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연합왕국 (공동세계관)

네덜란드 연합왕국
네덜란드어: 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영어: United Kingdom of The Netherlands
네덜란드의 국기.png 네덜란드의 국장.png
국기 국장
표어나는 유지할 것이다. (네덜란드어: Je Maintiendrai.)
국가헛 빌헬뮈스
네덜란드 연합왕국 지도.png
수도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연합왕국 국왕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각총리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각부총리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참사원장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평의회장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대법원장
빌럼알렉산더르
마르크 뤼터
요한 베터
얀 브라인
하디자 아리비
마이클 스케잉트
역사
독립전쟁 발발1567년
 •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 결성1576년
 • 마드리드 조약 체결1591년
 • 벨기에 왕국 수립1622년
 • 네덜란드 왕국 수립1623년
 • 룩셈부르크 대공국 수립1624년
 • 리에주 대공국 수립1625년
 • 제1차 연합법 공포1631년
 • 제2차 연합법 공포1640년
 • 제3차 연합법 공포1642년
지리
면적74,640 km2
내수면 비율미정
시간대CET (UTC+1)
인문
공용어네덜란드어(사실상)
인구
2019년 조사50,493,283명[1]
인구 밀도675.9명/km2
경제
 • 전체$2조 1120억
 • 일인당$4만 1,860
 • 전체$1조 5145억
HDI0.895
통화네덜란드 연합왕국 휠던 (ƒ)
기타
ISO 3166-1UKN, KN, H0L
도메인.nl
국제 전화+31

  1. 네덜란드 지역: 28,595,947명(56.7%), 벨기에 지역: 21,307,336명(42.1%), 룩셈부르크 지역: 590,000명(1.2%)

개요

네덜란드 연합왕국(네덜란드어: 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영어: United Kingdom of The Netherlands)은 서유럽에 위치한 나라이다.

상세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나라로 현직 군주는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이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행정부는 네덜란드 연합왕국 국왕 폐하의 정부로 수장은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각총리, 부수장은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각부총리다. 허나 이들은 국왕 폐하의 정부에서 중앙행정을 구성하는 국왕 폐하의 내각 소속이고 지방행정을 구성하는 이들은 국왕 폐하의 주 정부라 불리며, 공식적은 수장과 부수장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노르트홀란트 주의 국왕행정관이 사실상의 수장직을 맡는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난연방 왕국연방구성국 중 1개로 난연방 왕국의 수장국이다.[1] 또한 난연방 왕국에서 가장 큰 국력을 가진 구성국이다. 난연방 왕국의 각 연방구성국은 사실상의 독립된 국가나 다름 없지만 난연방 왕국에 대한 소속감은 각 구성국 국민들마다 확실하게 존재한다. 난연방 왕국 연방구성국의 모든 국민을 일컬어 한문으로 난연인(蘭聯人)이라 부른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명목GDP는 $1조 5145억, 구매력평가기준GDP는 $2조 1120억로 난연방 왕국 공동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답게 경제력이 튼실하다. 산업 면에서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금융업과 보통 제조업, 무역업, 농업이 가장 잘 발달된 나라이다. 이외에 첨단산업과 조선업, 건설업 등이 두드러진 성장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주요 민족은 네덜란드인으로 그담으로는 발로니에인, 독일인이 있으며, 이외 네덜란드 연합왕국으로 이주한 외국인들이나 식민지에서 이주한 사람 등이 있다. 주요 민족이 네덜란드인이기 때문에 주류 언어도 이들이 쓰는 네덜란드어다. 한편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여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슷하게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존재하며, 최근에 일어난 'KLM 한국인 인종차별 사건'이 그 예시다. 하지만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부에서도 이러한 행동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있으며, 원래 네덜란드 연합왕국 헌법 제1조의 내용에 그 어떠한 종류의 차별은 전면 금한다라는 법제가 있고 실제로 동양인에게 인종차별을 가한 이들 중 상당수는 정상적인 이웃주민이나 행인들에게 인종차별로 신고당하는 경우가 많다.

상징

국호

네덜란드 연합왕국(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이 공식 국호지만 길어서 그냥 네덜란드(Nederland)를 쓰거나 그냥 연합왕국(Verenigd Koninkrijk)을 쓴다. 근데 연합왕국이란 표현이 좀 거시기해서..[2]

먼저 국호가 왜 '네덜란드 연합왕국'으로 제정됐는지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당시 제3차 연합법 공포 이후 조금씩 통합절차를 받던 저지대 동군연합에 의해 묶여 있던 벨기에 왕국, 네덜란드 왕국, 룩셈부르크 대공국이 연합하여 단일국가를 수립했는데 이때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이 그랬던거처럼 네덜란드를 주(主) 베이스로 내세우고 3국이 연합했다는 뜻의 연합왕국을 합친 '네덜란드 연합왕국'이 국호로 제정됐다. 사실 '더치 왕국'이라는 국호나 '베네룩스 연합왕국'이라는 후보들도 존재했다. 여기서 베네룩스의 뜻은 베네룩스(BeNeLux)의 뜻은 간단한데 벨기에(Belgie)의 Be, 네덜란드(Nederlande)'의 Ne, 룩셈부르크(Luxembourg)의 Lux를 합친 것이다.

그럼 네덜란드 연합왕국이라는 국호의 주 베이스인 '네덜란드(Nederland)'는 무슨 뜻인지 살펴보는게 좋다. 네덜란드에서 '네덜(Neder)'은 낮은이라는 뜻이고 '란드(Land)'는 땅이라는 뜻인데 즉 네덜란드의 뜻은 '낮은 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벨기에네덜란드 지역은 상당히 지형이 낮다. 게다가 네덜란드 지역은 영토의 상당부를 간척을 통해 얻은 땅이라서 수심보다 낮은 땅도 존재한다.

국기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기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의 국기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기는 빨강, 하양, 파랑으로 구성되있는 삼색기(三色旗)로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기는 오라녜-나사우 왕가의 문장 색깔이기도 하다. 이러한 적, 백, 청의 삼색기가 첫 사용된 것은 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 오라녜공 빌럼이 사용하였는데 이때는 오라녜 가문의 상징인 오렌지색[3][4], 하얀색, 파랑색으로 조합된 삼색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오렌지색이 점차 빨강색으로 변색이 되버리는 현상이 일어나자 나중에 그냥 공식적으로 오렌지색을 빨강색으로 바꿨다. 하지만 현재까지 오렌지색은 네덜란드 연합왕국과 오라녜-나사우 왕가를 상징하는 색깔이 됐다.

국장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장

본 국장은 비단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장 역할 뿐만 아니라 오라녜-나사우 왕가의 문장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장의 모습은 왕관이 올려진 망토의 가운데에는 파란색 방패와 두 마리의 사자[5]가 있으며, 파란색 방패 안에는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7개의 화살[6]을 들고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는 사자 한 마리와 배경에는 복수의 노랑색 직사각형들이 장식되어 있다. 파란색 방패 위에는 커다란 왕관이 1개 있고 방패 아래에 사자들이 잡고 있는 리본에는 중세 프랑스어로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표어인 '나는 유지할 것이다(Je Maintiendrai)'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국장은 1887년에 왕실의 공식적인 문장으로 채택되었고 이후 1907년, '국장에 관한 칙령'에 따라 공포된 '국장에 관한 규정'으로 제정됐다.

