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험체론(문헌)

원문

3. 사회실험체론

내용

사회실험체론

사회실험론은 3가지로 구분이 된다. 하나는 가상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실험이며, 두번째는 현실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실험, 마지막으로 이것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사회의 방법 이 3가지가 있다. 이 3가지 학설은 모두 옛날부터 대두되었으며, 마지막 방법인 이상사회는 UVS계열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개념이지만, 가상대한제국 계열에서는 강조하지 않았다. 가상국가는 사회실험체의 변종이며, 이를 증명하고, 이 사회실험체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이 바로 사회실험체론인 것이다.

사회실험체는 다음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1. 사회성
시장의 형성과 조직, 대화와 타협 또한 정보의 상호교환이 성립되는 것 즉 사회실험체란 정보와 사회구성원들의 교환이 뒷바침되야 한다. 이것을 가상국가에 적용함에 있어서 가상국가 내에 가상사회의 사회성과, 실제의 카페 구성원들과의 사회성을 다룰 수 있다. 가상사회 설정에서의 사회성은 사고실험의 성질에서 다르며, 실제 카페 구성원들과의 사회성은 사회실험이라 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같이 사회실험체는 사회성을 기본으로 내포하고 있다

2. 조직성
특정한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성원을 재생산하면서 존속하는 인간집단이다. 윗장에서 언급하였듯이 조직을 운영하는 법규에 따라, 법률에 따라 이를 조직하고 행하는 집단이어야만 한다. 사회실험과 사고실험을 하는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러한 사고실험과 사회실험을 기반으로 하여, 이상사회를 구현하려고 하는 조직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조직성인 것이다

3, 관습성
일정한 경계가 설정된 영토에서 종교 •가치관 •규범 •언어 •문화 등을 상호 공유 하는 집단이다. 이는 역시 서론에서 다룬 관습, 즉 전통에 대한 부분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전통과 규범들을 서로 상호 공유하거나 교류하는 집단이 바로 사회실험체인 것이다.

4.실험성/합리성
따라서 사회의 이러한 속성을 합리적으로, 배출하며 무리한 설정을 놓지 않는 집단이다 정말 실험에 입각하여 합리적인 설정을 배출하여야 하는 집단이다. 이는 상황과, 합리적인 판단에 따르는 이성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합리성과 실험성에 근거하여, 가상국가의 사회실험은 이루어져야 하는것이다.

용어의 정의

사고실험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단순하게 가정한 후 이론을 바탕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한다. 실제로 만들 수 없는 장치나 조건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 속에서 특정 주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기술하는 방식이다 철학에서 사고실험은 대개 사고실험의 장으로 마련된 범주 안에 존재하는 어떤 방법에 대한 직관적 반응에서 어떠한 진리를 끌어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시나리오로 표상된다. 이러한 경향은 주로 관념가국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사고실험 중심의 가국은 바로 관념가국론에서 다루어야 하는 주제이다

사회실험
정책평가의 한 방법으로,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정책의 전면적인 추진에 앞서 일정한 정책 대상 집단에게 시행하는 시험적 정책집행을 말한다. 사회실험(society test)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준실험의 방법으로 시행된다. 이는 가상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이 카페가 사회실험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현재 주류 이론인 실재가국론의 입장이다.

정리
이에 실제로 카페상에서 이루어지는 정책들과 그 실험은 바로 사회실험의 한 예이며, 설정으로 이루어지는 가상국가의 예일경우 바로 사고실험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실험과, 카페의 외적 부분만 강조하면 초소형 국민체가 되어버리며, 너무 설정적인 면만 강조하면, 관념가국이나 모의전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실재가국론은 하나의 가상국가를 정의할 수 있는 해법인 것이다. 이에 사고실험과 사회실험의 기본 정의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고 실험

