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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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은 헤르메스 연합 가입국이자 헤르메스 연합의 가상섬 국가이며, 운영되고 있는 가상국가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카카오톡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당 문서는 현재 공사중입니다!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Fosnesia

포스네시아 연방공화국 국기.png 포스네시아 연방공화국 국장.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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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Fosnesia)
국가 위대한 포스네시아
( "Fosnesia Raya" )
표어 우리는 하나일 때 강하다
( Together We Stand )
수도 누산타라
최대도시 옴파탄데스타트
인구 361,086,760명
(2018년 어림)
면적 2,835,792km2
(2018년 어림)
공용어 코아니아 인도네시아어
지역어 영어,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정치체제 단원제 직접민주주의하의 연방국가
집권여당 포스네시아 사회민주당
국가원수 포스네시아 대통령
연방 대통령 𝐓𝐞𝐫𝐫𝐚 .𝐕.𝐖.
연방 총리 지나가던 FBI (대통령 권한대행과 외교부 장관, 경찰청장,경제부 장관,국립은행 총재 등등)
경제체제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GDP $ 5744억
1인당 GDP $ 47,893
UN 가입 가입국가
Copyright 2021 Hora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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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모 산(Gunung Bromo)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의 브로모 산 풍경.jpeg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브로모 산(Gunung Bromo) 의 풍경과 경치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약칭 포스네시아는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사이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10,000여 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섬나라로 수많은 숫자의 섬으로 이루어져 나라 자체가 다도해이다. 그리고 많은 인구와 넓은 영토, 지정학적 중요성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역내에서는 매우 강력한 국제정치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역내에서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에 개입하는 여러 강대국들도 대단히 신경쓰는 편이다. 그리고 섬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와 코아나 제도로 나눌 수 있으며 많은 외국인들의 투자와 빠른 발전으로 동남아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이다.

국가상징

국호

전통적으로 누산타라라고 불렸으며 인도네시아라는 국명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대인 19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1850년대 영국인 조지 얼과 제임스 로건이 동인도 제도를 지칭하기 위해 인도라는 뜻의 'Indo'와 섬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nesos'를 합성하여 창안한 것이다. 이후 독일의 인류학자 아돌프 바스티안이 이 용어를 마다가스카르와 타이완 섬 사이에 위치한 도서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이 용어가 학술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인도네시아'가 점차 대중화되었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토착민 민족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적 표현으로 전유되어 1928년 10월 28일 선언된 〈청년의 맹세〉에 쓰이기에 이르렀다. 이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인들의 정체성 및 민족 의식에 있어 중요한 명칭이 되었다. 그리고 1955년 연방 성립 당시 코아나 제도는 국명을 그리스어 포스와 네시아를 합쳐 포스네시아라는 제안을 하였고 인도네시아인들도 이 국명을 환영했다. 그리하여 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이라는 국명으로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고 포스네시아는 밝은 빛이 가득한 섬이라는 뜻이다.

국기

포스네시아 연방공화국 국기.png

국장

포스네시아 연방공화국 국장.png

국가

위대한 포스네시아(Fosnesia Raya)는
와게 루돌프 수프라트만(Wage Rudolf Supratman)이 작곡하였으며, 1955년에 국가로 제정되었다.
위대한 포스네시아 악보.jpeg

1절
포스네시아, 나의 조국
나의 피로 세운 땅이여,
거기에 내가 서있다네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해.
포스네시아, 나의 나라여,
나의 민족과 조국이여,
다 같이 치자.
포스네시아인이여 단결하라!
나의 땅이여 영원하라, 나의 나라여 영원하라
나의 국민이여 조국이여, 모든 것이여,
그의 영혼을 일어나게 하라, 육체를 깨워라.
위대한 포스네시아를 위하여.
후렴: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자유로워라! 자유로워라!
사랑하는, 나의 집과 나의 나라여.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자유로워라! 자유로워라!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영원하라!
2절
포스네시아, 고귀한 땅
우리의 부유한 땅이여.
거기에 내가 서 있다네
영원토록 계속있다네.
포스네시아, 유산의 땅이여
우리 모두의 유산이여,
다 같이 기도하자,
즐거운 포스네시아를!
땅이 비옥하기를, 영혼이 행복하기를.
나의 국민, 조국, 모든 것이,
마음과 생각이 방심하지 않기를,
위대한 포스네시아를 위하여.
후렴: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자유로워라! 자유로워라!
사랑하는, 나의 집과 나의 나라여.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자유로워라! 자유로워라!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영원하라!
3절
포스네시아, 신성한 땅
우리의 승리의 땅이여.
거기에 내가 서 있다네
좋은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포스네시아, 빛나는 땅이여,
나의 사랑하는 땅이여,
다 같이 맹세하자.
포스네시아는 영원하다!
국민들이 안전하기를, 아들들이 안전하기를,
섬과 바다, 모든 것이
나라가 진보하기를, 수행원들이 나아가기를
위대한 포스네시아를 위하여.
후렴: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자유로워라! 자유로워라!
사랑하는, 나의 집과 나의 나라여.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자유로워라! 자유로워라!
위대한 포스네시아여 영원하라!

