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여러가지 대중적인 비판들과 이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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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Melt의 논문

전문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의 내용을 간단히 다루고,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대중적인 비판들을 검토하고 이를 반박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일 것이다. 이로써 가국 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해 비판적인 가국 세계의 학자들의 비판이 논문으로 발표되어 논의가 풍부해지기를 바란다.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는 일반적으로 상품으로서 존재한다는 것, 편의상 물적 재화만을 상품으로 둔다는 것[1]에 합의하자.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연에 적절한 형태의 노동이 가해지면 그것이 물적 재화가 되고, 이 물적 재화가 서로 교환되면 이때 그 물적 재화는 상품이라고 본다.

여기서, '노동이 가해진 자연'으로서의 상품이 바로 상품의 물리적인 실체이며, 상품의 실체는 '인간의 필요 또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성질'이다. 상품의 실체, 상품의 이러한 성질을 '사용가치'라고 한다.

한편, 이러한 상품은 교환되는데, 이때 교환은 어떤 비율에 따라 이루어진다. 예를들어, 연필 x개는 지우개 y개와 교환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품이 수로 측정되는 어떤 단위를 기준으로 삼아 교환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기준을 '가치'라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첫째, 가치는 '상품들의 일반적인 공통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어찌 상품의 교환의 기준이 되겠는가? 둘째, 연필과 지우개의 사용가치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가치는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셋째, 연필과 지우개가 x, y개 교환된다는 것은 객관적인 수의 관계이므로, 가치는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치의 정체는 다름아닌 '노동량'이다. 즉, 상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모든 노동량이 그 상품의 가치량인 것이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자.

상품들은 교환되므로, 교환된다는 것은 상품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환된다는 사건 그 자체는 가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어떠한 성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연필과 지우개를 교환한다'는 사건 자체는 x, y라는 수량을 결정할 그 어떤 성질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수요ㆍ공급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상품의 어떠한 객관적인 공통성으로 작동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노동이 가해진 자연'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연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만약 자연의 어떤 성질이 가치로 작동한다면, 자연은 이를 근거로 교환에도 개입해야 하지만 교환에서 어떤 상품을 얻는 것은 인간이지 자연은 아니다. 가치라는 것은 교환이라는 사건을 통해 작동하는 것인데, 이러한 측면에서 자연은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성질은 단 하나, 인간의 활동인 노동이다. 인간은 노동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교환에 개입하므로 자연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동은 상품들의 일반적인 공통성이면서도, 분명히 노동 시간을 통해 수로 측정될 수도 있고, 실체[2]를 지녀서 상품의 실체에 반영되는 동시에 추상적인 성질도 가진다. 그러므로 노동의 성질, 정확하게는 '노동은 인간의 신체 기관들의 생산적인 소비 활동의 합이라는 성질[3]'이 가치의 정체이다.

어떤 상품의 가치는 노동 시간, 정확하게는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란, 해당 사회에서 그 상품의 생산에 주어지는 평균적인 작업 조건(생산 수단의 성능, 생산하는 장소의 환경 등) 아래에서, 해당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그 사회의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노동 생산성, 노동 강도 등을 전제했을때 걸리는 노동 시간의 총합이다. 그렇다고 상품 생산에 걸리는 재료나 기계는 가치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즉, 생산 수단) 또한 노동이 가해진 자연이므로,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의 크기는 교환의 초기에 생산자들의 전문적인 경험, 지식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합의를 기준으로 측정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교환의 편의를 목적으로, 이러한 체계속에서 결정된 어떤 상품의 수량이 사회의 상품들의 교환 비율의 실질적인 기준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화폐의 등장이었고, 화폐는 실제 교환 비율의 표면적 기준인 교환가치의 척도로 기능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어떤 화폐보유자 A가 자신의 화폐로 재료와 기계와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입하여 이들로 상품을 생산, 판매하였다면 이로써 얻은 화폐의 가치는 모두 재료, 기계, 노동자에 의한 것이므로 이들에게 분배되어야 한다. 즉, A는 이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A가 '자본가'라면, 그는 이익을 볼 수 있다. 만약 실제 가치와는 관계없이 A가 상품을 비싸게 팔았다면, 그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본가 A는 가치를 새롭게 창출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그 '새로운 가치'는 분명히 재료, 기계, 노동자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재료와 기계는 다만 노동이 가해진 자연에 불과하므로 가치를 새롭게 창출할 수는 없다. 반면, 노동력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인간 노동의 근원이므로, 새롭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력이 새로운 가치의 근원인데, 이것이 자본가의 이익으로 된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의 근원인 노동력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음을 의미하므로, 이를 착취라고 한다. 이때, 자본에 참여한 재료와 기계와 같은 생산 수단을 불변자본 c, 자본에 참여한 노동력을 가변자본 v, 자본가의 이익이 되는 착취로부터 비롯된 가치를 잉여가치 s라 한다.

