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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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 연방
Bundes Staat Deutschland
Federation Of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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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호도이칠란트 연방
Bundes Staat Deutschland
상징국가 Lied Von Deutschland
(도이칠란트의 노래)
국화참나무
국조독수리
표어Opfer der Freiheit des Volkes
(자유를 향한 국민들의 희생), 국가의 실질적 표어
Verwirklichung einer gerechten Gesellschaft
(정의 사회 구현),행정부의 정식 표어
자연환경면적(영토)면적 1,000,130km²
인문환경인구인구 수 165,165,876명
인구밀도인구밀도 1459명/km²
공용 언어도이칠란트 어
(홀란트어, 폴란드어, 체코슬로바키아어 등도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음.)
정치국체공화제 -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내각책임제, 연방제
대통령카를 룬드슈테트
국무총리공석
경제GDP$8,134,000,000
1인당 GDP$73752(연방 전체)
공식 화폐Bundes Mark(분데스 마르크)
단위
법정연호서력기원 2019년
시간대UTC +1
ISO-3166-1276, DE
도메인DE
국제전화+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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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 연방의 역사

1918년(1차 대전의 종전)~1944년(2차대전의 종전)

주의!
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1차세계대전이 종전된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는 사실상 파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이유는 승전국인 협상국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채 단지 전쟁만 일으켰단 이유로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청구하였고, 이미 염전사상이 퍼질대로 퍼져버린 바이마르 공화국은 더이상 국토수호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 피해보상금에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지 않은탓에, 배상금의 청구를 기피한다며 강제로 군사력을 사용해 알자스-로렌지방을 강제 점령하고, 그곳의 산업력을 착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동안, 바이마르의 정치는 상당히 긴박하게 흘러갔다. 당시 여당이었던 사회민주당(SPD)과 제 1 여당인 도이칠란트 공산당(KPD)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립을 틈타 세력을 점차 키워오던 국가 사회주의 도이칠란트 노동자 당(NSDAP)은 1933년 총선 승리를 기반으로 점차 정계와 행정부로 세력을 불려나갔고, 결국 1933년 말,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이 된지 몇일후 수권법을 통과시키는 계기가 되는 라이히스탁(Reich Stag, 국가의회)가 불에 타는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공산주의자였음이 밝혀짐에 따라, 도이칠란트 공산당의 여론은 점차 몰락해 갔고, 이 사건으로 총리에 취임한지 얼마안된 아돌프 히틀러는 그날밤, 날치기 표결로 비상시 총리가 모든 권한을 하달받는 수권법이 통과되었고, 전권을 하달받은 아돌프 히틀러는 몇일뒤, 날치기 개헌으로 국가 사회주의 도이칠란트 노동자 당을 제외한 나머지당을 전부 위헌정당으로 해산시키고, 총리의 직위를 폐쇄하고 총통(Fürher)이란 직위를 만들고스스로 총통의 자리에 오른뒤, 1936년, 라인란트 재무장, 로카르노 조약 파기를 함으로서 군사력을 키웠고, 그 군사력을 기반으로 폴란드를 1939년 9월 1일 침공하며, 2차세계대전이 개전된다. 그리고 1940년, 덴마크, 폴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점령하며 본격적인 식민지화 작업을 가동하고 이내, 1940년 6월에는 '프랑스 해방'이라는 작전명으로 벨기에의 아르덴숲을 통과, 프랑스 파리로 진격해 마지노선의 피해는 받지 않고 손쉽게 프랑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0년 8월에는 영국을 침공하기 위해 공중전을 준비했다가, 당시 공군 참모총장 헤르만 괴링이 작전을 엉터리로 짜는 바람에 피해만 입는 사이, 프랑스 북부에 포위된 연합군은 대대적인 철수작전을 펼쳐 기적적으로 철수에 성공한다. 그리고 영국 본토 항공전의 실패로 많은 공군이 소실되자, 이번에는 동유럽을 노리고 소련을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북부, 중부, 남부 집단군은 전격전(Blitz Krieg)을 사용해 손쉽게 공격과 점령을 가했다. 그러나 1941년 겨울, 매서운 추위에 3개 집단군의 병력관리에 실패하고 그의 결과로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 패배하며 본격적으로 패망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 사이 몇몇 수뇌부는 반란을 모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이치-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합군을 방어하는데 실패하자, 대부분이 연합군 포로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반란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개시일자는 1944년 4월 30일, 히틀러의 생일에 암살을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때 마침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준비중이라는 비보가 들려오고 결국 그들은 1944년 7월 20일로 개시하기로 모의했으며, 폭탄과 여러 총기들을 구매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었고, 노르망디 상륙을 방어하는데 실패한 그들은 1944년 7월 20일, 암살을 개시한다. 일명 늑대소굴(Wolfsschanze)에 작전을 모의중이던 히틀러와 참모들 사이에 가방을 놓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히틀러가 이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수권법을 폐지하고 즉각 민주화에 돌입하게 되며 1944년 8월초, 도이칠란트는 연합국에 즉각 항복하며 대 천년제국을 이루고자한 히틀러의 야망은 끝이 나고 말았다.

