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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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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루이 14세는 즉위 5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범 황후와 콜베르 수상이 축하연설을 하였다. 663년에 루이 14세는 불곰계획을 발표하여 육군력을 한층 강화했다. 664년에는 쿠앗을 방문하여 천군계획을 발표했다. 천군 계획이란 전 국군에서의 첨단화와 군 장병의 인권을 형상하는 계획이다. 665년은 기념비적인 해 였다. 보나파르트 주의 경제개발이 완전히 끝나, 보나파르트가 저개발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666년에는 지방고속도로를 발루아, 오를레앙, 보나파르트 전 지역에 추가적으로 착공하여 교통을 정리했다. 이 무렵, 루이 14세가 범 황후 일가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한다.
 
660년, 루이 14세는 즉위 5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범 황후와 콜베르 수상이 축하연설을 하였다. 663년에 루이 14세는 불곰계획을 발표하여 육군력을 한층 강화했다. 664년에는 쿠앗을 방문하여 천군계획을 발표했다. 천군 계획이란 전 국군에서의 첨단화와 군 장병의 인권을 형상하는 계획이다. 665년은 기념비적인 해 였다. 보나파르트 주의 경제개발이 완전히 끝나, 보나파르트가 저개발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666년에는 지방고속도로를 발루아, 오를레앙, 보나파르트 전 지역에 추가적으로 착공하여 교통을 정리했다. 이 무렵, 루이 14세가 범 황후 일가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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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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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은 은하제국 대전환의 해였다. 절대왕정의 시대가 끝나고 입선군주정이 도입한 것이다. 보수당 대표였던 루크가 첫 민선 수상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의 제임시절은 밝지 못했다. 보수당은 금세 원내1당에서 2당으로 추락했으며 지지기간 내내 레임덕에 시달리다가 4년후인 674년에 불명예 사임했다. 그의 후임자인 우라늄은 거대여당 공화당의 당원이었지만 끝은 더 비참했다. 공화당은 그를 외면했으며 황제와의 다툼 끝에 2년후인 676년에 의문의 세력에 의하여 암살당했다. 이후 초수가 수상직을 승계하였다.
  
  
 
[[분류:은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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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일) 22:32 판

부르봉 왕조 문장.png
은하제국 부르봉 가문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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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Louis XIV
루이 14세.webp
출생 582년 4월 16일
코러산트 부르봉 대궁전
재위기간 은하 제국 황제
610년 4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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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부르봉 가문
이름 루이 드 부르봉
Louis de Bourbon
배우자
자녀 루이 15세, 보르, 최하솔, 김구연
학력 코러산트 제국대학교 (법학과)
종교 개신교(장로회)
신체 168cm, 81kg

개요

은하 제국의 14대 황제이다. 현재 60년 넘게 즉위 중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중인 성군이다.

가족관계

  • 배우자: 안드레센 범 ( 604 ~ )
    • 장남: 루이 15세 ( 628 ~ )
    • 차남: 보르 ( 630 ~ )
    • 삼남: 최하솔 ( 632 ~ )
    • 사남: 김구연 ( 637 ~ )

재위기간

610년대

루이 14세가 610년 4월 16일에 즉위했을 때, 은하 제국은 체제의 한계점에 도달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옛 스승이었던 유니온을 수상으로 임명하여 난국을 타개하고자 했다. 루이 14세는 국적 체제를 최신화하여 행정력을 복구시켰다. 또한 공무원 임금 제도를 수정하여 재정안정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유니온 내각의 제국 헌법 개정 시도에 루이 14가 반발하였으며, 그 이후로 다른 분야로까지 갈등이 심화되어 614년 10월 26일에 루이 14세는 유니온 수상을 해임시켰다. 그 이후로 2년동안 은하 제국은 권한대행 체제를 거쳤다. 616년 7월 12일에 설하 내각이 출범하긴 했으나 1년 4개월만에 좌초되었고 이진 내각이 617년 11월 14일에 출범하여 혼란기를 마무리 지었다.