(이윤율)= s/(c+v) = (s/v)/{(c/v)+1}인데, 이때 예외적인 조건들을 배제하면 이윤율을 결정하는 요소는 잉여가치율(착취율) s/v(노동 생산성 향상으로 상승)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 c/v이(주로 기계 비중 증가로 고도화)다. 그런데 현실에서 개별자본(개별자본가의 자본)의 잉여가치율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모두 상이하다.

한편, 현실에서 개별자본은 경쟁을 통해 보다 이윤율이 높은 산업으로 이동하고자 하고, 이로써 개별자본은 오히려 균등한 이윤율, 즉 평균이윤율을 갖게 되며, 만약 개별자본의 크기 c+v가 k로 모두 동일하다면 이들은 자신에 평균이윤율을 곱한만큼의 이윤, 즉 평균이윤 p를 획득한다. 이때, k+p가 상품의 가격으로 되며, 이것이 '생산가격'이고, 실제 시장에서의 여러 변동에 의해 생산가격은 시장가격으로 드러난다.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과 반박

이 논문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하나의 비판과 이에 대한 하나의 반박을 제시하기를 거듭하겠다. 한편,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잘못된 비판들은 주로 가치에 관한 오해들이나 지나친 주류경제학적 사고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하의 비판들은 그것들에 대한 아래의 분류와는 관계없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한다는 것에 주의하기를 바란다.

가치의 개념에 관하여

비판: 가치는 가격의 다른 표현과 같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수요ㆍ공급이다. 노동 시간으로 측정된다는 노동량은 수요ㆍ공급에 영향을 끼쳐 가격에 부분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있겠으나, 노동량이 결정적으로 가치 또는 가격을 결정할 수는 없다. 뿐만아니라, 노동량과 가격이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거나 오히려 반비례 관계를 갖는 경우도 있다.
반박: 마르크스 경제학 뿐만이 아니라 주류경제학을 포함한 여러 경제학파에서, 가치란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가격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4]이다. (마르크스주의의)가치는 자본의 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본간의 경쟁으로 생산가격의 형태로써 현실에 반영되며, 수요ㆍ공급에 의해 실제 시장가격은 생산가격 주변에서 변동할뿐이다.

비판: 가격의 결정에 관한 설명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가치 체계, 생산가격 체계 등이 필요한 반면, 주류경제학에서는 수요ㆍ공급을 고려하기만 하면 된다. 오컴의 면도날을 고려하면, 이는 효용가치론이 옳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반박: 두 체계를 전제하는 방법은 마르크스 경제학자들 중 일정 부분이 선호하는 방법이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는 학자들 또한 상당하고, 무엇보다도 이 비판 자체가 오컴의 면도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주류경제학을 비롯한 효용가치론은 설명하고자 하는 원리 및 현상에 관한 철학적 이해 자체가 다른 상태에서 각각 설명하고 있고, 이에 대해 상반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은 결론까지 일치하는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적용해서는 안된다. 이 비판에 대해서는 과거 가국 세계에서 활동하였던 마르크스주의자인 매흠이 이 비판과 유사한 의견에 대해 보였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인용함으로써 마무리하겠다.
"화학과 철학 양자가 '원소'라는 공통적인 대상을 설명한다는걸 근거로, '화학의 주기율표는 복잡한 반면 철학에서의 4원소설은 간단하니 철학의 설명이 옳다'는 격이오. "

비판: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을 지향한다고 하는데, 가치는 실제 경제 현상에서 직접 드러나지도 않고 추상적인 개념이므로, 가치를 도입한다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학은 비과학적인 것이 된다.
반박: 주류경제학에서 전제하는 효용가치 또한 실제 경제 현상에서 직접 드러나지도 않고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이것을 근거로 주류경제학의 과학성에 반발하는 경우는 대체로 없다. 다만, 주류경제학을 포함한 상당수의 경제학에 대해 이러한 추상적인 가치의 존재가 비과학성을 초래한다고 본다면, 이 비판은 타당하다.

