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개요

농사 짓는 일을 하는 사람.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의식주 중 식(食)은 전적으로 이들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 의(衣)도 합성섬유가 나오기 전에는 이들이 책임졌다. 주(住) 또한 초가지붕 등으로 나름 지분이 있었으니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산업의 단계 구분 중 원재료 생산에 해당하는 1차 산업을 대표한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의한 직업코드는 61, 정식 명칭은 '농업 숙련 종사자'. 보통 '농부'라고 지칭하는 논이나 밭에서 곡물이나 채소류 등을 재배하는 유형은 직업코드 611인 '전답작물 재배 종사자'라고 한다.

아시아에서 산업혁명 이전 상업을 천하게 보던, 자국의 문제를 해결할 외국의 수탈 대상인 식민지가 광범위 하게 존재하던 시기 이전의 당장의 생존문제가 대두되던 '경제성장'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공무원을 제외하고 국가의 동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농민은 국민 그 자체였다. 한중일에서 쓰이던 이른바 '사농공상', 즉 선비(일본은 무사) - 농부 - 수공업자 - 상인이라는 사회 계급 분류법만 보아도 농민이 낮지 않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1] 그래서 위에 농자천하지대본, 농업은 천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먹는 밥은 결국 농민들의 노고로 만들어지는 법인 것이며 인공식량이 나오지 않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진리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민의 비중은 서서히 낮아져 갔다. 인클로저 운동이나 우리나라의 저곡가 정책 등 산업화를 위해 농민이 희생당하는 일도 많았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농촌을 떠나는 사람은 늘어갔고, 현재 세계 곳곳의 농촌은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겪고있다.

과거에는 쌀의 생산량을 근거로 만섬을 거두면 만석꾼, 천섬을 거두면 천석꾼이라 해서 부의 척도로 봤다.

2008년 전세계 원자재 값이 폭등, 이나 등의 생필품 재료 값도 함께 뛰었고 이는 빼고는 변변한 자급작물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 폭탄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이 일은 국가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화석연료가 무한정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인류의 생존을 지탱할 동력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농업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농업이 비료나 농약, 농기계 등에 화석연료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을 볼 때[2] 화석 연료 없이도 많은 수확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게 안되면 맬서스 트랩에 다시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 실질적인 중요함에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로 무시를 받고있다. 예로 "도시에서 실패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도시 촌놈스러운 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농부들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농촌의 현실을 알지 못하면 말아먹기 딱 좋다.

농사 역시 상당한 숙련을 요구하는 엄연한 기술이다. '땅, 작물, 날씨, 시세, 농기계 등의 폭넓은 지식 + 일정 규모이상의 땅, 돈과 같은 기초 자본 + 부지런함과 체력 + 농사요령 + α' 가 필요하다. 참 쉽죠잉? 땅과 돈이 있을 경우, 지식이나 부지런함과 체력 등등은 없어도 경험으로 채워지니 5년 이상 고생하면 된다. 농사를 지어 최소한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예상외로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이제 갓 귀농한 사람이 첫 해부터 이익을 보기 어렵다. 심지어 출타 전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귀향 후 이전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농업은 공업 못지않게 노하우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며 실제 농사 지어보니 '차라리 도시 생활이 낫더라' 하고 다시 역귀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중요한데, 기계가 많은 일을 대체해 주었다곤 하나 아직도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고 정말 힘든 일이다. 집에서 화초 한개 키우려고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을 수천 개 키우는 게 농사다.[3]

작물의 종자 종류와 각 작물의 생육환경, 수확시기, 비료의 성분별 배합비율이나 시비 시기, 약제살포 시기와 분량 등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며, 트랙터나 콤바인이 밭 한 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켰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대처는 할 수 있어야 한다.[4] 시설농업을 경영하는 농부라면 온실의 온도조절장치의 유지보수, 수경재배 배양액의 제조 등도 기본적으로 꿰차고 있어야 한다.

최소한 5년은 수업료를 지불하는 셈 치고 손해를 감수하며 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5년이 지났을 때 빚이 천만 단위를 넘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최소 5년 동안 손해만을 보는데 부자가 아니고서야 돈이 어디 있겠는가. 돈 없으면 애초에 농사지을 꿈도 꾸면 안 된다. 돈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지어야지' 하는 발상은 처음부터 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현대의 농업은 고정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기계화가 고도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이 아닌 이상 신규로 농업을 하려면 막대한 자본금도 필요하고 농업관련 정보나 기자재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농기계 값이 천만 단위다. 농기계를 사고 나서 돈이 없는데 수입도 최소 몇 달 뒤에 나오는데 그 동안 어떻게 먹고 살겠는가. 일반적으로 트랙터 하면 생각나는 커다란 바퀴 4개에 유리가 달려 있고 앞에서 보면 왠지 몬스터트럭을 연상하게 하는 그 트랙터가 중고가 1천만원대이고, 좋고 오래가는 것이라면 최소 3천만원대이다. 트랙터 하나만 가지고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각 농기계의 부속품도 있고 당연히 농사 지으려면 필요하다. 부속품 가격은 백만 단위. 뭐, 한 번 사놓으면 오랫동안 쓰니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볼 지도 모르지만 그 외에도 돈이 미치도록 깨진다.