1945년(전후)~1953년(동독 반소봉기)

1944년 8월, 항복한 도이칠란트 민주 정부[1]는 즉각 연합군의 관리와 동시에 무장 해제가 이루어 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는 나치 정궝이 저지른 추악한 홀로코스트의 실상도 드러나게 되었다.[ * 1941년 부터 1944년 패망까지 총 유대인, 집시, 슬라브인 등이 총 600만명 사망한것으로 정부 조사결과 집계 되었다.]1945년, 연합국의 관리를 받으며 전법과 전범기업들을 처리하기위해 뉘른베르크 재판이 개정되었고, 이를 통해 나치에 가담한 A급 전범이 대거 처형되었거나 자살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은 2발의 핵[2]을 맞으면서 주요 식민지의 광복과 동시에 2차세계대전이 종전되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강자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게 되면서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내에서는 1947년에는 도이칠란트 연방공화국, 도이칠란트 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48년에는 베를린 봉쇄 위기를 맞게된다. 1949년에는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냉전이 전개되는 동시에 유럽도 냉전이 전개된다. 그리고 1950년에는 한국전쟁(6.25 전쟁)이 발발하며 서유럽에도 언제 소련이 적화를 노릴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재무장을 해야한다는 도이칠란트 재무장론이 확산되었고, 1953년 도이칠란트 인민공화국의 각종 무리한 정책에 반발해 전 시민이 들고 일어났던 동독 반소봉기[3]가 일어난다. 당시 동독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참가할 만큼 대규모의 시위였으나, 당시 지도부는 개혁개방정책을 일체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민 경찰(volks polizei)에 발포를 지시해 시위에 참가한 인명중 57명이 사망하고 128명이 실종/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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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냉전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생겨난 서유럽/동유럽의 경계(출처:나무위키)]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BRD)의 역사(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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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VRD)의 역사(냉전)

도이치 인민 공화국3.png

1954년(냉전의 전개)~1980년(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성기)

주의!
본 단락에서 서술 하는 내용은 가상의 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연임을 알리고 고증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알립니다.

냉전이 전개되며 마셜플랜의 수혜국으로서 미국에게 재정지원을 받고 이 기반으로 공업력을 성장시키고 공산국가의 침공에 대비해 1955년, 연방군 창설 1956년, 북대서양 조약기구 가입 등을 거치며 군사력을 증강시키던 철저히 반공을 중요시 했던(KPD 해산, RAF 해산 등)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과는 정 반대로 코메콘의 경제지원은 받았으나 자금의 상황이나 공업력 등은 생각도 하지 않고 군사력에 대부분의 예산을 쏟아 부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군사력 만큼은 동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손꼽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 국가의 경제력 차이가 확고하게 난 것은 1965년대부터 였는데,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GDP만 해도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GDP의 몇배는 뛰어 넘었고, 결국 1968년대, 동유럽에서 확산된 민주화 운동은 점점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을 몰락의 길로 밀어 넣고 있었다. 게다가 발터 울브리히트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세력의 쿠데타(당시 지지 기반도 약했을 뿐 아니라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여파였다.)까지 일어나며 거의 몰락에 다다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쿠데타를 잔혹하게 진압했고, 이를 아무 잘못도 없는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이 사회주의 사상을 엎어버리기 위해 일으킨 수작이라며 침공 명분을 만들었으며, 1973년까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은 대대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그로 인해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국방예산의 2배가 훌쩍넘는 국방예산을 사용해 파산[4]직전에 이르렀다. 그리고 1970년 8월, 연방 정보부와 CIA는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에서 나온 각종 서류들을 해석/조사/분류 하던중, 한 요원에 의해 총 13장에 달하는 서류뭉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노동자, 농민, 인민의 힘의 보호를 위하여,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방부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전투 명령 1969-321호
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 령도자 께서는 1963년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련방에 방문하시어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련방-도이치 인민 공화국의 외교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주요 동부 유럽 지방 공산권 국가들의 세력 확장에 대해 논의 하였으며, 그에 따른 결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산출해 내는데 이르렀다.