국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화

튤립이 국화로 제정되기 이전, 네덜란드 연합왕국에 첫 들어온 시기는 1500년인데 원래 튤립은 유럽에 토착 생물은 아니였고 이스탄불에 있던 오스트리아 외교관이 튤립을 공수해와 본국인 오스트리아에다가 풀었는데 이후 그 종자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네덜란드 연합왕국에도 튤립이 들어왔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에다가 튤립을 공수한 사람은 레이던 대학교라는 대학에 교수, 샤를 드 레클루제라는 플란데런 출신 생물학자로 1593년에 레이던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을때 가져왔다. 그는 교수직 은퇴 이후 당시 금융업과 상공업이 번성하던 '앤트워프'에다가 튤립 종자를 전문적으로 파는 회사를 설립했고 이에 따라 네덜란드 연합왕국 전역으로 튤립이 퍼진다. 그리고 그 유명한 튤립 투기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쨋든 앤트워프에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튤립은 어느새 네덜란드 전역에서 이름바 '무지개 튤립 농장'[7]이라 불릴 정도로 여러 화업(花業) 사업의 주요 자원이 되버렸다. 이후 네덜란드 연합왕국 정부는 빌헬미나 여왕의 재가를 받아 튤립을 국화로 규정한다.

국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가(國歌)는 헛 빌헬뮈스라는 노래로 예전에는 '네덜란드인이 흘린 피'라는 곡을 사용했다. 헛 빌헬뮈스의 또다른 명칭은 '오라녜-나사우 가문 빌럼 공의 노래'인데 작사자 및 작곡자를 알 수 없고[8]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다. 1898년, 빌헬미나 여왕에 의해 오라녜-나사우 왕가의 공식 왕가(王歌)로 제정됐다가 1932년에 공식적으로 '국가에 관한 칙령'에 인하여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가로 제정됐다. 곡은 총 15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은 1절과 6절만 부른다.

역사

고대~중세 초기

현 네덜란드 연합왕국이 위치한 저지대, 이름바 베네룩스 지방은 바타비아족이라 불리우는 원주민들의 터전이었다. 이후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베네룩스로 유입되다가 기원전 50년경에 로마의 카이사르 장군에 의하여 남부 베네룩스 지역이 로마 제국으로 합병됐다. 시간이 지나 로마 제국이 분열되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화되고 그중 서로마는 계속되는 이민족들의 침략을 못이겨 결국 멸망해버리고 이때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서로마의 멸망을 노려 왕국을 건설하였는데 이 왕국이 바로 프랑크 왕국이다. 프랑크 왕국은 서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말기에는 게르만족들의 통치를 받고 있던 남베네룩스 지방과 더불어 북부까지 왕국의 영토로 편입시킨다. 프랑크 왕국이 카롤루스 대제를 마지막으로 찬란한 전성기를 끝내고 베르됭 조약 체결을 기점으로 서프랑크(이하 프랑스), 동프랑크(이하 독일->신성로마제국), 중프랑크 왕국으로 분열되버리고 프랑크 치하에 있던 베네룩스는 중프랑크 왕국에게 떨어진다. 하지만 중프랑크 왕국도 국왕인 로타리우스 1세에 의하여 체결된 프뤼므 조약에 따라 로타링기아(로트링겐), 부르군트(부르고뉴), 이탈리아로 나뉘어져 버리는데 베네룩스는 로타링기아로 귀속됐다. 허나 로타링기아의 국왕, 로타르 2세가 사생아만 남긴 채 사망한 직후 그의 삼촌들인 루트비히 2세와 샤를 2세가 로타르 2세의 사생아에게는 로타링기아의 왕위 계승권을 가질 수 없다 판결내리고 후계가 끊긴 로타링기아를 양분하는 메르센 조약을 체결하고 베네룩스도 서부는 프랑스가 가져가고 둥부는 독일이 가져간다.

880년, 안더나흐 전투 이후 프랑스가 서로타링기아를 독일에게 토해내면서 독일은 완전히 로타링기아를 장악한다. 시간이 지나 독일왕 루트비히 4세가 로트링겐 공작을 임명해버리면서 로타링기아는 왕국에서 공국으로 격하되고 오토 1세의 치세에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오히려 진압당해 베네룩스 지방은 하(下)로트링겐 공국, 나머지 로렌 지방은 상(上)로트링겐 공국으로 분할된다. 직후 하로트링겐 공국은 휘하의 림뷔르흐, 브뤼셀, 룩셈부르크, 플란데런, 홀란트, 프리슬란트 등의 영주령이 생겨나면서 점차 분열되다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때 완전히 해☆체됐다. 이후 베네룩스는 여러 영주령들이 난립하게 됐다.

중세 중기~중세 말기

베네룩스 지역의 영주령들에 난립은 부르고뉴 공국에 의해 정리되고 한동안 베네룩스는 부르고뉴 공국의 치하에 놓인다. 이후 부르고뉴 공국은 합스부르크 제국에 편입되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합스부르크가의 가주인 카를 5세의 영지가 됐다. 이때부터 베네룩스는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라 명명되어 총독이 파견되었다. 카를 5세는 네덜란드의 헨트 출신이었던지라 그의 치세 초반에는 네덜란드인들이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카를 5세는 막대한 전쟁을 치루면서 막대한 군비가 필요했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에다가 높은 세금을 매김으로서 군비를 충당하려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러한 과세 정책은 네덜란드인들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고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를 알게된 카를 5세는 숙적인 프랑스의 영토를 빌리면서 자신의 고향에서 일어나는 봉기를 진압했다. 그래도 카를 5세는 자신의 고향이었다는 생각은 있어서 엄청나게 네덜란드를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문제는 다음 베네룩스의 지배자가 된 펠리페 2세였는데 그는 베네룩스 출신도 아닐 뿐더러 유럽 영지들에 대한 중앙집권화를 시도하던 사람으로 게다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지라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믿던 북부 네덜란드와는 완전히 엇박자 성향이었다. 펠리페 2세는 집권 초기부터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사람은 아니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펠리페 2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함께 중앙집권화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우선 네덜란드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는 한편 자신의 이복누나인 마르가레타를 섭정으로 파견하여 네덜란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전비와 식민지 총독에 대한 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카를 5세 보다 더 강력한 과세를 실시했고 지금까지 중앙집권화 정책, 가톨릭 우선주의에 불만이 쌓여가던 네덜란드인들의 폭발에 도화선이 되버린다. 이후 파국을 막기 위해 오라녜공 빌럼을 위시한 네덜란드의 귀족들이 펠리페 2세에게 이름바 '자유청원'을 주청했으나 펠리페 2세는 그 대가로 오라녜공 빌럼을 프랑슈콩테 총독에서 해임시켜버린다.

