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비아 연합왕국

Abel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10월 10일 (수) 20:43 판
발칸 연방 공화국
Савезна Република Балкан
Federal Republic of Balkans
국기
북 발칸 연방 공화국.jpg
국장
300px
면적255,804km²
설정상 인구23,724,919 명
실질적 인구42명
수도베오그라드 연방특별시
공용 언어세르보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국가슬라브족이여
정치 체제대통령 중심제, 공화제, 민주주의(대의제)
양원제, 다당제, 정교분리, 지방자치, 연방제, 문민통제
대통령제리
부통령황교안
통화유로(EUR)
주소https://cafe.naver.com/selsmska342
역대 지도자제리


발칸 연방 공화국(Савезна Република Балкан, Federal Republic of Balkan), 약칭으로는 발칸 연방(Balkan Federation), 발칸(Balkan)은 유럽 남동부에 돌출해서,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 이오니아해, 아드리아해에 둘러싸인 반도인 발칸 반도에 위치한 연방 국가이다. 총 9개의 연방주체지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북쪽으로는 헝가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베오그라드 연방특별시이며, 국기는 삼색기, 국가는 슬라브족이여, 공용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 마케도니아어, 슬로베니아어이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주석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타계하면서, 티토의 영도 하에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국가사회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서둘러 티토의 측근들은 라자르 콜리셰프스키를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수반으로 추대하여 문란한 사회를 수습하고자 노력한다. 당시 내각총리를 지내고 있던 제리를 위시로한 9.6혁명이 일어나면서 혁명주체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혁명재건위원회를 수립하고,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바실리 레노키프스키 정부 수반 대행으로부터 계엄령 추인과 정권을 인수받아 2018년 9월 16일 제리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혁명정부인 발칸 연방 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수립했다.

국호

2018년 10월 10일 기준, 혁명정부 출범 당시 국호는 북 발칸 연방 공화국이였으나, 설정개혁위원회에서 국호가 국가설정 및 역사설정에 대한 불이익적 염두를 확인하면서 9월 29일 국민투표를 통해 정식 국호가 발칸 연방 공화국(Савезна Република Балкан, Federal Republic of Balkan)으로 변경되었다. 통상적으로는 발칸 연방 공화국발칸 연방, 발칸이란 명칭은 고루 병용하고, 영문으로는 BalkanFRB를 병용한다.

  • 공식 명칭: 발칸 연방 공화국(Савезна Република Балкан)
  • 영문 명칭: Federal Republic of Balkan
  • 기타 명칭: 强盛天國, Федеральная Республика Балканы

역사

고대

기원전 2세기에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일리리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후 로마 속주로서 달마티아(Dalmatia)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에서 지중해에 면한 지역이다. 내륙지역은 판노니아(Panonia)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4세기 게르만족의 거센 침공에 시달렸으며,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가 패배한 뒤 게르만족의 일파인 고트족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여러 혼란한 상황을 거쳐 동로마 제국에 복속되었으나 8세기 슬라브족이 남하하여 차지했고, 이후 슬라브족의 영토로 계속 남는다.

6세기 초에는 아바르족의 지배를 피해 달아난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동로마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사절을 보내 일리리쿰에 주거지를 제공하였고,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은 아바르를 몰아내고 현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획득하였다.

세르비아

중세

4~5세기 경, 게르만족이 쇠락해 가는 로마 제국 하에 서유럽으로 대거 이주하자 남슬라브인들은 이웃이 떠난 바로 그 자리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하다 6세기 경에 동로마 제국 국경인 다뉴브 강에 다다르게 된다. 다뉴브 강 남쪽의 주인인 동로마가 동고트 왕국, 사산 왕조와 전쟁을 거듭하는 틈을 타, 사이다뉴브 강을 넘어 로마인들의 땅인 발칸 반도를 습격하였고 이들의 행보는 시간이 가면서 대담해져 원주민인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습격 대상인 발칸 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인들은 정착한 곳에서 라쉬카(Рашка)라는 국가를 이뤘으며, 아드리아 해안지방에도 세르비아계 공국들이 들어서 크로아티아 남부에 파가니야(Паганија), 보스니아 서부에 자후믈례(Захумље), 헤르체고비나 서부에 트라부니야(Травунија), 몬테네그로에 두클랴(Дукља)가 있었다. 이중 세르비아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은 라쉬카였으며, 해안의 세르비아계 공국들에는 로마인들이 남아 세르비아인 지배자들에게 공물을 바쳤다.

