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일본 (나루히토)

개요

역사

성립 계기

고대 삼한 반도일본 열도로 구석기 문화는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었다. 플라이스토세 당시 쓰시마 해협을 통해 삼한 반도에 전파된 구석기 문화는 일본 열도까지 전해졌고 기원전 1만년경, 일본 열도가 해수면 상승으로 삼한 반도와 분리되면서 삼한 반도와 일본 열도는 각기 다른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한다. 이로써 전근대 일본이 성립됐다.

세이쇼 시대

당대 조몬인들의 모습

세이쇼 시대의 일본 열도에서는 삼한 반도와 시베리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한 고대인들로 구성된 조몬인들을 주축으로 조몬 문화가 성립되었다. 그들은 간토와 도호쿠 같은 일본 열도 동부를 중심으로 번영하였고


라는 독자적인 신석기 문화가 이행되어 줄무늬 토기와 수혈주거, 패총 등이 생겨났고 간토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다. 한편 삼한 반도와 시베리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했던 고대인들은 조몬 문화를 구성하는 조몬인이 됐다. 조몬 문화는 기원전 1만 4천년부터 최대 기원전 300년까지 존속했다. 반면 삼한 반도에서는 일본 열도와 분리된 이후 대륙의 영향을 받으면서 조몬 문화보다 더 빠르게 신석기 문화인 비몬 문화가 정착하여 기원전 1500년까지 존재하였다. 비몬 문화에서도 조몬 문화처럼 줄무늬 토기,수혈주거가 출현하였고 비몬 토기 같은 효율을 극대화시킨 토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삼한 반도는 약 기원전 19세기경, 무몬 토기가 들어오고 기원전 16세기 즈음에 청동기가 유입되며 기원전 20세기부터 무몬 문화가 본격적으로 삼한 반도에 들어선다. 무몬 문화가 들어서면서 삼한 반도에는 초기 신분제 사회와 농경 사회가 구축되었다. 무몬 문화를 통해 삼한 반도에 살던 칸인들은 육도경작에서 수도경작으로의 농업 기술 혁신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생겨난 빈부격차에 따른 신분제 파생도 겪기 시작하였으며 수도경작 도입에 따른 농업생산력의 증대로 급속한 인구 증가를 이룩한다. 이렇게 조몬인들 보다 앞서 나가던 칸인들의 우위는 일본 열도와는 달리 대륙과의 교류에 제약이 적어 대륙과 활발한 교류를 진행하며 선진기술을 먼저 습득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세이쇼 시대에는 원시 수렵·채집·어로 같은 기간 산업이 여전히 원시적 수준의 농경 산업과 같이 기간 산업으로 존재하였고 토기 제작, 가락바퀴 등을 이용한 간단한 섬유 산업, 의류 가공 등의 원시적인 수공업이 생겨났으며 애니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형태를 통한 신앙 사회의 발족이 진행됐다. 세이쇼 시대의 민족 주체는 삼한 반도에 존재하던 칸인(韓人)과 일본 열도에 존재하던 조몬인들로 칸인은 기원전 10세기 이후 일본 열도로 이주하는 도래인과 분화하였는데 도래인 같은 경우에는 후일 야요이인이 되며 조몬인과 동화됐으며 도래인으로 떨어지지 않은 칸인들은 여전히 삼한 반도 남부에서 생활하였다.

야요이 시대

야요이 시대 당간, 쌀을 수확하는 사람들의 모습

야요이 시대의 시대적 특징은 크게 농업 사회의 개막과 금속 도구의 등장, 그리고 계급 사회의 출현이다. 야요이 시대는 일본의 농업이 급격히 발달하여 기긴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작성중)