네덜란드 독립전쟁

분노가 극에 달한 네덜란드 각지에서는 민간봉기가 발생했고 이들은 가톨릭을 반대하며, 북부 개혁교회 신자들을 중심으로 성상파괴운동을 전개했고 이에 분노한 펠리페 2세는 알바 공을 네덜란드로 파견하여 무소불위의 철권을 쥐어줬다. 알바 공은 피의 법정이라는 종교재판소를 개원하여 개신교 신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사실상 실권이 사라진 마르가레타는 총독직에서 사임했다. 얼마안가 스페인 중앙정부는 에그몬트 백작과 흄 백작를 사형시켰으나 이들은 로마 가톨릭을 믿던 신자로 끝까지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고 스페인은 사형의 명분을 '개신교에 관용적인 정책을 폈던 것'이라 주장했다.[9] 사건이 있은 후 오라녜공 빌럼은 사재를 털어 '네덜란드 독립군'을 결성하고 브뤼셀에 있던 알바 공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명분으로 자신의 영지 복원과 알바 공의 총독직 하야를 요구했고 헤일리헤를레에서 알바 공의 군대를 격파했다. 하지만 군을 유지할 군비가 부족했던 빌럼은 얼마안가 군을 해산시켰고 1572년, 마찬가지로 군을 유지할 재원이 바닥난 알바 공이 새로운 세제[10]를 공포하면서 민심을 잃자 빌럼은 다시 군을 일으켜 제일란트와 홀란트를 수복한다. 그가 다시 군을 일으키자 프리슬란트의 총독 빌럼 루이스와 림뷔르흐의 섭정 올덴바르네벨트가 빌럼에게 지지를 보내며 알바 공의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1575년이 되어 스페인은 지속된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났고 이에 따라 군비 또한 모자르기 시작했다. 베네룩스에 있던 스페인군과 스페인이 고용한 용병들은 급료를 얻기 위해 이름바 '엔트워프의 대약탈'을 결행하기에 이르었고 그나마 스페인을 지지했던 발로니에와 플렌데런을 비롯한 여러 주들이 네덜란드 독립군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1576년이 되어 스페인령 네덜란드는 독립을 선포,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을 결성하여 지도자로 오라녜공 빌럼을 선출한다.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이 결성될 무렵, 스페인군과 용병들은 네덜란드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리에주 주교령으로 이동하여 현지에서 대규모 약탈을 저지른다. 리에주 전역이 불바다가 되버리고 주교는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으로 이동하여 빌럼 루이스에게 신변을 의탁해버린다. 이때 빌럼은 월경지였던 룩셈부르크로의 진공을 위해 리에주를 먼저 획득하기로 하고 리에주 주교 베네딕트를 지속적으로 설득하여 가톨릭 교회의 특권을 유지시키는 조건으로 리에주를 연합에 가입시킨다. 물론 북부 개혁교회가 이에 반발했지만 오라녜공 빌럼은 재상인 올덴바르네벨트를 북부 지방으로 파견하여 개혁교회의 반발을 수습하게 했다. 리에주 주교령이 네덜란드 연합으로 넘어가고 스페인군과 용병들은 리에주에서 일련의 전투 끝에 필립스 공자가 이끄는 네덜란드 연합군에게 패배해버리고 룩셈부르크로 후퇴한다. 펠리페 2세는 미델뷔르흐에 군을 상륙시켜 홀란트와 제일란트를 수복하려 했으나 때마침 칼레 해전으로 스페인 해군이 박살나자 포기한다. 1591년을 끝으로 룩셈부르크가 네덜란드 연합에 투항해버리면서 스페인은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의 독립을 인정하는 파리 조약을 인가하여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을 마무리 짓는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는 독립을 맞이한다. 이때 중재를 해준 것이 프랑스였기로 프랑스는 중재의 대가로 독립 후 네덜란드로부터 아르투아 영주령을 획득한다. 프랑스: 앙 개꿀띠

근세

건국 초기

네덜란드 연합은 해상산업의 성장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상공업의 발전과 금융업의 허브로서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비록 스페인의 경제적 보복조치[11]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연합은 동인도회사을 통해 해외 진출과 식민지 확보를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허나 1616년, 빌럼 공은 아들인 필립스 공자의 죽음을 기점으로 몸져눕게 된다. 직후 빌럼 1세는 마우리츠 공자를 섭정으로 임명하고 그로 하여 자신이 병상에 있는 동안 네덜란드를 다스리게 했다. 허나 1618년에 빌럼 1세가 심장발작으로 사망해버리면서 섭정 마우리츠가 빌럼 공의 오라녜 공작위를 승계받게 되었고 이후 네덜란드 자유의회로부터 네덜란드 연합의 대표자로 임명받음에 따라 빌럼 공의 우려와는 다르게 마우리츠는 빌럼 공의 직위와 작위를 모두 인계받는데 성공한다. 마우리츠는 자유의회의 불신임을 불복하고 동지인 올덴바르네벨트를 재상직에 연임시키며 네덜란드 연합의 지도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한편 빌럼 루이스를 네덜란드 자유연합군의 대원수에 임명하면서 군의 통제력까지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연방공화국으로의 변혁을 원했던 연방파와 단일공화정으로의 변혁을 원하던 공화파의 신임을 잃게 되었고 서로 티격태격 분쟁을 일으키던 연방파와 공화파는 합심하여 마우리츠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에 마우리츠는 결국 한 발 물러나 대표자의 직위를 포기한다. 직후 마우리츠는 벨기에 지방으로 이동하여 리에주 주교와 결탁, 남부 벨기에의 가톨릭 세력을 편입시키면서 훗날을 위한 밑물작업을 실행시켜나간다. 마우리츠가 계략을 꾸미는 동안 중앙에서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연방파와 공화파가 다시 격렬한 대립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둘다 세력이 약해져버린다.

벨기에 정변

시간이 지나 1622년에 마우리츠는 스스로를 '벨기에 땅의 왕'이라 선포하며, 리에주를 제외한 남부 6개 자유국을 통합한 벨기에 왕국을 선포한다. 리에주 주교로부터 '벨기에인의 왕관'을 인계받은 마우리츠는 군을 일으켜 림뷔르흐와 제일란트를 점령하고 분열이 끝임없이 일어나던 암스테르담으로 진격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마우리츠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로 분쟁이 일어났고 설상가상 마우리츠를 막으라고 파병했던 군사 1만명도 빌럼 루이스의 설득으로 마우리츠에게 투항해버리자 내부에서 때를 노리고 있던 올덴바르네벨트가 의회 내에서 항복을 종용하면서도 연방파와 공화파의 내분을 더 격렬하게 부추긴다. 마우리츠의 거병 이후 1년이 지난 1623년에 마우리츠는 암스테르담에 무혈 입성을 해버린다. 의회의 의원들은 오라녜 만세를 외치며, 그에게 투항했고 이로서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은 종말을 맞이한다.