가치의 원천에 관하여

비판: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상품의 가치의 유일한 원천이 노동이라 하는데, 노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산 요소들이 상품 생산에 투입된다. 그런데 노동만을 가치의 원천이라 할 수는 없다.
반박: 실제로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 요소가 무엇인지 고찰한다면, 그것들이 근본적으로 '노동이 가해진 자연'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사용가치의 측면에서 여러 물리적 활동으로써 상품의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동시에 가치의 측면에서 자신들이 지니던 가치의 일부를 상품에 전달한다. 이때, 자연은 주어진 것이므로 노동만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비판: 콥ㆍ더글라스 생산함수의 일반적인 형태, 즉 Q=A×Kα×L1-α에서 볼 수 있듯이, 상품은 일반적으로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여 생산되는 것이고, 자본이 없다면 생산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자본 또한 독자적인 가치의 원천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의 이러한 독자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오직 노동의 가치만을 인정한다.
반박: 주류경제학에서의 자본 개념과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자본 개념을 혼동한 잘못된 비판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생산 수단을 자본재 또는 자본이라 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불변자본 개념과 대응하며, 불변자본은 가변자본(노동력)과 구별되는 독자자적인 물리적 실체 및 물리적 운동을 행하는 것일뿐 그 자체로 어떠한 가치의 개념을 가지지는 않는다.

비판: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학에서는 물적 재화로서의 상품만을 전제하고 논의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가치의 원천을 노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서비스업 또한 주요한 상품으로 기능하고 있고, 이외에 파생 금융 상품을 비롯하여 금융과 관련한 다양한 상품들이 존재하는데, 마르크스주의의 노동가치론은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반박: 물적 재화로서의 상품은 논의의 기초일뿐, 논의의 전체가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시작한 마르크스에서부터, 물적 재화로서의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비롯된 잉여가치의 각종 운동이 대부자본(주로 은행자본), 주식자본 등을 낳는다고 하는 등 금융에 관해 다룬 바가 있고, 특히 힐퍼딩과 레닌은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유착으로서의 금융자본을 다루었으며, 서비스업의 경우에는 그 자체가 여러 노동이라는 것이 자명하다.

가치의 측정에 관하여

비판: 노동 시간이 가격과 비례한다는 실증적 증거가 없으므로, 노동량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론은 틀렸다.
반박: 현대에 산업연관표가 등장함으로써 노동 시간과 가격이 일반적으로 상관 관계를 지닌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보여진 바가 있고, 무엇보다도 시장가격이란,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가치에 영향을 끼친 결과물로서의 생산가격이 수요ㆍ공급에 따라 다소 변동한 것이므로, 노동량이 즉시 가격일 수는 없다.

비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은 현실적으로 측정될 수 없다. 즉, 마르크스주의에서의 가치는 현실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을 기반으로 교환 비율이 결정될 수는 없다.
반박: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은 과거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적인 경험, 지식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합의를 기준으로 측정되었고, 이를 기반[5]으로 원시적인 회폐가 등장하였으며,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화폐 체계에 이르렀다. 이는 가치기 교환 비율의 결정의 토대임을 의미한다.

비판: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착취율, 이윤율, 심지어는 평균이윤율조차 구할 수 없다. 자신들이 제안한 기본적인 변수들의 값조차 구할 수 없다면, 이것이 어찌 현실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반박: 실제 자본의 유기적 구성, 잉여가치율, 이윤율은 개별자본마다 상이하다. 그것들을 모두 구하는 것은 자본제적 생산 양식의 내적 모순을 규명하고 그 동태를 연구한다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목적과는 관계가 없다. 평균이윤율의 경우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나 불황ㆍ공황의 필연성을 실증적으로 보이기 위해 측정해야 한다는 일부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있으나, 평균이윤율 또한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은 차치하고, 마르크스주의의 논리 구조상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필연적이며, 불황ㆍ공황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뿐만 아니라 생산의 무정부성, 부문간 불균형, 제한적 소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림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보이는 것만으로는 불황ㆍ공황의 필연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착취에 관하여

