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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해양성 기후이며 지리적으론 북부해안은 저지대와 간척지로 이루어져있으며 남부는 황토평야와 고원으로 이루어져있다.주요 도시는 프뤼셀,리에주,룩셈부르크,암스테르담 등이 있으며 리에주를 제외하고는 각각 수도의 역할을 하고있다.
 
서안해양성 기후이며 지리적으론 북부해안은 저지대와 간척지로 이루어져있으며 남부는 황토평야와 고원으로 이루어져있다.주요 도시는 프뤼셀,리에주,룩셈부르크,암스테르담 등이 있으며 리에주를 제외하고는 각각 수도의 역할을 하고있다.
  
==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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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벨기에 왕국기 ===
 
=== 벨기에 왕국기 ===
 
2011년7월24일
 
2011년7월24일

2018년 8월 13일 (월) 22:00 판

프뤼셀 왕국
프뤼셀 왕국국기.jpg 100px
국기 왕실 문장
표어평화는 곧 진리이다.
프뤼셀 왕국은 평화를 최우선시한다.
국가브라반트의 노래
프뤼셀왕국영토.jpg

프뤼셀 왕국의 지도(속령제외)
수도프뤼셀,암스테르담,룩셈부르크 각각 베네룩스 삼국의 수도이다.
최대 도시룩셈부르크
정치
국왕알베르 1세
총리
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오셀롯
카그
공석
공석
 
인문
공용어네덜란드어
국민어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
지역어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
인구
2018년 어림35,292,649명
경제
통화유로 (EUR)

프뤼셀 왕국

프뤼셀 왕국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영어로 Kingdom of Prussel 네덜란드어로는 Pressen koninkrijk이라 불린다.신분제가 존제하며 국왕도 1달에 한번씩 의회에서 선출된다.서유럽에 위치하였으며 베네룩스 삼국의 영토를 모두 차지하였다.
서안해양성 기후이며 지리적으론 북부해안은 저지대와 간척지로 이루어져있으며 남부는 황토평야와 고원으로 이루어져있다.주요 도시는 프뤼셀,리에주,룩셈부르크,암스테르담 등이 있으며 리에주를 제외하고는 각각 수도의 역할을 하고있다.

/역사

벨기에 왕국기

2011년7월24일

벨기에 왕국기에 프랑스어,플라망어(네덜란드어),소수의 독일어권등언어 사용지역에 따라 3개의 연방정부를 나누고 그렇게 오랜세월벨기에 왕국을 유지하던도중,정치적 혼란이 벨기에 왕국을 한번뒤덮고벨기에의 5개당들이 내각을 겨우유지하고 있던중,네덜란드어권,프랑스어권,소수의 독일어권 연방정부들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벨기에 왕국내부에서연방정부의 분리독립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벨기에 각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허나 그 여론은 극단주의자들의 말도안되는 말이란 평가를 받으며 사그라졌다.

분열기

2014년1월8일

새해가 밝은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벨기에 왕국의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기업들의 어리석은 경영과 부패한 관료,그리고 무능한 내각이 그곳에한몫을 한것이다.그로인하여 기업들은 하나둘씩 파산을 하기 시작하고그로 인하여 실업자의 수가 급증하였다.내각은 새로운 정책을 내세워서 벨기에 왕국의 경제를 다시 일으키려 노력하였으나 이미 벨기에 왕국의경제는 무너질때로 무너져있었으며 벨기에 왕국의 민심마져도 내각에 등을 돌린후였다.벨기에 왕국의 국민들은 길거리에 나앉았으며 노숙자가급격히 증가하였으며 국민들의 전체적 소비량은 급격히 하락하였다.벨기에 왕국의 경제가 무너진이유는 학자들사이 흔히 이렇게들 추정하고있다.약한 중앙정부가 세력과 지지율기반층이 상대적으로 강한 연방정부에게서지속적으로 세금을 걷어가고 그세금을 사용은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정책도 내세우지않고 이로인하여 오래전부터 좋지않던 조짐이 보이던 벨기에 왕국의경제가 무너진것이라는 것이다.그리고 이로인하여 연방정부들이 중앙정부에큰불만을 품고있었다는것도 정설이다.
벨기에 왕국의 중앙내각이 여러 정책을 펼치며 연방정부간의 단합을 도모하고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이미그땐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였으며 연방정부의 불만도 최고조에 달해있었다.그러던중 벨기에 왕국의 내각은 경제를 되살리기위하여 졌던 빚을 제때 갚지못하여 벨기에 왕국을 빚더미로 만들어 버렸다.이로 인하여 벨기에왕국은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쳐하고,이를 꾸준히 지켜보던 작센공화국등 주변국들은 벨기에 왕국을 돕기위해 발을 벗고 나섰다.그들이 직접 돕겠다고 나선이유는 다른이유가 아닌 벨기에 왕국은행에있는 각국 정치인들의 자금과 부호들의 돈과 금괴를 보호하기 위함이였다.허나 이미 벨기에왕국은 무너져있는 상태였고 플라망연방정부에선 분리독립의 물결이 확산되었다.