중앙집권화

마우리츠는 자신에게 많은 원조를 해줬던 리에주 자유국을 후국으로 승격시키고 그 수장인 후작위의 임명권을 리에주 주교에게 줌으로서 자신의 기반세력을 가톨릭을 중심으로 다진다. 허나 재상인 올덴바르네벨트의 조언을 수용하여 1623년에 여러 공국들로 나눴던 북부 네덜란드 10개주을 네덜란드 왕국으로 통합시키고 네덜란드 왕위를 겸함으로서 저지대 동군연합이 출범한다. 1년이 지난 1624년에 벨기에 왕국과 네덜란드 왕국의 국력을 맞출 목적으로 벨기에에서 룩셈부르크 지역을 룩셈부르크 대공국으로 따로 독립시키고 대신 1631년에 대공국으로 승격됐던 리에주를 벨기에 왕국으로 합병시키는 제1차 연합법을 공포한다. 그러나 제1차 연합법을 공포하던 시기는 마우리츠가 아닌 그의 동생, 프레데리크 헨드리크의 치세 시기였다. 제1차 연합법 공포 후 저지대 동군연합은 지방마다 나뉘어져 있던 군을 군제 재정비를 통해 '저지대군'으로 통합시킨다. 한편 해군에 대한 군비 증강이 재개되면서 저지대는 강력한 해군력을 소유하게 된다. 이렇게 군사력을 재정비한 저지대 동군연합은 옆에서 일어나던 30년 전쟁의 개입 여부를 놓고 격렬히 논쟁을 시작한다. 북부 개혁 교회는 신교측으로 참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남부 지방의 가톨릭 세력은 구교측으로의 참전을 주장하였고 논쟁은 끝도 없이 과열이 되다가 프레데리크 헨드리크의 중재로 끝난다. 1640년, 제2차 연합법이 공포되면서 오늘날의 자위트룩셈부르크 주가 벨기에 왕국으로 편입되고 제이우스플란데런 지방이 완전히 네덜란드로 귀속되버린다. 이때까지 네덜란드는 계속 군비를 증강하면서 세제를 재정비하고 상공업에 대한 성장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면서 국내 산업이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상황에서 전쟁 통에 급료를 못받은 신성로마제국군과 그 용병들이 국경을 넘어 벨기에와 네덜란드 변방지대를 약탈하는 일이 생기면서 오히려 벨기에 지역을 중심으로 신교측에 참전을 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난다. 그리고 참전을 요구하는 불길은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로 번지기 시작했고 프레데리크 헨드리크는 마르가레타 재상의 조언을 받아들여 잉글랜드와 동맹을 체결하고 신성로마제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직후 네덜란드 해군은 '메이우 해'에서 스페인의 중규모 함대를 격파하며 첫 승전보를 울렸고 육군은 림뷔르흐 부근의 루르몬트에서 들어오는 신성로마제국군을 격파한다. 전쟁이 시작되고 프레데리크 헨드리크는 벨기에 왕국을 우선적으로 신성로마제국에서 독립시켰고 뒤이어 네덜란드 왕국과 룩셈부르크 대공국으로 하여금 신성로마제국에서의 독립을 선포시키면서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된다. 1642년, 프레데리크 헨드리크는 전쟁 중임을 노려 제3차 연합법을 공포시킴으로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간에 개별적으로 적용됐던 관세지역을 통합하고 서로 달랐던 관료조직 또한 통합시켜 단일국가로의 통합에 대한 밑물 작업을 끝내게 된다. 밑물 작업을 끝낸지 3년 만에 프레데리크 헨드리크는 저지대 동군연합을 '네덜란드 연합왕국'으로 통일시킨다. 이로서 역사에 네덜란드 연합왕국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근데 막상 프레데리크 헨드리크는 30년 전쟁이 종전되기 1년 전에 사망해버리고 종전 협상은 그의 뒤를 이어 빌럼 2세의 시기에 베스트팔레 조약이 체결되고 신성로마제국은 네덜란드 연합왕국에게 루르몬트를 비롯한 일부 국경지대를 할양한다.

근세 후기

자신감이 붙은 빌럼 2세는 네덜란드의 더 많은 팽창을 추진하였지만 1650년에 천연두로 병사한다. 그의 외동아들인 빌럼 3세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왕직과 네덜란드의 국왕위, 벨기에의 국왕위, 룩셈부르크의 대공위를 세습한다. 빌럼 3세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해군을 동인도회사의 후원 하에 발전시켰고 수심이 비교적으로 높은 곳에 주력 조선산업을 유치시켜 대형함선의 조선을 주문했다. 식민지 개척에도 열을 올려 니우암스테르담 식민지를 확장시키고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양과의 무역량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1660년대 남명의 멸망 후 동양과의 무역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어버렸고 이는 동인도회사의 적자로 돌아왔다. 한편 이웃나라인 프랑스에서 1685년, 퐁텐블로 칙령를 발령되자 빌럼 3세는 스스로를 '프랑스 위그노들의 보호자'로 선언하며, 위그노들을 발로니에 지방에 적극 이주시켰고 이에 분노한 루이 14세가 발로니에를 침공하는 '발로니에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강력한 포병대와 군사조직들로 발로니에로 들어오던 프랑스군을 격파했고 결국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현상유지를 조건으로 칼레 조약을 체결한다. 어쨋든 위그노 신자들의 10만명 가량을 이주시키는데 성공한 빌럼 3세의 치세 말기에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수공업과 귀금속 제조업 등의 여러 산업들이 다시금 번성하기 시작하고 식민지와의 무역도 다시 가파르게 상승함에 따라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리고 이러한 호황은 나폴레옹이 네덜란드를 침공하면서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은 발로니에를 기점으로 파죽지세로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를 함락시켰으며, 네덜란드 내부에 있던 잔존 공화파 세력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허수아비 정권인 바타비아 공화국을 선포,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실은 런던으로 넘어가 네덜란드 내부에 왕당파 레지스탕스를 지령한다. 그러나 프랑스가 제정을 선포하고 얼마 안가 바타비아 공화국은 프랑스의 영토로 합병되버린다. 프랑스 제국이 라이프치히 전투를 비롯한 일련의 전쟁으로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망명을 가있던 국왕, 빌럼 6세는 왕실자금을 털어 암스테르담과 덴하흐에 기어코 대규모 레지스탕스를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암스테르담과 덴하흐가 레지스탕스에게 함락당하자 홀란트 지방과 프리슬란트, 헬데를란트, 제일란트가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게 되었고 빌럼 6세는 덴하흐항으로 입항하여 본토 수복을 선포한다. 직후 프랑스 제국이 몰락하고 체결된 빈 조약에 따라 프랑스로부터 프랑스령 기아나를 할양받게 된다.

근대

프랑스 제2제국의 워털루 전투도 막아낸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따라 근대화를 시작하되 남부 벨기에 농업을 보호하고자 남부 벨기에 농업에 관해서는 보호무역을 실시하면서 자유무역 경제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빌럼 6세는 벨기에 농업이 성장할 때까지 보호무역 정책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고 벨기에의 작물 산업에 성장을 적극 지원했다. 한편으로는 북부 네덜란드에 선박용 운하를 개통시키고 근대 제조업을 유치시켰다. 또한 금융업의 발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브뤼셀과 룩셈부르크에 금융업에 관해 우대적인 제도들을 실시한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 발달로 인플레이션이 점차 커져가는 한편 산업화를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면서 정부예산이 시시때때로 고갈되버리는 일이 흔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에 빌럼 6세는 정부세입을 늘리는 차원으로 상공업에 대한 투자를 재개하되 산업화를 위한 예산의 2할을 삭감한다. 그리고 근대적인 세제를 도입하여 지금까지 존재했던 잡세들을 폐지하여 세제를 간편화하는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1840년에 빌럼 6세가 뇌진탕으로 사망하고 왕위를 승계한 빌럼 7세는 입헌군주정을 도입하며 오늘날의 의원내각제 국가의 토대를 닦는다. 이때 토르베케 재상이 혼자서만든 헌법 초안을 인가하고 헌법을 공포하기도 했다. 빌럼 7세의 뒤를 이은 빌럼 8세는 니우오라네 식민지를 확장시켜 오늘날 니우오라녜 자치령의 영토까지 확보한다. 빌럼 8세가 죽고 뒤를 이어 즉위한 빌헬미나 여왕의 치세에 니우제일란트가 완전히 식민화되는 한편 입헌군주정 의원내각제 국가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현대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통에 네덜란드는 제1차세계대전과는 달리 나치독일에게 침공을 당해버렸고 본토를 상실한 채 식민지인 니우오라녜로 본진을 옮겼다가 1945년에 다시 본토를 수복하고 귀환한다. 허나 전후 니우제일란트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전쟁에서의 기여도를 명분으로 방대한 자치권을 요구하는 니우오라녜로 인해 하는 수 없이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홀란트 헌장'을 식민지에 제시했다. 하지만 니우제일란트에서는 이마저도 반대하며,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독립군들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기에 네덜란드는 바타비아를 비롯한 수마트라의 병력을 충원하며, 혹시 모를 유혈사태에 대비했고 바타비아 전투를 기점으로 독립군이 고무되자 그 틈을 노려 평화협상을 제시한다. 독립군의 실질적인 리더였던 수카르노가 이를 승락하면서 바타비아 협약이 체결된다. 바타비아 협약에 따라 니우제일란트는 비단 식민지가 아닌 본토인 네덜란드 연합왕국과 동등한 왕국으로 승격되고 더이상 '네덜란드 식민제국'을 유지시키기 힘들다 판단한 본토 정부는 각 식민지가 본토와 동등한 조건을 가진 '연방국가' 수립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름바 '연합론'을 제창하며, 네덜란드 식민제국난연방 왕국으로 변혁시키며, 난연방 왕국 체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난연방 왕국이라는 틀 속에서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극우파와 왕당파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글로벌 시대라는 과제를 짊어진 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인문환경

