , 마피아, 불법 조직 등을 국가 차원에서 소탕하기 시작하였고, 늦은 밤에 일어나는 보복 사살 등을 막기 위해 대통령 령으로 야간 외출 금지 등이 내려 졌고, 불 필요한 폭동을 막기위해 전투 경찰의 부활과 특수 형사의 부활 등이 이루어 졌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치안 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고, 복지 등을 더 확대해 복지 국가의 이룩과 안정적인 국방 태세 유지를 위해 군비도 유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UN의 상임이사국 직위에도 오르고, 안정적인 치안과 국방을 유지하고 세계 경제 순위 3위에도 드는 등의 여러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
 
 +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인)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방장관 빌리 슈토프(인)}}
 +
 
 +
{{인용문2| "만약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이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과 전쟁한다면, 본(Bonn)[* 실제 수도는 베를린이었지만, 1961년 베를린장벽 축조로 사실상의 수도는 본이었다] 은 불바다가 되고 말것입니다."
 +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외무장관 만프레드 슐츠}}
 +
 
 +
{{인용문2| "공산주의 국가들은 언제든지 외교전 또는 무력을 통한 전쟁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으므로 항상 안보에 신경쓰고 공산주의를 경계해야한다."
 +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외무장관 프레드리히 할슈타인}}
 +
{{전쟁 정보
 +
|분쟁 = 도이칠란트 전선(Deutschland Front)[* 일부 국가에서는 대 소련 전선이라고 칭한다.]
 +
|전체 = 제 3차 세계대전 전선
 +
|그림 = [[File:220px-Bundeswehrsoldaten_während_eines_Manövers_(1960).jpg|400px]]
 +
|그림크기 = 300px
 +
|설명 = 도이치 인민 공화국을 향해 진격하는 연방군 병사
 +
|날짜 = 1973년 4월 8일 ~ 1979년 9월 3일
 +
|장소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전역
 +
|결과 = 종전
 +
* 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패망
 +
* 도이칠란트 연방(BSD, DE)의 수립
 +
* 그 여파로 다양한 정치이념(신 나치즘, 신 보수주의 등)이 탄생
 +
* 서유럽에서 도이칠란트 연방이 주도권을 차지함.
 +
}}
 +
당시 시대상[* 1970년대에는 테러리즘의 시대임과 동시에 공산권 국가의 침공 대비를 위해 전략 무기(NBC무기, ICBM)를 증강하고 있었고, 공산권도 이에 맞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으로 보았을때, 사실상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이 침략을 준비 중이며, 언제든 적화통일의 의지가 있다는이 전투명령으로 인해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맞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공산권 국가의 “무리한 전쟁준비”를 중단하라는 비판 성명을 내었다. 하지만 공산권 국가들도 이에 맞서 “전략무기”를 감축하라는 성명을 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몇 주 전에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군인들이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경에 집결했다. 그리고 1달 후인 1973년 4월 8일, 새벽 6시에 그들은 일제히 전투 암호에 따라 포문을 개방하고 약 15개의 보병사단과 3개의 기갑 사단이 본(Bonn)을 향해 진격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서 베를린은 미군과 국가 인민군의 치열한 대치가 이어졌지만, 결국 2일만에 점령당했으며, 그 결과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에 의해 총독부[* 서베를린 총독부]를 설치 당한다. 당시 게릴라 전투에 특화된 국가 인민군은 지속적으로 시가전과 엄폐와 엄호 등을 활용한 전투 등을 지속하며 속전속결로 점령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후에 사상교육, 숙청 등으로 세뇌시키고자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내부적 안정보다는 빠른 점령이 급하였고, 이는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점령지 내 레지스탕스[* 주로 막사를 습격하거나 장병을 암살하였다.]를 생성해내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서 베를린을 점령한 이후 지속적으로 진격하였고 수 많은 사상자를 무릎쓰고 전투에 지속적으로 임한 군인이 있었으나, 국가 인민군의 인해전술에는 역 부족이었고, 전쟁 시작 2주일 만에 주변 도시 10개가 점령당한다. 그리고 3달째 되는 때에는 국경을 훨씬 넘는 절반이 넘는 도시가 점령당했고, 3달 그리고 2주일이 넘는 때, 그들은 75%에 달하는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은 전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본(Bonn)으로 후퇴를 결정했고 노르트 라인 – 베스트 팔렌 방어선을 세웠으며, 일부 병력은 네덜란드, 벨기에 등으로 후퇴한다. 또한 다른 일부 병력은 오스트리아 방면으로도 후퇴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쟁중 평화상태가 지속되었는데, 왜냐하면 7월 29일, 알 수 없는 이유로 군사정변이 발생[* 당시 수도를 방위하던 동 베를린 사단, 마르크스 사단 등이 이 쿠데타에 참가 하였다.] 그 여파로 새로운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서기장이었던 발터 울브리히트가 사임하고, 그 자리를 빌리 슈토프 당시 국방장관이 메꾸게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지도부의 교체로 인해 대부분의 병력이 제대로 된 보급과 식량[* 당시 전쟁에 참전한 한 중대의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제대로 된 탄약을 못 받아서 적을 상대할 때 총에 급조한 탄약을 넣고 돌격했다 한다.]등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일부 점령지에서 공산주의 유머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발견 되었다. “한 장군이 일병 A에게 당신의 병과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몽둥이 병’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장군이 해탈 했다”라는 벽화가 있다는 일화가 있었다.]이 때문에 대부분의 장병이 레지스탕스에 협력하거나 상관의 명령을 무시[* 탈영하는 병사가 증가 했다.] 하거나[* 당시 동독 국방부의 문건에 따르면 ‘미군이 겪은 베트남 전쟁 때보다 심한 프래깅이 줄을 이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의 행위를 하였고 게다가 갑작스러운 정변으로 인수인계마저 받지 못한 신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정부는 사실상 무능[* 무능이라기 보다는 수뇌부가 사실상 전쟁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 자체에 가까웠다. 또한 이미 전투도 기술력의 한계로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을 도우기 위해 UN 안보리가 열리고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침공을 묵인한 공산권 국가들을 제외하고 회의를 한 결과 이에 합류한 미군들을 중심으로 도이칠란트 연방군, 홀란트 연방군, 오스트리아 공화국군, 프랑스 공화국군, 덴마크 왕국군 등이 합세해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점령지를 수복하는 ‘자유주의 수호’라는 작전을 8월 1일 실행하기로 하였다 7월 15일, 브뤼셀의 NATO본부에서 군의 편성이 시작되었고 8월 1일, 진격을 시작해 본(Bonn)에 있던 주독 미군 기지에 집합해 부대를 정비함과 동시에 전격전과도 비슷한 전술을 적용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실시 하였으며, 처음 일어난 니더-작센 수복전투에서 당시 방어군으로 있던 12개 보병 대대를 신속히 격파함으로서 빠르게 니더작센을 수복하였다. 그리고 전세가 아무리 유리했어도 벌써 도이칠란트 국가 인민군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그 결과 적화되어 있던 전선 근처에 있던 도시를 시가전과 포병의 대 폭격으로 인민군의 기지와 총독부를 쑥대밭으로 만든뒤 점령하고 북해 쪽에서는 함대가 지속적인 포격 등을 개시해 빠른 속력으로 진격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가 인민군 병사들을 패잔병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생포 하는등의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또한, 여러 작전들을 통해 국가 인민군을 격파한 결과로 MPI-KM-72[* 동독(DDR)에서 개량한 AK시리즈 베이스의 7.62mmX39mm 소련제 탄환을 사용하는 자동소총이다.] 자동 소총을 다수 노획하였고, T-72전차도 덤으로 노획한 결과로 미국과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은 재빠르게 기술연구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빠른 진격의 결과로 남은 곳은 동 베를린 소재 도이칠란트 공산당 당사와 서기장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합군은 국가 인민군과 치열하게 싸워 도이칠란트 본토를 전부 수복하였고, 국가인민군과 임시 서기장으로부터 1979년 9월 3일에 항복 성명을 받아내면서 도이칠란트 전쟁은 핵전쟁 없이[* 본(Bonn)으로 후퇴할 시기, 브뤼셀 소재 나토(NATO)본부에서는 회의 도중 전술핵 발사를 논의하였으나, 소련에 핵을 발사한다면, 그들도 똑같이 보복할 것 이란 의견이 우세해 비대칭 무기들은 배제하는것으로 결의하였다] 끝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전쟁 이후의 상황은 1944년 패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방불케 하였고, 수많은 재산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돌아가던 건 남은 25%의 기반시설이었고, 다시 미국의 지원(신 마셜플랜으로도 불린다.)을 받아 빠른 경제 성장으로 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되며 경제대국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79년 10월, 도이칠란트 본토는 공식적으로 통일을 하게 되고, 제 1대 도이칠란트 연방 대통령으로 에리히 폰 크라우프가 취임한다.
 +
 
