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차 대전 (공동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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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입장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제국처럼 블록 경제를 실행할 정도의 식민지를 가지지 않은 국가들은 직격타를 맞았다. 독일과 일본은 이러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 독일의 경우, 이러한 대공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금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이로 인해, 독일의 정치적 상황은 그 어떨 때보다 불안정하였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적인 기틀은 힌덴부르크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의 비상대권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었다. 이때, 민중 선동에 뛰어났던 아돌프 히틀러가 경제 부흥의 약속과 세계 1차 대전으로 인해 무너진 게르만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언행으로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하였고, 대통령과 총리를 겸임함으로써, 초헌법적인 총통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일본의 경우, 중국을 침공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선포하여, 동아시아 전체를 통치하려고 했다.
독일의 나치 정권 집권으로 인해, 많은 유태인들이 공화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는데, 원로원은 이를 희한하게 여겨, 유태인들을 모아 물어본 결과, 히틀러가 반 유태인 정책을 펼친 사실을 알고, 기존의 예상과 다른 인물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프랑스 정부와 영국 정부에게 강력 대응을 요구했으나, 프랑스와 영국 정부는 전쟁을 원치 않았고, 제국 정부의 계속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무장, 오스트리아의 합병, 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을 용납하였으며, 폴란드만 침공하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세력의 견제를 위해, 거의 대부분을 비준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 소련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프랑스와 영국 정부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 결국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치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미국의 참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이 밀리게 되자, 나치 독일은 원자폭탄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치 독일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으므로, 이에 손을 때게 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원자 폭탄의 위험성에 대해 보고 받은 황실은 원자폭탄의 개발(샹젤리제 계획)을 비밀리에 명하게 된다. 프랑스 동아프리카의 식민지 지역에서 우라늄-235 광산을 찾게 되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사하라 사막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파괴력을 보고, 대다수의 개발진들은 회의주의에 빠졌으며, 심지어 보고 받은 황실 또한 회의주의에 파지게 되었다. 또, 이때 나치는 원자폭탄을 개발할 기술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황실은 원자 폭탄 제조 기술은 가지되, 만들어진 원자폭탄은 모두 해체시키고, 해당 사안을 최고위 기밀로 할 것을 명했다.
이 때, 미국에선 이상한 충격파를 감지하게 되고, 그 근원이 맘루크령인 사하라 사막임을 알게 된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미국은 지속적으로 제국을 캐물었으나, 제국이 일관되게, 침묵하자, 원자폭탄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알게 되었다. 이러한 위력의 무기를 공화국이 가진 것을 미국이 알게 되자, 맨해튼 계획을 수립하고,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격하게 된다. 결국 원자폭탄으로 마지막까지 항전한 일본이 투항하자, 전쟁은 끝나게 된다.
종전 이후, 황실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포기하도록 하려고 하였으나, 이에 실패하고, 소련까지 원자폭탄 개발에 투자하는 것을 보며, 결국 원자폭탄에 대해 원로원에 알리고, 원로원으로부터 원자폭탄 만들 것을 승인 받는다.
세계 2차 대전과 같은 끔찍한 인권 탄압이 다시는 자행되지 않도록 국제연합(United Nations)를 만들었으며, 세계 2차 대전의 승전국으로써, 제국은 다른 승전국 미국, 소련, 영국, 중화민국과 함께, 상임이사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