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국인민회의

남민국 국민대회 휘장.png
남민국 국민대회의 원내구성
南民國國民大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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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서해남민주당 로고.png
서해남민주당
48석
야당
남민국인민회의 로고.png
남민국인민회의
39석
노동당 로고.png
노동당
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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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남
4석
무소속  2석 
재적의원  10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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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국인민회의 로고.png
南民國人民會議
한국어 명칭남민국인민회의
영어 명칭Republic of South Formosa People's Congress
창당일1913년[1]
이념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재정보수주의
반공주의
스펙트럼중도우파
상징색 푸른색 (#1F4E79)
주소남민국 천경직할시
당수중호영
남민국 국민대회
39석 / 100석 (39.0%)
약칭SFPC, 南人會
국가남민국 남민국

개요

國家發展,我們的使命。 民主主義,全民的使命。
국가발전, 우리의 사명. 민주주의, 모두의 사명.
— 남민국인민회의의 슬로건

남민국인민회의(중국어: 南民國人民會議)는 1913년 창당한 남민국의 보수주의 정당이자 남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과거에는 서해남민족주체회의(중국어: 西海南民族主體會議)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했으나 1947년 남민국 정부 수립 이후, 당명을 현재의 명칭인 남민국인민회의라는 명칭으로 변경했다.

역사

남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답게 그 역사가 매우 길다.

제국신민회의

1896년, 남민국의 전신인 대남제국이 건국되었다. 당시 대남제국은 서구 근대화의 상징인 삼권분립을 도입하면서 입법기구인 제국의회가 설립, 첫 총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남제국 시민들은 정당은 고사하고 총선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렇기에 당시 후보들은 대부분 무소속이었으나 대남제국 지식층들은 이러한 무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 대남제국 최초의 정당인 제국신민회의(중국어: 帝國臣民會議)를 창당했다. 남민국인민회의의 초창기 당원들도 대부분 제국신민회의에서 활동했었으며 실질적인 남민국인민회의 전신이지만, 명목상으론 남민국인민회의의 전신이 아닌,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정당으로 취급된다.

서해남민족주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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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남민족주체회의 초기 구성원[2]

1908년, 남민국의 전신인 대남제국이 일본과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면서 대남제국 당시 존재했던 정당들도 전부 해산되었다. 그러나 과거 제국신민회의에서 정치를 했던 정치인이 주축이 되어 1913년 독립운동단체인 서해남민족주체회의(중국어: 西海南民族主體會議)를 설립, 동년 오사카에서 독립을 선포하며 서해남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초반 일본은 무력으로 서해남민족주체회의를 진압했으나 당시 서해남과 같은 입장이었던 식민지, 조선에서 대규모 독립운동이 발발하자, 서해남총독부는 서해남민족주체회의와 협상을 통해 서해남에서의 독립운동을 어떻게든 막아 서해남을 동화시켜보려 했고 실제로 양측 대표가 만나 협상을 진행했으나 결과는 실패. 그리고 이후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되면서 서해남은 독립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서해남총독부는 모든 행정권을 서해남민족주체회의에게 위임하게 되었으며 이후 1947년 남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서해남민족주체회의는 현재의 명칭인 남민국인민회의로 당명을 변경, 당시 서해남민족주체회의의 당수이자 서해남 임시대총통이었던 장인화가 남민국의 초대 총통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각주

  1. 당시엔 서해남민족주체회의(중국어: 西海南民族主體會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2. 왼쪽 맨 끝 기모노를 입고 있는 청년이 장인화이며, 오른쪽 맨 끝 흰 양복을 입고 흰 모자를 들고 있는 청년이 박영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