비판: 자본가는 생산에 필요한 각종 업무를 전담한다. 자본가는 화폐를 제공함으로써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경영 관리 등을 통하여 생산성을 높이기도 하며, 마케팅 등으로 상품의 판매를 활성화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자본가의 업무이자 정신노동이며, 그 정당한 내가로 자본가는 이윤을 취득해야 한다.
반박: 화폐의 제공은 자본제적 생산 양식에서의 상품 생산에 필요한 절차이지만 현실적으로 화폐 그 자체는 상품의 어떠한 사용가치도 생산하지 못하며, 화폐로써 생산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이 생산 과정을 지시한다는 것을 의미할뿐 다른 그 무엇도 의미하지 않는다. 경영 관리나 마케팅 등의 활동 또한 그 자체로는 어떠한 사용가치도 생산하지 못하고, 다만 생산ㆍ판매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여러가지 방법들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그 자체로 가치를 생산하지는 못한다. 그마저도 현대에서는 자본가 이외에, 임금을 받고 정신노동을 제공하는 정신노동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비판: 자본가, 즉 기업가는 혁신을 이루어내는 자들이며, 이로써 그들은 이윤의 정당한 근거를 마련한다.
반박: 혁신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데 자본가의 이윤은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이는 혁신이 이윤의 직접적인 근거가 되지는 않음을 의미한다. 또한 혁신 그 자체는 어떠한 사용가치도 창출하지 못하고, 다만 사용가치의 생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활동일 뿐이며, 혁신에 필요한 여러 연구 활동을 행하는 이들조차 이에 따른 '임금'을 지불받을 뿐이다.

비판: 자본가는 자본 투자에 리스크를 가지며, 이러한 리스크의 대가로 이윤을 취득하는 것이므로 자본가의 이윤은 착취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반박: 이윤은 수로 측정이 되므로, 리스크가 이윤의 근거라면 주어진 리스크의 양과 이윤의 양은 정비례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리스크의 크기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자의적으로 그 개념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경우들에서는 오히려 이윤의 크기로부터 리스크의 크기를 역으로 추정한다.

비판: 노동자는 강요받지 않고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서 합법적이고 정당한 계약으로써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착취가 일반적인 현상일 수는 없다. 만약 착취가 일어난다면 노동자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반박: 착취는 계약과는 관계없이 가치에 관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모든 자본이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회사를 이동함으로써 착취의 정도만을 자본가의 의지에 따라 완화할 수 있을뿐이다.

비판: 마르크스주의는 자본가를 지배 계급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현대에는 자본가 또한 주주 및 은행이나 자신들의 권리를 악용하는 소비자와 노동자에 의해 억압의 피해자가 되었으므로, 마르크스주의의 착취에 관한 이론은 옳지 않다.
반박: 여기서 말하는 자본가는 산업자본가, 넓게는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라 할 수 있는데, 이미 마르크스의 시절에서부터 자본가는 화폐자본가, 산업자본가, 상업자본가로 모종의 분업을 형성하였다. 주주 및 은행자본가는 화폐자본가에 해당되며, 이들과 산업자본가 사이의 갈등 또는 억압 관계는 지배 계급 내부에서의 갈등 또는 우위 관계에 불과하다. 한편, '자신의 권리를 악용하는 소비자와 노동자'의 행위들은 표면적으로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으나 그들은 그러한 행위로써 생산 수단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대다수의 노동자와 소비자는 오히려 자본의 영향력을 받는 언론, 미디어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상당한 영향을 받는 이들이다.

