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노엘 바뵈프 François-Noël Babe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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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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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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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생캉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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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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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5월 27일 (향년 3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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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제1공화국 방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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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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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프랑스 제1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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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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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정치인, 사상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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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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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뢰브 데 자코뱅 네오 자코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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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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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진주의, 공상적 사회주의, 원류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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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사회라는 인간의 스프링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구부러지기 때문이다. 인민은 억압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 사회의 존재 이유가 최대 다수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런 반란은 옳은 일이다. 인민이 아직 허리가 꺾이도록 구부러져 있다면, 통치가 뭐라고 말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혁명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만약 혁명이 완수된 것이라면 지금의 통치자들이 죄를 저지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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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뵈프의 최후 변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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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노엘 바뵈프 또는 그라쿠스 바뵈프는 프랑스 혁명기에 활동했던 혁명가, 사상가, 정치인, 언론인. 당대의 무수한 혁명가 중에서도 초급진파에 속하던 사람으로 앙시앵 레짐과 기득권층, 자본가, 부르주아 등에 저항하여 평등을 강조하며 반체제 운동을 펼쳤다. 때문에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로 평가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