2014년12월25일,크리스마스

플라망언어 연방공동체에서 분리독립운동이 확산되었다.벨기에 왕국은 플라망연방정부의 분리독립지원으로 인하여 분리독립운동의 무력진압은 시도도하지 못한채 지켜보고만있었다.그로인하여 나머지 프랑스어공동체와 독일어공동체 연방정부지역에서도 분리독립운동의 물결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벨기에 왕국에 혼란이 계속닥치던중 성난 각 연방정부(공동체)의 시민들은 벨기에 왕국에서의 분리독립 투표를 주장하며 브뤼셀에 위치한 벨기에왕궁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이에 벨기에 왕국은 독립을 승인한다.그후 플라망어 공동체 연방정부는 2015년7월12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국가이름을 프뤼셀왕국으로 지정하였다.프뤼셀이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것이였다.

베네룩스 전쟁

2015년8월18일

프뤼셀왕국이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국민투표로 체제는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자본주의 체제로 정하였고 국기는 브뤼셀시의 깃발로 정해졌으며 브뤼셀이란 도시의 이름을 프뤼셀로 바꾸었으며 프뤼셀왕국의 수도를 프뤼셀로 공식지정하였다.그렇게 프뤼셀왕국이 체제를 정비하며 정치적 안정을 찾으려할때쯤 큰일이 벌어졌다.벨기에왕국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졌다.프랑스어공동체,독일어공동체가 각각 왈롱,그로센라이크란 이름으로 분리독립을 한것이다.그리고 얼마지나지않아서 그로센라이크는 룩셈부르크에 흡수합병을 요청하였고 룩셈부르크는 요청을 받아들여 그로센라이크는 독립한지 얼마 지나지않아서 합병되었다.왈롱은 룩셈부르크를 그로센라이크 지역 차지란 명분으로 전쟁을 걸었고 왈롱은 무리없이 룩셈부르크 전지역을 손에 넣었다.왈롱의 전쟁으로 위협을 느낀 프뤼셀은 작센공화국(아즈센 제국)에동맹을 요청하였고 작센측은 이를 받아들이고 이에 왈롱은 북쪽의 네덜란드와 동맹을 하여 서유럽에는 싸늘한 기운만 감돌았다.그리고 그날 저녁,왈롱은 네덜란드와 프뤼셀 왕국을 기습공격하였고 이에 프뤼셀 왕국은 작센에 파병을 요청하여 본격적인전쟁이 시작되었다.

2017년8월17일

프뤼셀-작센 연합군은 왈롱-네덜란드군의 침략을 막아내는데성공하고 역으로 작센군은 네덜란드를 점령,프뤼셀군은 왈롱을점령하였으며 통일을 하는데 성공하며 베네룩스 삼국의 영토를모두 얻게된다.학자들은 작센측에서 영토요구를 하지않았단걸의아해하며 그 의도를 지금도 분석중이다.

현재

2017년8월17일

프뤼셀왕국은 베네룩스 삼국의 모든영토를 얻게되고 전후 고장나거나 낡은 무기들은전쟁이 끝났기도하고 유지비가 많이든다고 판단하여 공군과 해군의 장비를 모두 없애버리고 해산하고 프뤼셀왕국이 전후의 피해를 복구할때까지는 다시 조직하지 않기로 당시 프뤼셀지도층은 선언하였다.그리고 낡은 소총,기갑차도 폐기하며 프뤼셀왕국에서의 예산에서 국방비를 대폭감소시켰다.그리하여 프뤼셀은 경제개발과 전후피해복구에만 집중할수

있게되었다.이를 두고 말이 좀많다

2018년7월1일

프뤼셀의 지도층이였던 (전)플라망언어공동체 연방정부인사들이 모두 정계에서 내려와 프뤼셀의 내각,의회가 모두 비게되고 이에 정계에 남아있던 플라망언어공동체 인사들은 프뤼셀총선거를 실시하고 그로인하여 프뤼셀왕국의 내각총리는 리에주의원 출신 의원인 오셀롯 디 파비아가 당선되었다.그후 내각의 경제부장관은 벨기에 왕국에서 분리독립활동을 초창기부터 활발히한 카그가,국방부는 작센공화국에서 넘어온 메이지라는자가 맡게되었다.

2018년7월5일

프뤼셀왕국은 왕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하여 유럽의 모든 왕가들을 프뤼셀에 초청하여 정착하게하고 그중에서 프뤼셀의 국왕감을 찾게되고 그리하여 합스부르크왕조의 한남자가 국왕의 자리를 차게된다.그리고 국왕이 프뤼셀왕국에 들어서면서 영국과 같이 이름만있는 신분제를 실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그리하여 프뤼셀은 평민,남작,백작,공작,왕가로 신분이 나뉘게 되었으며 신분으로 인한차별은 없애기로 하였다.

2018년7월7일

프뤼셀왕국이 EU의 공식가입국으로 인정받아 가입하게되었다.이를 계기로 프뤼셀은 전세계로 수교를 신청하였으며 활발한 외교정책을 펼쳤다.

