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code>1945년 이전 월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월본사]] 항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code> {{월본사}} {{역대 월본 정부}} 아래는 월본국의 설정 상 역사와 카페 개설 이후 실제 역사를 분리하여 서술하였습니다. = 개요 = 남해성 말기 서양 열강들과 교류를 통해 금품을 주고 받았는데 이를 운반했던 마차 무리가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상안 가문의 공주가 피살당하는데 이에 역분한 남해성 군주가 배후로 보이는 남부 하로 부성과의 전투를 벌인다. 이후 전승을 거둬 월본열도 전역을 지배하게 된다. 남해성은 각 지방의 소규모 부성들의 자치권은 인정해주면서 세금과 무역권을 거둬 부성에 종속시켰다. 결과적으로는 각 지방 세력들을 회유하고 경쟁에 부치며 중앙집권적 효과를 가져왔으나 그것이 과열되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각지 부성을 호위하던 지방군인 '사군'이 무역을 관제하고 가로채며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고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7개의 사군으로 분열되어 크고작은 싸움을 벌이다가 7사군 시대말기 청양성[* 지금의 청하부와 교모부 일대]의 사군주 사로군이 중앙부성의 연이은 견제에 반발하여 '청모적의 난'이 발생한다. 계속되는 분난발생과 지방세력의 횡령 부축적으로 중앙부성이 쇠퇴하자 남해성은 왕건개혁을 통해 전성기를 되찾으려 했으나 개방적이지 못한 정책에 동력을 잃어 정치력이 몰락했다. 이어 청양성은 스스로 황제에 의한 통치국가로 선언하며 막대적 부를 이용해 실리적 왕건을 강화하는데 성공했고 이 기세를 몰아 청양성은 도유지방으로 군사를 보내 중앙부성이 있는 고궁을 점거했다. 나락에 빠진 남해성은 결국 다이치 황제에 대정반환을 단행하였다. 이로써 메리치 개신을 단행하며 지방의 영주들은 영지와 영민을 황제에 반환하고 지방 부성들을 폐지함과 동시에 부와 주를 설치한다. 이어 제국헌법을 제정하고 국호를 전월본국으로 개칭하여 제국 국가를 표방했다. 개방을 내세워 서구열강의 신문물을 적극 수용하면서 근대화를 이룩했고 해적과 서구열강의 간섭에 맞서 군사력도 증대해왔다. 월화전쟁[* 전월본국이 근대식 군대로 전쟁을 치른 첫 전투이다.]으로 [[산암도]]를 얻어내고 [[도와왕국]][* 현재의 남양군도]를 병합시켰다. 청화국의 해안지역을 점령하여 대륙 진출의 병참기지화를 해내고 청화조약을 통해 청화국의 외교통치권을 가져 식민지화 했다. 제1차 세계전쟁을 식민지들을 통해 연합국에 물자지원을 하며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동시에 국제적 입지와 국력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 주요 사건 = <hr> {{월본 관련문서}} = 주석 =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기그림 (원본 보기) 틀:국기그림/구현 (원본 보기) 틀:나라자료 월본 (원본 보기) 틀:나라자료 월본국 (원본 보기) 틀:역대 월본 정부 (원본 보기) 틀:월본 관련문서 (원본 보기) 틀:월본사 (원본 보기) 틀:접기 클래스 (원본 보기) 틀:테 (원본 보기) 월본/역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