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티아 강 9세(메이플스토리)

진성후
陳成後
출생1971년 2월 24일
고구려 경상북도 영양군
성별여성
국적고구려의 국기.png 고구려
별칭없음
학력괴정초등학교, 사하여자중학교, 용마고등학교[1]
경력고구려 태성태자비
직업고구려 태왕후 → 고구려 황태후
소속정당 없음
종교불교[2]
부모父 진수인 母 김원인
배우자고구려 열조
자녀강빈, 강인범, 강향진, 강수진
병역해당사항 없음
상훈없음
웹사이트없음

개요

태왕, 아버지이신 열조 태왕과 다르게 국력을 키울꺼면 엄마는 말리지 않겠지만 실패로 끝나주지 말아주세요
— 아들인 강인범이 태왕으로 즉위 후에 말한 것

고구려 제국의 태왕후 지금은 황태후로 재임 중이다. 여양 진씨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인 열조가 태성태자로 있을 때 고구려 전국에 가택을 실시함으로써 황실로 시집왔다.

생애

진성후는 진수인과 김원인의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22살 쯤 고구려 황실에서 가택을 실시하여 태성태자였던 열조의 남편이 되기 위해 황궁으로 와서 여러가지 시험을 치뤘는데 이때 당시 진성후와 같이 시험을 치룬 인원은 5명이였는데 진성후가 겸손하고 선량하고 동정심 많은 성격을 보이자 진성후가 합격받아 태성태자비로 책봉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피나오 학원에도 다닌 바가 있고 고등학교에는 모범 학생으로서 어느 교수에게 칭찬을 받은 적이 없는 학생이였다.

물론 천지난만한 성격에 징계는 4번 정도 받았으나 퇴학 정도 까지는 아니였다. 위에 표 나와있듯, 고등학교에 용마고등학교인데 아들인 강인범 역시 용마고 출신인데 아무래도 강인범이 자기 엄마가 재학하였던 학교에 가고싶었던 모양이다.

자녀

2남 2녀 중 막내를 낳았다.

  • 강빈: 지금은 여전히 고구려의 황자로 지내고 군호는 효령대군이다. 딱히 임금 자리에 바라지 않았고 동생이 태성태자가 된 것도 역시 질투와 증오가 아니라 내 동생의 성격을 낳아지려면 후계자가 되는 방법도 나쁘지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부처 형이다
  • 강인범: 고구려 제108대 태왕이자 현직 태왕으로 황자 시절에는 말수가 적었고 소심한 성격이였다. 공식 결과가 나오면 감사 인사를 하겠다는 러시아 황제도 언급하는 지금의 강인범 성격과는 정 반대 되는 성격이였다.
  • 강향진: 고구려의 황녀. 결혼을 하지않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이다.
  • 강수진: 고구려의 두번째 황녀. 결혼을 하지않겠다는 언니의 뜻을 따르고 있다(...)

진성후가 낳은 아이들을 순서대로 하자면 강빈→강향진→강수진→강인범이다.

특징

성격

생애 항목에도 밝혔듯 왕권이 중심인 전제군주제 치고는 검소한 편이였고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은 성격이였다. 만나는 상대가 백성이든 귀족이든 타국 사신이든 그 누구든 친절하고 사근했으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편견없이 사람들을 대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고구려 백성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다.

우아함

진성후의 매력은 외모보다는 우아함과 예술성에 있었다. 나긋나긋한 몸동작과 기품은 진성후를 만나는 사람들의 ㅎ감을 샀고 목소리는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웠으며 뛰어난 화술을 가지고 있었다. 패션 센스도 자연스러우면서 고구려에서 유행하는 패션 뿐만이 아니라 전 유럽의 패선을 선도하기도 했다.

정치

정치 보다는 태왕후로서 내명부를 담당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많이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는 그저 고구려의 민심을 챙기는 정도. 그래서인지 진성후가 황태후로 물러나고 평가를 할 때 그다지 비판이 많이 보이지않는다. 고구려의 백성들 사이에서는 진성후가 남편과 아이들을 많이 챙긴 일 때문에 남편바보, 아들바보, 딸바보, 모성애 황후 라고 불렸다. 진성후가 황태후로 물러난 뒤에도 이 별명들은 사라지지않는다.

정치를 많이 하지않았기에 타국 사신을이 고구려에 방문할 때 진성후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중요한 일 때문에 타국의 사신들이 고구려로 방문할 때이면 진성후가 사신들 앞에 남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막내 아들인 강인범의 즉위

고구려 열조는 장남을 제치고 막내 아들인 강인범을 태성태자로 책봉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아무래도 강인범의 소심하고 말수가 적은 성격을 완벽히 고치기 위해 태성태자로 책봉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면 낳아질꺼라고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일국의 군주가 되면 직접 밖으로 나가서 백성들의 민심을 살피고 외국 사신들을 만나야 하니까. 진성후 역시 고구려의 열조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반발하지 않고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구려 열조의 이러한 결단은 헛되이 하지않았고 강인범의 소심하고 말수가 적은 성격을 완벽히 고치기 위해 태성태자로 책봉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면 낳아질꺼라고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완벽히 낳아졌다.

아들인 강인범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왕으로 즉위하자 남편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없애고 황태후로 등극하였다. 그리고 아들인 강인범에게는 아버지인 열조 태왕과 다르게 국력을 키울꺼면 말리지 않겠지만 실패로 끝나주지 말아달라고 했다. 강인범 태왕은 이러한 엄마의 말을 어기지 않고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고구려군을 출동시켜 독도를 노리는 일본을 감시체제에 돌입하니 일본군이 물러났고 알카에다를 물리치는 실패한 모습을 보이지않았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인 진성후는 몹시 기뻐하였다.

여담

여담으로 막내 황자였던 강인범을 많이 챙겨줬다. 지금의 강인범 성격과 매우 정 반대 되는 성격이였다. 소심하고 말 수가 없었다. 또한 막상 여자가 옆에 서면 꾀 부끄러움을 탄다. 진성후는 이러한 아들의 성격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에 많이 데려다줬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말수가 적고 소심한 성격에서 말이 약간 많은 성격으로 바뀌며 태왕으로 즉위 직전에 소심한 성격을 서서히 고쳐가는 중이였고 열조가 붕어하자 태왕으로 즉위 후에야 소심하고 말수가 없는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타국에 황자 시절의 강인범의 성격을 알고있다. 조선에도 알고있는 것인지는 불명. 97년생이라 강인범 태왕은 꾀 젊은 군주에 속하는데 나이가 많은 외국 정치인 형님, 외국 정치인 아저씨가 오면 군주가 된 강인범 태왕을 소심했었고 말수가 적었던 강인범의 성격으로 놀리기도 한다. 물론 장난으로 놀리는 것이고 강인범 태왕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어서 웃음으로 넘어가거나 창피해 한다.

  1. 마산으로 이사를 온 것으로 보인다
  2. 고구려의 국교가 불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