620년대

루이 14세는 620년 1월 4일에 신년 목표를 공포했다. 그리고 팽창주의 정책을 수립하여 은하 제국 남부 영토에 대한 원정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팽창주의에 반발한 이진 수상은 624년 1월 23일에 사임하였다. 루이 14세는 김춘식 전 부수상을 수상으로 임명하여 624년 1월 25일에 김춘식 내각이 출범하였다. 루이 14세는 남부 영토의 확장을 위해 대규모 추경을 내각에 요구하였으나 김춘식 수상이 반발하여 626년 6월 16일에 김춘식 내각을 해임시켰다. 이때 은하제국은 21개의 행성을 점령한 상태였다. 루이 14세는 다음 수상으로 보르를 내정하여 626년 6월 17일에 그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보르의 우유부단한 전략으로 인해 도리어 행성 10개를 빼앗기자, 분노한 루이 14세는 627년 10월 27일에 보르 내각을 해산하고 땅콩 부수상을 직무대행으로 임명하였다.

630년대

루이 14세는 남부 영토 점령 실패와 국내의 불안 폭주에 대응하기 위해 630년 1월 6일에 미니 비상대책위원회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기득권층과 싸우려 했던 미니 비대위의 정책에 불안을 느낀 기득권층은 10.12 항명사건을 계기로 미니 비대위를 전복시켰고 630년 10월 15일에 기득권층의 비호를 받던 도적을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도적 수상은 국적 체제를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등 여러 개혁을 통해 위기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도적은 634년 2월 10일에 수상직을 콜베르에게 이양하였다. 루이 14세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주력함인 Imperial Star-Destroyer를 10만대 주문하는 등 백곰산업을 추진하여 120여개의 행성을 추가로 점령하여 은하 남부 지역을 완전히 점령한 뒤, 보나파르트 주를 수립한다.

640년대

루이 14세는 새로 점령한 보나파르트 주의 발전을 위해 641년 칙령을 반포하여 제42고속도로를 보나파르트 최남단까지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각에 전달했다. 642년에 착공된 공사는 645년에 완공되었다. 또한 제43고속도로와 제44고속도로를 최남단 지역까지 연장하여 이동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 무렵에 루이 14세의 장남인 루이가 정식으로 황태자로 임명되었다. 루이 14세는 비대화된 501사령부를 나누어 504사령부를 신설한 다음, 보나파르트에 주둔시켜 안보 불안을 해소했다. 이듬해인 646년, 황제 비서실을 궁내부로 확대 개편하고 소아를 초대 궁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648년, 보나파르트 주를지원하기 위해 3차 추경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루이 14세는보나파르트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였고 문맹률을 10%로 낮추는 데에 성공했다.

650년대

루이 14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나파르트에 대한 추가적인 발전은 지지부진했다. 기존 토호 세력들의 부패로 은하 제국의 지원금을 횡령해 사익을 챙기는 데에 급급했던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루이 14세는 505사령부에게 명령을 하달하여 토호 세력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노쇠한 나이 때문에 명령 하달이 늦어져, 작전의 차질이 생기고 결국 패전하였다. 이에 콜베르 수상은 협상을 시작하여 성공리에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이에 루이 14세는 자신의 노쇠함을 체감하였으며 콜베르 수상에 대한 반감을 키워간다. 654년, 콜베르 수상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655년부터 659년까지 루이 14세는 패전으로 인한 정국의 주도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루아 주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발루아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낸다. 발루아에 대한 지원은 출산지원부터 노후 도로 보수 지원까지 다양했다.

660년대

660년, 루이 14세는 즉위 5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범 황후와 콜베르 수상이 축하연설을 하였다. 663년에 루이 14세는 불곰계획을 발표하여 육군력을 한층 강화했다. 664년에는 쿠앗을 방문하여 천군계획을 발표했다. 천군 계획이란 전 국군에서의 첨단화와 군 장병의 인권을 형상하는 계획이다. 665년은 기념비적인 해 였다. 보나파르트 주의 경제개발이 완전히 끝나, 보나파르트가 저개발 지역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666년에는 지방고속도로를 발루아, 오를레앙, 보나파르트 전 지역에 추가적으로 착공하여 교통을 정리했다. 이 무렵, 루이 14세가 범 황후 일가에게 공작 작위를 부여한다.

670년대

670년은 은하제국 대전환의 해였다. 절대왕정의 시대가 끝나고 입선군주정이 도입한 것이다. 보수당 대표였던 루크가 첫 민선 수상이라는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그의 제임시절은 밝지 못했다. 보수당은 금세 원내1당에서 2당으로 추락했으며 지지기간 내내 레임덕에 시달리다가 4년후인 674년에 불명예 사임했다. 그의 후임자인 우라늄은 거대여당 공화당의 당원이었지만 끝은 더 비참했다. 공화당은 그를 외면했으며 황제와의 다툼 끝에 2년후인 676년에 의문의 세력에 의하여 암살당했다. 이후 초수가 수상직을 승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