사람을 고용해서 농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사람 고용 하는데 들어간다. 시골에서 고용할 때 일당만 주는 게 아닌 2~3끼 식사에 새참까지 다 사주고 해야 되기에 비싸다. 일이 상당히 고되기에 새참 역시 비싸다. 새참으로 빵, 튀김, 음료를 엄청 먹는데 양이 거의 식사와 맞먹는다.

게다가 기술적인 부분 말고도 영업채널도 꿰고 있어야 한다. 즉 가락동 도매시장이나 강서 도매시장의 어느 중도매인과 직접 계약을 할 것인가, 농업회사법인이나 영농법인 등의 법인체를 설립하여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농협 채널을 이용할 것인가의 의사결정과 실천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농작물을 판매하는데 소량이면 시장에서 팔면되지만[5], 크게 할경우 도매시장이나 농협과 계약을 해서 하는데, 도매시장에 할 경우 과일을 본인이 선별을 하고[6] 박스를 사서 포장을 하고[7] 개인 차량에 실어서 도매시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내리지 않으면, 돈을 운송료, 포장비, 박스값 등등 엄청 가져가고, 그렇다고 농협과 계약을 해서 한다해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도매시장 값의 반 조금 더 된다.[8] 그리고 도매시장의 경우 인맥도 크게 작용한다. 정리 하면 사람을 고용해서 하는데 도매시장에 과일만 가져다 주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다.

경제관련 지식도 꿰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한달마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고 1년에 한번, 많으면 두세번 큰 대금을 지불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지출은 당연히 매일 꼬박꼬박 나갈뿐더러 농사라는게 큰 변수가 많기때문에 현금이 필요하면 한달만 버티면 되는 다른 사회인들보다 현금관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대부분 농사하다가 손해를 크게 보는 사람들은 자연재해나 그런 여타 상황외에도 현금 관리가 부실하기 때문에 더 큰 손해를 본다.

그것 뿐만 아니라 천재지변등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수입이 심각할 정도로 크게 좌우된다. 비가 많이 와도 병충해 피해가 심각해져서 작물의 60~80%를 버려야 하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반 이상을 버리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이 되면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는다. 특히 고추는 습도가 높으면 탄저병에 걸려서 가지에 달린채로 썩어들어가고, 따놓은 것들도 말리는 도중에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기 십상. 이런 상황에서 손해를 안 보려면 옵션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계약은 그야말로 헐값에 가깝다. 배추가 산지에선 2천원도 안되는 값에 거래되는데 시장에선 만원 가까이 나온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아주 드물게 농산물값이 폭등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미 농사가 작살난 상태라서 팔 수 있는 물량 자체가 아예 없다. 물론 특정 농산물 가격이 폭등한 상태에서 본인이 물량을 많이 쥐고 있다면 로또가 따로 없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의 말 중에 "진정한 도박을 하고 싶다면 카지노로 가지 말고 농사를 지어라."라는 말을 할 정도다.

인물

농부 출신 유명인

  1. 물론 당시엔 인구 대부분이 농부라, 수공업자나 상인이 천대 받는 수준이었지 농민에겐 딱히 특권 같은 건 없었지만.
  2. 특히 미국과 같은 대규모 농업의 경우에는
  3. 무한도전에서도 벼농사특집 도입부에서 출연진들이 무조건 땅만 넓으면 좋은것이라 여겨서 마을 이장님에게 엄청난 면적의 땅을 임대받았는데, 막상 시작하자마자 지쳐서 결국 임대받은 땅 크기를 줄여달라고 이장님께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4. 초기엔 이런 걸 자주 물어봐야 하기 때문에 농촌생활의 기본은 이웃과 잘 지내는 거다. 그런데 보통 대문이 바로 옆에 달린 옆집이라도 인사 한 번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도시민이 이런 농촌식 라이프스타일에 빨리 녹아들리가...
  5. 그렇다고 잘팔리는 건 또 아니지만...
  6. 선별 하는 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또 먹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것들은 상품성이 없으므로 본인이 먹든지 버리든지 한다.
  7. 포장하는 것도 요령이 있다, 포장할때 같은 물건이라도 과일 같은 경우 배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8. 실제로 도매시장까지 직접 모든걸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농협의 두 배 정도 나올때가 간혹 있다.
  9. 겨울전쟁에 참전하기 전에는 본래 농부였던 사람이다 이후 저격수로 직업변경
  10. 경영 능력이 모자랐던 아버지 대신 8년간 농장을 관리했다.
  11. 유송의 창건자로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농부 출신 황제다. 그래서 유송을 세운 후에 궁궐 내에 자신이 쓰던 농기구들을 전시한 박물관을 세워서 후손들에게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지라고 했지만, 유의륭을 제외하면 유송 왕조 내내 명군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2.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국산 키위를 참다래라고 이름붙여서 브랜드화한 사람이 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