 +
{{인용문2| "카를 마르크스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 되었습니다."
 +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의 1대 대통령 에리히 폰 크라우프}}
 +
 
 +
*전후 독일에 대해서는 새로 설정 들어갑니다.
 +
 
 +
==1980년(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성기)~현재==
 +
1980년대, 도이칠란트 연방은 당시 건국 이래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2번째로 일어난 경제 기적과 정치 개혁[*네오 나치 또는 신 나치즘을 신봉하는 당원, 의원들을 제명했다] 등으로 전성기를 맞게되고, 당시 경제 상황[* 전후 군수산업의 발전과 공산품 대량 생산이 빈번하였다]도 미국을 따라잡을 만큼 부유했었다. 또한 이후 취임한 여러 대통령, 총리들이 과거 나치정부의 행적에 대해 국제사회에 사죄하면서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제적입지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1970년 확산된 테러리즘은 특히 중부유럽이 혼란한 상황을 틈타 폭탄테러를 벌인다던가, 암살 또는 인질극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80년, 전성기에 접어들자 공산주의의 부흥을 꾀하며 대규모 인질극과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는데 정부도 너무 외교와 경제, 정치쪽에만 신경쓴 나머지 공공사업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이후 2차례의 테러를 통해 치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들여 공공사업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한다. 정부에서는 내부개혁 1.0(Interne Reform 1.0)을 실시해 치안, 소방, 보건 등의 일부 서비스부터 환경, 국방 등의 다양한 부문의 공공 서비스에 대해 개혁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 개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고, 국방력도 점차 증가하였다. 이후 1990년도에는 공산권도 붕괴하며 세계는 점차 평화를 맞이하는듯 싶었으나 중동, 인도 등의 등지에서 종교문제로 인한 분쟁이 불거지며 세계는 2000년이 되어서 신 냉전에 접어들게 되고 또한, 2010년 부터는 신 냉전의 영향으로 다양한 난민들이 생겨나자, 이에 대한 문제가 생겼지만, 현재는 점차 해소되고 있으며, G7의 가입국이자, EU의 가입국, UN의 비 상임 이사국 자리에 등극하였다. 또한 경제력순위도 상위권에 들어가있다.
 +
*곧 수정됩니다
  
 
=상징=
 
=상징=
 
==국호==
 
==국호==
자국어로는 도이칠란드(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더치 페이의 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다른 언어에서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에서는 라틴어 Germania에서 따온 Germany/Germania/Германия(Gyermaniya)를 쓰며,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알레마니아(Alemania)/알레마니아(Alemanha), 폴란드어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 핀란드어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어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카페/밴드/카톡 지부내에서 도이칠란트/도이칠란드의 표기 여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습니다.)
+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더치 페이의 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다른 언어에서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에서는 라틴어 Germania에서 따온 Germany/Germania/Германия(Gyermaniya)를 쓰며,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알레마니아(Alemania)/알레마니아(Alemanha), 폴란드어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 핀란드어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어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
  
 
==국기==
 
==국기==
도이칠란드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독일기로 불리는데, 독일기/연방기의 바탕이 되는 흑,적,금의 삼색기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그리고 국장의 독수리는 국가의 자유와 용맹함을 뜻하고, 독수리 몸통에 있는 별 2개는 2차례에 걸친 경제 기적과 성장을 의미한다.  
+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독일기로 불리는데, 독일기/연방기의 바탕이 되는 흑,적,금의 삼색기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그리고 국장의 독수리는 국가의 자유와 용맹함을 뜻하고, 독수리 몸통에 있는 별 2개는 2차례에 걸친 경제 기적과 성장을 의미한다.  
  
 
==국가==
 
==국가==
도이칠란드 연방의 국가는 '도이칠란드 연방의 노래'인데, 원곡은 한스 퍼디난트 마스만이 작곡한 Ich hab` mich ergeben으로, 연합군 군정기 도이칠란드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도이칠란드 연방 정부에서 공식 국가로 지정하며 불려지게 된다. 물론 종종 도이칠란드의 노래가 불려지긴 하지만 이는 성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전 나치문제를 부각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연방의 노래'인데, 원곡은 한스 퍼디난트 마스만이 작곡한 Ich hab` mich ergeben으로, 연합군 군정기 도이칠란트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도이칠란트 연방 정부에서 공식 국가로 지정하며 불려지게 된다. 물론 종종 도이칠란트의 노래가 불려지긴 하지만 이는 성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전 나치문제를 부각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인문 환경=
 
=인문 환경=
69번째 줄: 131번째 줄:
 
==행정구역==
 
==행정구역==
 
[[File:도이칠란트 연방 행정도 (3).jpg|400px]]
 
[[File:도이칠란트 연방 행정도 (3).jpg|400px]]
↑도이칠란드의 각 주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0년 기준)
+
↑도이칠란트의 각 주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0년 기준)
 
[[File:도이칠란트 연방 지도.jpg|400px]]
 
[[File:도이칠란트 연방 지도.jpg|400px]]
↑도이칠란드의 영토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9년 기준)
+
↑도이칠란트의 영토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9년 기준)
 
[[File:sketch-1555575777925.png|400px]]
 
[[File:sketch-1555575777925.png|400px]]
↑유럽에서 본 도이칠란드 연방
+
↑유럽에서 본 도이칠란트 연방
  
도이칠란드 연방의 최대 행정 구역은 레지온(Region)이다. 정식 명칭은 (Verwal region)지방 자치구로, 총 34개의 지방 자치구와 170개의 도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지방 자치구는 브란덴부르크-안할트 레지온으로, 도이칠란드 연방의 전체인구인 165,165,876명 중 4%가 대 베를린에 밀집하여 있다. 물론 지방 자치구의 종류에는 행정 특별 자치구, 상공 특별 자치구등이 존재하며, 최대 도시는 신 베를린(Neue Berlin)이며, 2005년대에 들어서 구 베를린이 낙후되었다는 의견이 지속되자, 도이칠란드 연방 정부가 새로 지은 특별 자치시로,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에 소속되어 있다.
+
도이칠란트 연방의 최대 행정 구역은 레지온(Region)이다. 정식 명칭은 (Verwal region)지방 자치구로, 총 34개의 지방 자치구와 170개의 도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지방 자치구는 브란덴부르크-안할트 레지온으로, 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체인구인 165,165,876명 중 4%가 대 베를린에 밀집하여 있다. 물론 지방 자치구의 종류에는 행정 특별 자치구, 상공 특별 자치구등이 존재하며, 최대 도시는 신 베를린(Neue Berlin)이며, 2005년대에 들어서 구 베를린이 낙후되었다는 의견이 지속되자, 도이칠란트 연방 정부가 새로 지은 특별 자치시로[* 1980년 착공 당시에는 거의 허허벌판에 가까운 부지였으나, 완공 이후 다른 여러도시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현대화된 도시로서 그 이름을 떨쳤다.] ,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에 소속되어 있다.
  
도이칠란드 연방의 레지온
+
도이칠란트 연방의 레지온
 
1. 그로닝겐 - 작센 레지온 2. 브뤼셀 - 라인 레지온 3. 리게 - 라인란트 레지온 4. 슐레스비히 - 포어포메른 레지온 5.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
 
1. 그로닝겐 - 작센 레지온 2. 브뤼셀 - 라인 레지온 3. 리게 - 라인란트 레지온 4. 슐레스비히 - 포어포메른 레지온 5.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
 
6. 헤센 - 튀링겐 레지온 7. 그로스 바이에른 레지온 8.스트레도스키 - 지흐체스키 레지온 9. 트렌시안스키 - 즐린스키 레지온 10. 그로스 빈 레지온
 
6. 헤센 - 튀링겐 레지온 7. 그로스 바이에른 레지온 8.스트레도스키 - 지흐체스키 레지온 9. 트렌시안스키 - 즐린스키 레지온 10. 그로스 빈 레지온
87번째 줄: 149번째 줄:
 
|| GB || SZ || TZ || GV || TS || NK ||
 
|| GB || SZ || TZ || GV || TS || NK ||
 
|| TJ || GBU || GVM || GMS || SO ||
 
|| TJ || GBU || GVM || GMS || SO ||
 +
 +
또한, 레지온의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주(Staat)가 존재하며, 약 50여개의 주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아래 행정구역으로는 시, 비 도시 구역, 구 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나 구 단위로는 학교에서 방대하게 가르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50여개가 넘는 주의 명칭과 최소한 몇백개는 넘어갈 수 있는 시와 구 까지 생각한다면 학습이 어려워 질것이라 판단한 사회 교육부에서는, 최대한 대표적인 레지온과 주, 시 단위의 행정구역을 연방 지리(Bundes Geographie)로 분리해 가르친다. 물론 주 단위의 행정구역에서는 1개이상의 중대가 존재하는데, 이는 전쟁 발발시 예비군을 차출해 내거나, 레지온을 넘나들면서 배정받는 등의 혼란을 줄이고자 설치하였는데, 대부분 주의 외곽에 위치한다.
  