질문 1) 사고 실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실제로 하기 힘든 일이나 구성해내기 힘든 내용에 대해 가정을 하고 결과를 추리해보고 실제적 조건을 고려한 논리적 접근으로 예측을 하여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방향을 잡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다. 상상의 이야기가 토론의 논거로 이용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잘 알려진 존 롤즈의 정의론에 등장하는 근본적 위치라는 사고실험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롤즈는 이 사고 실험에서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결사에도 속해있지 않고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 행동하게 되는 경우 행위자가 취하는 태도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로운 행위가 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그는 정의의 원칙을 수립할 때 무지의 베일 뒤에 있는 근본적 위치를 이용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이렇게 철학자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사고실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전쟁을 선포했는데 전장에 나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보라. 모두에게 전쟁을 선포했지만 아무도 그 전쟁을 안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고 실험은 전쟁을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에 대한 은유일 수 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주의를 실천하는 평화주의자들은 이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살까?"
이것은 수명의 연장이 아닌 영원의 문제이다. 우리는 여기서 합리적인 결과를 예측해보고 바람직한 것인지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생각실험을 했을 때 한 가지 방식으로 결과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복수로 상반된 생각이 결론이 나오면 논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 문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죽음을 반가워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실험의 진행은 개념의 명확한 정의와 개념간의 관계의 명확한 정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은 개념을 다루는 학문에서 매우 보편적인 방식이며, 따라서 철학에서도 이것은 매우 핵심적인 사유의 진행 방식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명확하게 형성된 개념을 가지고 사고실험을 진행하는 개념적 학의 경우와는 다르게, 경험적 결과가 추가되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사고실험이 선험적인(사실상 이 맥락에서는 근거없는) 것에 의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경험과학자들의 비판이 가능하다.

그 시나리오는 대개 특정한 철학적 개념을 대상으로 삼아 만들어졌을 것이다. 도덕성이나, 마음의 본성, 또는 언어적 지시 대상 같은 것들 말이다.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대한 직관적 결과들은 주어진 모든 시나리오 안에서 그 개념의 본성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진실인지 아니면 상상된 것인지 말이다.

예 1)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바라본 영생의 문제<걸리버 여행기>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놓고 ‘사고 실험’을 한다. 걸리버는 영생불사의 몸이란 사실을 아이들이 알게 되면 인생이 얼마나 즐거워질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노인이 된 상태에서 영원이 지속된다면 삶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질 것이다. 20대 상태로 영생을 누리게 된다면 이 문제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80대의 상태에서 영생은 다른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죽음이 휴식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2)무게와 속도 문제를 다룬 사고실험가정에서 결과를 볼 때 논리적으로 논제가 맞아떨어질 때는 상관없지만 상반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때는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과학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사고 실험을 해보면 모순이 나온다. 무게가 다른 두 개의 돌멩이가 낙하하고 있다고 하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따르면 가벼운 쪽이 더 더디게 떨어지고, 무거운 쪽이 더 빨리 떨어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돌멩이 두 개를 한데 묶어 떨어뜨릴 경우, 가벼운 돌멩이가 무거운 돌멩이의 낙하속도를 더디게 만들어야만 한다. 전체적으로 낙하 속도가 느려져야만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순이 생긴다. 이 두 돌멩이를 묶어서 떨어뜨릴 경우, 예상대로라면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가벼운 돌멩이의 방해받는 면 때문에 오히려 느리게 떨어질 수 있다는 확률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상반된 모순 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기본 가정이 문제가 있는 것이냐는 식으로 말을 할 수 있다. ‘a’라는 결론도 나올 수 있고 ‘a 아니다.’ 라는 결론도 내릴 수 있다. 위의 예는 모순이 있음으로써 기본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예 3 실천 철학에서의 생각 실험실천 철학에서도 ‘생각 실험’을 즐겨 쓰고 있다. 철학에서는 너무 기발한 사례만 생각한다. 배가 난파하여 구명보트에 간신히 올라탄 사람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그들 중 한 명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어도 좋은가? 불이 났는데 아기를 구할 것인가, 내 목숨부터 챙겨야 하는가? 등등 극단적 상황에서 규범 문제를 던지는 것, 실제로 실제 실천과 관련이 있는가? 혹은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뉘앙스가 생긴다.