라쉬카는 차슬라브 클로니미로비치의 재위기에 영토를 대대적으로 확장하는데, 그는 이미 페타르 고이니코비치에 의해 이미 병합되어있던 파가니야를 제외한 세르비아계 공국들을 모두 통합했다. 하지만 그는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라쉬카는 동로마 제국으로 편입된다.

세르비아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라쉬카가 동로마 제국에 정복당해 합병되자, 세르비아의 주도권은 두클랴가 쥐게 된다. 두클랴는 요반 블라디미르 재위기에만 해도 불가리아의 속국이었지만, 스테판 보이슬라브 때는 동로마 제국을 격파하고 영토를 자후믈례와 트라부니야, 포드고리아까지 확장하고, 미하일로 보이슬라블례비치의 재위기에는 교황에게 왕으로 인정받아 두클랴를 공국에서 왕국으로 승격시켰다.

근대-세르비아 왕국(1217~1346)

독립 이후 마케도니아를 둘러싸고 주변국과 갈등이 지속되어 1878년 완전 독립 이후로도 두차례나 발칸 전쟁을 벌였으며 완전 독립과 함께 보스니아를 점령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친 오스트리아 성향이던 세르비아 2대 왕인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가 903년 암살되고 세르비아 민족주의 성향의 카라조르제비치 가문에게 왕권이 넘어간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가 암살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을 불러왔다.

크로아티아

중세

크로아티아인의 발칸반도 정착이 동로마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 지역이 원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이래 동로마의 지배 하에 놓여있었던만큼, 원래 크로아티아는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아바르족이 8세기에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에게 크게 패배하면서 크로아티아는 내륙의 판노니아는 프랑크 왕국, 달마티아는 동로마의 지배에 들어갔다. 판노니아의 크로아티아인들은 샤를마뉴의 대대적인 기독교 정책으로 로마 교회(가톨릭)로 귀의하게 되면서 한동안 크로아티아는 동로마가 지배하는 달마티아프랑크 왕국이 지배하는 내륙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823년에는 동로마가 프랑크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달마티아도 프랑크 왕국에 복속된다. 그 후 크로아티아는 즈데슬라브 재위기에 잠시 동로마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콘스탄티노플 교회 관할에 잠시 속하기도 했지만, 즈데슬라브 사후 브라니미르 재위기에 다시 로마 교회 관할로 돌아왔으며, 크로아티아는 925년을 전후하여 크네즈토 미슬라브가 왕을 칭하면서 왕국이 되었다.

크로아티아 왕국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 재위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페타르 크레쉬미르 4세는 동서교회가 분열된 후인 1059년에 로마 교회에 사절을 보내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받아 베오그라드에서 대관식을 치렀고 더불어 크로아티아 내에서 로마 교회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또한 그는 크로아티아 해안지역의 여러 도시들을 건설·육성했는데, 이 덕분에 닌 외에도 쉬베니크(Šibenik), 스크라딘(Skradin) 등의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근대-합스부르크 제국(1526~1918)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략한 오스만 제국은 이후 쉴레이만 1세가 즉위하면서 유럽 진출을 본격화했다. 쉴레이만 1세는 오스만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고 이에 모하치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3개국의 국왕을 겸하고 있었던 야기에우워 가문러요시 2세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헝가리군은 대참패하여 멸망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크로아티아 왕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속하게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인정했다. 동시에 보헤미아, 서부 헝가리도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에 귀속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이 성립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가는 현지의 문화와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해주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관용적이고 선진적인 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크로아티아도 상당 수준의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에 귀속된 이후 크로아티아의 영토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거듭된 공세를 받는 변경 지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국토가 황폐화 되었으며 해적들이 난무하는 탓에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를 반복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하여 충격과 후유증에 휩싸여 있는 동안, 헝가리 민족 운동의 고조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중 제국)이 수립되어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독립 국가 수준의 자치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 때 크로아티아의 통치권이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갔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를 완전 편입하려고 시도했으나 크로아티아는 합스부르크 시절부터 보장받아온 자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오스트리아가 나서 크로아티아의 자치를 지지하며 압력을 넣은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자치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으며,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 달마티아가 오스트리아 영토로 병합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중세