야요이 시대는 농업이 일본 열도에 처음 보급된 시대로 이전부터 물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육도경작 형식의 농사를 지냈던 지역이 열도에 일부 존재하긴 했지만 낙후된 기술, 적은 수자원의 사용, 등으로 농사가 진행돼 산출량이 적었던 점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경작과 대규모 관개 시설이 야요이인들에 의하여 보급되자 비로소 농경지 개간이 빠르게 진행되고 보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수확량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암담했던 조몬인들의 식량 상황을 해결하였다. 500여년이 지난 기원전 5세기에는 수전경작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 체계가 전파되어 일본 특색의 완연한 농업 사회가 성립한다. 농업 사회는 특성상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사회였기에 마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마을은 점차 거대해져 마을의 행정조직을 확장시키게 되었으며 이는 야요이 시대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들의 탄생 초석이 되었다. 야요이 시대는 농업 말고도 금속 도구가 출현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특이하게 야요이 시대는 청동기와 철기가 공존하던 시대였다. 왜냐하면 청동기가 유입되면서 시간적 배경에 따라 한꺼번에 철기도 일본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며 이 영향으로 야요이 시대 때, 청동기는 청동의 특성상 제구의 역할을 갖게 되고 철기는 무기나 농기구의 역할을 가지게 된다. 한편 뜻밖에 금속 도구의 운용화는 농업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수확량 확충에 기여를 하게 되지만 금속 도구는 무기로도 사용되어 전쟁을 촉진시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철제 무기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이를 능숙하게 활용한 국가가 당연히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야마타이국과 야마토국이 이러한 나라였고 후일 이 두 국가는 각각 야마타이 왕권과 야마토 왕권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신분제도 야요이 시대에 성립되었다. 야요이 시대는 잉여생산물로 부상한 농산물을 주축으로 하는 현물 경제가 크게 활성화된 시기로써 농산물을 많이 가진 자가 높은 신분에 등극하고 적게 가진 자는 낮은 신분에 안주 함으로 인해 계급 사회가 성립되어 간 시대적 구간이었다. 이때까지는 국가 간 분쟁이 지속적으로 터지고 국내의 사회적 불안이 커서 재산을 쉽게 타인에게 뺏기거나 적군이 자신의 재산을 전리품으로 가져가는가 하면 혼란스러운 시기에 국내대장(局內臺帳)을[1]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분을 어이없게 상승시키는 방법까지 성행하였다. 그러나 이윽고 야요이 시대 말기에 평화가 정착되어 곡물축적이 쉽게 진행되고 관개용수 통제가 재정비되자 각 사람들의 신분 구조가 완전히 굳어지고 정리된 규율이 제정되면서 계급 사회가 수립되었다. 이후 신분제를 교묘히 이용하여 야요이 시대 말기의 지배층은 나라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게 통치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야요이 문화는 농업 사회와 계급 사회가 근간을 이루고 철제도구가 무기 또는 농기구의 방식으로, 청동제구 같은 장신구가 고위 신분의 상징으로 안착되어 근간을 뒷받침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야마타이국의 모습에 관한 추정화(畵)

야요이 시대는 농업 사회의 완전한 형성과 대륙의 각종 선진 문물들에 전파, 신분제와 신권의 성장, 등으로 여러 성읍 국가들이 탄생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 간 분쟁의 포문을 연다. 여기서 성읍 국가들은 더 많은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던 부락들이 서로 전쟁을 통해 합병되면서 생겨난 나라들인데 시간이 지나 차츰 히노쿠니(火の国), 키비노쿠니(吉備国), 이즈모노쿠니(出雲国), 코니소쿠니(越国), 히타카미노쿠니(日高見国) 같이 한 지방을 평정한 거대국가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중 여왕국(女王国)에서 근원한 야마타이국이 당대 일본의 지역들 중 가장 큰 번영을 누리던 기타규슈를 통합하고 세토내해에 인접한 지역들을 자국의 영향권으로 복속하였는데 이는 야마타이국이 금속기 제조업의 요충지이자 철광석이 풍부했던 곳으로써 타국과 달리 군사력이 훨씬 앞서 나갔던 점, 신권을 통하여 강력한 통치권을 구사하였던 점, 야요이인들이 가장 많이 이주하여 발전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기타규슈를 차지했던 점을 기초로 하여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규모의 정복 전쟁을 펼친 결과였다. 야마타이는 기원전 ㅇㅇ년의 시코쿠 북부 정벌을 끝으로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평화를 맞이하면서 군사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여 에미시들과 끝임없이 전쟁을 하는 한편 상공업과 농업을 발달시키고 영토와 군사력을 확충한 야마토국에게 국력으로 밀리게 되고 이윽고 국력을 비축한 야마토국은 야마타이국이 세운 야마타이 왕권을 무너트리고 새 왕권을 개창하니 야마토 왕권의 등장이었다. 야마토 왕권이 등장하면서 야요이 시대를 이끌던 기타규슈는 쇠퇴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일본의 중심지로 야마토 왕권에 주도국인 야마토국의 거점인 긴키가 부상한다. 이때 야요이 시대는 종식을 고하고 야마토 왕권의 수립을 시작으로 고훈 시대와 야마토 특색의 문화인 화풍 문화가 일본 열도에 등장한다.

고훈 시대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연구

시대 구분

관련 문서

각주

  1. 국가 내 백성들의 재산을 기록한 장부인데 이를 참작해서 뜻을 풀이하면 국가문서가 일개 민간인에 의하여 위조됐던 시기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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