역사

인도네시아의 역사

• 17세기 이전

기원전 3,000~2,000년에 말레이시아인이 동남아시아대륙에서 이주해 와 원주민을 쫓고 정주했다. 기원 전후해서 인도인이 들어옴으로써 힌두교와 불교가 소개되었다.

• 살락왕국(130년~358년)시대와 타루마왕국 시대(358년~669년)

처음 130년에 서부 자와에서 살락 왕국이 건립되었다.358년에는 살락 왕국에서 타루마왕국으로 바뀌었다.처음 인도네시아에 인도인이 들어온해는 423년쯤이었다.불교와 힌두교가 소개되면서 650년에 건립한 스리위자야 왕국이 불교를 국교로 정하기도 했다. 타루마 왕국은 7세기 중반 스리위자야 왕국의 개입으로 669년 타루마 왕국이 멸망했다.

• 스리위자야와 사일렌드라 그리고 순다 왕국시대(650년~1293년)

650년에 수마트라의 팔렘방에 스리비자야 왕국이 일어나 650년~1293년에 번영했다.8세기에는 자바에서 사이렌드라 왕조가 일어나 보로부두르 등에 사원을 건설했다.669년 서부 자와의 왕국인 타루마왕국이 멸망하자 순다왕국이 건립되었다.하지만 순다왕국은 840년대까지 갈루 왕국과 순다 왕국으로 나뉘었다

• 마자파힛제국과 이슬람국가(1400년~) 시대 (1293년~1600년)

1293년에 일어난 자바의 마자파힛 제국의 세력 범위를 현재의 인도네시아를 능가하는 것이었다.1430년에 치르본 술탄국이 건국되었다.그러면서 1481년 드막술탄국이 건국하고 1496년에 아체술탄국도 건국되었다.1511년에 아체 술탄국은 믈라카 술탄국이랑 전쟁을 벌인다.1526년에 반튼 술탄국이 건국되었다.1527년에 드막 술탄국이 마자파힛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린다.1554년 드막 술탄국이 멸망하다.1565년 아체술탄국과 조호르 술탄국의 전쟁이 일어났다.1579년 반튼 술탄국의 개입으로 순다 왕국이 멸망했다.1587년에 드막 술탄국을 잇는 마타람 술탄국이 건국되었다.1595년 네덜란드인들은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섬에 도착한다.

• VOC네덜란드의 점령(1602년~1799년)

1602년에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향료(香料) 무역의 독점을 노려 인도네시아와 코아나 동부를 그 지배하에 넣었다. 그리고 1780년 영국 네덜란드 전쟁으로 코아나를 빼았기게 된다.

• 네덜란드 식민지시대(1799년~1941년)

그 후 네덜란드와 영국(英國)간에 세력의 각축이 있어 인도네시아는 일시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1824년의 조약으로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가 확립되었다.1903년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인해 아체 술탄국이 멸망했다. 그리고 이때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의 개발이 시작된다.