2018년7월13일

프뤼셀의 의원들은 아직 만들어지지않은 헌법을 제정하게되고 이날을 제헌절로 정하였다.각4개의 당이 합의하에 만든 헌법으로 내각 총리인 오셀롯도 헌법집필에 함께 참여한것으로 알려져있다.

2018년7월15일

앨런제국에서 프뤼셀에게 동맹제의가 들어왔다.프뤼셀왕국의 활발한 외교활동이 빛을 바라는 시점이엿다.이에 내각총리는 의회의 자문을 구한뒤 앨런제국과 동맹을 맺어 앨런제국과 프뤼셀왕국의 사이를 굳건히하였다.빈트제국에있는 대사관원들에게 소식이 전해져왔다.섹트라는 조직이 빈트제국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것이다,총리인 오셀롯은 이에대하여 알아보고 빈트에서 대사관원들 철수를 권고하자 그즉시 대사관원들을 철수시켰다.섹트가 프뤼셀왕국에게 영향을 미친 최초의 사건이다.

2018년7월21일9시30분경

빈트제국의 섭정인 리차드청 섭정이 프뤼셀에 입국하여 총리인 오셀롯과 빈트-프뤼셀간의 정상회담 날짜를 잡으며 프뤼셀-빈트간 교류를 확대하려하였다.

2018년7월21일10시

앨런제국과 예정되있던 프뤼셀-앨런 정상회담이 시작되었다.회담에선 유학생파견,무비자협정 등 양국의 활발한 교류를 위한 협정들이 체결되었다.이를 7.20선언이라 칭하였다.

2018년7월22일

프뤼셀 왕국의 총리인 오셀롯이 EU의회의 의장이 됨에따라서 프뤼셀 왕국이 EU의 의장국이 되었다.

2018년8월2일

소말리아,포르투갈,프로이센 공화국,몰타 연방 공화국,러시아,스웨덴 제국,화천인민연방,브리튼 왕국과 같이 다양한국가와 수교를 맺음으로써 프뤼셀 왕국의 대외적 입지를 강화시켰다.또한 포르투갈 공화국출신의 김태훈이란 자가 내무부를 맡게되었다.

2018년8월3일

가상국가연합 의장국 선출과정에서 프뤼셀왕국이 빈트제국을 의장국으로 지지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이를 8.3지지문 이라칭하며 프뤼셀 왕국과 빈트제국의 우호적 관계를 다시한번 강조하는 사건이 되었다.이에 특별히 반응한 나라는 없었다.또한 야마토와 수교를 맺었으며 가상국가연맹 회의가 이날 진행되었으며 이날 회의의 성과는 크게없었다.

2018년8월5일

국왕선출기간이 선포되며 온유럽의 수교국들에게 국왕을 선출하니 후보를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냈다.결과적으로 국왕은 초대국왕인 알베르1세가 국왕이 되었으며 이에 국왕은 보답하여 적극적으로 정사에 참여하였다.또한 프뤼셀 왕국의 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투투명드레곤 이라는 책이 희망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이는 순식간에 프뤼셀 왕국의 베스트셀러로 지정되었다.

2018년8월6일

프뤼셀 왕국이 옛베네룩스 삼국지역을 전부 차지하였다.이에 행정구역을 11개에서21개로 늘렸으며 수도는 프뤼셀을 행정수도,암스테르담을 입법수도,룩셈부르크를 사법수도로 지정하였다.또한 화천인민공화국에서오스트리아 제국과 단교를 권유하는 친서가 도착하였으며 이에 외교부장관인 투페는 격노하여 아예 두곳과 단교를 해버리자 하였으나 오셀롯 총리의 설득으로 중립을 지키며 오스트리아제국,화천인민공화국사이서 중립을 지키기로 하였다.프뤼셀 왕국내부에서 총기소지를 합법화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자 총리가 이에대한 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이 여론은 어느새인가 사라지게되었다.투페 외교부장관이 외교법을 발행하고 국회의사당에 제출되었다.이를 지켜본 이바노프 황제는 빈트제국 법무부 장관정책보좌관으로 투페를 스카웃하였다.프뤼셀의 국토부 장관이자 합스부르크 가문(프뤼셀계)의 가주인 루돌프5세가 시드1세를 암살시도하여 14일 동안불구가 될정도의 부상을 입혔으며 이에 루돌프는 처벌을 받고 아즈센과 프뤼셀간의 사이가 애매해졌다.

2018년8월7일

카이란 제국에서 특사가와서 수교를 신청하여 이를 와교부장관인 투페가 승인하여 양국이 수교를 맺게되었다.의회에서 개헌을 요구하여 헌법의 '내각'부분의 33조인"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수없다"라는 조항을 "내각은 의회를 해산시킬수있다"라고 바꾸었다.이는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개헌요구가 통과되었다.

2018년8월8일

프뤼셀 왕국이 본격적으로 방위사업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이에 주위국(빈트제국,아즈센제국,와사인민연방)에 무기 수입,대여등을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