-논의 결과-

·국가 인민군의 병력 추가 증강
·신 무기 도입/개발 적극 추진
·3년에 걸쳐 지속적인 공업화 지원
·주요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수교 강화

이와 같은 사항에 따라 국가 인민군은 현재 11만명의 병력을 14만명으로 추가 증강하며, 이에따라 3개 기갑화 사단과 5개 보병사단 등을 추가적으로 증강한다. 또한 현재 MPI-K 47식 모델을 새로 개발중인 MPI-K 신식 모델을 도입해 전군에 보급하는데 만전을 기한다. 또한 이러한 개혁과 동시에 새로운 교전수칙을 공포한다.

-신규 교전수칙-

·만약 적의 국경침범이 있을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며, 필요에 따라 기관총 위협 사격, 사살도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허가한다.
·국경 지대에서는 절대 적의 침범 혹은 아군의 적국의 침범 등을 유발할만한 사고 혹은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된다.
·만약 적이 선제공격할 경우 3개 분대가 이에 조치하며, 즉각 사격을 허가하는 권한을 소대장에게 하달한다.
·조치 후 보고에서는 적의 공격사항에 대해 세밀히 보고하며, 만약 위조된 부분 혹은 잘못 조치된 부분으로 문제가 발생시 군법에 따라 조치한다.

그리고 새로운 교전수칙의 발표와 동시에 다음과 같이 공산권 국가 확장 계획을 세운다.

-계획명 "붉은 파도"-
본 작전은 도이치 인민 공화국과 폴란드 인민 공화국 이외의 4개국이 공동으로 서부 유럽으로의 공산권 국가 확장을 위해 실시하는 작전으로, 부대 구성과 군대의 임무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며, 필요에 따라 조정한다.

-전투단 편제-
A. 도이치 인민 공화국 국가 인민군
(말소 됨)[5]

·1단계(전투 준비)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인)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국방장관 빌리 슈토프(인)

"만약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이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과 전쟁한다면, 본(Bonn)[6] 은 불바다가 되고 말것입니다."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외무장관 만프레드 슐츠


"공산주의 국가들은 언제든지 외교전 또는 무력을 통한 전쟁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으므로 항상 안보에 신경쓰고 공산주의를 경계해야한다."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의 외무장관 프레드리히 할슈타인


도이칠란트 전선(Deutschland Front)[7]
제 3차 세계대전 전선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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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인민 공화국을 향해 진격하는 연방군 병사