인구

2019년 기준 조사된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인구는 총 50,493,283명, 인구밀도는 '675.9명/km2'이다. 지역별로 나누자면 네덜란드 왕국은 28,595,947명의 인구와 '688.3명/km2'의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으며, 벨기에 왕국은 21,307,336명의 인구와 '697.9명/km2'의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고, 마지막으로 룩셈부르크 대공국은 590,000명의 인구와 '228.1명/km2'의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본토에 인구가 밀어터지다 보니 일부 국민은 해외속령인 니우오라녜 자치령이나 니우제일란트 왕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과거 베네룩스 지방에는 조금씩 원시인들이 이주를 하다가 로마제국 시절에는 로마제국의 행정관, '말로피우스'에 의해 처음으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12] 로마제국이 베네룩스 남부를 합병하면서 로마제국은 베네룩스 남부에 대한 본격적인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지만 베네룩스 북부 같은 경우에는 말로피우스 이후 제대로된 인구조사가 없었다.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고 그중 베네룩스 남부는 서로마에 귀속되었다가 서로마가 망하자 이후 수립된 프랑크 왕국으로 복속됐다. 프랑크 왕국은 비단 남베네룩스 뿐만 아니라 북부 지방까지 정벌하면서 베네룩스 전역을 프랑크 왕국에 영토로 편입시킨다. 이후 베네룩스는 중프랑크 왕국에 속하였다가 중프랑크 왕국이 붕괴되고 수립된 로타링기아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때 로타링기아 시절 지방정무관 '올베'에 의하여 베네룩스으로의 외인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로타링기아가 독일 왕국으로 편입되고 곧이어 독일 왕국이 신성로마제국으로 변모하자 베네룩스 지방은 신성로마제국의 로렌 공국에 편입됐다. 로렌 공국의 치하 베네룩스는 얼마안가 여러 백국들로 나뉘어지었고 이때는 공통된 인구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인구가 제대로 파악이 안됐다. 1560년대 발발한 네덜란드 독립 전쟁 이후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에 의해 최소한의 인구조사제도가 마련됐다. 시대가 지나 네덜란드 연합왕국이 수립되고 1825년에 빌럼 1세나뮈르 칙령에 의하여 '인구조사법제'가 공포되며 인구조사가 정례화되었다. 인구조사법제가 실시되었지만 정식적인 인구조사는 1879년에 실시되고 인구조사법제에 따라 5년씩 실시됐다.[13] 허나 인구조사 결과를 정리해두던 왕립 도서관 별관이 화마에 휩싸이면서 18719년부터 1895년까지의 인구조사 결과를 알 수 없다.

초기 네덜란드 연합왕국 시절 인구 비율을 보면 벨기에 지역이 더 높았고 네덜란드 지역은 적었다. 네덜란드 지역의 인구 비율이 더 적은 이유는 바로 해외 개척 때문이었는데 벨기에 지역민들은 해외 식민지로 이주를 많이 안 하는 한편, 네덜란드 지역민들은 활발히 해외로 진출을 하였다.[14] 허나 시대가 지나고 해외 식민지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출신 인구가 도로 네덜란드로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1935년에는 네덜란드 지역 인구가 벨기에를 추월한다. 거기다가 이때부터는 네덜란드 지역벨기에 지역의 출산율도 벌어지기 시작하면서[15] 현재는 네덜란드가 연합왕국에서 과반수의 인구를 가지게 됐다.

기대수명

1600년대 저지대의 기대수명은 20~30대 정도였는데 어차비 이때는 유럽의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로 천연두, 존재하지 않은 위생개념에 영향으로 기대수명이 처참하게 낮았다. 허나 1800년대에 들어 우두법이 도입되고 1900년대가 개막되고 페니실린이 개발되면서 인류의 생존력이 커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기대수명도 늘어나 불과 1800년대에는 32세였던 기대수명이 1900년대에는 52세로 20세나 껑충 뛰었다. 이후 1950년대, 기대수명이 72세로 올라감에 따라 또다시 기대수명이 20세 더 늘어났고 최근인 2015년에는 기대수명이 81세가 되어 9세 더 늘어났다.

언어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공용어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국민(43,744,411명)은 네덜란드어를 쓴다. 발로니에 지방의 사람들은(3,641,748명) 프랑스어를 사실상 공용어로 사용한다. 오스트발로니에에 거주하는 독일인(77,527명)은 독일어를 쓴다.[16] 인구의 대략 6%은 외국인으로 외국어를 구사하지만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네덜란드어나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안다. 인구의 대략 6% 중 2%은 니우제일란트인, 2%는 독일인[17], 나머지는 기타 여러 해외 이주민들이다.

민족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민족은 대부분 네덜란드인으로 인구의 약 86.8%를 차지하며, 플란데런네덜란드 왕국에 분포되어 있다. 다음으로 가장 큰 민족은 발로니에인으로 인구의 약 7.2%를 차지한다. 2%는 니우제일란트인, 2.1%는 독일인[18] 나머지는 기타 비(非)유럽계 민족의 후손들이거나 해외에서 이주한 외국인들로 집계가 아직 안 됐다.[19]

종교

교통

자연환경

영토

간척 사업

지형

생태

기후

자연재해

경제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명목GDP는 $1조 5145억, 구매력평가기준GDP는 $2조 1120억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제협력체인 난연방 왕국 공동시장의 가입국이자 주도국이다.

과거 네덜란드 연합왕국이 위치한 베네룩스 지역은 로마 제국과 농수산물을 무역하면서 생활했다. 이후 부르고뉴와 오스트리아, 스페인의 지배를 거친 베네룩스 지역은 크게 두가지의 경제권이 형성됐는데 첫번째는 직물산업을 비롯, 농업과 제철산업이 중심이 된 남부 지방[20]과 상업, 무역업, 조선업, 금융업이 중심이 된 북부 지방[21]이 그 경제권이었다. 겐트 협약에 따라 두 경제권은 하나의 국가인 네덜란드 자유국 연합에 속하게 되었고 이후 저지대 동군연합 시기, 동군연합의 공동재상인 '올덴바르네벨트'의 신들린 경제 감각으로 남부의 농업지대는 보호무역의 혜택을 받는 한편 북부는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계무역, 수출무역 중심의 경제를 유지하는 경제정책이 실시된다. 이후 벨기에 지역은 직물산업이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벨기에, 그중 플란데런의 명실공히 핵심 산업으로 자리잡았고 발로니에룩셈부르크 지역은 제철산업과 유럽 금융업의 요충지로 거듭났다. 여전히 북부 지방인 네덜란드는 무역업과 금융업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대가 지나며 산업혁명이 도래한 후인 1800년대 초반에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왕에 있던 빌럼 6세는 식민지인 니우오라녜니우제일란트, 안틸레스에서 싼 값에 공수한 원료품들을 통해 북부 지방의 보통 제조업을 육성시키고 관세를 인하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자유무역체제를 견고히 하되 농업 중심의 남부에는 고관세 정책을 유지하여 남부 지방의 농업을 보호하였다. 다만, 철강산업은 예외였다. 근대적인 농경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한 남부 지방은 플란데런의 직물 산업 성장과 함께 그 동력원인 석탄을 채굴하는 광업도 함께 번영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북부 지방에는 조금씩 산업화가 진행되며 선박용 운하가 개통되고 전자제품 회사인 필립스가 만들어졌다. 남부 지방과 북부 지방에 균등한 산업 발전은 연합왕국을 금새 선진 근대산업을 유치시키는데 성공한 나라로 만들었다. 이후 금융 산업이 벨기에룩셈부르크에서도 엄청난 성장을 이룸에 따라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주요 도시의 대다수는 금융업의 요충지가 되었다.