 
==교통==
 
==교통==
도이치 연방은 수많은 자치국과 연결되어있는 특성으로 인해 상당히 방대한 철도망과 교통체계가 존재한다. 도이치 연방의 시내버스부터 알아보자면 포스트버스, 플릭스버스등이 있으며, 그 이외의 버스사로는 도이치 버스사가 있다. 그리고 도이치 연방의 지하철은 u-bahn, s-bahn과 Ausland-bahn 등이 있다. 항공사로는 국영항공사인 도이치 항공과 그 이외의 항공사인 콘도르 항공, 도이치 윙스, Ausland-Wings, 루프트 한자등이 있다. 그리고 교통망이라면 두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하나는 물류 운송 체계인 LTS와 분데스 아우토 반등의 고속 도로등이 존재하며, 철도망으로는 도이치 철도 등이 존재한다
+
도이치 연방은 수많은 자치국과 연결되어있는 특성으로 인해 상당히 방대한 철도망과 교통체계가 존재한다. 도이치 연방의 시내버스부터 알아보자면 포스트버스, 플릭스버스등이 있으며, 그 이외의 버스사로는 도이치 버스사가 있다. 그리고 도이치 연방의 지하철은 u-bahn, s-bahn과 Ausland-bahn 등이 있다. 항공사로는 국영항공사인 도이치 항공과 그 이외의 항공사인 콘도르 항공, 도이치 윙스, Ausland-Wings, 루프트 한자등이 있다. 그리고 교통망이라면 두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하나는 물류 운송 체계인 LTS와 분데스 아우토반 등의 고속 도로등이 존재하며, 철도망으로는 도이치 철도 등이 존재한다
  
 
==경제==
 
==경제==
도이치 연방은 전성기때부터 높은 자본력과 기술력, 교통망, 상당한 노동력 등으로 매우 강성한 국가중 하나이다. 도이치 연방의 본토와 오스트리아는 생산, 물류 특구이고 그 이외 몇몇 국가들은 노동력을 기반으로한 1차 산업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 주요적으로 분포된 산업은 공업(경공업,중공업 둘다 수요가 큰편.),건설업(중동지방의 건설지원(한국과 함께)등으로 공업 다음으로 수요가 크다.)이 있다. 또한,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항공기,자동차,군수물자,생활 공산품 등이다. 주요적인 기업으로는 반도체에선 국영기업으로 도이치 일렉트로니시(반도체 제조,전자제품 제조,통신업)이 있고, 항공기는 에어버스(독일 지사),자동차는 알다시피 벤츠,BMW,폴크스바겐 이 있으며, 군수물자는 주로 헤클러 운트 코흐나 크라우스 마파이 베그만, 발터 포이어 바펜즈사 등이 있다. 그리고 생활 공산품은 공구하면 알만한 보쉬사와 색연필이나 사인펜으로 유명한 파버카스텔,스테들러, 세제나 청소제품으로 유명한 헨켈, 제약으로 유명한 바이엘 등이 있다.  
+
도이칠란트 연방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전후 경제 기적인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당시 미국을 위협할 수 있을정도의 경제 강국으로 성공했으나, 1973년 일어난 도이칠란트 전쟁으로 대부분의 기반시설이 파괴되었으나, 미국의 전후 경제 복구 대책으로(신 마셜플랜)다시 기반시설을 복구하고 공장들을 세우며 경제성장(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다. 도이칠란트 연방의 경제 성장률을 보면 전쟁이 종전된 1973년 당시에는 사실상 0.9% 수준이었고, 1974년도의 경제 성장률은 1.6%로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고, 1980년 전성기때는 2.5%까지 증가하였으며, 지금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4.3% 수준까지 그치게 되었으며, 주로 1차 산업보다는 2차와 3차산업에 걸쳐 많이 분포되어있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공산품, 생필품, 전자제품부터 다양한 수출상품이 있는데, 그에 비해 주요 수입품은 구리, 석유 등의 천연자원이 주를 이루며, 최근에는 에너지 개발정책으로 석유의 수입이 줄어들었다.
무역량은 세계 3위로, 주요 수출품은 경공업을 통한 생활 공산품이나, 석탄,셰일등의 광물이나 중공업을 통한 중(重)공산품이 있다
 
  
 
==사회==
 
==사회==
 
===치안===
 
===치안===
도이치 연방의 치안은 한국다음으로 우수한 편인데, 그이유는 투철한 신고 정신,준법정신 그리고 애국심이라는 소프트 웨어와 체계적이고 강력한 경찰이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며 상당히 좋은 치안력을 자랑하게되었다. 도이치 연방의 치안은 법무부 산하 연방 경찰청에서 관리하는데, 그도 놀라울것이, 대부분의 경찰병력이 정예화되어있다. 왜냐하면 도이치 연방 국경 수비대가 연방 경찰청의 전신이기때문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많은 경력을 쌓아오며 정예화되었다. 현재 연방 경찰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도이칠란트 연방의 치안은 한국다음으로 우수한 편인데, 그이유는 투철한 신고 정신,준법정신 그리고 애국심이라는 소프트 웨어와 체계적이고 강력한 경찰이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며 상당히 좋은 치안력을 자랑하게되었다. 도이치 연방의 치안은 법무부 산하 연방 경찰청에서 관리하는데, 그도 놀라울것이, 대부분의 경찰병력이 정예화되어있다. 왜냐하면 도이칠란트 연방 국경 수비대가 연방 경찰청의 전신이기때문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많은 경력을 쌓아오며 정예화되었다. 현재 연방 경찰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사법경찰(국민경찰)
 
1.사법경찰(국민경찰)
 
통상적인 민주주의국가의 경찰과 권한이 비슷한데 주로 경범죄자에 대한 조사,체포,벌금안 작성등이 주업무이다. 물론 중범죄를 수사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런경우는 주로 형사들이 맡는다.
 
통상적인 민주주의국가의 경찰과 권한이 비슷한데 주로 경범죄자에 대한 조사,체포,벌금안 작성등이 주업무이다. 물론 중범죄를 수사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런경우는 주로 형사들이 맡는다.
 
2.특수경찰(전투경찰)
 
2.특수경찰(전투경찰)
주로 시위나 폭동에 대한 제압,체포,해산등이 주 업무이다. 그들은 주로 곤봉으로 무장하며, 때로는 스프레이(일시적으로 눈을 따갑게 함)등으로 무장한다.
+
주로 시위나 폭동에 대한 제압,체포,해산등이 주 업무이다. 그들은 주로 곤봉으로 무장하며, 때로는 진압용 스프레이(일시적으로 눈을 따갑게 함)등으로 무장한다.
 
3.무장경찰
 
3.무장경찰
 
주로 테러, 인질극, 비상사태에서의 진압,사살, 체포 등이 주 업무 이며, 대부분이 권총으로 무장하여있으나, 때때로는 기관단총이나 소총, 산탄총 등으로 무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빈번하지는 않으며, 주로 중(重)범죄자에 대해 이러한 경찰들이 출동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테러, 인질극, 비상사태에서의 진압,사살, 체포 등이 주 업무 이며, 대부분이 권총으로 무장하여있으나, 때때로는 기관단총이나 소총, 산탄총 등으로 무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빈번하지는 않으며, 주로 중(重)범죄자에 대해 이러한 경찰들이 출동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
 
