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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이도'''({{Ruby-ja|三|み}}{{Ruby-ja|井|つい}}{{Ruby-ja|都|と}}, Mitsui-to)는 [[미나토공화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미나토섬 중서부에 있는 수도권 경제벨트의 핵심 도시이자 [[미나토공화국]]의 중심지로, 미나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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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영국이 미나토 제국의 성립을 선포하고 식민 통치를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약 300년간 수도의 지위를 유지한 유구한 도시로, [[미나토공화국]]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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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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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이 평야의 대부분은 바다와 강의 범람이 잦아 '버려진 땅'으로 취급되었으며, 일부 일본 상인은 동부의 오자와와 사쿠라 지역에 모여 거주했기 때문에 15세기 이전까지는 사실상 원주민만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섬의 주인 노릇을 하던 일본 상인들 입장에서는 서부 지역보다는 동부 지역이 무역에 유리해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쓰이는 상인들이 살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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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섬의 북부 지방에 당도할 때가 되어서야 미쓰이가 남부의 일본 상인과 북부의 영국 상인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며 섬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했고, 특히 영국이 식민 통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비와강 유역을 관개하고 환상형으로 도시를 확장해나가며 현재의 수도권을 미나토의 중심으로 가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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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이도 일대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구 집계도 되지 않던 도시를 18세기 후반에는 인구가 30만에 이르는 대도시가 되었는데, 쌀 농사가 가능했던 비옥한 평야 지대가 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상업이 발달한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이러한 과정에 더해 미쓰이-오자와 철도 부설, 항구도시 요코시마의 건설 등이 이루어지며 미쓰이가 미나토 근대화의 중심축이 되었으며, 인구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해 20세기에는 세계 무역 허브 중 하나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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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나토는 주오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원도심, 해안권과 남부의 신도심으로 나뉘어 있는데, 주오구 일대는 유적이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상당히 존재하는 등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신도심 지역은 2000년대 이후 도심이 재개발되며 현대식 마천루가 건설되어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이로 인해 미쓰이를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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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인구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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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지방민들이 몰려오고, 근교에 살던 원주민들이 빠르게 현대화하며 상당히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그러나, 미나토 자체의 인구밀도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고<del>사실 주변 국가들이 너무 높은 거라 카더라</del>, 개중에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미쓰이마저도 [[대한국]]의 경상북도에 못 미치는 수준이기에 인구가 상당히 가파르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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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주오구의 경우 도심 공동화 현상 발생으로 인구가 급감해 해방 직후와 비교했을 때 반토막이 났다. 주오 일대의 주거환경은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는데다 해방 이후 도내 각 구로 이전됐던 정부기관들이 2000년대 들어 대규모 합동청사가 건설되며 전부 주오구로 모이고, 60년대 이후 비약적 경제 성장으로 다국적 기업이 미쓰이에 자리를 잡은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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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같은 모습을 보이던 해안권과 남부의 신도심의 경우 도심이 재개발되고 도심 거주의 편리성이 재조명받아 도심 공동화가 끝나고 도심 회귀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 2000년에 300만 명 미만이던 도의 인구는 2015년에 370만 명, 현재는 440만 명까지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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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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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8일 (화) 14:39 판

도원경_미나토공화국_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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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미쓰이도의 구·군


