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군주제

LEGO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5월 5일 (일) 14:47 판

개요

짐이 곧 국가다
- 루이 14세[1]
영국의 왕과 같은 조건으로 왕을 하느니 차라리 숲에서 도끼질을 하는 것이 낫다.
- 샤를 10세

專制君主制 / Despotic Monarchy, Autocracy[2]

군주제의 한 형태. 군주의 권력에 제한을 두지 않는, 즉 군주국가의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여 단독으로 행사하는 정치제도며, 독재의 일종이기도 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현대의 독재는 근현대 국가의 군주가 아닌 지도자들의 통치에 한정된 편이다.

문화권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에는 가장 흔한 정치 체제였다. 그러나 헌법으로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 아예 군주를 인정하지 않는 공화제가 근대부터 등장하면서 오늘날에는 전제군주제 국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3]

특징

전제군주제 국가는 군주를 신성 불가침한 존재이며, 군주와 국가를 동일하게 여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으로는 국토까지 군주가 지배한다는 왕토사상 등이 있다.

현대의 국가정체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력의 분립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 사법, 행정의 결정권이 군주에 집중되어 있다. 전제군주제 하에서 대부분의 국가기관은 군주의 권력을 신민에게 전달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입법기관은 군주의 뜻에 따라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을 제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제안에 불과하며 입법권은 전적으로 군주에게 있으므로 군주는 이를 무시하고 전혀 다른 법을 제정하는 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입법기관의 입법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법률의 외피도 가지지 않고 칙령을 포고하여 하루아침에 국가와 국민에 어떠한 제한이라도 가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군주의 권력행사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에 입법기관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법기관 역시 기본적으로는 군주의 대리인으로서 무엇이 법에 맞는지를 선언하고 확인하는 역할을 하지만 전제군주는 사법기관의 결정에 구속되지 않고 언제든지 그 결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군주는 아무런 근거나 절차없이 처벌을 내릴 권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을 통솔하는 관리는 군주의 대리자로서 모든 권한을 가지고 통제한다. 이때의 재판에서 관리는 판사이자 검사이며 경찰이다.

이처럼 모든 결정권이 군주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군주가 정치를 잘 하면 가장 잘 될 수 있으며 의사결정이 빠르다. 따라서 국내외에 벌어지는 여러 일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전제군주제는 군주가 절대권력을 차지하는 관계로 정치적 견제가 매우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다. 군주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국가에 명백히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이를 타개할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제군주제 국가는 군주의 약간의 실책만으로도 휘청거리기 마련이며, 군주가 태만할 경우 국정이 한없이 정체되기 쉽다. 이는 오늘날의 독재 국가와도 비슷한 문제다.

이상과는 달리 실제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전제군주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이 보장되어 있다 한들, 군주도 결국은 한 명의 사람이라 모든 통치행위를 혼자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를 보좌하고 명령을 집행하는 관료, 고위직을 독점하는 귀족사대부, 지방의 토지를 소유한 소귀족과 호족 등에게 필연적으로 권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군주는 이들과 온갖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왕은 궁전 안에 고립된 존재인 반면 권력층은 혈연, 학연, 지연 등 각종 인맥으로 서로 맺어져 있으니 아무리 막강한 전제군주라도 명령 한마디에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게 하기는 어려웠다.

본질적으로 전제군주제 역시 종교가 아니라 정치철학과 합리적 의사결정에 입각한 정치 체제였던 만큼, 군주의 권한이 무소불위하고 무한한 국가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군주의 권한이 무한하다"라는 말에서부터 군주의 권한을 "무한"이라는 값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소불위한 권한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군주의 권한은 무한하다"라는 사상이 군주의 권한보다 위에 있고, 그 사상이 무력화되는 순간 군주의 권한이 무력화되는 것이기 때문.

공화주의와는 불구대천의 이념이다.


  1. 루이 14세가 한 발언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루이 14세가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어쨌든 19세기에 피에르에두아르 레몽테의 문헌 등에서 루이 14세가 한 말이라며 언급된 것은 사실.
  2. 직역하면 '자체(Auto, 自體)(-cracy, 政).' 왕권은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는 왕권신수설 혹은 인민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주권재민적 담론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왕권의 근거를 왕 개인 자체(Auto)에서 찾는 것을 말한다.
  3. 바티칸교황이 전제군주로 있는 유럽 유일의 전제군주정 국가로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