예4) 정언명령을 예로 살펴본 사고실험 칸트는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보편적인 금지를 이끌어내고 이를 옹호하여 입법의 원리를 생각했다. 여기에 대한 생각 실험을 보자. 나치 시대에 유대인 이웃 한 명을 숨겨주고 있던 어떤 남자의 집에 어느 날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가 찾아와서 유대인을 숨겨두고 있느냐고 묻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거짓말 하지 말라는 원칙을 지키려면 숨겨두었다고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원칙을 지키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도덕상황의 사고 실험 범주는 규범의 위계와 연관되어있는 것이 많다. 어떤 원칙을 먼저 실천해야하는가를 문제 삼고 어떤 원칙을 상위의 규범에 놓을 지가 본질이다. 거짓말과 인간 생명 존중은 엇갈리는 케이스이다. 규범의 갈등이 있을 때 도덕에서는 사고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 생각으로 하는 실험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짓말 하는 쪽이 더 도덕적이라고 결정했다. 원칙적으로 철저하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 쪽이 오히려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언제나 옳다는 도덕적 원칙이 있을 수 있느냐? 정언명령이란 형식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누구의 입장이 되더라도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뜻한다. 어떤 두 규범 속에서 갈등하는 상황을 가져다놓으면 정언명령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로 읽혀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결국, 반론을 펴는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팩트 1 반론과 합의의 과정반론의 중요한 방식 중에 하나로 생각 방식을 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

무지의 베일이라고 표현도 사고 실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실험을 통한 이론의 좋은 예이다. 자신의 사적 재산, 유산 교육, 재능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케이크를 하나 두고 네 명의 사람이 있다. 이 네 명은 이기적인 존재자들이다. 그러나 폭력적인 존재는 아닌 합리적 이기심을 가진 존재들이다. 여기에서 외적인 권력은 없다. 자기들끼리 합의를 봐야한다. 서로 합의를 봐야한다. 실제적 인간형이 반영된 모습이다. 결국 내가 몇 번째 케이크를 먹을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는 경우를 보자.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자른 사람이 제일 처음에 먹자고 하면 합의를 하겠는가. 그렇다면 자르는 사람은 많이 잘라서 먹으려고 할 것이다. 자르는 사람은 제일 마지막에 먹자고 하면 최대한 똑같이 자를 것이다. 위험요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

예 1) 롤즈의 사회적 정의에 대해서 노예제도가 정의로운 제도인지 아닌지 따져보자. 노예는 노예제도가 부당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사람은 그런 부당함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예제도에 찬성하는가. 불리의 관점에서 약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롤즈가 말하는 사회적 정의이다.

1.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본권적 자유에 바탕을 둔 가장 포괄적인 체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한 권리 치계 역시 마찬가지 조건이어야 하며 서로 갈등 없이 어우러져야 한다.

2. 여러 가지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 그 불평등이 개개인의 이익에 보탬이 된다.
-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제반 지위 및 공직과 결부되어 있다.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가는 불평등이 정의로운 불평등이라고 말한다. 이것도 사고실험에 의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대표적으로 사고 실험을 통해서 논리를 끌어가는 방식이다.결국 사고 실험을 한다는 것은 발상을 통한 가정을 통해 내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정의 능력은 창의력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회실험

질문 2 사회실험이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사고실험의 관점의 전환과 구조 뒤집기가 실험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본다.
‘먼저 사고실험을 바탕으로 사회실험을 하는데 있어서 창의성을 언급하자면 창의력’이라는 말의 뿌리는 라틴어 ‘이노바레(innovare)’인데 이 말에는 ‘어떤 일에 새롭게 몰두한다.’는 의미가 있다. 창의성에는 발산적 창의성이 있고 수렴적 창의성이 있다. 발산적 창의성은 밖으로 자꾸 나가는 착상이나 아이디어와 같은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에서처럼 자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다. 수렴적 창의성은 전혀 없던 것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아이템을 다른 관점에서 적용하고 활용해보는 차원이다. 이론적 핵심의 창의적 차원은 수렴적 창의성이다.관점 전환이 창의성의 핵심이다. 가장 중요한 실험방식은 사고 실험과 사회실험 이다.

예 1) 칸트는 경험에 뿌리를 두지 않고 그저 하릴없이 생각만 앞세운 그런 짓은 이제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이 있다고 하려면 경험에 기반 해야 한다고 했다. 감각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이나 영혼은 감각으로 들어올 순 없다. 그것은 생각이다.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믿는 존재이다.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필은 보면 어떤가. 희고 길쭉한 것을 떠올린다. 내가 만들어낸 상은 환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 아닌 인식이지 않는가. 즉 사고실험을 기반으로, 경험과 감각으로, 사회정책에 대한 실험을 하는것이 바로 사회실험인 것이다. 즉 창의력과 창조력을 기반으로 사회실험은 이루어진다

팩트 1) 제일 처음 생각해내는 것은 발산적 창의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버젼을 바꾸는 것이 수렴적 창의성이다. 가정을 하는 것, 현실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사고 전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고 실험의 핵심이 이것이다. 사고에 있어서 각자 그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보탰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실험이라는 것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가는 하나의 테크닉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셈이다.