허나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경제가 불황에 들어가버리는 한편 주력산업으로 밀고 있던 금융업은 말할 필요도 없이 폭망했다. 거기다가 이미 망해버린 금본위제 블록에서의 탈퇴도 안하면서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경제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가던 1939년에는 아예 나라 전체가 독일의 강점에 들어가버렸다. 이후 1945년에 해방된 연합왕국은 마셜 플랜에 의거하여 다시 경제를 부흥시키고 기존에 주력으로 내세운 금융업에 대한 성장을 다시 장려하는 대신 대공황 때처럼 폭망할 것을 대비하여 정도를 가리면서 국가가 금융업을 경제위기 때도 어느정도 부양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성장을 장려를 했다. 이후 유럽 재정 위기와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산업에 대한 안정성도 향상되고 전반적인 경제위기대응능력도 좋아진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오늘날에 이르어 신규 산업을 도입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2019년 기준 경제성장률은 1.8%로 2018년 경제성장률이 1.2%였던 것에 비하면 0.6% 상승한 것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산업 확장과 발전 촉진, 투자를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한편 신규 산업들을 도입하여 산업 자체가 도태되는 것을 억제하였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 정책을 효과적으로 기획·집행함으로서[22] 빈곤률을 줄임과 동시에 개인소득을 증대시켰다. 하지만 경제가 다시 급격한 성장 가도를 달리면서 그동안 안정적이었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

경상수지

무역수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2019년 기준 수출액은 $1조 2254억, 수입액은 $1조 959억으로 이를 계산하면 무역수지는 $1295억이 나온다. 참고로 2018년의 네덜란드 연합왕국에 무역수지는 $1350억으로 전전년도에 비해 전년도의 무역수지가 감소한 모습이다. 이에 대해 암스테르담 왕립 경제대학교의 경제교수 마르크 안톤의 논문을 인용하자면 정부의 휠던화 정책이 변동된[23] 것과 글로벌 무역시장이 축소된 것이 무역수지가 감소된 주원인이라고 한다.

산업

산업에서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전체적으로 화학·제약 산업, 보통제조업, 농업 등이 발달되어 있는데 남쪽 지방[24]은 직물산업과 금융업, 철강산업이 발달한 한편 북쪽 지방[25]은 식료품·농산물 산업과 건설업이 발달된 모습이다. 벨기에 지역은 금융업의 허브이자 요충지로 연합왕국 내에서도 수준급의 성장을 이루었고 직물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벨기에의 특히 플란데런의 중요 산업이었다. 하지만 빈곤률이 점차 늘어나는 실정으로 연합왕국 정부의 강력한 일자리 확보 정책과 복지 정책이 적용되고 있다. 반대로 네덜란드는 수출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역으로서 로테르담항은 국제적인 무역 허브, 암스테르담덴하흐벨기에에 준하는 대외금융업의 요충지이다. 그런데 소위 '네덜란드병'이라 불리는 경제위기가 휩쓸었던 지역인 만큼 경제적으로 실패했던 경우가 존재한다.그 이전에는 튤립 거품이 있었지 룩셈부르크는 철강산업이 너무나 발달된 나라로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수시장에서 철강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들이 모두 룩셈부르크 지역을 생산 허브로 삼고 있다. 특징으로는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외국산업들이 많이 유치되있는 지역으로 연합왕국 내부 '주'들 중에서는 가장 법인세가 적은 곳이다. 이때문에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조세피난처로 애용된다(??). 허나 외국산업과 자본에 기대고 있는 산업형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발발하면 엄청난 경제위기가 일어난다는 것으로 룩셈부르크는 세계 경제 위기를 대비해 주 차원에서 가장 많은 예비비를 조성하고 있다.이로인해 발생할거 같은 휠던의 고평가가 염려된다

네덜란드 연합왕국 정부는 이번 2020년대에는 첨단산업과 조선업, 건설업, IT 산업과 같은 신규 산업들과 제4차산업혁명에 맞춘 경제 개혁과 성장 촉진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산업 부분에서는 미래화학산업을 프리슬란트 전역에 유치시키는 한편 로봇제조산업 허브 지역으로 흐로닝언벨기에 서부의 오스터스을 지정하여 이에 관련된 투자를 아낌없이 하고 있다. IT 산업은 필립스라는 반도체, 가전제품 제조회사를 협력 파트너로 선정, 낙후된 산업 지대인 노르트룩셈부르크 지역에다가 반도체 산업과 배터리 산업을 유치시키고 동시에 철강산업도 육성시키는 '2020 룩셈부르크'라는 계획을 실시하고 있다. 조선업과 건설업은 이미 주요 요충지인 로테르담을 중심으로 전문투자행정기관을 설치하고 낙후된 조선업지대에 대한 정부 주도의 개발을 하고 있다. 건설업에서는 '뤼터 계획'을 적용시켰는데 뤼터 계획은 건설업에 대한 촉진과 더불어 새로운 변혁을 강조하며 첨단 기술을 개발, 도입하여 적용시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덴하흐에 관련된 연구기관들을 대규모 입주시키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기업

로열 더치 쉘의 로고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대표적인 기업은 바로 로열 더치 쉘(Koninklijke Nederlandse Shell)[26]로 연료, 윤활유를 비롯한 석유에 관한 정제유를 판매하기도 하고 직접 석유를 시추하기도 하는 회사다. 헌데 네덜란드 연합왕국 내부에서는 로열 더치 쉘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다. 대표적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석유를 시추하면서 뇌물, 환경오염에 관한 튼실한 스캔들이 있을 뿐더러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캐나다 지역의 타르샌드 사업[27]과 알레스카 유전 사업[28]을 주도하는 회사가 바로 로열 더치 쉘이다. 이때문에 덴하흐에 위치한 로열 더치 쉘의 본사에서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29]

로열 필립스 일렉트로닉스의 로고

필립스의 정식 명칭은 로열 필립스 일렉트로닉스 N.V.(Koninklijke Philips Electronics N.V., 혹은 Royal Philips Electronics N.V.)로 주로 가전제품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의료용 장비를 생산하기도 한다. 현재 CEO는 프란스 반 하우튼라는 사람이다. 2013년 기준으로 세계 26개국에 111개의 제조공장과 59개의 연구개발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약 100개국에 판매와 서비스를 하고 있다. 과거 설립된 당시에 필립스는 백열등과 전기장비들을 생산하는 제조회사였고 이후에는 진공관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전쟁의 화마가 유럽을 휩쓴 1940년대 초반과 중반까지 본사를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에인트호번에서 니우오라녜요하너스뵈르흐로 이동했었다. 대전쟁이 끝난 1945년에 다시 에인트호번으로 본사를 옮긴 필립스는 반도체를 비롯한 새로운 사업들을 실시하며 변화와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에 따라 본사도 에인트호번에서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으로 옮겼다. 허나 2006년, 사내(社內)에서 반도체 업무를 맡던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했다.[30] 그래서 현재까지 반도체를 제외한 의료장비와 가전제품을 팔아먹고 있다.

