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블레이드 기사단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칼블레이드 기사단 (-騎士團, 독일어: Die Karl-Blade-Rittergruppe in Heiligem St. Jerusalem 디 카를블라데리터그루페 인 하일리겜 장크트예루살렘[*], 칼블레이드어: Karl-Blade-Riteorderen von Heilie Sankt Jerusalem 카를블라데리테오르데렌 폰 상크트이에루살렘 )은 독일 바이에른주오스트리아의 국경 지대를 영토로 하고 있는 산악 기사단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활동 허가를 받고 있는 수도원과 1,200여명의 자원봉사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수도원 자치주이다. 정확히는 바이에른주에 해당하는 수도원 구역은 바이에른주 정부에 세금을 내고, 오스트리아 영토에 해당하는 대성전과 기도실, 봉사자 사무실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세금을 낸다.

원래 시작부터 구호 활동을 전담해왔으며, 지금도 국가라기보다는 자치권을 보장받은 국제 봉사단체에 가깝다. 1621년 바이에른의 카를 블라디미르 블라디슬라프가, 오스트리아의 거룩한 성 대예루살렘 수도회와 함께 지금의 자리에 수도원을 건립했다. 수도원에서는 30년 전쟁에서 도피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위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의료 봉사를 수행했다. 이러한 구호 활동은 가톨릭 영주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 대가로 기사단에서는 의사들을 양성해 가톨릭 영주들에게 파견하였다. 파견된 이들은 전장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했다. 칼블레이드 기사단은 전세계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가난한 의사 지망생들을 독일의 본회로 초빙해 무료로 의사 교육을 시키고, 의대 진학 비용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드는 비용은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1]

한국에는 '칼블레이드'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 지부에서 카루부레도(カールブレード)라고 부르던 것을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서독의 의료부대에 군의관들을 파견했으며 1960년 한국에 지부를 설립했다. 칼블레이드어라는 특유의 언어가 있는데, 16세기부터 쓰인 독일어의 방언이다. 엄밀히는 바이에른 방언(고지 독일어)에 가까우며, 바이에른 방언, 빈 방언과는 언어 동조대에 놓여있다. 기사단에서 자라면서 칼블레이드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으며[2], 이들은 베를린 사람, 뮌헨 사람, 빈 사람과도 천천히 이야기하면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기사단은 외교권을 갖고 있으며,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수교하였다. 영토가 영세하고 두 나라에 걸쳐 있어 군대는 따로 운용하지 않고,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된 경비단 1개 대대가 있다. 기사단 실링이라는 자체 통화를 쓰지만 유로화도 사용이 가능하다.

알프스 산맥에서 뻗은 고원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철저한 기도와 봉사, 공부와 노동에 특화된 곳이다. 알프스를 방문하는 여행객을 위해 숙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숙박료를 걷는다. 가톨릭 사제나 수도자는 무료이고 신자임을 입증하는 가톨릭 신자도 할인을 받는다.[3] 역사적 설립 배경이나 이와 같은 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상주하는 모든 구성원이 로마 가톨릭 교회를 믿는다. 뮌헨 대주교와 잘츠부르크 주교가 정기적으로 사목 방문을 하고 있다.

수도원과 성모동굴은 뮌헨 대교구 지정 성지다. 1971년, 수도원 설립 350주년을 맞이하여 성지로 지정됐다. 기사단의 군의관들은 양차 대전에서 3,000명 이상의 전상자를 구호했다. 이들은 출발 전날 밤 성모동굴에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전구를 청했다. 구스타프 헤어초크 뮌헨 대주교는 "쿠르스크의 격전지에서 피아를 가리지 않고 1,500명이 넘는 귀한 생명을 구한 것은 하느님께 그들이 얼마나 쓰임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기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 기사단 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중 하나를 거쳐야 한다. 기사단 영지에도 비행장이 있지만 생필품 수송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개설된 활주로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는 뮌헨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 퓌젠 중앙역에서 고속버스로 갈아탄다. 뮌헨 기준 약 4시간이 걸린다. 퓌젠 중앙역에서 기사단을 잇는 고속버스는 유레일 패스의 사용이 가능한 특례 구간이기도 하다.

각주

  1. 교구로 들어오는 봉헌금은 물론이고, 기사단에서 교육을 받고 세계 각국에 정착한 의사들이 기사단 협력회에 가입해 수익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2. 여러가지 이유로 고아가 됐거나 버려진 아이들이 지역 본당을 거쳐 기사단 보육원에 정착했다.
  3. 영어나 독일어로 된 교적 사본을 가져오거나,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독일어 혹은 라틴어로 (수기로!) 적어오면 된다. 2008년부터는 인터넷에서 신자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내고 예약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접수처에 한국인 직원이 있기 때문에 한국 본당 교적 사본도 인정해준다. 본당에 가서 독일 수도원 순례 신청을 한다고 하면 사무실에서 뽑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