===교육===
설정상 교육은 킨더 가르텐에서 시작해 킨더 가르텐 이수기간 말에는 진로 탐색 기간이라하여 어떠한 학교를 진학할것이며, 자신의 진로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종의 방학과 비슷한 과정을 수료하고, 김나지움은 우리나라로 보면 외국어 중학교라 보면 되고, 상급과정을 수료한후에는 국가 교육능력 표준 시험을 통하여(일종의 수능으로 보면된다)전국의 모든 대학교를 대상으로 진학신청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레알슐레나 하웁트 슐레는 일종의 특성화 중학교로 보면되고, 이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전문 고등학교나, 직업 고등학교로 진학할수 있으며, 레알슐레나 하웁트 슐레를 수료하고 바로 취업을 하거나, 전문 대학교로 진학할수 있다. 이는 다른 자치국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
교육은 4살부터 킨더 가르텐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기초적인 독일어와 수리능력, 탐구능력 등을 가르치며, 킨더 가르텐 이수기간 말에는 겨울방학에 포함되는진로 탐색 기간이라하여 킨더가르텐에 진학중인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어떠한 학교를 진학할것이며, 자신의 진로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수료하고, 이를 부모를 통해 사회 교육부에 제출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 교육부와 유치원이 검토해 각자의 개성 및 학력에 맞게 그룬트슐레에 배정하고 8살이 되는 3월 부터 입학식을 가진다. 학년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존재하는데, 1학년에서는 기초적인 독일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와 수리능력을 배우고 통합사회를 배운다. 그리고 2학년에서는 조금 심화된 독일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부터 곱셈, 나눗셈과 같은 수리능력을 배우고 이때부터는 선택적으로 정보와 생활을 배우며 기초적인 생활활동 능력을 가르친다. 그리고 3학년 부터는 독어로 작성된 글(시, 기초 설명문, 기초 논설문)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한국어, 프랑스어 중 하나를 배울수 있는 제 2 외국어를 신청할 있고 통합사회에서도 역사/ 사회/ 지리/ 교양 등으로 분리되어 넷중 하나가 신청가능하다. 또한 체육도 기초 체육/ 체육 과학/ 무용 예술 등으로 나눠 신청이 가능하다. 또한 이 시기 부터는 자유롭게 공부시간이 배정 가능하나, 의무적으로 6교시까지 지정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4,5,6 학년부터는 의무적으로 7교시로 자유배정이 가능하고, 제 2외국어와 심화된 정보와 생활, 교양, 진로 등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며 졸업한 이후에는 미텔 슐레와 회흐 슐빌퉁(고등 교육)을 이수할 수 있고, 특히 회흐 슐빌퉁을 이수하면 바로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짐과 동시에 우니버실탓(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며, 다양한과가 존재한다. 대부분 Bewertung der Reparaturfähigkeit(수리 능력 평가)로 진학하는데 몇몇 경우에서는 특수 진형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군사==
 
==군사==
도이칠란드 연방군은 상당히 크고 과학화, 기갑화되어있다. 주 원인으로는 냉전의 전개로 인한 공산화 위협과 미국의 지원등으로 체계화 되고 잘 갖추어진 전력이 연방군을 강성하게 만들었는데 육군만 봐도 거의 미군을 방불케 하는 수준의 군대이다.
+
===군의 구조===
 +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구조는 1955년 창설된 연방 지상군 (Landstreitkräfte), 연방 해군 (Bundes Marine), 연방 항공군 (Luftstreitkräfte)과 그 이외의 병과로 시가전의 중요성에 따라 1970년 창설된 화력지원군(Deckungsgruppe) , 이후 넓어진 영토의 수비를 위해 파견되었던 국경 수비군(Grenztruppen), 테러리즘의 유행으로 이를 저지하고자 만든 특수목적군(Fallschirmjäger)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연혁===
 +
-1955년 : 미, 영, 프 3국의 허가로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가입과 동시에 도이칠란트 연방군 창설
 +
-1959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제식무기로 HK G3 전투소총 채용
 +
-1963년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대통령의 지시로 군비 증강과 군 체제 개편
 +
-1965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주독미군을 통해 M16소총을 1차적으로 인도받음.
 +
-1973년 : 도이칠란트 전쟁의 발발과 종전(당시 병력 30만명, 전차 3684대)
 +
-1974년 : 도이칠란트 본토의 통일
 +
-1975년 : 제 2의 안슐루스 발생으로 주변국들이 통합됨.
 +
-1978년 : 도이칠란트 연방의 수립과 연방군의 2차 개혁
 +
-1980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제식소총으로 M16A2 소총 채용
 +
-1991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G41의 개량지시
 +
-2001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
-2010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위해 미군과 함께 전투 참여 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
-2018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제식소총으로 MCX의 채용과 군비 증강
 +
-2019년 : 현재 군 병력 54만명, 전차 보유수량 1986대 달성
 +
 
 +
===육군(Heer)===
 +
총 24만 3천명이 이곳에서 근무중이며, 현재 그들의 무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30>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보병 장비 ||
 +
|| 제식소총 |||| G3 |||| G8 |||| G30 |||| G41 |||| G43 ||
 +
|| 지정 사수 소총 |||| G3SG/1 |||| G30SG/1 |||| G28 ||
 +
|| 저격소총 |||| G22 |||| G24 |||| G25 |||| G82 |||| G29 ||
 +
|| 기관단총 |||| MP5 |||| MP5M |||| MP7 |||| PM-10 ||
 +
|| 권총 |||| P1 |||| P7 |||| P8 |||| P11 |||| P21 |||| VP80 ||
 +
||<-30>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지원 화기 ||
 +
|| 기관총 |||| MG3 |||| MG3M |||| MG4 |||| MG5 |||| MG50 ||
 +
|| 유탄발사기 |||| AG40-1 |||| AG40-2 |||| HK320 ||
 +
|| 대전차화기 |||| PzF-3 |||| Leuchtbüchse 84 mm |||| RGW90 |||| MILAN |||| EUROSPIKE ||
  
도이칠란드 연방군의 구조는 연방 육군(Bundes Landstreitkräfte), 연방 해군 (Bundes Marine), 연방 항공군 (Bundes Luftstreitkräfte)과 그 이외의 군대로 화력지원군(Deckungsgruppe) ,국경 수비군(Grenztruppen),  특수목적군(Fallschirmjäger) 등이 존재하며 병력만을 따진다면 1개 군당 평군 1,376,382명 정도의 병력이 존재하며 총 8,258,293명이 있다. 사실 3백만명정도는 상비군이고, 실제로는 예비군에 대부분이 몰려있다. 그 덕분에 약 3백만명이 상비군이라면 전쟁 발발시에는 5백만명을 포함해 징집령이 떨어질시 약 몇백만명의 예비군을 징집시킬수있다.
+
육군 편제
 +
육군사령부 육군사령부(Kommando Heer; Kdo H) - XXXX
 +
신속병력사단(Division Schnelle Kräfte; DSK) - XX
 +
제1기갑사단(1. Panzerdivision; 1. PzDiv) - XX
 +
제10기갑사단(10. Panzerdivision; 10. PzDiv) - XX
 +
유럽 군단(Eurokorps) - XXX
 +
제1독일-네덜란드군단(1. Deutsch-Niederländisches Korps; 1. GE/NL Corps) — XXX
 +
북동부 다국적군단( Multinationales Korps Nord-Ost; MNC NE) — XXX
 +
육군교육사령부(Ausbildungskommando; AusbKdo) - XX
 +
육군개발청(Amt für Heeresentwicklung; AHEntwg) - XX
  
상비군들의 무기만 봐도 상당히 과학화,체계화,기갑화 되어있는데 이들은 미군무기부터 소련무기, 독일제 무기, 체코제 무기, 폴란드제 무기, 오스트리아제 무기등의 다양한 무기들을 제식 또는 실험용으로 채용하였는데 도이칠란드 연방의 본토방위군은 HK416A5를, 오스트리아 방위군은 AUGA3를, 체코와 슬로바키아 방위군은 CZ-805를, 베네룩스 방위군은 F2000/FAL을, 헝가리 방위군은 M16A3를 사용중이다.
+
===공군(Luftwaffe)===
그리고 기갑장비를 보자면 대부분이 레오파르트 2A4~2A7전차를 구매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차들이 레오파르트 계열의 전차들이다.(종종 T-72계열의 전차들도 보이는데 이는 일부부대 한정으로 몇대씩이 뽑혀있다. 주로 국경수비나 방어를 위해 사용한다.)그리고 자주포는 좀 애매하게 채용되어있는데 도이칠란드 본토방위군, 오스트리아 방위군 은 PZH2000 자주포를,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폴란드 방위군은 Shm Vz.85 DANA 차륜형 자주포를 채용중이다. 그리고 IFV와 대공포를 보자면 도이칠란드 본토방위군, 오스트리아, 폴란드 방위군은 Spz Puma와 게파드 자주대공포를 채용하고 있고, 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방위군은 소련제 쉴카와 BMP-3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점은 이동식 ICBM 발사대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Rheinschild(라인쉴드)라고 한다.
+
공군사령부 공군사령부(Kommando Luftwaffe; Kdo Lw) - XXXX
 +
공군작전센터(Zentrum Luftoperationen; ZentrLuftOp) — XXX
 +
공군병무사령부(Luftwaffentruppenkommando; LwTrKdo) — XXX
  
그리고 해군 함정들은 조금 어설픈데, 212급 잠수함과 K130 또는 K131 브라운 슈바이크급 초계함 그리고 F122 브레멘급, F123 브란덴부르크급, F124 작센급, F125  바덴-뷔르템베르크급 으로 이루어진 호위함, LCI, LCM, LCU급 상륙정, 332급, 333급, 342급 소해함, 760 베스터발트급 수송함, 404 엘베급,702 베를린급 군수지원함 423식 오스트급 정찰/연구함 422식 훈련함이 있다
+
===해군(Marine)===
 +
해군사령부(Marinekommando; MarKdo)
 +
제1기동전단(Einsatzflottille 1; EinsFltl 1)
 +
제1기동전단( Einsatzflottille 2; EinsFltl 2)
 +
해군비행사령부(Marinefliegerkommando; MFlgKdo)
 +
해군지원사령부(Marineunterstützungskommando; MUKdo)
  
공군의 항공기는 메서슈미트와 신 융커스 사를 주축으로한 훈련기, 전투기등의 구성과 유로버스의 수송헬기, 전투헬기등의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추후 서술 예정)
+
(추후 서술합니다)
 +
==각주==
 +
{{각주}}

2019년 12월 9일 (월) 22:03 기준 최신판

느낌표icon.png
빨간하얀공사중.png
이 문서는 공사 중인 문서입니다.
아직 설정 집필중이며 작성중입니다.
설정 집필이 완료되기 전까지 편집을 자제해주십시오.

