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과 칸토스의 통합 (공동세계관)

실험과 관측 결과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형성됨에 따라, 과학적 탐구 방법이 점차 논의되었고, 시행되었다. 하지만, 과학적 탐구 결과를 통해, 모델링을 하기가 어려웠고, 결국 수학에 의존하게 된다. 이로서 합리론 전통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이 합리론적 전통을 이어서 노바코메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저술함에 따라, 득세하게 된다.
다시 합리론과 경험론의 논쟁이 시작되었으나, 서로 나름의 필요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내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합리론 신학에서도 성사의 효력과 성경의 계시성을 인정했으며, 성전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서로 우위에 있으려는 갈등은 계속되었고, 이는 칸토스의 순수이성비판이 나오자 중단 되었다.
칸토스의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자, 신학계는 점차 하느님은 이성이든 경험이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칸토스 이후 헤겔로스가 칸토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역대 모든 (서양) 철학을 하나의 체계로 정립하려고 하였고, 헤겔로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법학을 정립하게 되며, 전통과 법학을 기반으로 대칙령, 민법을 만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