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니노스 르네상스 (공동세계관)

콤니노스 황조 때, 점차 셀주크 제국은 내부 사정으로 인해 몰락을 하는 중이었고, 제국 주위에 제국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
콤니노스 황조의 황제들은 점령을 하기보다는 내치에 신경을 썼다. 이는 중앙의 군대가 궤멸된 것도 있었던 것뿐 아니라, 점령을 하면, 기존 테마의 군대들을 움직여야 하는데, 기존 테마의 군대들은 테마의 자영농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제국 군 소집에 비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콤니노스 황조는 정책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모든 일을 원로원과 상의하면서 해결했고, 원로원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는 꽤 성공적인 정책으로 결정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원로원의 실권이 강해졌다.
신학도 융성하게 되었는데,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때, 몇몇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자신에게 규정을 세워 해당 규정을 따르신다는 신학적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는 많은 지지를 얻게 된다.
하느님께서도 자신에게 규정을 세워 해당 규정을 따르시는데, 하느님의 지상형상인 황제 또한 이래야 하지 않겠냐는 법학적 논쟁이 오가게 되었고, 결국 황제는 대칙령을 선언하여, 황제가 대칙령을 따르겠다는 것을 서약하게 된다. 이는 현 대칙령의 토대가 된다.
지방에 학교가 설립됨에 따라, 지방에도 지식인층이 증가하게 되었고, 형이상학적인 논쟁을 하던 중앙과는 달리, 지방에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들은 농사를 더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 등과 같은 공학적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심지어 몇몇은 더 나아가, 경험한 것만 의미가 있다는 경험론을 주창하게 되는데, 이 경험론은 훗날 철학의 주축이 된다.
중앙에서 몇몇 학자들은 경험론에 반발하며, 합리론을 펼치게 되는데, 이 또한 훗날 철학의 주축이 된다.
문화뿐만 아니라, 경제 또한 융성하였는데, 원로원 내의 상공업자들이 상공업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몇몇 길드들은 대형 길드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들은 훗날 제국 대기업의 시초가 된다.
서방의 국가들은 제국의 부유함과 풍족함을 듣고, 이에 제국을 부러워하였다. 하지만, 제국의 군대가 굳건한 사유로, 제국을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