도이칠란트 연방의 공식문서입니다.
본 문서는 2018년 10월~2019년 2월 까지 존재하였던 독일 연방 공화국과는 다른 문서이며

본 문서의 제목에 이상이 있는것은 문서 작성시 일어난 표기법 문제입니다. 또한 해당 문서의 무단 복제, 편집 등을 금합니다.


도이칠란트 제 3 공화국
Bundes Republik Deutschland
Federal Republic of Germany
Sketch-1564049380423.png
국기
국호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BRD)
상징국가
국화참나무
국조독수리
표어 Eine reiche Nation, die frei von eigenen Antrieb.
(자유로 얻어낸 부강한 국가, 공식표어)
자연환경면적(영토)면적 1,000,130km²
인문환경인구인구 수 165,165,876명
인구밀도인구밀도 1459명/km²
공용 언어 독일어
정치국체공화제 -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내각책임제, 연방제
대통령 프리츠 귄터(Fritz Günter)
국무총리 마르크 베르톨트(Mark Berthold)
경제GDP$8,134,000,000
1인당 GDP$73752(연방 전체)
공식 화폐Bundes Mark(연방 마르크화)
단위
법정연호서력기원 2019년
시간대UTC +1
ISO-3166-1276, DE
도메인DE
국제전화+49
본국 링크카페 아이콘.png 카페 본국
본국 링크밴드 아이콘.png 밴드 본국

도이칠란트 연방의 역사

1918년(1차 대전의 종전)~1944년(2차대전의 종전)

주의!
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1차세계대전이 종전된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는 사실상 파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이유는 승전국인 협상국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채 단지 전쟁만 일으켰단 이유로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청구하였고, 이미 염전사상이 퍼질대로 퍼져버린 바이마르 공화국은 더이상 국토수호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 피해보상금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탓에, 배상금의 청구를 기피한다며 강제로 군사력을 사용해 알자스-로렌지방을 강제 점령하고, 그곳의 산업력을 착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동안, 바이마르의 정치는 상당히 긴박하게 흘러갔다. 당시 여당이었던 사회민주당(SPD)과 제 1 여당인 도이칠란트 공산당(KPD)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립을 틈타 세력을 점차 키워오던 국가 사회주의 도이칠란트 노동자 당(NSDAP)은 1933년 총선 승리를 기반으로 점차 정계와 행정부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결국 1933년 말,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이 된지 몇일후 수권법을 통과시키는 계기가 되는 라이히스탁(Reich Stag, 국가의회)가 불에 타는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공산주의자였음이 밝혀짐에 따라, 도이칠란트 공산당의 여론은 점차 몰락해 갔고, 이 사건으로 총리에 취임한지 얼마안된 아돌프 히틀러는 그날밤, 날치기 표결로 비상시 총리가 모든 권한을 하달받는 수권법이 통과되었고, 전권을 하달받은 아돌프 히틀러는 몇일뒤, 날치기 개헌으로 국가 사회주의 도이칠란트 노동자 당을 제외한 나머지당을 전부 위헌정당으로 해산시키고, 총리의 직위를 폐쇄하고 총통(Fürher)이란 직위를 만들고스스로 총통의 자리에 오른뒤, 1936년, 라인란트 재무장, 로카르노 조약 파기를 함으로서 군사력을 키웠고, 그 군사력을 기반으로 폴란드를 1939년 9월 1일 침공하며, 2차세계대전이 개전된다. 그리고 1940년, 덴마크, 폴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점령하며 본격적인 식민지화 작업을 가동하고 이내, 1940년 6월에는 '프랑스 해방'이라는 작전명으로 벨기에의 아르덴숲을 통과, 프랑스 파리로 진격해 마지노선의 피해는 받지 않고 손쉽게 프랑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0년 8월에는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 공중전을 준비했다가, 당시 공군 참모총장 헤르만 괴링이 작전을 엉터리로 짜는 바람에 피해만 입는 사이, 프랑스 북부에 포위된 연합군은 대대적인 철수작전을 펼쳐 기적적으로 철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의 실패로 많은 공군이 소실되자, 이번에는 동유럽을 노리고 소련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북부, 중부, 남부 집단군은 전격전(Blitz Krieg)을 사용해 손쉽게 공격과 점령을 가했다. 그러나 1941년 겨울, 매서운 추위에 3개 집단군의 병력관리에 실패하고 그의 결과로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패배하며 본격적으로 패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는 나치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게된다. 따라서 민심은 종전을 요구하는 추세로 바뀌어가고 있었지만, 이미 레벤스보른이라는 대 제국을 건설하는데 눈이 멀어있던 아돌프 히틀러의 정부는 이를 묵살하게되고, 결국 분노한 시민들은 1942년 10월 6일, 반 나치당 주의자와 레지스탕스, 탈영병 등을 포함한 일부 부대까지 가세한 42혁명이 발생하게되었다. 그로스 베를린 사단의 무차별 사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까지 밀고나가 결국은 포츠담까지 점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943년 초, 히틀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국정의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고, 결국 임시로 정권을 잡은 나치당 수뇌부는 끝까지 시민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버티고 있었지만 이들은 이미 몇백만의 대규모 병력으로 불어난 상황이었고, 결국 1943년 4월, 도이칠란트 임시정부가 세워짐과 동시에 연합국과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결국 1943년 5월 8일, 미국의 패튼장군을 포함한 3명의 장성이 파견되어 임시정부로부터 항복성명을 받고 무장해제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43년 7월에는 미군과 영국군이 프랑스를 통해 서부 독일지방으로 진입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1943년 10월에는 소련군이 동부 독일지방으로 진입하였다. 이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영국수상, 스탈린 소련 서기장은 포츠담에서 회담을 가져 전후 독일의 처리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함으로서 종전을 맞이하게된다.

1945년(전후)~1953년(동독 반소봉기)

1944년 8월, 항복한 도이칠란트 민주 정부[1]는 즉각 연합군의 관리와 동시에 무장 해제가 이루어 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는 나치 정권이 저지른 추악한 홀로코스트의 실상도 드러나게 되었다.[ * 1941년 부터 1944년 패망까지 총 유대인, 집시, 슬라브인 등이 총 600만명 사망한것으로 정부 조사결과 집계 되었다.]1945년, 연합국의 관리를 받으며 전법과 전범기업들을 처리하기위해 뉘른베르크 재판이 개정되었고, 이를 통해 나치에 가담한 A급 전범이 대거 처형되었거나 자살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은 2발의 핵[2]을 맞으면서 주요 식민지의 광복과 동시에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강자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게 되면서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내에서는 1947년에는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도이칠란트 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48년에는 베를린 봉쇄 위기를 맞게된다. 1949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냉전이 전개되는 동시에 유럽도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1950년에는 한국전쟁(6.25 전쟁)이 발발하며 서유럽에도 언제 소련이 적화를 노릴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재무장을 해야한다는 도이칠란트 재무장론이 확산되었고, 1953년 도이칠란트 인민공화국의 각종 무리한 정책에 반발해 전 시민이 들고 일어났던 동독 반소봉기[3]가 일어난다. 당시 동독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참가할 만큼 대규모의 시위였으나, 당시 지도부는 개혁개방정책을 일체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민 경찰(volks polizei)에 발포를 지시해 시위에 참가한 인명중 57명이 사망하고 128명이 실종/체포되었다.
0148a754e44c205b69a9556719e40381fab2aabd5ec1c09581fcbb82d01085be473f0c65ee7ff8676887a5b90db403fd748565acb0a097df9fa77791877136d0101db85dbcf1ce6a6aeaa7239e8b83176db750e6485a59d2c8fdd6ee8cc76179.png
[당시 냉전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생겨난 서유럽/동유럽의 경계(출처:나무위키)]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BRD)의 역사(냉전)

도이치 연방 공화국3.png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VRD)의 역사(냉전)

도이치 인민 공화국3.png

1954년(냉전의 전개)~1980년(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성기)