2차대전중 인도네시아는 일본군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이때 동인도에 잔류하던 네덜란드 관료들과 많은 난민과 이주민들이 코아나 제도로 이주하거나 망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대전이 끝나면서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언했다.인도네시아 지역의 지배권을 잃고 싶지 않던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많이 비슷한 코아나 공화국이 전쟁을 지원해주었고 결국에 인도네시아가 1949년 12월27일 정치적으로 승리한다. 1949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연합 아래 독립국가로 발족했다.1950년에는 인도네시아가 UN의 승인을 받는다. 그리고 이때 인도네시아는 자신의 국가와 공통점이 많은 코아나와 연방을 하자고 코아나 공화국의 제안하였고 이로인해 연방의 대한 회담을 가졌고 1955년 코아나와 인도네시아는 연방국가로서 합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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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나의 역사

• 신항로 개척 시대와 코아나의 발견

마젤란의 일행이 코아나 제도를 발견했을 당시 그 탐험대의 수준은 너무 낮은 편이라 원주민들 조금만 발견하고 다시 빨리 스페인으로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코아나 제도가 유럽 사회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이 이 제도를 식민화 하기 위해 다시 갔지만 제도의 작은 섬만 탐험되고 발견했던 시기라 스페인 제국은 포기하고 포르투갈이 이 작은 섬에 뉴포르투 시티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이 섬의 적자는 계속되었고 1638년 스웨덴 제국에게 팔아넘기게 된다.

• 스웨덴 제국의 코아나 통치 시기 (1638년 ~ 1711년)

스웨덴 제국은 값싸게 코아나를 사들이고 자국민을 코아나로 보내 코아나를 발전시키게 했다. 이로 인하여 코아나 제도 모든 섬이 발견되었고 이때 옴파탄데스타트 요새가 건설되었다. 이 요새는 앞으로 포스네시아 국기에 들어가는 그 요새가 되게 되었다. 일단 스웨덴 제국민들이 많이 정착하여 도시를 형성하고 번성하고 있을때 코아나 최대의 도서관인 락테아 도서관이 건설되었다. 본국에선 대북방전쟁이 일어났다. 그로인하여 식민지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였고 식민지에 스웨덴인들과 원래 원주민들에 분노를 사게 하였다. 그러나 스웨덴 제국은 1721년에 완전히 무너지자 영국과 네덜란드는 이 틈을 타 무정부 상태인 코아나 제도를 침공해 영국령 코아나와 네덜란드 동인도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나중에 코아나 협상을 통해 완전한 대영제국과 네덜란드 제국의 영토가 되며 이로 인해 스웨덴과 영국 및 네덜란드의 문화가 코아나 제도안에 공존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 대영제국의 코아나 통치시기 (1711년 ~ 1920년)

대영제국이 코아나를 식민지로 삼고 이제 대영제국은 코아나를 재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때 코아나는 풍요의 시기를 누렸다. 하지만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1780년대 반발했고 코아나와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는 두 세력간 앞바다에서 교전을 했으나 결과는 네덜란드의 패배로 코아나는 안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인도네시아까지 코아나 군이 진군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코아나로 돌아갔고 이때 인도네시아인들이 코아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해 코아나 제도 전체가 영국에 통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 1918년)이 반발하자 코아나도 영국의 식민지로서 영국을 도와 참전하였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 자결주의를 발표하며 코아나인들은 독립의 대한 꿈을 다시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이 발표되자 코아나는 주권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 완전히 독립하자는 시위가 1932년 1월 1일 일어난다. 이 시위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고 코아나 당국은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영국 본토에선 독립 세력과 전쟁/독립승인으로 나뉘었는데 이때 강경파가 우세하여 코아나에게 선전포고 해서 1935년간 3년간 전쟁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막강한 힘으로 찍어눌르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코아나는 아일랜드 처럼 독립 전쟁(3년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그리고 1935년 공식적으로 독립국가로 승인받게 되었다.

코아나 공화국 시기 (1935년 ~ 1955년)

