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토리 시로

호토리 시로 (일본어: 辺志朗 (ほとりしろう), 1909년 1월 23일 ~ 1995년 8월 18일)는 아키시오 공화국의 정치인, 작가, 독립운동가, 군인이다. '호토리 시로'는 작가 시절에 사용하던 필명으로 본명은 카지와라 시게유키 (梶原滋行)이다. 호는 삼생 (일본어: 参生 (さんじょう))이다.[1]

그는 동시대에 일본에서 활약한 정치인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에 비견된다. 이는 그가 국민당 당수 겸 총리로서 재임한 기간보다, 총리 사직 이후 후임 총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기간이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정치'는 주로 그의 자택에서 이루어졌기에 헨케 정치 (辺家政治)라 부르며, 짓세이(実勢)와 더불어 국민당이 세운 52년 체제의 어두운 일면을 보여준다고 평가를 받는다.

생애

어린 시절

집필 활동

아키시오 독립 활동

정계 입문

총리

사직 이후

말년과 죽음

그는 잦은 흡연의 대가로 만년에 폐질환을 앓았으며, 1990년 이후에는 공적인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자택에서 가족들과 집사의 병수발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종전 기념일이자 가톨릭 교회의 성모승천대축일이기도 한 8월 15일에 그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아 후지시로의 주교좌 대성당에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였는데 이것이 그가 언론을 통해 노출한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8일 새벽 호흡 곤란을 호소하여 후지시로 성모의 병원에 이송되었으며, 아침 7시 경 눈을 감았다. 사인은 만성 폐렴으로 진단되었다. 19일 봉헌된 장례미사에서 당시 개혁당 내각의 총리 이하 인사들 뿐만 아니라 역대 총리, 대통령 등이 모두 참석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호토리 전 총리의 유해는 마에하마 현 히사시 시 (日指市)의 공화국 현충원에 봉안되었다.

가치관

정치사회관

인생관

종교관

저서

가족

선거 이력

평가

긍정적 평가

부정적 평가

대중문화에서

각주

  1. 그래서 그의 제자를 자처한 후배 정치인들은 "삼생 선생님" (参生公)이라고도 불렀다. 한국어 언론에서는 삼생(参生)을 한국식으로 그대로 '삼생'이라고 표기하였는데, 한국계, 일본계를 막론하고 아호는 한국식으로 쓰고 표기하는 것이 한국어 언론들의 관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