당시 시대상[8]으로 보았을때, 사실상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이 침략을 준비 중이며, 언제든 적화통일의 의지가 있다는이 전투명령으로 인해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고 당시 이 암호를 해독한 CIA는 미 대통령께 긴급보고를 올렸고, 이를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대통령과 총리에게 전달해 긴급하게 전쟁준비에 돌입하고, 재무장을 실시한다. 그리고 전쟁이 있기 1달전인 3월 8일, 미국은 비밀리에 주독미군과 도이칠란트 연방군에 다음과 같이 M16A1 5.56mmX45mm 돌격소총 75,000정과 M60패튼 2세대 전차 2,000대 그리고 10개 보병사단, 3개 기갑사단등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1달 후인 1973년 4월 8일, 새벽 6시에 그들은 일제히 전투 암호에 따라 포문을 개방하고 본(Bonn)을 향해 진격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서 베를린은 제대로 방어도 해보지 못하고 2일만에 점령당했으며, 그결과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에 의해 총독부를 설치 당한다. 당시 게릴라 전투에 특화된 국가 인민군은 지속적으로 시가전과 엄폐와 엄호 등을 활용한 전투 등을 지속하며 속전속결로 점령하는 전술을 사용하고 후에 사상교육, 숙청 등으로 세뇌시키고자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내부적 안정보다는 빠른 점령이 급하였고, 이는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점령지 내 레지스탕스를 생성해내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리고 서 베를린을 점령한 이후 지속적으로 진격하였고 수 많은 사상자를 무릎쓰고 전투에 지속적으로 임한 군인이 있었으나, 국가 인민군의 인해전술에는 역 부족이었고, 전쟁 시작 2주일 만에 국경근처 서부지역도시 10여개가 점령당한다. 그리고 3달째 되는 때에는 국경을 훨씬 넘는 절반이 넘는 도시가 점령당했고, 3달 그리고 2주일이 넘는 때, 그들은 75%에 달하는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은 전쟁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본(Bonn)으로 후퇴를 결정했고 노르트 라인 - 베스트 팔렌 방어선을 세웠으며, 일부 병력은 네덜란드, 벨기에 등으로 후퇴한다. 또한 다른 일부 병력은 오스트리아 방면으로도 후퇴하기도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평화상태가 지속되었는데, 왜냐하면 7월 29일, 알 수 없는 이유로 군사정변이 발생하였고, 이 결과로 새로운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서기장이었던 발터 울브리히트가 사임하고, 그 자리를 빌리 슈토프 당시 국방장관이 메꾸게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지도부의 교체로 인해 대부분의 병력이 제대로 된 보급과 식량 등을 받지 못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대부분은 레지스탕스에 협력하거나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고 게다가 갑작스러운 정변으로 인수인계마저 받지 못한 신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 정부는 사실상 무능 그 자체에 가까웠다. 또한 이미 전투도 기술력의 한계로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을 도우기 위해 UN 안보리가 열리고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침공을 묵인한 공산권 국가들을 제외하고 회의를 한 결과 이에 합류한 미군들을 중심으로 도이칠란트 연방군, 홀란트 연방군, 오스트리아 공화국군, 프랑스 공화국군, 덴마크 왕국군 등이 합세해 당시 도이칠란트 인민 공화국의 점령지를 수복하는 ‘자유주의 수호’라는 작전을 8월 1일 실행하기로 하였다 7월 15일, 브뤼셀의 NATO본부에서 군의 편성이 시작되었고 8월 1일, 진격을 시작해 본(Bonn)에 있던 주독 미군 기지에 집합해 부대를 정비함과 동시에 전격전과도 비슷한 전술을 적용해 공격과 방어를동시에 실시 하였으며, 처음 일어난 니더-작센 수복전투에서 당시 방어군으로 있던 12개 보병 대대를 신속히 격파함으로서 빠르게 니더작센을 수복하였다. 그리고 전세가 아무리 유리했어도 벌써 도이칠란트 국가 인민군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그 결과 적화되어 있던 전선 근처에 있던 도시를 시가전과 포병의 대 폭격으로 인민군의 기지와 총독부를 쑥대밭으로 만든뒤 점령하고 북해 쪽에서는 함대가 지속적인 포격 등을 개시해 빠른 속력으로 진격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가 인민군 병사들을 패잔병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생포 하는등의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또한, 여러 작전들을 통해 국가 인민군을 격파한 결과로 MPI-KM-72[9] 자동 소총을 다수 노획하였고, T-72전차도 덤으로 노획한 결과로 미국과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은 재빠르게 기술연구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빠른 진격의 결과로 남은 곳은 동 베를린 소재 도이칠란트 공산당 당사와 서기장 집무실이었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합군은 국가 인민군과 치열하게 싸워 도이칠란트 본토를 전부 수복하였고, 국가인민군과 임시 서기장으로부터 9월 3일에 항복 성명을 받아내면서 도이칠란트 전쟁은 핵전쟁 없이[10] 끝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전쟁 이후의 상황은 1944년 패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방불케 하였고, 수많은 재산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돌아가던 건 남은 25%의 기반시설이었고, 다시 미국의 지원(신 마셜플랜으로도 불린다.)을 받아 빠른 경제 성장으로 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되며 경제대국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75년 초, 도이칠란트 본토는 공식적으로 통일을 하게 되고, 제 1대 도이칠란트 연방 대통령으로 에리히 폰 크라우프가 취임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 되었습니다."

당시 도이칠란트 연방의 1대 대통령 에리히 폰 크라우프


그러나 그는 도이칠란트 전쟁에 참여했었던 장교 출신 중 몇 명 안되던 도이칠란트 중심의 유럽통합 주의자였고, 도이칠란트 전쟁으로 공산주의 국가의 경제적 기반이 약해졌다는 것을 이용해 자칫 3차 세계대전이 터질뻔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도이칠란트 연방은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이용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제 2 안슐루스) 홀란트 연방을 전쟁도 없이 조약 하나로 병합(브뤼셀 조약), 그리고 주변 공산권 국가에 도이칠란트 전쟁을 지원했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지에 외교전과 동시에 침공을 가해 반 공산주의 세력을 지원해 가며 통합하게 된다.(당시 소련의 압박이 있었으나, 영향력이 너무 큰 나머지 경제 전쟁을 우려한 소련은 추가적인 보복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1979년,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 홀란트 연방,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이루어진 통합된 도이칠란트 연방[11]이 세워진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의 기반으로 1980년대 전성기를 맞게 된다.

