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경제국)

대경제국 훈민정음.jpg
표지와 아래 인용문이 다른건 기분탓

개요

나라 각지의 말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교류가 힘들다. 이런 까닭으로 짐이 새로운 28 글자를 만드니 백성은 이를 국문으로써 사용하라
—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대경제국대경제국 제1제국, 그리고 대경국의 국문(國文)이다.

명칭의 유래

역사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

대경국은 건국 이후 세종의 치세에 순지 지역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던 구국구말왕의 집권기에 접어들어, 잦은 궁중 권력 암투와 명나라, 첼라놉스크족의 북방 영토 강탈 및 북방 국경 약탈이 심화되면서 구국의 종말이 앞당겨진다. 이후 구말왕이 근왕대신들을 이끌고 대경 세종에게 입조하면서 마지막 맥족계 국가이자 [1] 마지막 경민족의 제3세대 국가인 구국이 대경국에 합병됨에 따라 경민족은 최초의 통일 국가를 수립한다. 세종은 영토 각지마다 다르게 쓰이는 문자[2]로 인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여, 통일된 문자의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이후 통일된 문자 정립에 대한 기구 설치를 교칙을 통해 공포하면서 본격적인 통일 문자 연구가 생작된다.

훈민정음 창제

세종은 애가 출신 학자들을 중심으로 새 통일 문자 연구를 시작한다. 하지만 애가와 함께 건국 초 국가 사상으로 채택됐던 성리학 학자들이 명나라와의 사대관계를 근거로 '명나라의 글자를 아니 쓰면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는 뜻의 明音不用中歡非居[3]를 주장하며, 파업[4]을 하는 등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와 잠시 통일 문자의 연구를 유보했다가 비밀리에 다시 시행한다. 통일 문자의 연구가 시작된지 몇년이 지나고 1443년에 세종은 통일 문자의 연구를 완료하고 그 통일 문자를 훈민정음이라 명명함으로서 훗날 한글이라 불리우는 문자를 창제한다. 이후 훈민정음에 대한 혜례본 편찬을 애가학자들에게 명한다. 이후 1446년 음력 9월에 공식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대경국 초기

대경국 후기

대경제국

근현대

현재

창제의 원리

조음기관 모방

자음

모음

자의 변화

글자 수의 변화

자모순서의 변화

모습의 변화

창제 까닭

한글에 관련된 문헌

오해

단점

비판

전산시

타국인들의 관점에서 본 한글

각주

  1. 제1세대 국가는 조선, 부여, 옥저, 동예, 진국이고 제2세대 국가는 고구려, 백제, 신라이다. 제3세대 국가는 구국, 고려, 조선 후기 위씨왕조이며, 제4세대 국가는 대경국이다.
  2. 구국 지역은 옛 맥족의 고대문자가 쓰였고 나머지 지역은 이두문자를 비롯한 토속문자들이 있었다.
  3. 음:명음불용중환비거
  4. 성균관 유생들은 성균관을 안 나왔고 집현전의 성리학자들은 집현전에서 동료 애가학자들이 있을 때 대놓고 앞에서 자는 등이 사실상 파업이나 다름 없는 행동들을 했다.