공식적인 독립국가로 인정받아 신생국으로 코아나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의회가 구성되었고 스웨덴인과 영국인그리고 코아나 원주민들이 서로 각자 존중받으며 2개의 문화가 공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아나는 코아니아 인도네시아어,스웨덴어,영어등 3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꽤 안정적으로 독립은 했으나 독립한 시기가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이루어졌던 대공황이라 코아나의 경제는 나락으로 가기 시작했다. 코아나 정부는 이런 상황의 국민들이 극단적으로 되는걸 방지하고자 정책을 펼치고 대공황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이겨내게 된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반발하자 코아나는 중립을 선언하였고 코아나 제도는 많은 핀란드인, 폴란드인,유대인등 심지어는 독일인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했습니다.이로 인하여 코아나의 지식인들이 늘어났고 코아나의 발전의 도움이 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많은 인도네시아계 사람들과 동인도에 잔류하던 네덜란드 관료들이 많이 오게 되었고 인도네시아와 문화가 코아나 제도안에서 공존하는데 큰 기틀 세웠고 그리고 그 가운데 인도네시아계 사람들 때문에 문화가 많이 가까워지게 되는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섬 인구의 약 39%가 현재 난민의 후손이 되었고, 코아나 제도는 1955년 유엔에 가입했으며 사회, 경제, 정치 및 군사 지표를 기반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49년 인도네시아 합중공화국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자국민 보호와 세계 평화란 명분으로 군대를 파병하게 되는데 이때 인도네시아와 코아나간 연방국가로서 재탄생하는 회의가 진행됩니다. 이 회의가 진행된 이유는 자세히는 모르나 인도네시아인 대부분이 코아나와 하나의 연방을 이루길 원했습니다. 오래전 2차 세계대전때 인도네시아가 점령되었을때 네덜란드령 동인도 정부가 이 곳에 있었고 많은 이해관계로 1950년 인도네시아가 독립하자 인도네시아 공화국과 코아나 공화국은 연방으로서 통합되기 위한 회의를 1950년 부터 55년까지 진행합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반발하자 코아나는 UN 평화 유지군을 파병하고 세계의 자신들의 국가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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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네시아 연방 공화국 (1955~ )

1955년 코아나와 인도네시아는 공식적으로 하나의 국가로서 포스네시아 연방의 헌장을 발표했고 하나의 국가로서 통합되었습니다.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하나,둘씩 해결해나가며 연방 형성은 둘다 식민지였던 공통점과 인도네시아인들의 문화가 비슷했다는 점(인도네시아계 주민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코아나가 인도네시아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연방은 비교적 순조롭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후 코아나 제도는 1950년대까지 대부분의 농업 국가로 남아있던 산업화의 후발주자였으나 연방 성립 이후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여 1970년대에는 세계 최고 소득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1970년과 1990년 사이에 코아나 제도는 광범위한 복지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1976년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동티모르섬을 합병했고 1980년대 후반에 국가의 심각한 불황의 여파로, 연속 정부는 약간의 사유화, 규제 완화 및 세금 감면을 통해 포스네시아식 경제 시스템을 변경했습니다.

• 현대

1999년 8월 동티모르는 주민 투표에 의해 독립이 결정되었고 코아나와 인도네시아는 첨단 제조 및 의료 부문의 점유율과 같은 국가적 성과에 대한 많은 국제 비교에서 좋은 위치까지 올라갔고 경제적 성과와 삶의 질을 기반으로 하는 2005년 평가에서 코아나는 4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후 계속되어 평화로운 곳으로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외국인 투자가 많이 들어와 코아나의 발전은 계속해서 진행 중이고 개발도상국이였던 인도네시아를 지역강국으로서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2013년 자카르타가 가라앉고 있나는 걸 안 포스네시아 정부는 새로운 수도를 만들고 2021년 누산타라로 수도를 천도하게 된다. 수도를 천도하면서 수도의 국민들이 반발하긴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였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와 코아나는 계속 발전을 하고 있으나 2019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가 자체가 주춤하고 있다.

자연

문화

경제

군사

교육

정체성

포스네시아인들의 정체성 형성은 꽤 늦게 시작되었다. 1890년대부터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코아나인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코아나는 원래부터 다양한 민족들이 살던 다민족 국가였고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중 인도네시아계 사람들과 네덜란드 사람들도 많이 왔고 정체성이 또 한번 흔들렸다. 1955년 연방 형성이후 인도네시아와 코아나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을때 1950년, 연방이 기정사실화되자 "포스네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이걸 중심으로 포스네시아인들은 다양한 민족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체성을 성립해나갔다. 코아나의 원주민과 식민통치 시절에 들어온 사람들은 동화되고 정체성이 바뀌며 점차 포스네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로 가지게 되고 있었고 그 후 포스네시아가 선포되고 "포스네시아인"이라는게 완전히 새겨지게 되었고 포스네시아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