주의!
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냉전이 전개되며 마셜플랜의 수혜국으로서 미국에게 재정지원을 받고 이 기반으로 공업력을 성장시키고 공산국가의 침공에 대비해 1955년, 연방군 창설 1956년, 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 등을 거치며 군사력을 증강시키던 철저히 반공을 중요시 했던(KPD 해산, RAF 해산 등)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과는 정 반대로 코메콘의 경제지원은 받았으나 자금의 상황이나 공업력 등은 생각도 하지 않고 군사력에 대부분의 예산을 쏟아 부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군사력 만큼은 동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손꼽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 국가의 경제력 차이가 확고하게 난 것은 1965년대부터 였는데,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GDP만 해도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GDP의 몇배는 뛰어 넘었고, 결국 1968년대, 동유럽에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은 점점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을 몰락의 길로 밀어 넣고 있었다. 게다가 발터 울브리히트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세력의 쿠데타(당시 지지 기반도 약했을 뿐 아니라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여파였다.)까지 일어나며 거의 몰락에 다다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쿠데타를 잔혹하게 진압했고, 이를 아무 잘못도 없는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이 사회주의 사상을 엎어버리기 위해 일으킨 수작이라며 침공 명분을 만들었으며, 1973년까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은 대대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그로 인해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국방예산의 2배가 훌쩍넘는 국방예산을 사용해 파산[4]직전에 이르렀다. 그리고 1970년 8월, 연방 정보부와 CIA는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에서 나온 각종 서류들을 해석/조사/분류 하던중, 한 요원에 의해 총 13장에 달하는 서류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노동자, 농민, 인민의 힘의 보호를 위하여,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방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전투 명령 1969-321호
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 령도자 께서는 1963년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련방에 방문하시어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련방-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외교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주요 동부 유럽 지방 공산권 국가들의 세력 확장에 대해 논의 하였으며, 그에 따른 결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산출해 내는데 이르렀다.

-논의 결과-

·국가 인민군의 병력 추가 증강
·신 무기 도입/개발 적극 추진
·3년에 걸쳐 지속적인 공업화 지원
·주요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수교 강화

이와 같은 사항에 따라 국가 인민군은 현재 11만명의 병력을 14만명으로 추가 증강하며, 이에따라 3개 기갑화 사단과 5개 보병사단 등을 추가적으로 증강한다. 또한 현재 MPI-K 47식 모델을 새로 개발중인 MPI-K 신식 모델을 도입해 전군에 보급하는데 만전을 기한다. 또한 이러한 개혁과 동시에 새로운 교전수칙을 공포한다.

-신규 교전수칙-

·만약 적의 국경침범이 있을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며, 필요에 따라 기관총 위협 사격, 사살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허가한다.
·국경 지대에서는 절대 적의 침범 혹은 아군의 적국의 침범 등을 유발할만한 사고 혹은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만약 적이 선제공격할 경우 3개 분대가 이에 조치하며, 즉각 사격을 허가하는 권한을 소대장에게 하달한다.
·조치 후 보고에서는 적의 공격사항에 대해 세밀히 보고하며, 만약 위조된 부분 혹은 잘못 조치된 부분으로 문제가 발생시 군법에 따라 조치한다.

그리고 새로운 교전수칙의 발표와 동시에 다음과 같이 공산권 국가 확장 계획을 세운다.

-계획명 "붉은 파도"-
본 작전은 도이치 인민 공화국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 이외의 4개국이 공동으로 서부 유럽으로의 공산권 국가 확장을 위해 실시하는 작전으로, 부대 구성과 군대의 임무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며, 필요에 따라 조정한다.

-전투단 편제-
A. 도이치 인민 공화국 국가 인민군
(말소 됨)[5]

·1단계(전투 준비)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인)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방장관 빌리 슈토프(인)

"만약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이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과 전쟁한다면, 본(Bonn)[6] 은 불바다가 되고 말것입니다."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외무장관 만프레드 슐츠


"공산주의 국가들은 언제든지 외교전 또는 무력을 통한 전쟁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으므로 항상 안보에 신경쓰고 공산주의를 경계해야한다."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외무장관 프레드리히 할슈타인


도이칠란트 전선(Deutschland Front)[7]
제 3차 세계대전 전선의 일부
220px-Bundeswehrsoldaten während eines Manövers (1960).jpg
도이치 인민 공화국을 향해 진격하는 연방군 병사

당시 시대상[8]으로 보았을때, 사실상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이 침략을 준비 중이며, 언제든 적화통일의 의지가 있다는이 전투명령으로 인해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고 이에 맞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공산권 국가의 “무리한 전쟁준비”를 중단하라는 비판 성명을 내었다. 하지만 공산권 국가들도 이에 맞서 “전략무기”를 감축하라는 성명을 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몇 주 전에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소속 군인들이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경에 집결했다. 그리고 1달 후인 1973년 4월 8일, 새벽 6시에 그들은 일제히 전투 암호에 따라 포문을 개방하고 약 15개의 보병사단과 3개의 기갑 사단이 본(Bonn)을 향해 진격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서 베를린은 미군과 국가 인민군의 치열한 대치가 이어졌지만, 결국 2일만에 점령당했으며, 그 결과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에 의해 총독부[9]를 설치 당한다. 당시 게릴라 전투에 특화된 국가 인민군은 지속적으로 시가전과 엄폐와 엄호 등을 활용한 전투 등을 지속하며 속전속결로 점령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후에 사상교육, 숙청 등으로 세뇌시키고자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내부적 안정보다는 빠른 점령이 급하였고, 이는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점령지 내 레지스탕스[10]를 생성해내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서 베를린을 점령한 이후 지속적으로 진격하였고 수 많은 사상자를 무릎쓰고 전투에 지속적으로 임한 군인이 있었으나, 국가 인민군의 인해전술에는 역 부족이었고, 전쟁 시작 2주일 만에 주변 도시 10개가 점령당한다. 그리고 3달째 되는 때에는 국경을 훨씬 넘는 절반이 넘는 도시가 점령당했고, 3달 그리고 2주일이 넘는 때, 그들은 75%에 달하는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은 전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본(Bonn)으로 후퇴를 결정했고 노르트 라인 – 베스트 팔렌 방어선을 세웠으며, 일부 병력은 네덜란드, 벨기에 등으로 후퇴한다. 또한 다른 일부 병력은 오스트리아 방면으로도 후퇴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쟁중 평화상태가 지속되었는데, 왜냐하면 7월 29일, 알 수 없는 이유로 군사정변이 발생[11] 그 여파로 새로운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서기장이었던 발터 울브리히트가 사임하고, 그 자리를 빌리 슈토프 당시 국방장관이 메꾸게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지도부의 교체로 인해 대부분의 병력이 제대로 된 보급과 식량[12]등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13]이 때문에 대부분의 장병이 레지스탕스에 협력하거나 상관의 명령을 무시[14] 하거나[15]의 행위를 하였고 게다가 갑작스러운 정변으로 인수인계마저 받지 못한 신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정부는 사실상 무능[16] 그 자체에 가까웠다. 또한 이미 전투도 기술력의 한계로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을 도우기 위해 UN 안보리가 열리고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침공을 묵인한 공산권 국가들을 제외하고 회의를 한 결과 이에 합류한 미군들을 중심으로 도이칠란트 연방군, 홀란트 연방군, 오스트리아 공화국군, 프랑스 공화국군, 덴마크 왕국군 등이 합세해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점령지를 수복하는 ‘자유주의 수호’라는 작전을 8월 1일 실행하기로 하였다 7월 15일, 브뤼셀의 NATO본부에서 군의 편성이 시작되었고 8월 1일, 진격을 시작해 본(Bonn)에 있던 주독 미군 기지에 집합해 부대를 정비함과 동시에 전격전과도 비슷한 전술을 적용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실시 하였으며, 처음 일어난 니더-작센 수복전투에서 당시 방어군으로 있던 12개 보병 대대를 신속히 격파함으로서 빠르게 니더작센을 수복하였다. 그리고 전세가 아무리 유리했어도 벌써 도이칠란트 국가 인민군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그 결과 적화되어 있던 전선 근처에 있던 도시를 시가전과 포병의 대 폭격으로 인민군의 기지와 총독부를 쑥대밭으로 만든뒤 점령하고 북해 쪽에서는 함대가 지속적인 포격 등을 개시해 빠른 속력으로 진격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가 인민군 병사들을 패잔병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생포 하는등의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또한, 여러 작전들을 통해 국가 인민군을 격파한 결과로 MPI-KM-72[17] 자동 소총을 다수 노획하였고, T-72전차도 덤으로 노획한 결과로 미국과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은 재빠르게 기술연구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빠른 진격의 결과로 남은 곳은 동 베를린 소재 도이칠란트 공산당 당사와 서기장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합군은 국가 인민군과 치열하게 싸워 도이칠란트 본토를 전부 수복하였고, 국가인민군과 임시 서기장으로부터 1979년 9월 3일에 항복 성명을 받아내면서 도이칠란트 전쟁은 핵전쟁 없이[18] 끝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전쟁 이후의 상황은 1944년 패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방불케 하였고, 수많은 재산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돌아가던 건 남은 25%의 기반시설이었고, 다시 미국의 지원(신 마셜플랜으로도 불린다.)을 받아 빠른 경제 성장으로 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되며 경제대국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79년 10월, 도이칠란트 본토는 공식적으로 통일을 하게 되고, 제 1대 도이칠란트 연방 대통령으로 에리히 폰 크라우프가 취임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 되었습니다."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의 1대 대통령 에리히 폰 크라우프


  • 전후 독일에 대해서는 새로 설정 들어갑니다.

