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앤 웨이드 판결에 대한 감상

나는 대법원이 로앤웨이드를 뒤집은 사태에는 사실 놀랍도록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냥 대법원이 대법원한것 뿐이다. 대법원은 사실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분석하며 <<ㅋㅋ 헌법을 추가하든지 입법을 하든지 했어야>> <<대법원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고 안심한 리버럴의 바보짓이다>> 등의 논조로 이야기한 언론과 지식인들은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 호도하며, 논점을 흩트려놓는 분탕러거나 그저 원론을 되풀이하는 생각없는 평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리버럴이 바보여서 안한게 아니라, "못"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리버럴 진영이 체념한 것에 가깝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1학년때 배워서 누가 말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구의 2-3%만 반대해도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 수정헌법안이며, 수정헌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각 주가 그것을 인준하느냐 마냐는 또 다른 문제이며, 지역 행정부가 절차를 가지고 장난을 칠수도 있다.

1970년대 이후 (1992년에 통과된 요상한거 말고) 소위 정치적으로 예민한 (hot potatoes) 주제에 대한 수정헌법이 추가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미국 정치가 더이상 "설득"이나 "협상"이 아닌 유권자 동원력을 확보하는 "치킨 게임"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며, 양 당이 서로를 치킨 게임으로 찍어 누를만한 충분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없다.

시민단체가 사회를 설득하기보다는 지지자들을 모아서 투표장에 유권자들을 동원시키는 머신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시민단체들이 모여 팩을 구성하고 팩들이 직업 정치인들과 결탁하며 "대표들을 설득"하기보다는 팩들의 대변인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문제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단체는 과장과 극단적 논리를 통해 유권자를 모아야 하고, 그 논리를 홍보하는 자금을 동원하려 거대자본과 결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극단화와 이익단체화는 오랜 세월동안 진행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가치적"으로 분열되고 양극화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정체성, 미국의 도덕에 대한 협의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도덕도 equity를 뒷받침하기 힘들어졌다는 소리다.

남북전쟁에서 노예제를 두고 남북이 갈라졌을때도, 남북은 서로 "기독교"나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두고, 그 가치 아래에서 정당성을 논하며 결국에는 싸움 속에서 그 정당성을 합의한 후, 합의된 기독교적 가치를 바탕으로 전체적 사회적 설득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 상황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다.

리버럴의 진짜 문제는 "바보스러움" 이 아닌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리버럴은 기독교적 가치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이 사회의 도덕적 환경마저 무너트리는 우를 범했다. "파편화된 사회"와 "설득이 안 되는 사회"는 집단의 민주적 결정과 합의를 방해한다는 것, "가족" "종교"등의 최소한의 사회조차 분해된탓에 도덕적 구심점 없이 그냥 내던져진 개인이 얼마나 편향적이고 독선적인지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회가 개인주의적으로 흘러가고 정보화가 진행되어 한 사람이 가진 정보량이 늘어날 수록 사회는 점점 더욱 파편화되었고, 개인주의화와 사회의 파편화는 사회의 권위를 필연적으로 약화시켰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로부터 출발하는 법이다. 부모를 따르고, 선생을 인정하고, 선배들을 존중하지 않고, 전문가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종교적 권위를 우습게 여기고, 누구에게도 설득되지 않는 오만한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설득 불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결국 누구에게도 설득되지 않는 독선적인 사람들이 정치적, 경제적 이익관계로만 뭉쳐, 명분도 도덕도 없는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것이 오늘날의 미국 정치가 아니겠는가.

설득이 되지 않는 정치, 그리고 상대를 로비를 통한 섭외를 통해 찍어누를수도 없는 상황에서 2%가 반대하면 뒤집어지는 수정헌법안을 추진할 미친 정치세력은 없다.

그러니 진짜 문제는, 리버럴이 보수 세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독선이며, 맟춰주지 않으려는 오만에 있다. 정보화 시대에서 "다양성"이라는 가치아래 진행되는 파편화의 결과가 그저 아프게 되돌아온 것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로앤웨이드가 뒤집힌 것은 자업자득이며, 그들의 독선을 가리우기 위한 가치에 불과한 "다양성"의 실패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우리 사회는 설득을 위한 명분이 언제든지 세워질 수 있는 하나됨, 즉 "일률적 도덕가치"를 만들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됨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며, 성소수자, 여성단체, 종교단체 역시도 사회의 전반적 가치와 자신의 가치가 부딫치는 경우, 하나된 일치 속에서 사회 구성원을 천천히 설득하는 방식을 채택하게끔 사회적, 정치적 방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