예 1) 베르트 에코의 ‘이 세상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살펴보자. 1:1축적의 지도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존재하려면 펼쳐 놔야한다. 펼쳐지게 되면 원본이 세계의 모습이기 때문에 지도 자체가 세계 일부가 되어버리는데 지도가 세계를 담을 수 없다. 이런 지도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말한다.

그 예와 응용

질문 3 이 사고실험으로 무엇을 논증하는가?

카르나프는 논리 실증주의자이다. 분석철학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경험적 감각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나의 문장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경험에 의해 증명될 수 있거나 아니면 순수 논리적 성격을 띠고 있을 때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내일 비가 오거나 맑을 것이다 했을 때 실제로 비가 오고 맑으면 이 말은 참이다.비가 안 오고 맑지도 않으면 둘 다 거짓이 된다. 그래서 경험에 근거를 둔 진술이라면 그 참과 거짓을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고, 또 순수 논리적 절차라면 수학적 검토를 통해 참과 거짓을 판단해낼 수 있다.

예시 1) 자기 지침이 필요한 예들
자극을 주는 무언가를 사물자체라고 표현한 것이다. 무언가 그 자체는 우리의 경험 자체 들어온 것은 아니다. 자극을 준 결과만 들어온 것이다. 여기서 자기 지침성 문제가 제기 된다. 자기 자신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느냐.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이 지도하면 지도도 지도를 담아야 하는 것이지만 지도를 담을 수가 없는 구조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이 ‘모든 것’ 안에 이 ‘문장’도 포함되는 것이라면 어떠한가. 상대주의의 주장이니 이 주장도 변할 것이다. 이 주장도 꼭 참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 안에 이 주장은 빠져야 한다. 지도가 빠져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은 감각의 데이터가 주어지고 지성이 범주를 통해서 판단을 해서 정리는 해서 인식이 성립한다. 요소를 분석해내는 것이 인식의 핵심이다.

팩트1) 카르나프와 칸트의 유사점
카르나프는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의미 있는 명제라고 말한다. 칸트와 유사한 입장인데, 신은 존재한다는 명제는 논리 실증론자들의 입장에서도 무의미한 명제가 된다. 문제는 참, 거짓 따질 수 있는 것만 의미 있다는 명제 자체도 경험적으로 검증 되는가? 그것이 문제가 된다. 이 명제는 역시 자기를 포괄할 수 없는 주장이 된다. 반전의 효과로서 물음이 된다

예2 및 반론)) 파스칼이 말하는 신에 대한 경우의 수
파스칼의 이야기를 보자. 그의 논증은 다른 말로 보험 논증이라고 말한다. 신의 존재 증명이 예전에서부터 이어져 오는데 누가 맞다 옳다 말하기 어렵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음을 인정하자. 그렇더라도 신을 믿는 편이 낫고 안전하다고 주장 한다. 파스칼은 경우의 수로 따져보자는 것이다. 신이 있다고 믿을 수도 있고 없다고 볼 수 있다.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을 경우에 정말 신이 있을 경우 그는 큰 상을 받고 천국을 간다.
신이 있다고 믿고 신이 없을 경우에도 큰 손해 볼 것은 없다.
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신이 있으면 큰 손해이다.
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없는 것은 큰 손해 볼 것 없다.
그래서 경우의 수로 보아 있다고 믿는 것이 리스크가 적다고 말한다. 기독교 교리대로 사는 것이 득이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말을 한다. 하나님 존재가 사실이라면 내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더라도 잃을 것은 없다고 본 것이다.

반론) 파스칼에 대한 반론
디드로는 이것을 기독교에 적용하지 않고 이슬람과 불교에도 적용하는 예를 들어 비판을 제기한다. 위의 명제는 알라신의 경우에도 비슷한 논제가 성립될 수 있다. 논거를 수집할 때는 내가 목적으로 하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큰 손해 볼 것 없다는 것이 또한 문제가 된다. 그것이 과연 손해 볼 것 없음인지도 해석의 여지가 강하게 제기된다. 신이 없다고 믿었던 사람이 쾌락을 즐겼을 때 없었을 경우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