1980년(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성기)~현재

1980년대, 도이칠란트 연방은 당시 건국 이래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2번째로 일어난 경제 기적과 정치 개혁[19] 등으로 전성기를 맞게되고, 당시 경제 상황[20]도 미국을 따라잡을 만큼 부유했었다. 또한 이후 취임한 여러 대통령, 총리들이 과거 나치정부의 행적에 대해 국제사회에 사죄하면서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제적입지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1970년 확산된 테러리즘은 특히 중부유럽이 혼란한 상황을 틈타 폭탄테러를 벌인다던가, 암살 또는 인질극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80년, 전성기에 접어들자 공산주의의 부흥을 꾀하며 대규모 인질극과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는데 정부도 너무 외교와 경제, 정치쪽에만 신경쓴 나머지 공공사업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이후 2차례의 테러를 통해 치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들여 공공사업에 대해 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정부에서는 내부개혁 1.0(Interne Reform 1.0)을 실시해 치안, 소방, 보건 등의 일부 서비스부터 환경, 국방 등의 다양한 부문의 공공 서비스에 대해 개혁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 개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고, 국방력도 점차 증가하였다. 이후 1990년도에는 공산권도 붕괴하며 세계는 점차 평화를 맞이하는듯 싶었으나 중동, 인도 등의 등지에서 종교문제로 인한 분쟁이 불거지며 세계는 2000년이 되어서 신 냉전에 접어들게 되고 또한, 2010년 부터는 신 냉전의 영향으로 다양한 난민들이 생겨나자, 이에 대한 문제가 생겼지만, 현재는 점차 해소되고 있으며, G7의 가입국이자, EU의 가입국, UN의 비 상임 이사국 자리에 등극하였다. 또한 경제력순위도 상위권에 들어가있다.

  • 곧 수정됩니다

상징

국호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더치 페이의 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다른 언어에서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에서는 라틴어 Germania에서 따온 Germany/Germania/Германия(Gyermaniya)를 쓰며,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알레마니아(Alemania)/알레마니아(Alemanha), 폴란드어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 핀란드어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어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

국기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독일기로 불리는데, 독일기/연방기의 바탕이 되는 흑,적,금의 삼색기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그리고 국장의 독수리는 국가의 자유와 용맹함을 뜻하고, 독수리 몸통에 있는 별 2개는 2차례에 걸친 경제 기적과 성장을 의미한다.

국가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연방의 노래'인데, 원곡은 한스 퍼디난트 마스만이 작곡한 Ich hab` mich ergeben으로, 연합군 군정기 도이칠란트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도이칠란트 연방 정부에서 공식 국가로 지정하며 불려지게 된다. 물론 종종 도이칠란트의 노래가 불려지긴 하지만 이는 성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전 나치문제를 부각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인문 환경

행정구역

도이칠란트 연방 행정도 (3).jpg
↑도이칠란트의 각 주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0년 기준)
도이칠란트 연방 지도.jpg
↑도이칠란트의 영토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9년 기준)
Sketch-1555575777925.png
↑유럽에서 본 도이칠란트 연방

도이칠란트 연방의 최대 행정 구역은 레지온(Region)이다. 정식 명칭은 (Verwal region)지방 자치구로, 총 34개의 지방 자치구와 170개의 도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지방 자치구는 브란덴부르크-안할트 레지온으로, 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체인구인 165,165,876명 중 4%가 대 베를린에 밀집하여 있다. 물론 지방 자치구의 종류에는 행정 특별 자치구, 상공 특별 자치구등이 존재하며, 최대 도시는 신 베를린(Neue Berlin)이며, 2005년대에 들어서 구 베를린이 낙후되었다는 의견이 지속되자, 도이칠란트 연방 정부가 새로 지은 특별 자치시로[21] ,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에 소속되어 있다.

도이칠란트 연방의 레지온
1. 그로닝겐 - 작센 레지온 2. 브뤼셀 - 라인 레지온 3. 리게 - 라인란트 레지온 4. 슐레스비히 - 포어포메른 레지온 5.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
6. 헤센 - 튀링겐 레지온 7. 그로스 바이에른 레지온 8.스트레도스키 - 지흐체스키 레지온 9. 트렌시안스키 - 즐린스키 레지온 10. 그로스 빈 레지온
11. 티롤 - 잘츠부르크 레지온 12. 누그라드 - 코시스키 레지온 13. 툴라 - 자라 레지온 14. 그로스 부다페스트 레지온 15. 그로스 포메라니안 레지온
16. 그로스 마소비안 레지온 17. 루 블린 레지온 18. 실레지안 - 오폴 레지온

각 레지온의 코드

GSBRLRSVBAHT
GBSZTZGVTSNK
TJGBUGVMGMSSO

또한, 레지온의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주(Staat)가 존재하며, 약 50여개의 주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아래 행정구역으로는 시, 비 도시 구역, 구 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나 구 단위로는 학교에서 방대하게 가르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50여개가 넘는 주의 명칭과 최소한 몇백개는 넘어갈 수 있는 시와 구 까지 생각한다면 학습이 어려워 질것이라 판단한 사회 교육부에서는, 최대한 대표적인 레지온과 주, 시 단위의 행정구역을 연방 지리(Bundes Geographie)로 분리해 가르친다. 물론 주 단위의 행정구역에서는 1개이상의 중대가 존재하는데, 이는 전쟁 발발시 예비군을 차출해 내거나, 레지온을 넘나들면서 배정받는 등의 혼란을 줄이고자 설치하였는데, 대부분 주의 외곽에 위치한다.

교통

도이치 연방은 수많은 자치국과 연결되어있는 특성으로 인해 상당히 방대한 철도망과 교통체계가 존재한다. 도이치 연방의 시내버스부터 알아보자면 포스트버스, 플릭스버스등이 있으며, 그 이외의 버스사로는 도이치 버스사가 있다. 그리고 도이치 연방의 지하철은 u-bahn, s-bahn과 Ausland-bahn 등이 있다. 항공사로는 국영항공사인 도이치 항공과 그 이외의 항공사인 콘도르 항공, 도이치 윙스, Ausland-Wings, 루프트 한자등이 있다. 그리고 교통망이라면 두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하나는 물류 운송 체계인 LTS와 분데스 아우토반 등의 고속 도로등이 존재하며, 철도망으로는 도이치 철도 등이 존재한다

경제

도이칠란트 연방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전후 경제 기적인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당시 미국을 위협할 수 있을정도의 경제 강국으로 성공했으나, 1973년 일어난 도이칠란트 전쟁으로 대부분의 기반시설이 파괴되었으나, 미국의 전후 경제 복구 대책으로(신 마셜플랜)다시 기반시설을 복구하고 공장들을 세우며 경제성장(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다. 도이칠란트 연방의 경제 성장률을 보면 전쟁이 종전된 1973년 당시에는 사실상 0.9% 수준이었고, 1974년도의 경제 성장률은 1.6%로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고, 1980년 전성기때는 2.5%까지 증가하였으며, 지금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4.3% 수준까지 그치게 되었으며, 주로 1차 산업보다는 2차와 3차산업에 걸쳐 많이 분포되어있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공산품, 생필품, 전자제품부터 다양한 수출상품이 있는데, 그에 비해 주요 수입품은 구리, 석유 등의 천연자원이 주를 이루며, 최근에는 에너지 개발정책으로 석유의 수입이 줄어들었다.