KLM의 로고

KLM(Koninklijke Luchtvaart Maatschappij)의 뜻은 왕립 네덜란드 항공이라는 뜻이다. KLM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국영 항공사로 스키폴 국제공항을 허브로 삼고 있다. KLM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공사'라는 별명이 존재하는데 1919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101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KLM은 1919년 10월 7일, 전직 조종사인 '알베르트 프레스만'이라는 사람과 일부 은행가, 기업가들이 설립한 기업으로 빌헬미나 여왕의 인가를 받고 '왕립'이라는 단어를 사명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KLM의 첫 운항은 1920년 5월 17일으로 암스테르담-런던선을 통해 첫 선을 보았다. 이후 1921년에 세계 최초의 항공권 예약·판매소를 만들었으며, 1923년에는 네덜란드 연합왕국 전역을 운항하는 항공선들을 만들었다. 이후 유럽 지역에 대한 노선들을 확대하다가 제2차세계대전 발발 후 잠시 서비스를 중단하였고 1945년, KLM은 알베르트 프레스만이 1928년에 설립했던 KNILM이라는 회사와 합병했다. KNILM 합병 후 KLM은 국제노선을 확대해 나갔고 1991년에는 노스웨스트 항공과 합동서비스를 시작하였으며, 1993년에는 노스웨스트 항공과 유럽 공동 운항을 시작했다. 1998년는 알리탈리아와 합동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에 에어프랑스가 인수하면서 에어프랑스-KLM 그룹의 자회사가 되버렸다.

ASML의 로고

L을 R로 바꾸면 ASMR이 되버린다.
ASML(ASML Holding N.V.)은 자산총액이 약 70조 정도 되는 회사로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광학 리소그래피 공정 장비'를 생산·공급하는 회사다. 이외에도 노광장비라 불리우는 '포토리스그래피' 공정에 사용되는 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공급하고 있는 회사다. ASML이 설립된건 1984년으로 대기업인 'ASMI'와 위에서 설명한 필립스의 합작으로 설립된 회사다. 이때 본사는 필립스의 본사가 있던 에인트호번에 있었으며, 설립된 연도인 1984년에 'PAS 2000 Stepper'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이후 1985년에 현재까지 본사 위치가 유지되고 있는 벨트호번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본사를 이전한 1985년에서 1년 후인 1986년에 'PAS 2500 Stepper'이라는 제품을 출시하며 호평을 얻느 것을 시작으로 기업이 번창하기 시작한다. 1988년에 ASMI가 합작 법인에서 철수함에 따라 ASMI의 지분은 필립스로 인계됐다. 1995년에는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한편 이와 동시에 필립스ASML에 남아있던 ASMI의 지분을 매각함에 따라 ASML은 독자적인 회사가 되었다. 2001년, ASML은 오늘날에 ASML이 노광장비 회사로 불리우게 되는 'TwinScan 방식'을 개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노광장비 전문회사로 발돋음한다. 최근에는 'TWINSCAN NXE'이라는 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사회

범죄

동양인 인종차별

문화

교육

스포츠

정치

국왕·왕실

입법부

네덜란드 연합왕국에서 입법부의 기능을 담당하는 입법기관은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의회(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parlement)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원은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참사원, 하원은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평의회라 한다. 왕국참사의원네덜란드 연합왕국 전권의회에서 선출한다. 왕국평의원은 보통선거로 국민이 선출한다. 양원의원 모두 임기는 4년이고 관습법에 따라 최대 12선이 가능하다. 왕국평의회은 1명의 의장을 두고 부의장은 수십명을 둬도 상관은 없지만 관습법에 따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들마다 부의장을 선출한다. 비연립정부 구성 정당들이 부의장을 선출하는 경우는 대개 신임과 보완인 경우인게 많다. 반대로 왕국참사원은 그냥 의장만 1명을 두고 부의장을 안 둔다.

왕국평의회내각총리 지명권과 왕국대법원장 선출권, 내각감사권, 내각불신임 결의권 등을 가진다. 하지만 왕국평의회가 위와 같은 권한들을 행사하려면 왕국참사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즉 상원하원을 견제하는 역할인 것이다. 이외 왕국참사원왕국평의회와는 별도로 내각불신임 결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왕국참사원이 내각불신임 결의를 하면 내각총리왕국참사원만 해산시킨다. 반대로 왕국평의회가 내각불신임 결의를 하면 내각총리왕국평의회만 해산시킬 수 있는데 이럴 때는 해산되지 않은 상원이나 하원이 비상내각을 조각하여 조기 총선 이후 의회의 신임을 얻는 새 내각이 구성될 때가지만 행정권을 맡는다. 이런 경우를 '반쪽 국가 상태(Nationale helft tijd, AHT)'라 한다. 임시내각의 내각총리상원이나 하원의 의장이 겸한다. 여기서 왕국참사원왕국평의회가 동시에 내각불신임 결의를 한 경우에는 전권의회에서 대표단을 보내 임시의회를 만든 다음 그 임시의회가 비상내각을 조각한다.[31] 이런 경우를 '행정기관 부재기(Administratieve instelling afwezigheid tijd, AIAT)'라 한다.

왕국참사원(상원)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참사원(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Senaat)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상원이다.

왕국평의회(하원)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평의회(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Raad)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하원이다.

총의석수는 170석으로

정당

네덜란드의 국장.png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평의회의 정당 및 원내 현황
(괄호 안은 왕국평의회 의석 수)
국왕 폐하의 여당
기독민주애원*
(69)
기독교연합당*
(11)
국왕 폐하의 야당
사회당
(24)
기타 원내 정당
노동당
(22)
국왕당
(21)
자유당
(20)
무소속
(3)
원외 정당
녹색당공산당가톨릭사회당반혁명국민동맹
* 연립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정당은 하원에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상원에 왕국참사의원들은 모두 무소속이어야 하는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 이외에도 실질적으로 당적을 가지는 것도 금지된다.

정당은 크게 국왕 폐하의 여당(Koning Loyale Regeringspartij van uwe Majesteit)국왕 폐하의 야당(Koning Loyale Oppositiepartij van uwe Majesteit), 이외 정당들도 나뉜다. 국왕 폐하의 여당은 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들을 말하는데 당연하게 연립정부일 경우에는 국왕 폐하의 여당이 2개 이상이 된다. 현재 국왕 폐하의 여당은 기독민주애원기독교연합당이다. 국왕 폐하의 야당은 원내 제1야당을 말하며, 특별한 경우에는 원내 제2야당까지 포함된다. 현재 국왕 폐하의 야당은 사회당이다. 나머지 정당들로는 노동당, 국왕당, 자유당이 있다. 원외정당으로는 녹색당, 공산당, 가톨릭사회당, 반혁명국민동맹이 있으며, 이중 녹색당만 원내에 진출했던 적이 존재한다.

