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가체제 (Party-State System)

Party-State System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당이 절대적이고 일원적인 ‘영도 지위’를 정식화하면서 ‘국가권력’을 독점해왔는데, 이러한 체제를 레닌주의적 원리에 기반한‘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라고 부른다. 당이 곧 국가를 지배하는 통치의 주체이며 모든 영역에 대한 ‘영도권’을 기반으로 절대적 권력을 갖는다.

관료 조직에 대한 과한 의존

그런데 현실의 통치과정에서 공산당 자신의 ‘집정 지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관료조직에 의존해야 한다. 더구나 거대한 국가 규모와 수직으로 긴 행정등급을 가진 체제에서는 실제 집정을 위한 관료기구의 체계적인 조직화가 매우 중요하다. 각급 각 부문의 관료들이 당국가권력의 정책 방향과 목표에 맞춰 정책을 잘 집행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국가권력을 독점한 당과 실제 통치권을 실행하는 관료기관 간의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관료체제 자체에 조직원리가 있고 당국가권력 역시 관료체제에 의존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양자 간에는 서로 융합하기도 하고 서로 갈등하기도 하는 긴장관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위상을 갖는 권력으로 나눠보면 영도권과 집정권(정책결정)을 갖는 ‘당(국가)권력’과 당의 집정을 대리하여 통치권(정책집행)을 행사하는 ‘관료(지방)권력’으로 나눠볼 수 있다.

18세기 중반의 중국을 연구한 필립 쿤(2004)은 자신의 저서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에서 정치권력을 황제의 전제권력(arbitrary power)과 관료의 일상권력(routine power)으로 나누고, 집단적 공포사건의 전개에 따른 이 두 권력 간의 상호작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황제는 영혼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 민간에서의 집단 공포사건을 관료체제에 대한 재정비의 기회로 활용하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황권과 관료권력 간의 긴장, 타협, 굴종 등 내재적 긴장관계와 정책집행의 역동적 특징이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은 과거 황제체제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당국가체제에서도 지속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거대한 국가 규모와 이를 관리하기 위한 통치구조 및 조직체계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실제 집정의 영역에서 관료체제가 국가통치의 조직적 기초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국가권력 역시 제국 시기의 황권(黄权)에서 오늘날 공산당이라는 집정당 권력으로 바뀌었을 뿐 일원적 전제권력이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권력을 독점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이처럼 ‘통치의 주체’와 ‘통치를 위임받은 대리인’으로 그 위상이 구분되는 구조에서는 두 권력의 역할도 뚜렷하게 구분된다. 전제권력은 국가통치 과정에서 권력구조를 재편하고 권력을 배분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다. 반면 일상권력인 관료권력은 국가권력을 대신하여 한정된 권한을 위임받아 통치권을 행사한다. 만약 기존의 권력구조에 문제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통치위기가 발생하면 기존 권력구조를 조정하고 바꾸는 결정권은 전적으로 전제권력(당/중앙)에게 있다. 지방/행정관료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든지(放), 반대로 지방/행정관료에게 부여했던 권한을 다시 거두어들이든지(收) 하는 방식으로 권력 구조를 조절하여 의도했던 정책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체제는 권력기관이 각 기능에 따라 수평적으로 ‘분립’되어 상호‘견제’하는 구조라면, 중국 체제에서 권력은 수직적으로 ‘분리’되어 위에서 아래를 ‘감독’ 혹은 ‘감찰’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체제에서 집정권력은 선거에 의해 교체되지만, 중국은 역대로 한 왕조에 집정권력이 하나였다.

중국에서 제도나 정책은 모두 ‘중앙에서 호령(号令自中央出)’하고, 상급 정부에서 하급 정부까지 각 행정 등급별로 일정한 직권(事权)을 ‘외주’의 형식으로 ‘청부(承包)’하는 다층적 정부체제를 형성해왔다. 이는 전통 시기 황권이 각급 관료에게 현지에서의 관할권 대행을 위임하고, 각급 관료는 등급체계를 갖춘 관료체제의 감독관리를 받는 ‘군현제(郡县制)’의 형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중국은 진(秦) 이후 역대 왕조의 통치제도가 모두 군현제를 기초로 건설되었다. 군현제에서는 중앙정부가 주로 치관권(治官权)을 장악하고 지방정부에게 치민권(治民权)을 부여하는데, 이는 분봉제(分封制)에 비해 “중앙치관, 지방치민(中央治官, 地方治民)”이라는 통치구조를 형성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曹正汉·王宁 2020). 이러한 구조는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능력과 동시에 지방정부의 민중에 대한 관리와 통제능력을 구축하기에 유리하고, 중앙정권의 안정성을 높여주며 넓은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관료 선발과 임명, 이동, 심사, 감찰에서 각종 임무의 지령 및 보고까지 포함한 방대한 관료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통치구조는 기본적으로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물론 이러한 통치구조에서 전제권력이 마음먹은 대로 통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지방과 부문의 관료들은 지방이익이나 부문이익을 극대화하고 최대한의 자율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회피, 지연, 왜곡, 기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중앙 정책에 대응한다. 전제권력은 관료체제에 의존하여 통치의 효과를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관료조직의 능력과 적극성을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기제와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의 끊임없는 간섭과 조정을 통해 통치의 묘(妙)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즉 중국 체제의 핵심은 지속적인 중앙집권적인 형태를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권력에 의해 조정되는 ‘방(放, 권한 이양 혹은 분권)’과 ‘수(收, 권한 회수 혹은 집권)’라는 주기적 변화와 이 두 개의 상호보완적 측면에 있다. 정권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방과 관료조직에 적절한 권한과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통치의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즉 전제권력은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동원력을 장악하여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지방/행정에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하여 효율적인 통치 효과를 거둬야 한다. 그래야 전제권력도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의 통합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힘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는 지방분권적 자율성이 필요한 것이다. 통치의 관점에서 중국정치체제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해본다면, 수직적인 이 두 가지 권력 사이에서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고 내재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통치제도를 조직화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이 주기적인 순환파동의 과정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