사회

치안

도이칠란트 연방의 치안은 한국다음으로 우수한 편인데, 그이유는 투철한 신고 정신,준법정신 그리고 애국심이라는 소프트 웨어와 체계적이고 강력한 경찰이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며 상당히 좋은 치안력을 자랑하게되었다. 도이치 연방의 치안은 법무부 산하 연방 경찰청에서 관리하는데, 그도 놀라울것이, 대부분의 경찰병력이 정예화되어있다. 왜냐하면 도이칠란트 연방 국경 수비대가 연방 경찰청의 전신이기때문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많은 경력을 쌓아오며 정예화되었다. 현재 연방 경찰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사법경찰(국민경찰)
통상적인 민주주의국가의 경찰과 권한이 비슷한데 주로 경범죄자에 대한 조사,체포,벌금안 작성등이 주업무이다. 물론 중범죄를 수사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런경우는 주로 형사들이 맡는다.
2.특수경찰(전투경찰)
주로 시위나 폭동에 대한 제압,체포,해산등이 주 업무이다. 그들은 주로 곤봉으로 무장하며, 때로는 진압용 스프레이(일시적으로 눈을 따갑게 함)등으로 무장한다.
3.무장경찰
주로 테러, 인질극, 비상사태에서의 진압,사살, 체포 등이 주 업무 이며, 대부분이 권총으로 무장하여있으나, 때때로는 기관단총이나 소총, 산탄총 등으로 무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빈번하지는 않으며, 주로 중(重)범죄자에 대해 이러한 경찰들이 출동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

교육은 4살부터 킨더 가르텐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기초적인 독일어와 수리능력, 탐구능력 등을 가르치며, 킨더 가르텐 이수기간 말에는 겨울방학에 포함되는진로 탐색 기간이라하여 킨더가르텐에 진학중인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어떠한 학교를 진학할것이며, 자신의 진로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수료하고, 이를 부모를 통해 사회 교육부에 제출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 교육부와 유치원이 검토해 각자의 개성 및 학력에 맞게 그룬트슐레에 배정하고 8살이 되는 3월 부터 입학식을 가진다. 학년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존재하는데, 1학년에서는 기초적인 독일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와 수리능력을 배우고 통합사회를 배운다. 그리고 2학년에서는 조금 심화된 독일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부터 곱셈, 나눗셈과 같은 수리능력을 배우고 이때부터는 선택적으로 정보와 생활을 배우며 기초적인 생활활동 능력을 가르친다. 그리고 3학년 부터는 독어로 작성된 글(시, 기초 설명문, 기초 논설문)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한국어, 프랑스어 중 하나를 배울수 있는 제 2 외국어를 신청할 수 있고 통합사회에서도 역사/ 사회/ 지리/ 교양 등으로 분리되어 넷중 하나가 신청가능하다. 또한 체육도 기초 체육/ 체육 과학/ 무용 예술 등으로 나눠 신청이 가능하다. 또한 이 시기 부터는 자유롭게 공부시간이 배정 가능하나, 의무적으로 6교시까지 지정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4,5,6 학년부터는 의무적으로 7교시로 자유배정이 가능하고, 제 2외국어와 심화된 정보와 생활, 교양, 진로 등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며 졸업한 이후에는 미텔 슐레와 회흐 슐빌퉁(고등 교육)을 이수할 수 있고, 특히 회흐 슐빌퉁을 이수하면 바로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짐과 동시에 우니버실탓(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며, 다양한과가 존재한다. 대부분 Bewertung der Reparaturfähigkeit(수리 능력 평가)로 진학하는데 몇몇 경우에서는 특수 진형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군사

군의 구조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구조는 1955년 창설된 연방 지상군 (Landstreitkräfte), 연방 해군 (Bundes Marine), 연방 항공군 (Luftstreitkräfte)과 그 이외의 병과로 시가전의 중요성에 따라 1970년 창설된 화력지원군(Deckungsgruppe) , 이후 넓어진 영토의 수비를 위해 파견되었던 국경 수비군(Grenztruppen), 테러리즘의 유행으로 이를 저지하고자 만든 특수목적군(Fallschirmjäger)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연혁

-1955년 : 미, 영, 프 3국의 허가로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가입과 동시에 도이칠란트 연방군 창설
-1959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제식무기로 HK G3 전투소총 채용
-1963년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대통령의 지시로 군비 증강과 군 체제 개편
-1965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주독미군을 통해 M16소총을 1차적으로 인도받음.
-1973년 : 도이칠란트 전쟁의 발발과 종전(당시 병력 30만명, 전차 3684대)
-1974년 : 도이칠란트 본토의 통일
-1975년 : 제 2의 안슐루스 발생으로 주변국들이 통합됨.
-1978년 : 도이칠란트 연방의 수립과 연방군의 2차 개혁
-1980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제식소총으로 M16A2 소총 채용
-1991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G41의 개량지시
-2001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2010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위해 미군과 함께 전투 참여 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2018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제식소총으로 MCX의 채용과 군비 증강
-2019년 : 현재 군 병력 54만명, 전차 보유수량 1986대 달성

육군(Heer)

총 24만 3천명이 이곳에서 근무중이며, 현재 그들의 무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보병 장비
제식소총G3G8G30G41G43
지정 사수 소총G3SG/1G30SG/1G28
저격소총G22G24G25G82G29
기관단총MP5MP5MMP7PM-10
권총P1P7P8P11P21VP80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지원 화기
기관총MG3MG3MMG4MG5MG50
유탄발사기AG40-1AG40-2HK320
대전차화기PzF-3Leuchtbüchse 84 mmRGW90MILANEUROSPIKE

육군 편제
육군사령부 육군사령부(Kommando Heer; Kdo H) - XXXX
신속병력사단(Division Schnelle Kräfte; DSK) - XX
제1기갑사단(1. Panzerdivision; 1. PzDiv) - XX
제10기갑사단(10. Panzerdivision; 10. PzDiv) - XX
유럽 군단(Eurokorps) - XXX
제1독일-네덜란드군단(1. Deutsch-Niederländisches Korps; 1. GE/NL Corps) — XXX
북동부 다국적군단( Multinationales Korps Nord-Ost; MNC NE) — XXX
육군교육사령부(Ausbildungskommando; AusbKdo) - XX
육군개발청(Amt für Heeresentwicklung; AHEntwg) - XX

공군(Luftwaffe)

공군사령부 공군사령부(Kommando Luftwaffe; Kdo Lw) - XXXX
공군작전센터(Zentrum Luftoperationen; ZentrLuftOp) — XXX
공군병무사령부(Luftwaffentruppenkommando; LwTrKdo) — XXX

해군(Marine)

해군사령부(Marinekommando; MarKdo)
제1기동전단(Einsatzflottille 1; EinsFltl 1)
제1기동전단( Einsatzflottille 2; EinsFltl 2)
해군비행사령부(Marinefliegerkommando; MFlgKdo)
해군지원사령부(Marineunterstützungskommando; MUKdo)

(추후 서술합니다)

각주

  1. 당시 쿠데타를 주도한 장성 몇명이 임시로 세운 정부
  2.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3. 당시 공산권에서는 스탈린의 사망으로 술렁인데다가, 사회 통일당은 당시 대통령이던 발터 울브리히트의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쓸데없이 노동자의 임금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4. 당시 국방력 증강한다고 코메콘에서 빌린돈만 몇천억이 넘어섰다
  5. 기밀유지를 위해 수뇌부가 전쟁 말 파기하라고 명령하였다.
  6. 실제 수도는 베를린이었지만, 1961년 베를린장벽 축조로 사실상의 수도는 본이었다
  7. 일부 국가에서는 대 소련 전선이라고 칭한다.
  8. 1970년대에는 테러리즘의 시대임과 동시에 공산권 국가의 침공 대비를 위해 전략 무기(NBC무기, ICBM)를 증강하고 있었고, 공산권도 이에 맞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9. 서베를린 총독부
  10. 주로 막사를 습격하거나 장병을 암살하였다.
  11. 당시 수도를 방위하던 동 베를린 사단, 마르크스 사단 등이 이 쿠데타에 참가 하였다.
  12. 당시 전쟁에 참전한 한 중대의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제대로 된 탄약을 못 받아서 적을 상대할 때 총에 급조한 탄약을 넣고 돌격했다 한다.
  13. 일부 점령지에서 공산주의 유머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발견 되었다. “한 장군이 일병 A에게 당신의 병과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몽둥이 병’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장군이 해탈 했다”라는 벽화가 있다는 일화가 있었다.
  14. 탈영하는 병사가 더 증가 했다.
  15. 당시 동독 국방부의 문건에 따르면 ‘미군이 겪은 베트남 전쟁 때보다 더 심한 프래깅이 줄을 이었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16. 무능이라기 보다는 수뇌부가 사실상 전쟁을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다.
  17. 동독(DDR)에서 개량한 AK시리즈 베이스의 7.62mmX39mm 소련제 탄환을 사용하는 자동소총이다.
  18. 본(Bonn)으로 후퇴할 시기, 브뤼셀 소재 나토(NATO)본부에서는 회의 도중 전술핵 발사를 논의하였으나, 소련에 핵을 발사한다면, 그들도 똑같이 보복할 것 이란 의견이 우세해 비대칭 무기들은 배제하는것으로 결의하였다
  19. 나치 또는 신 나치즘을 신봉하는 당원, 의원들을 제명했다
  20. 전후 군수산업의 발전과 공산품 대량 생산이 빈번하였다
  21. 1980년 착공 당시에는 거의 허허벌판에 가까운 부지였으나, 완공 이후 다른 여러도시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현대화된 도시로서 그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