1980년(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성기)~현재

1980년대, 도이칠란트 연방은 당시 건국 이래 라인강의 기적에 이어 2번째로 일어난 경제 기적과 정치 개혁[12] 등으로 전성기를 맞게되고, 당시 경제 상황[13]도 미국을 따라잡을 만큼 부유했었다. 또한 이후 취임한 여러 대통령, 총리들이 과거 나치정부의 행적에 대해 국제사회에 사죄하면서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제적입지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1970년 확산된 테러리즘은 특히 중부유럽이 혼란한 상황을 틈타 폭탄테러를 벌인다던가, 암살 또는 인질극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80년, 전성기에 접어들자 공산주의의 부흥을 꾀하며 대규모 인질극과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렀는데 정부도 너무 외교와 경제, 정치쪽에만 신경쓴 나머지 공공사업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못하였고 이후 2차례의 테러를 통해 치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들여 공공사업에 대해 더 집중하기 시작한다. 정부에서는 내부개혁 1.0(Interne Reform 1.0)을 실시해 치안, 소방, 보건 등의 일부 서비스부터 환경, 국방 등의 다양한 부문의 공공 서비스에 대해 개혁을 시작하였다. 이후 이 개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고, 국방력도 점차 증가하였다. 이후 1990년도에는 공산권도 붕괴하며 세계는 점차 평화를 맞이하는듯 싶었으나 중동, 인도 등의 등지에서 종교문제로 인한 분쟁이 불거지며 세계는 2000년이 되어서 신 냉전에 접어들게 되고 또한, 2010년 부터는 신 냉전의 영향으로 다양한 난민들이 생겨나자, 이에 대한 문제가 생겼지만, 현재는 점차 해소되고 있으며, G7의 가입국이자, EU의 가입국, UN의 비 상임 이사국 자리에 등극하였다. 또한 경제력순위도 상위권에 들어가있다.

상징

국호

자국어로는 도이칠란트(Deutschland, /ˈdɔʏtʃ.lant/)라고 부른다. 이를 풀어서 쓰면 "das deutsche Land", 독일인(Deutsch)의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도이치라는 말은 고대 게르만어 diutisc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더치 페이의 더치(Dutch)와도 그 어원이 비슷하다. 다른 언어에서는 유래가 다른 국호를 쓰고 있다.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에서는 라틴어 Germania에서 따온 Germany/Germania/Германия(Gyermaniya)를 쓰며,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서는 독일을 게르만 민족인 알레마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알마뉴(Allemagne)/알레마니아(Alemania)/알레마니아(Alemanha), 폴란드어에서는 슬라브어 녜메트(němьcь)에서 유래한 '녬치(Niemcy)', 핀란드어에서는 색슨족의 이름에서 유래한 '삭사(Saksa)'로 부르며, 에스토니아어에서도 색슨족의 땅이란 뜻의 삭사마(Saksamaa)라고 부른다. 한편 발트어권인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에서는 '바치야'와 '보키에티야'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이름들의 경우 어원이 불분명하다.

국기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기는 연방기/독일기로 불리는데, 독일기/연방기의 바탕이 되는 흑,적,금의 삼색기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검정은 인권 억압 및 탄압에 대한 분노와 어둠을,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금색은 진리와 지혜를 뜻한다. 그리고 국장의 독수리는 국가의 자유와 용맹함을 뜻하고, 독수리 몸통에 있는 별 2개는 2차례에 걸친 경제 기적과 성장을 의미한다.

국가

도이칠란트 연방의 국가는 '도이칠란트 연방의 노래'인데, 원곡은 한스 퍼디난트 마스만이 작곡한 Ich hab` mich ergeben으로, 연합군 군정기 도이칠란트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도이칠란트 연방 정부에서 공식 국가로 지정하며 불려지게 된다. 물론 종종 도이칠란트의 노래가 불려지긴 하지만 이는 성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전 나치문제를 부각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다.

