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단국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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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洲國
만주국
만주국 국기.png 만주국 국장.png
국기 왕실 문장
국가공금구
단국흥기 동아시아 현대.png
만주국 : 노란색
수도묵던 123°26′53″E 41°44′N
최대 도시묵던
정치
국왕여허나라 추쿵어
판의정사사
판공회사
판대금오사
닝구타부원군 이르킨길로 오토
바이러 무르디러
파이호옹활 허서리
역사
독립한국으로부터 독립
 • 건국1627년 3월 5일
 • 을축보호조약1889년 3월 28일
 • 인공 수립1946년 2월 8일
 • 왕정복고1992년 10월 1일
지리
면적790,000㎢ (38 위)
시간대MST (UTC+9)
인문
공용어만주어, 한국어
인구
2012년 어림100,595,000명
경제
GDP(PPP)2012년 어림값
 • 전체$ 1,076,366,500,000 (24위)
 • 일인당$ 10,700 (112위)
GDP(명목)2012년 어림값
HDI0.880 2015년 조사)
통화만주국 량 (MCY) (화폐 단위:¥}
기타
ISO 3166-1155, MC, MCR
도메인.mc/.滿洲
국제 전화+864

만주국(滿洲國, 영어: State of Manchuria)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다. 대한국, , 남몽골, 러시아 연방과 국경을 접한다. 을축조약 이래 한국의 보호국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 1946년 소련의 지원을 받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독립하여 만주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소련 붕괴 후인 1992년 10월 1일 한국 등의 도움으로 왕가 복위 및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현재와 같이 되었다. 한국 천자에게 책봉을 받고 한국에 조공하는, 한국의 제후국이다.

역사

후금의 멸망과 만주국의 건국

누르하치가 건국한 후금은 영원성 전투의 패배와 그에 따른 누르하치의 전사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에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집권한 홍타이지는 정묘호란을 일으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후금군은 조총 등 신무기로 무장한 한국군에게 격파당하였다. 이후 만주에서 내홍이 일어나 후금이 멸망하였고, 1627년 3월 5일에 여진족을 규합한 여허나라 발딩어가 만주국을 건설하였다. 발딩어는 이후 한국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화친하기를 청하였다.

한국의 만주 진출

한국은 1860년 한·만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여 만주국을 개항시켰고, 철도를 부설하여 만주에서 생산된 철강 등의 자원을 한반도로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만주상행'이라는 특허 회사였다. 이후 러시아의 남하 정책과 충돌하였고, 결국 한·러 전쟁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만주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이후 1889년 3월 28일 을축보호조약을 통해 만주국은 한국의 보호국이 되었다.

만주도호부

을축보호조약 체결 이전까지 한국은 만주상행과 고문 정치를 통해 만주 정치에 간접적인 개입만을 하였다. 하지만, 을축보호조약으로 만주의 외교권 등 주권의 중대한 부분이 넘어오자, 한국 정부는 보다 강력한 집행기구를 설치할 필요성을 감지하였다. 당조(唐朝)의 '도호부' 선례를 상고하여 만주도호부라는 이름의 기관을 세웠고, 만주국은 사실상의 속국 내지 식민지로 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인민공화국 수립

제2차 세계대전의 일부인 동아시아 전쟁에서 대한 제국은 본국인 한국과 속국인 만주국을 포함하여 전면적인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은 국력이 매우 쇠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가 퍼져갔으며, 북쪽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의 영향으로 그 세는 더욱 불어갔다. 마침내 소련의 지원 아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왕가와 만주도호부가 추방당하고 만주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1946).

김일성의 난

김일성의 난 당시 만주인민공화국은 대순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연방 등과 함께 김일성의 반란군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감행하였다. 특히, 만주인민지원군, 만주의료지원대를 비롯한 원병을 파견하였으며, 진압 후에는 박헌영을 비롯한 망명한 조선노동당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도 하였다. 단, 박헌영 등 일부 생존하였던 반란 세력은 민주화 이후 한국에 넘겨졌다.

왕정복고 및 민주화

사회주의 혁명 때 만주도호부와 함께 쫓겨난 여허나라 왕가는 한국에 망명하여 만주국 재건 운동과 반공 운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이들 왕가는 한국 무신정권 당시 지도층이 반공 프로파간다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만주인민공화국은 1970년대부터 계속된 경제 침체와 식량난으로 내부 불안정이 심화하고 있었다. 결국 만주인민공화국은 1991년 소련 붕괴의 여파로 흔들리다가, 1992년 효완예이 왕이 주도한 묵던의 봄으로 일당독재가 철폐되면서 멸망하였고, 왕정이 복고되어 만주국이 재건되었다.

정치

전체적으로 한국의 정치체제를 모사하였다. 이는 만주국의 근대화가 한국의 보호국이던 시절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행정부가 의정부(낭묘)인데 만주국에서는 의정사(議政司)이고, 입법부와 사법부는 한국과 같이 각각 공회와 금오(金吾)이다. 다만, 만주의 의정사는 사(司)이므로 한국의 의정부(-府)보다 격이 낮으며, 중추원과 민의원의 양원제가 기능하는 한국과 달리 만주국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등체강(二等遞降)의 원칙에 따라 만주국왕은 한국의 친왕과 서열이 같으며, 만주국에서 수상격이자 정1품인 판의정사사는 한국에서 정2품 상서 정도에 해당한다.

외교관계

국제연합의 회원국이며, 대한국, 남몽골연합칸국, 제나라 등과 함께 대한국협(大韓國協)의 가맹국이다. 한국, 일본과 친밀하다. 한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는 제후(諸侯) 왕국이다. 3년에 1번 한국에 조공하고,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을 때는 한국 황제에게 책봉받기 위해 사신단을 파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