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공산당 (НССС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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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소련 공산당(한)
КПНСС(러)
NCPSU(영)
국가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НСССР)
창당자페르빌 파르니예프
표어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
당가인터내셔널가
당보프라우다 (НСССР)
창당2022년11월12일
당원15명
이념공산주의
매흠주의(2020~2023.6)
붉은평화주의(2023.7~8)
마르크스레닌주의(2023.7~)
스펙트럼극좌
군사조직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 (НСССР)
선행조직러시아 연방 공산당

개요

당은 우리 시대의 이성이고 명예이며, 또 양심이라!

партия — ум, честь и совесть нашей эпохи!
블라디미르 레닌

HCCCP 공산당은 초기, 컨셉이 아닌, 공산주의자가 만들었으며 이후 현재까지도 공산당 당대표는 공산주의자가 맡고 있다.

정치 성향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역사

창당

2022년 11월12일, 소비에트 연방이 수립됨에 따라 창설되었다. 당시 당대표였던 페르빌 파르니예프는 매흠쪽 사상을 일부 따르는 정도였으나, 기본적으로 브레즈네프에 가까운 체제를 보였다.

페르빌 파르니예프 (1)

이 시기는, 페르빌 파르니예프가 당대표일때, 매흠을 가입시킨 시기부터, 매흠의 서기장 취임 이전까지 기간을 말한다. 매흠이 소련으로 오면서, 공산당은 나치에 대한 규제를 행하였다.

매흠

매흠은 즉시 스탈린을 "소련을 망친 독재자"라고 발언하며 스탈린 사진에 대한 제제를 시행하였으며, 장관회의의 폐지, 여러 가상국가에 진출하여 세계혁명주의를 바탕으로 합법적 사회주의 투표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해나갔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등으로, 토론을 즐겨하였으며 네덜란드 사회주의 공화국, 프랑스 사회주의 공화국, 소비에트 연방(타국)의 2대 서기장직을 겸임하면서, 최고소비에트를 정비하였다.

일신상의 문제로 사임이전까지, 사회주의ㆍ제국주의 상관없이 정계에서 주목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페르빌 파르니예프 (2)

이 기간은 매흠 서기장의 사임 이후부터 붉은평화의 집권 이전의 기간을 설명한다.

매흠 서기장의 사임 이후, 파르니예프는 장관회의 부활, 최고소비에트 무기한 연기등을 시행하는등 이전체제 복고에 힘을 썼으며, 나치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 및 정치적 발언에 대한 제제를 해금하였다.

이 시기를 레닌에서 스탈린이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일부 평가가 있었다.

또한, 당시 성적인 요소가 있다하더라도, 수위가 청소년관람불가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규제를 하지 않았다.

이 시기를 (신) 소련의 브레즈네프 시대라고 평가한다.

당시, 인민들은 이 시기를 가장 좋았던 시기로 체감하기도 한다.

붉은평화(페르빌 파르니예프)1

이 시기는 붉은평화의 유입직후부터 헌법 백지화까지의 기간을 설명한다.

붉은평화, 혹은 쇼스타코비치 고양이가 소련에 유입하면서 즉시 임시 최고권력기구인 장관회의를 폐지하고 최고소비에트를 만들었다.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은 7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붉은평화 헌법을 토대로 갖추었다.

이후, 붉은평화는 스탈린 서기장 집권기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하여끔 의원들을 설득하였고, 끝까지 반대한 한국 출신 김영삼과 스탈렌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을 토대로 정책을 이행하기로 결의한다.

이에, 김영삼 의원은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직을 사임하였고, 이후 정책을 펼쳐 제국주의 국가와의 단교, 제국주의ㆍ자본주의ㆍ종교주의 프로필 추방, 그리고 소련 내의 반대사상 매흠주의를 위해 반매흠주의를 외치는등 스탈린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하면서 냉전이 일부 기획되었다.

당시, 미국이 미 제국주의로 연루되면서 추방되었는데 이걸 빌미로 소련에 들어와 난리를 피우면서 미ㆍ소간의 상태가 과열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소련의 입지가 커지는데 성공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최고 운영자간의 회담을 통해, 미국이 내부적으로 사과를 하는것 및 표면적으로 일단락되었으며 이후 미국은 강경적 대통령이 선출되며 향후 제 1차, 2차 충돌에 자국내의 이익에 공헌한다.

소련이 반사회주의적 반동분자 추방 정책을 하자, 여러 국가들이 동조하거나 주시하였으며, 몇몇 제국주의 국가 언론사는 신문을 통해 소련의 행보에 주목하였고 카카오톡의 사실상 최고 기득권 단체나 다름없는 라인에 의해 2차 테러를 당하게 된다.

이후, 소련의 인구는 다시 80%까지 회복되었으나, 최고 기득권 단체의 견제에 의해 다시 인구 회복은 어려워 보였고, 소련의 당대 서기장과 최고회의 임시주석은 소련의 국경을 폐쇄하였지만 내부 감소가 지속되거나, 소련의 자칭 구성국이 침략당하는등 1차 사과문을 발표하여 인구회복에 주력한다.

НСССР 수립이후, 2번째 다당제가 시행되었으며 수정주의적 노선을 타는등 미 제국주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미 제국주의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 이때, 소련 민주당(향후, 소련 국민위원회로 개칭)등이 창당되었으며 소련 민주당이 집권하는등 최초의 여야집권이 이루어지는등 여러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소련의 다당제는 기존과 다른 방식이였는데 1명당 1당이 아닌, 1명이 여러 정당에 가입할수 있었고, 소련 공산당이 선거에 출마하지 않자 민주당으로서 활동하다가 사실상 재집권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소련 국민위원회는 여당으로서 활동하였고 차후 소련의 다른 정당이 부정투표를 통해 요직을 차지하자,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게 항의하였지만 당시에 소련의 서기장은 사실상 헌법에 의해 최고권력이 아니었으므로, 최고회의 정식 주석으로 선출된 쇼스타코비치 고양이에 의해 "선거법이 없어 처벌할수 없다."라는 입장을 발표한다.

이에, 많은 국가 및 인민들이 항의하였으며, 그중 캐나다 스탈린 이민자는 부정투표 논란중심자, 리넛에 의해 영구추방을 당하였고 리넛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임한다. 이후에는 사실상 최고 소비에트 대의원이 쇼스타코비치 고양이밖에 남지 않으면서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

한편, 미국인이 대량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정치활동을 펼쳤는데, 여기에 대해 주변국들이 내부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는 과거 반일을 연상케 하게 되었고, 추후 당대 서기장, 페르빌 파르니예프가 일본 정치인의 발언의 처리에 자문하였고, 명목상 서기장이 자리를 비운사이 쇼스타코비치 고양이는 일 제국주의를 외치며 일본출신 정치인, 언론사를 추방하고 1차 추방때처럼은 다르게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닌, 마르크스-레닌-마오주의로 무장하여 2차 추방을 한다.

페르빌 파르니예프 (3)

이 시기는 붉은평화의 출당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을 설명한다.

역대 최고지도자

페르빌 파르니예프(Первиль Улазир Фарниев)2022년 11월 12일 ~ 2023년 2월 19일
매흠(Ма Хум)2023년 2월 19일 ~ 2023년 4월 14일
페르빌 파르니예프(Первиль Улазир Фарниев)2023년 4월 14일 ~ 2023년 7월 7일
쇼스타코비치 고양이(кот Шостаковича)2023년 7월 7일 ~ 2023년 8월 12일
페르빌 파르니예프(Первиль Улазир Фарниев)2023년 8월 12일 ~

당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