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몽골 전쟁과 십자군 (공동세계관)

요아니스 3세의 치세가 되자, 제국은 8년 내전의 피해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고, 예전만큼의 활기를 띄게 되었다. 제국 군대는 회복되었고, 세르비아 왕국으로부터 잃은 영토를 수복한 뒤, 세르비아 왕국을 제국의 봉신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호라손 왕조를 몰락시킨 몽골은 제국을 침략했고, 제국은 몽골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제국은 아니 전투에서 몽골의 침략을 막아냈으나, 동부 방어선이 와해되었으며, 인근 테마들의 인구가 감소하였다.
방어선을 재구축하기 위해 제국은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테마 내의 자영농에 의존하는 군사제도 상, 방어선 재구축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중앙정부는 잇따른 몽골 침략에 서방 세력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교황 이노켄티우스 4세는 이 기회가 동방 기독교에게 우위를 보여줄 기회인 동시에 헝가리를 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십자군을 기획하게 된다.
십자군은 몽골로부터 제국을 수호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제국은 비축해둔 국고를 십자군의 원정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는 십자군에 대해 제국을 멸망시키려고 할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제국은 몽골 침략 이후 예루살렘 왕국을 구하기 위한 십자군 원정을 지원해주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서방세력과 척을 지게 된다.
제국 국력이 회복되자, 미하일 8세는 십자군의 제국 영토 경유를 불법으로 지정한다. 이렇게 되자, 교황 요한 21세는 제국을 향해 십자군을 선언했고, 제국과 서방 세력들은 오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제국이 비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십자군 세력은 주춤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게르만족의 신성제국이 대공위 시대를 종료하자, 제국과 십자군의 전쟁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제국 서방 방어선이 아드리아노플까지 밀리게 되었으며, 결국 제국 중앙 정부는 일 칸국을 경계하던 동방 테마의 군대를 서방으로 돌리었고, 십자군을 제국에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결국 미하일 9세와 교황 첼레스티노 5세가 종전 협약을 맺고,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약속하므로서, 십자군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