인문 환경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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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의 각 주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0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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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칠란트의 영토가 표시된 행정도(서기 2019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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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본 도이칠란트 연방

도이칠란트 연방의 최대 행정 구역은 레지온(Region)이다. 정식 명칭은 (Verwal region)지방 자치구로, 총 34개의 지방 자치구와 170개의 도시가 존재한다. 가장 큰 지방 자치구는 브란덴부르크-안할트 레지온으로, 도이칠란트 연방의 전체인구인 165,165,876명 중 4%가 대 베를린에 밀집하여 있다. 물론 지방 자치구의 종류에는 행정 특별 자치구, 상공 특별 자치구등이 존재하며, 최대 도시는 신 베를린(Neue Berlin)이며, 2005년대에 들어서 구 베를린이 낙후되었다는 의견이 지속되자, 도이칠란트 연방 정부가 새로 지은 특별 자치시로[14] ,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에 소속되어 있다.

도이칠란트 연방의 레지온
1. 그로닝겐 - 작센 레지온 2. 브뤼셀 - 라인 레지온 3. 리게 - 라인란트 레지온 4. 슐레스비히 - 포어포메른 레지온 5. 브란덴부르크 - 안할트 레지온
6. 헤센 - 튀링겐 레지온 7. 그로스 바이에른 레지온 8.스트레도스키 - 지흐체스키 레지온 9. 트렌시안스키 - 즐린스키 레지온 10. 그로스 빈 레지온
11. 티롤 - 잘츠부르크 레지온 12. 누그라드 - 코시스키 레지온 13. 툴라 - 자라 레지온 14. 그로스 부다페스트 레지온 15. 그로스 포메라니안 레지온
16. 그로스 마소비안 레지온 17. 루 블린 레지온 18. 실레지안 - 오폴 레지온

각 레지온의 코드

GSBRLRSVBAHT
GBSZTZGVTSNK
TJGBUGVMGMSSO

또한, 레지온의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주(Staat)가 존재하며, 약 50여개의 주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아래 행정구역으로는 시, 비 도시 구역, 구 가 존재한다. 그러나 시나 구 단위로는 학교에서 방대하게 가르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50여개가 넘는 주의 명칭과 최소한 몇백개는 넘어갈 수 있는 시와 구 까지 생각한다면 학습이 어려워 질것이라 판단한 사회 교육부에서는, 최대한 대표적인 레지온과 주, 시 단위의 행정구역을 연방 지리(Bundes Geographie)로 분리해 가르친다. 물론 주 단위의 행정구역에서는 1개이상의 중대가 존재하는데, 이는 전쟁 발발시 예비군을 차출해 내거나, 레지온을 넘나들면서 배정받는 등의 혼란을 줄이고자 설치하였는데, 대부분 주의 외곽에 위치한다.

교통

도이치 연방은 수많은 자치국과 연결되어있는 특성으로 인해 상당히 방대한 철도망과 교통체계가 존재한다. 도이치 연방의 시내버스부터 알아보자면 포스트버스, 플릭스버스등이 있으며, 그 이외의 버스사로는 도이치 버스사가 있다. 그리고 도이치 연방의 지하철은 u-bahn, s-bahn과 Ausland-bahn 등이 있다. 항공사로는 국영항공사인 도이치 항공과 그 이외의 항공사인 콘도르 항공, 도이치 윙스, Ausland-Wings, 루프트 한자등이 있다. 그리고 교통망이라면 두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하나는 물류 운송 체계인 LTS와 분데스 아우토반 등의 고속 도로등이 존재하며, 철도망으로는 도이치 철도 등이 존재한다

경제

도이칠란트 연방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전후 경제 기적인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당시 미국을 위협할 수 있을정도의 경제 강국으로 성공했으나, 1973년 일어난 도이칠란트 전쟁으로 대부분의 기반시설이 파괴되었으나, 미국의 전후 경제 복구 대책으로(신 마셜플랜)다시 기반시설을 복구하고 공장들을 세우며 경제성장(제 2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다. 도이칠란트 연방의 경제 성장률을 보면 전쟁이 종전된 1973년 당시에는 사실상 0.9% 수준이었고, 1974년도의 경제 성장률은 1.6%로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고, 1980년 전성기때는 2.5%까지 증가하였으며, 지금은 러시아를 위협하는 4.3% 수준까지 그치게 되었으며, 주로 1차 산업보다는 2차와 3차산업에 걸쳐 많이 분포되어있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공산품, 생필품, 전자제품부터 다양한 수출상품이 있는데, 그에 비해 주요 수입품은 구리, 석유 등의 천연자원이 주를 이루며, 최근에는 에너지 개발정책으로 석유의 수입이 줄어들었다.