이후 6세기 동로마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7세기 이후 슬라브족이 대거 이주, 슬라브계의 크로아티아 왕국의 통치를 받았다. 9~10세기경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후에 헝가리의 영향 아래 보스니아 공작령이 세워졌으나 소국으로 분할되면서 줄곧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양자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1377년에 공식적으로 보스니아 왕국이 건국되었다.

1463년 보스니아를 정복한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의 세르비아 민족에게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하고 한편으로는 많은 무슬림을 이주시켰다. 오늘날 보스니아를 구 성하는 세 민족이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도 이 시기. 가톨릭 보스니아인은 가톨릭 국가였던 크로아티아에서, 정교회 보스니아인은 정교회 국가였던 세르비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이때부터 하나의 보스니아인은 세 개의 민족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근대

1463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에 의해 소멸되면서 오스만 제국에 합병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908년 통일 진보 위원회가 일으킨 혁명으로 오스만 제국이 혼란에 빠지자 서둘러 보스니아를 합병한다.

현대

유고슬라비아 왕국(1918~1941)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세르비아 왕국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당시 오스만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여러 남슬라브인들 지역들을 합쳐서 만들어졌던 연합왕국에서 시작되었다.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인 세르비아 국왕이 그대로 연합왕국 국왕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라는 긴 이름이었다. 1934년 10월 9일, 유고슬라비아 국왕인 알렉산다르 1세는 회담 중 갑작스런 총격으로 숨졌으며, 1939년 8월 크로아티아 문제의 해결책으로 크로아티아 자치주(Banovina of Croatia)가 출범하였다. 1941년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의 침공으로 정부와 왕실은 영국으로 망명하고 망명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1943년 파르티잔이 왕정 페지를 선언했고, 1945년 망명 정부마저 몰락한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1943~1993)

유고슬라비아 왕국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집권하였고 왕정이 폐지되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즉 유고슬라비아 연방이라는 이름의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티토는 유고 연방의 총리 겸 주석으로서 여러 민족과 인종이 얽히고 설킨 유고 슬라비아를 통치했다. 그런데 정작 사회주의 국가였으나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는 거리를 두고 독자노선을 추진하였다. 그 때문에 소련 중심의 공산권에 대항하던 서방에서 유고 슬라비아에 많은 지원을 해 주기도 했다.

서유럽과 가깝고 풍광이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에 면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경제적으로 다른 공화국보다 부유했고 서유럽 찬란한 문화가 유입되고 동시에 연방 인구는 세르비아가 제일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 탓에 군 입대가 많아서 연방군은 세르비아가 거의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내각총리인 제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9.6혁명과 독재정권에 반감을 든 국민들에 대한 9.6혁명 지지로로 유고 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혁명재건위원회가 건국진흥최고회의로 공식 활동 전까지 정부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위태로이 유지되다가 2007년 건국진흥최고회의가 공식 출범하면서 소멸되었다.

발칸 연방 공화국(2007~현재)

제리를 위시로한 9.6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한 제리 중심의 혁명주체세력들은 혁명재건위원회를 수립하고,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당시 사회주의와 독재정권에 상징이던 최고인민회의와 지방의회를 해산시켰다. 혁명재건위원회는 바실리 레노키프스키 정부 수반 대행으로부터 계엄령 추인과 함께 정권을 인수받자, 혁명재건위원회를 건국진흥최고회의라 개명하고 북 발칸 연방 공화국(現 발칸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여 민주법치 연방국가를 지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