도원경_미나토공화국_국기.svg 미나토공화국의 도
미쓰이도
三井都 | Mitsui Metropolis
도원경_미쓰이도_도기.svg 도원경_미쓰이도_문장.svg
도기 문장
도청 소재지 주오구 산에이가 1-14
하위 행정구역 22구 2군
면적 3,799.44㎢
인구 4,462,913명
인구 밀도 1,174.62명/㎢
GDP $2,823억 (2030)
1인당 GDP $63,273 (2030)
도지사 무소속 마츠다 히데토시 (3선)
부지사 사회 나가타 유키에
무소속 미나미 마코토
무소속 사사모토 류호
민진 사토 타카시
도의회
[ 펼치기 · 접기 ]
무소속연대 30석
신진 24석
자유 20석
사회 8석
민주 5석
민진 5석
보수 3석
녹색 2석
미래 1석
무소속 8석
중의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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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5석
자유 7석
신진 6석
민주 4석
참의원 의원
[ 펼치기 · 접기 ]
사회 5석
자유 3석
신진 2석
민주 2석
공산 2석
민진 1석
보수 1석
구장·군장
[ 펼치기 · 접기 ]
사회 11석
자유 3석
신진 2석
민주 1석
상징 시화 장미
시목 은행나무
시조 멧비둘기
IATA 도시 코드 MSI
ISO 3166-2 MI-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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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미쓰이도( () (つい) (), Mitsui-to)는 미나토공화국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미나토섬 중서부에 있는 수도권 경제벨트의 핵심 도시이자 미나토공화국의 중심지로, 미나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1700년대 영국이 미나토 제국의 성립을 선포하고 식민 통치를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약 300년간 수도의 지위를 유지한 유구한 도시로, 미나토공화국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역사

미쓰이 평야의 대부분은 바다와 강의 범람이 잦아 '버려진 땅'으로 취급되었으며, 일부 일본 상인은 동부의 오자와와 사쿠라 지역에 모여 거주했기 때문에 15세기 이전까지는 사실상 원주민만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섬의 주인 노릇을 하던 일본 상인들 입장에서는 서부 지역보다는 동부 지역이 무역에 유리해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쓰이는 상인들이 살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15세기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섬의 북부 지방에 당도할 때가 되어서야 미쓰이가 남부의 일본 상인과 북부의 영국 상인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며 섬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기 시작했고, 특히 영국이 식민 통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비와강 유역을 관개하고 환상형으로 도시를 확장해나가며 현재의 수도권을 미나토의 중심으로 가꾸었다.

미쓰이도 일대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구 집계도 되지 않던 도시를 18세기 후반에는 인구가 30만에 이르는 대도시가 되었는데, 쌀 농사가 가능했던 비옥한 평야 지대가 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위치해 상업이 발달한 것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이러한 과정에 더해 미쓰이-오자와 철도 부설, 항구도시 요코시마의 건설 등이 이루어지며 미쓰이가 미나토 근대화의 중심축이 되었으며, 인구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해 20세기에는 세계 무역 허브 중 하나로 성장했다.

현재 미나토는 주오구를 중심으로 한 북부 원도심, 해안권과 남부의 신도심으로 나뉘어 있는데, 주오구 일대는 유적이나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상당히 존재하는 등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신도심 지역은 2000년대 이후 도심이 재개발되며 현대식 마천루가 건설되어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이로 인해 미쓰이를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부르는 이들이 많다.

해방 후 인구 추이

해방 후 지방민들이 몰려오고, 근교에 살던 원주민들이 빠르게 현대화하며 상당히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다. 그러나, 미나토 자체의 인구밀도가 주변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고사실 주변 국가들이 너무 높은 거라 카더라, 개중에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미쓰이마저도 대한국의 경상북도에 못 미치는 수준이기에 인구가 상당히 가파르게,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만, 주오구의 경우 도심 공동화 현상 발생으로 인구가 급감해 해방 직후와 비교했을 때 반토막이 났다. 주오 일대의 주거환경은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는데다 해방 이후 도내 각 구로 이전됐던 정부기관들이 2000년대 들어 대규모 합동청사가 건설되며 전부 주오구로 모이고, 60년대 이후 비약적 경제 성장으로 다국적 기업이 미쓰이에 자리를 잡은 영향이 크다.

다만, 같은 모습을 보이던 해안권과 남부의 신도심의 경우 도심이 재개발되고 도심 거주의 편리성이 재조명받아 도심 공동화가 끝나고 도심 회귀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 2000년에 300만 명 미만이던 도의 인구는 2015년에 370만 명, 현재는 440만 명까지 증가했다.

지리

기후

도시 구조

낮은 인구밀도

하위 행정구역

스포츠

정치

경제

교육

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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