사회

치안

도이칠란트 연방의 치안은 한국다음으로 우수한 편인데, 그이유는 투철한 신고 정신,준법정신 그리고 애국심이라는 소프트 웨어와 체계적이고 강력한 경찰이라는 하드웨어가 합쳐지며 상당히 좋은 치안력을 자랑하게되었다. 도이치 연방의 치안은 법무부 산하 연방 경찰청에서 관리하는데, 그도 놀라울것이, 대부분의 경찰병력이 정예화되어있다. 왜냐하면 도이칠란트 연방 국경 수비대가 연방 경찰청의 전신이기때문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많은 경력을 쌓아오며 정예화되었다. 현재 연방 경찰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사법경찰(국민경찰)
통상적인 민주주의국가의 경찰과 권한이 비슷한데 주로 경범죄자에 대한 조사,체포,벌금안 작성등이 주업무이다. 물론 중범죄를 수사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런경우는 주로 형사들이 맡는다.
2.특수경찰(전투경찰)
주로 시위나 폭동에 대한 제압,체포,해산등이 주 업무이다. 그들은 주로 곤봉으로 무장하며, 때로는 진압용 스프레이(일시적으로 눈을 따갑게 함)등으로 무장한다.
3.무장경찰
주로 테러, 인질극, 비상사태에서의 진압,사살, 체포 등이 주 업무 이며, 대부분이 권총으로 무장하여있으나, 때때로는 기관단총이나 소총, 산탄총 등으로 무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빈번하지는 않으며, 주로 중(重)범죄자에 대해 이러한 경찰들이 출동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

교육은 4살부터 킨더 가르텐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기초적인 독일어와 수리능력, 탐구능력 등을 가르치며, 킨더 가르텐 이수기간 말에는 겨울방학에 포함되는진로 탐색 기간이라하여 킨더가르텐에 진학중인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어떠한 학교를 진학할것이며, 자신의 진로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수료하고, 이를 부모를 통해 사회 교육부에 제출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 교육부와 유치원이 검토해 각자의 개성 및 학력에 맞게 그룬트슐레에 배정하고 8살이 되는 3월 부터 입학식을 가진다. 학년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존재하는데, 1학년에서는 기초적인 독일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와 수리능력을 배우고 통합사회를 배운다. 그리고 2학년에서는 조금 심화된 독일어의 읽기, 쓰기, 말하기부터 곱셈, 나눗셈과 같은 수리능력을 배우고 이때부터는 선택적으로 정보와 생활을 배우며 기초적인 생활활동 능력을 가르친다. 그리고 3학년 부터는 독어로 작성된 글(시, 기초 설명문, 기초 논설문)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한국어, 프랑스어 중 하나를 배울수 있는 제 2 외국어를 신청할 수 있고 통합사회에서도 역사/ 사회/ 지리/ 교양 등으로 분리되어 넷중 하나가 신청가능하다. 또한 체육도 기초 체육/ 체육 과학/ 무용 예술 등으로 나눠 신청이 가능하다. 또한 이 시기 부터는 자유롭게 공부시간이 배정 가능하나, 의무적으로 6교시까지 지정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4,5,6 학년부터는 의무적으로 7교시로 자유배정이 가능하고, 제 2외국어와 심화된 정보와 생활, 교양, 진로 등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며 졸업한 이후에는 미텔 슐레와 회흐 슐빌퉁(고등 교육)을 이수할 수 있고, 특히 회흐 슐빌퉁을 이수하면 바로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짐과 동시에 우니버실탓(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으며, 다양한과가 존재한다. 대부분 Bewertung der Reparaturfähigkeit(수리 능력 평가)로 진학하는데 몇몇 경우에서는 특수 진형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군사

군의 구조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구조는 1955년 창설된 연방 지상군 (Landstreitkräfte), 연방 해군 (Bundes Marine), 연방 항공군 (Luftstreitkräfte)과 그 이외의 병과로 시가전의 중요성에 따라 1970년 창설된 화력지원군(Deckungsgruppe) , 이후 넓어진 영토의 수비를 위해 파견되었던 국경 수비군(Grenztruppen), 테러리즘의 유행으로 이를 저지하고자 만든 특수목적군(Fallschirmjäger)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연혁