비판: 19세기나 20세기 초반에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존재하였으나, 노동자의 환경이 개선된 현대에는 착취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 조합을 중심으로 자본가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 또한 상당하다.
반박: 비판에서 언급되는 '착취'는 비인륜적 행위를 말하는 것일뿐이며, 이는 마르크스주의에서의 가치를 비롯한 그 어떤 경제학에서의 가치와도 중요한 연관 관계가 없다. 소위 '귀족 노조'의 경우, 이들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며, 그들의 요구가 계급 관계를 규정하는 생산 수단의 소유권 및 주도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론의 수리화에 관하여

비판: 마르크스 경제학의 노동가치론과 이로부터 전개된 이론들은 주류경제학과는 달리 수학을 수용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수학적 도구들의 부재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의 내적 정합성과 외적 정합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반박: 마르크스 경제학은 대중적으로 인식된 것과는 달리 적지 않은 수식들을 사용하며, 심지어는 주류경제학의 수학적 도구[6]들 또한 도입하였다. 오히려 주류경제학처럼 수학에 의존하여 대상을 단순화하는 물리학적인 방법은 경제학에 있어서는 오히려 현실과의 지나친 괴리를 발생시키거나 현실과의 모순이 발생시킬 수 있으며, 주류경제학은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고, 마르크스 경제학 내부에서도 주류경제학처럼 수학을 도입하는 것이 마르크스 경제학에 지나치게 물리학적 방법을 도입한다 하여 반발하는 경향이 상당하다. 또한, 주류경제학적인 수학적 도구의 부재는 그 자체로 어떤 내적 정합성이나 외적 정합성에 타격을 입힐 수 없다. 내적 정합성은 논리적 일관성을, 외적 정합성은 현실 설명력을 의미하는데, 수학의 도입은 그것들을 위한 도구들로 활용될 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그것들의 전제 조건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주류경제학적인 수학적 도구들이야말로 오히려 내ㆍ외적 정합성에 문제[7]를 가져올 수 있다.

전형 문제에 관하여

비판: 전형 문제는 개별자본의 상이한 이윤율이 존재하는 가치 체계와 평균이윤율이 형성된 현실로서의 생산 가격 체계에 대하여 마르크스가 '총잉여가치=총이윤', '총가치=총가격'이라는 이계 명제가 성립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가치 체계에서 생산 가격 체계로의 이행과 두 명제의 논리적 모순 관계에 대한 지적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였고, 따라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의 내적 정합성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되었다.

반박: 전형 문제 제기 이후 상당수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문제 제기가 주류경제학적인 전제들과 수학적 도구들을 마르크스 경제학에 자의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생긴 오류라고 지적하였고, 이러한 적용에 찬성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들 또한, 마르코프 과정으로써 '총가치=총가격' 명제를 지지하되 마르크스의 기본 정리를 이용해 '총잉여가치=총이윤' 명제 또한 보강함으로써 전형 문제를 완화하는 방법 및 이를 보강하는 방법들, 가치 체계와 새한가격 체계 자체를 하나의 체계로 보는 동시적 단일 체계 해석과 시점간 단일 체계 해석과 같은 다양한 방법들로써 충분히 해소하였다.

  1. 서비스는 다만 노동 그 자체가 특수하게 상품화된 것이고, 파생 금융 상품 등은 모두 실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 노동의 실체로서의 성질을 '구체적 유용 노동'이라고 한다.
  3. 이것이 바로 '추상적 인간 노동'이다.
  4. 다만 주류경제학은 가치 개념을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교환가치나 교환가치로 평가될 수 있는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5. 구체적으로, 한 쌍의 생산물들이 교환 비율을 지니는 체계로서의 단순한 가치 형태와, 단순한 가치 형태가 사회적으로 확장된 것으로서의 전개된 가치 형태에서는 이러한 생산자들의 합의로서의 기준이 교환 비율을 결정하는 중심적인 기준이나, 전개된 가치 형태를 구성하는 생산물들에 대해 어떤 한 종류의 상품이 자신의 수량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표현하는 역할을 하는 일반적 가치 형태에서는 바로 이 생산물의 수량이 교환 비율을 결정하는 중심적인 기준으로 된다.
  6. 대표적으로 산업 연관 분석
  7. 주류경제학의 주축들 중 하나인 콥ㆍ더글라스 생산함수는 케임브리지 자본 논쟁을 거쳐 그 내적 정합성에 관한 회의가 지배적인 해석으로 되었고, 주류경제학의 외적 정합성에 대한 반발(경우에 따라 내적 정합성도 포함)은 행동경제학의 탄생이라는 사태를 낳을만큼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