행정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중앙·지방정부는 네덜란드 연합왕국 국왕 폐하의 정부(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Koninklijk Loyale Regering van uwe Majesteit, KNR)'[32]로 특이하게 정부 형태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통합되있는 상당히 중앙집권적인 모습이다. 게다가 주 정부를 구성하는 각 주의 대표인 국왕행정관(Commissaris van de Koning)을 내각국왕이 협의하여 임명한다.[33] 이에 따라 주 정부는 실질적으로 내각을 수장으로 하는 KNR에 좋든 싫든 귀속된다. 그러나 주 정부는 내각을 협박할 수 있는(??) 정확히는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바로 '내각불신임 결의권'이다.의회: 뭐라고?? 주 정부는 주 의회에다가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를 요구할 수 있고 주 의회가 이를 가결시키면 해당 주 정부의 통치 하에 있는 주는 KNR이 하달하는 일부 중요한 명령[34]을 제외한 모든 명령과 지침에 대해 무제한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근데 이러한 주 정부의 내각불신임 결의권은 계엄령이 선포된 중에는 시행할 수 없다.

국왕 폐하의 내각

네덜란드 연합왕국 국왕 폐하의 내각(Koninklijk Loyale Kabinet van uwe Majesteit)은 KNR을 구성하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중앙정부다.

국왕 폐하의 주 정부

네덜란드 연합왕국 국왕 폐하의 주 정부(Koninklijk Loyale Provincie Regering van uwe Majesteit)는 KNR을 구성하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지방정부들이다.

사법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사법부의 최고기구는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대법원(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Koninklijk Majesty's Hooggerechtshof)[35]으로 수장인 왕국대법원장은 의회가 지명하여 국왕이 형식상 임명을 한다. 왕국대법원장왕국최고법원(Koninkrijk bovendeel gerechtsgebouw)[36]의 수반인 왕국최고법원장(Koninkrijk bovendeel rechter voorzitter)을 임명한다. 왕국최고법원장은 전국의 17개에 고등법원을 관할하며, 고등법원의 수장인 고등법원장을 임명한다. 고등법원 아래에는 지방법원, 간이법원을 둔다. 재판은 4심제로 지방법원/간이법원(1심)->고등법원(2심)->최고법원(3심)->대법원(특별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덜란드 연합왕국은 따로 헌법과 법률에 대한 유권해석 업무와 헌법 재판 사무를 관장하는 사법기구를 두지는 않지만 특별법정을 열어 필요할 때마다 해당 업무를 처리한다.

왕국대법원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국대법원(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 Koninklijk Majesty's Hooggerechtshof)은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최고사법기관이다.

네덜란드 연합왕국 전권의회

네덜란드 왕국 의회

벨기에 왕국 의회

룩셈부르크 대공국 의회

주 의회

행정구역

군대

외교

기타

같이보기

각주

  1. 다만, 난연방 왕국의 수장인 국왕을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군주가 겸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실질적인 행정업무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부에 의해 구성되는 행정부에게 있다.
  2. 연합왕국으로 잘 알려진 나라는 이미 있다.
  3. 주황색
  4. 애초에 오라녜라는 단어가 네덜란드어로 오렌지라는 뜻이다.
  5. 각각 벨기에 왕국룩셈부르크 대공국을 뜻한다.
  6. 7개의 화살은 처음 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 봉기했던 네덜란드 7개주를 뜻한다.
  7. 가지각색의 튤립들을 마치 무지개처럼 배치시킨 후 키우는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다음 사진을 보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할 수 있다.
    Rainbow tulip farm in the netherlands.jpg
  8. 다만, 작사자로 유력한 사람은 '필립스 판 마르닉스'라는 자이고 작곡자로 유력한 사람은 '아드리아뉘스 팔레리위스'라는 사람이다. 다만, 유력하다고 했지 아직까지 이들을 작사자, 작곡자로 인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
  9. 그리고 이러한 오판은 훗날 엔트워프 대약탈로 완전히 남부 네덜란드 지방이 독립군에 합류하는 도화선이 된다.
  10. 모든 수익의 1할을 세금을 내는 것으로 바꿨다. 이는 가톨릭 신자라고 봐주는 것이 없었다.
  11. 가장 큰 조치는 네덜란드 상선은 절대로 스페인이나 스페인 식민지의 항구를 경유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12. 하지만 그 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사라져버렸는데 전쟁통에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13. 하지만 1880년에 긴급 칙령으로 다시 인구조사가 실시되면서 1880년을 기준으로 5년씩 실시되게 됐다.
  14. 이에 따라 니우오라녜 자치령니우제일란트 왕국은 아직도 어느정도의 네덜란드인들이 존재한다.
  15. 네덜란드는 2.57의 출산율을 가지고 있었고 벨기에는 1.94의 출산율을 가지고 있었다.
  16. 다만 인구가 너무 적어서 근처 발로니에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를 준공용어로 쓴다.
  17. 오스트발로니에에 거주하는 독일계인들과는 별개
  18. 오스트발로니에에 거주하는 독일계 포함
  19. 인구조사에서는 민족 집계를 안 한다. 대신 벨기에에서는 민족까지 생각하며 인구 조사를 한다. 근데 이것도 최근인 2017년을 마지막으로 안 하고 있다.
  20. 벨기에, 룩셈부르크
  21. 네덜란드
  22. 대표적으로 중소기업에 경제자문관을 파견하여 기업의 성장을 돕는 한편 그 기업으로 하여금 안정적인 범위 안에서 조직을 확대시킴으로서 일자리를 창출시키고 개인의 기업 창업을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제도를 정립하였다. 이외에도 대기업에 정부사절을 파견하여 네덜란드 내부의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되 이에 따른 대기업의 흑자를 늘릴 수 있도록 국가가 대기업의 공급에 맞춰 소비를 증대시켜주는 정책을 마련하였다.
  23. 기존에는 휠던화를 찍어내어 시장에 유동성 있게 공급하며 휠던화의 가치를 낮추다가 인플레이션이 정부가 정한 한계선을 돌파하자 정책을 바꾸어 휠던화의 추가 생산을 금지하고 휠던화의 가치를 고평가시키는 것으로 바꾸었다.
  24. 벨기에 왕국, 룩셈부르크 대공국
  25. 네덜란드 왕국
  26. 다만, 온전히 네덜란드 연합왕국 회사는 아니고 영국과 공동으로 경영되는 회사다. 그리고 두 국가 모두 연합왕국이다
  27. 타르샌드는 말 그대로 땅 속에 있는 타르를 말하는 건데, 이것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석유 시추 때보다 150% 더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만든다. 또한 타르샌드를 사용하려면 물에 씻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석유 시추 때보다 5배 더 많은 물을 오염시킨다.
  28. 이건 대놓고 기름이 유출된다. 왜냐하면 유전에서 뽑은 석유를 이동시킬 때 사용되는 송유관 곳곳이 구멍이 뚤려 기름이 바깥으로 유출된다. 그렇다고 로열 더치 쉘이 이 송유관을 수리하지도 않는다.
  29. 이유는 로열 더치 쉘 때문에 네덜란드에 대한 해외의 인식이 안좋아진다고..
  30. 이후 이 반도체 사업부는 독자적인 기업인 'NXP반도체'로 탈바꿈한다.
  31. 현재까지 이런 경우는 없다
  32.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KNR의 수반기구인 내각주 정부는 네덜란드 연합왕국(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을 뺀 호칭을 쓴다.딱봐도 KNR은 영국이랑 구별하려고 쓰는 것이기에 얘내는 그럴 일이 없으니 안쓴다는거 아닌가
  33. 하지만 내각과 국왕은 관습적으로 주 의회에서 지명한 주 의원을 협의 후 임명하고 있다.
  34. 예를 들어 총리가 발령하는 긴급명령이나 왕이 발령하는 긴급칙령
  35. 정확히는 '네덜란드 연합왕국 왕립대법원'이 더 좋은 번역이다.
  36. 네덜란드 연합왕국 전역에 오직 암스테르담, 덴하흐, 브뤼셀, 안트베르펜, 룩셈부르크에만 있다.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