-1955년 : 미, 영, 프 3국의 허가로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가입과 동시에 도이칠란트 연방군 창설
-1959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제식무기로 HK G3 전투소총 채용
-1963년 : 도이칠란트 연방 공화국 대통령의 지시로 군비 증강과 군 체제 개편
-1965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주독미군을 통해 M16소총을 1차적으로 인도받음.
-1973년 : 도이칠란트 전쟁의 발발과 종전(당시 병력 30만명, 전차 3684대)
-1974년 : 도이칠란트 본토의 통일
-1975년 : 제 2의 안슐루스 발생으로 주변국들이 통합됨.
-1978년 : 도이칠란트 연방의 수립과 연방군의 2차 개혁
-1980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제식소총으로 M16A2 소총 채용
-1991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G41의 개량지시
-2001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2010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위해 미군과 함께 전투 참여 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2018년 : 도이칠란트 연방군, 제식소총으로 MCX의 채용과 군비 증강
-2019년 : 현재 군 병력 54만명, 전차 보유수량 1986대 달성

육군(Heer)

총 24만 3천명이 이곳에서 근무중이며, 현재 그들의 무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보병 장비
제식소총G3G8G30G41G43
지정 사수 소총G3SG/1G30SG/1G28
저격소총G22G24G25G82G29
기관단총MP5MP5MMP7PM-10
권총P1P7P8P11P21VP80
도이칠란트 연방군의 지원 화기
기관총MG3MG3MMG4MG5MG50
유탄발사기AG40-1AG40-2HK320
대전차화기PzF-3Leuchtbüchse 84 mmRGW90MILANEUROSPIKE

육군 편제
육군사령부 육군사령부(Kommando Heer; Kdo H) - XXXX
신속병력사단(Division Schnelle Kräfte; DSK) - XX
제1기갑사단(1. Panzerdivision; 1. PzDiv) - XX
제10기갑사단(10. Panzerdivision; 10. PzDiv) - XX
유럽 군단(Eurokorps) - XXX
제1독일-네덜란드군단(1. Deutsch-Niederländisches Korps; 1. GE/NL Corps) — XXX
북동부 다국적군단( Multinationales Korps Nord-Ost; MNC NE) — XXX
육군교육사령부(Ausbildungskommando; AusbKdo) - XX
육군개발청(Amt für Heeresentwicklung; AHEntwg) - XX

공군(Luftwaffe)

공군사령부 공군사령부(Kommando Luftwaffe; Kdo Lw) - XXXX
공군작전센터(Zentrum Luftoperationen; ZentrLuftOp) — XXX
공군병무사령부(Luftwaffentruppenkommando; LwTrKdo) — XXX

해군(Marine)

해군사령부(Marinekommando; MarKdo)
제1기동전단(Einsatzflottille 1; EinsFltl 1)
제1기동전단( Einsatzflottille 2; EinsFltl 2)
해군비행사령부(Marinefliegerkommando; MFlgKdo)
해군지원사령부(Marineunterstützungskommando; MUKdo)

(추후 서술합니다)

각주

  1. 당시 쿠데타를 주도한 장성 몇명이 임시로 세운 정부
  2.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3. 당시 공산권에서는 스탈린의 사망으로 술렁인데다가, 사회 통일당은 당시 대통령이던 발터 울브리히트의 생일을 축하한답시고 쓸데없이 노동자의 임금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4. 당시 국방력 증강한다고 코메콘에서 빌린돈만 몇천억이 넘어섰다
  5. 기밀유지를 위해 수뇌부가 전쟁 말 파기하라고 명령하였다.
  6. 실제 수도는 베를린이었지만, 1961년 베를린장벽 축조로 사실상의 수도는 본이었다
  7. 일부 국가에서는 대 소련 전선이라고 칭한다.
  8. 1970년대에는 테러리즘의 시대임과 동시에 공산권 국가의 침공 대비를 위해 전략 무기(미사일, 신규 기갑장비 등)를 증강하고 있었고, 공산권도 이에 맞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9. 동독(DDR)에서 개량한 AK시리즈 베이스의 7.62mmX39mm 소련제 탄환을 사용하는 자동소총이다.
  10. 본(Bonn)으로 후퇴할 시기, 브뤼셀 소재 나토(NATO)본부에서는 회의 도중 전술핵 발사를 논의하였으나, 소련에 핵을 발사한다면, 그들도 똑같이 보복할것이란 의견이 우세해 비대칭 무기들은 배제하는것으로 결의하였다
  11. 국가로 구성된 연방 같지만 실제로는 연방제를 채용한 공화국에 가깝다.
  12. 나치 또는 신 나치즘을 신봉하는 당원, 의원들을 제명했다
  13. 전후 군수산업의 발전과 공산품 대량 생산이 빈번하였다
  14. 1980년 착공 당시에는 거의 허허벌판에 가까운 부지였으나, 완공 이후 다른 여러도시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현대화된 도시로서 그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